신앙의 신비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2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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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신동엽 시인 / 담배 연기처럼

신동엽 시인 / 담배 연기처럼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신동엽(申東曄,) 시인(1930년-1969년) 1930년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전주사범학교에 입학. 1949년 부여..

10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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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현승 시인 / 연(鉛) 외 5편

김현승 시인 / 연(鉛) 나는 내가 항상 무겁다, 나같이 무거운 무게도 내게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거워 나를 등에 지고 다닌다. 나는 나의 짐이다. 맑고 고요한 내 눈물을 밤이슬처럼 맺혀보아도, 눈물은 나를 떼어낸 조그만 납덩이가 되고 만다. 가장 맑고 아름다운 나의 시를 써보지만, 울리지 않는다. - 금과 은과 같이는 나를 만지는 네 손도 무거울 것이다. 나를 때리는 네 주먹도 시원치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음성 나의 눈빛 내 기침소리마저도 나를 무겁게 한다. 내 속에는 아마도 납덩이가 들어 있나부다, 나는 납을 삼켰나부다, 나는 내 영혼인 줄 알고 그만 납을 삼켜버렸나부다. 김현승 시인 / 오월의 그늘 그늘. 밝음을 너는 이렇게도 말하는구나. 나도 기쁠 때는 눈물에 젖는다. 그늘. 밝음에 너는 ..

09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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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현승 시인 / 시의 맛 외 6편

김현승 시인 / 시의 맛 멋진 날들을 놓아두고 시를 쓴다. 고궁(古宮)엔 벗꽃, 그늘엔 괴인 술, 멋진 날들을 그대로 두고 시를 쓴다. 내가 시를 쓸 때 이 땅은 나의 작은 섬,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을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나는 호올로 시를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썪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의 참된 어버이. 내가 시를 쓸 땐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풍(江原道風)의 어둔 눈이 나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산(産)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눈을 뜬다. 김현승 시..

22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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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서정주 시인 / 밤이 깊으면 외 8편

서정주 시인 / 밤이 깊으면 밤이 깊으면 淑숙아 너를 생각한다. 달래마눌같이 쬐그만 淑숙아 너의 全身전신을, 낭자언저리, 눈언저리, 코언저리, 허리언저리, 키와 머리털과 목아지의 기럭시를 유난히도 가늘든 그 목아지의 기럭시를 그 속에서 울려나오는 서러운 음성을 서러운서러운 옛날말로 우름우는 한마리의 버꾸기새. 그굳은 바윗속에, 황土황토밭우에, 고이는 우물물과 낡은時計시계ㅅ소리 時計의 바늘소리 허무러진 돌무덱이우에 어머니의時體시체우에 부어오른 네 눈망울우에 빠앍안 노을을남기우며 해는 날마닥 떳다가는 떠러지고 오직 한결 어둠만이적시우는 너의 五藏六腑오장육부. 그러헌 너의 空腹.공복 뒤안 솔밭의 솔나무가지를, 거기 감기는 누우런 새끼줄을, 엉기는 먹구름을, 먹구름먹구름속에서 내이름ㅅ字자부르는 소리를, 꽃의 이..

21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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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서정주 시인 / 가을비 소리 외 8편

서정주 시인 / 가을비 소리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서정주 시인 / 가을에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門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低俗저속에 抗拒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잎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雁行안행-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菊花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白露백로는 ..

20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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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새해 외 6편

피천득 시인 / 새해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피천득 시인 / 시월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피천득 시인 / 어떤 유화 오래 된 유화가 갈라져 깔렸던 색채가 솟아오른다 지워 버린 지워 버린 그 그림의 피천득 시인 / 연정 따스한 차 한잔에 토스트 한 조각만 못한 것 포근하고 아늑한 장갑 한 짝만 못한 것 잠깐 들렀던 도시와 같이 어쩌다 생각나는 것 피천득 시인 /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

19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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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피천득 시인 / 너는 아니다 외 5편

피천득 시인 / 너는 아니다 너같이 영민하고 너같이 순수하고 너보다 가여운 너보다 좀 가여운 그런 여인이 있어 어덴가에 있어 네가 나를 만나게 되듯이 그를 내가 만난다 해도 그 여인은 너는 아니다 피천득 시인 / 너는 이제 너는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도 고독도 그 어떤 눈길도 너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안정을 얻기 위하여 견디어 온 모든 타협을. 고요히 누워서 네가 지금 가는 곳에는 너같이 순한 사람들과 이제는 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잠들어 있다. 피천득 시인 / 노 젓는 소리 달밤에 들려오는 노 젓는 소리 만나러 가는 배인가 만나고 오는 배인가 느린 노 젓는 소리 만나고 오는 배겠지 피천득 시인 / 눈물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

18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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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조병화 시인 / 내 마음에 사는 너 외 4편

조병화 시인 / 내 마음에 사는 너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안에 밤을 재우고 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리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너의 날은 내일에 있고 나의 날은 어제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세월이다 문닫은 먼 자리, 가린 자리 너의 생각 밖에 내가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있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조병화 시인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른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그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17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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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조병화 시인 / 후조 외 5편

조병화 시인 / 후조 후조기에 애착일랑 금물이었고 그러기에 감상의 속성을 벌써 잊었에라 가장 태양을 사랑하고 원망함이 후조였거늘 후조는 유달리 어려서부터 날개와 눈알을 사랑하길 알았에라 높이 날음이 자랑이 아니에라 멀리 날음이 소망이 아니에라 날아야 할 날에 날아야 함이에라 달도 별도 온갖 꽃송이도 나를 위함이 아니에라 날이 오면 날아야 할 후조이기에 마음의 구속일랑 금물이었고 고독을 날려버린 기류에 살라 함이 에라 조병화 시인 / 벗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등불이다 그 휴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먼 내일에의 여행 그 저린 뜨거운 눈물이다 그 손짓이다 오늘 이 아타미 해변 태양의 화석처럼 우리들 모여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조병화 시인 / 사랑의 계절 해마다 꽃피는 계..

16 2021년 02월

16

◇ 시인과 시(근대) 조지훈 시인 / 새아침에 외 6편

조지훈 시인 / 새아침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진(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법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영겁(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조지훈 시인 / 암혈(岩穴)의 노래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