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의 진실탐구

역사학도 2013. 11. 2. 22:36

1980년 5월 20일 광주로 침투한 무장단체가 머리에 두른 흰수건은 비표였으며, 복면을 비표로 삼고 광주에서 무장봉기를 주동하였던 세력은 목포에서 온 김대중 계열의 복면부대였다. 1989년 1월 26일자 광주청문회 진행 소식을 보도하는 아래의 MBC 뉴스 동영상 1:04 에서부터 김석진 기자는 복면폭도들에 대한 김영택 기자의 증언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김영택씨는 또 5월 22일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 여명이 시위에 합류하였으며 오후부터는 복면을 쓴 사람들이 시위 군중 속에 나타나 강경 구호를 외치거나 시민군의 총기 반납을 저지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여 이들의 정체에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광주 토박이 김영택 기자가 보기에도 복면 쓴 무장단체는 정체가 수상하였다. 그가 "이들의 정체에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시민군 복면부대는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영택 기자는 5월 22일 오후에 비로서 처음으로 복면 괴한들을 보았다. 그러나 푸른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영상물은 5월 20일 오후에 이미 복면괴한들이 광주로 침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래 캡쳐 사진은 위 영상의 한 장면이다. 5월 20일 오후 목포에서 온 김대중 계열 별동대 차량 행렬이 다리 위를 달리며 광주로 진입하는 순간 가로등 옆에서 복면괴한이 목포 별동대를 환영하며 행선지를 안내하는 광경이 힌츠페터의 영상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되었다. 시민군 중에 별동대가 있었는가? 김영택 기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위 청문회 동영상에서 김영택 기자가 "5월 22일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 여명이 시위에 합류하였으며"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시민군 실은 수 백 명이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외지인 별동대였다는 말이다.

가로등 옆의 무장 복면괴한

광주로 침투하는 외지인 무장단체
목포 별동대

위 두 장의 사진에서 다리 위 가로등 옆 복면괴한이 왼 손으로 카빈소총을 옆으로 눕혀서 든 채로 오른손으로는 손짓을 하면서 군용트럭 위의 무장괴한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에 트럭 위의 무장괴한들이 총을 위로 높이 치켜세우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트럭 위의 무장괴한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있는데, 이것은 비표의 구실을 하였으며 언제든 복면으로 활용될 수 있는 수건이었다. 조수석에서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고 있는 괴한은 이미 복면을 한 모습이 눈에 띈다. 김영택 기자가 5월 22일부터 본 복면괴한들이 바로 이 자들이었다.

목포 조폭의 구호 김대중 선생 만세

위 사진에서 "김대중 선생 만세"라고 씌어진 현수막을 건 청색 트럭 적재함에 올라탄 괴한들도 한결같이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있으며, 운전석과 조수석의 괴한들은 이미 복면을 쓰고 있다. 목포 김대중 계열 별동대 5월 20일 광주 침투를 클릭하면 5월 20일 김대중 계열 별동대 조직,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는 세력 100여명이 광주로 올라온 사실을 기록한 문건이 있다. 아래 사진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남자가 군용트럭을 타고 뒤에 따라오는 무장세력에게 손짓으로 신호하고 있다. 주로 주동자들이 복면을 하였으며, 한국 기자들이 없는 곳에서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체를 숨기는 효과가 있었다. 또 머리에 두른 수건은 무장세력 조장들의 비표 혹은 계급장 구실을 하였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자들이 시민군 작전 지휘를 하였다.

푸른 눈의 목격자 화면

아래 동영상을 보면 이들이 바로 다음 날 21일 정오 무렵 금남로4거리 등에서 무기와 실탄을 분배한 자들이었다. 이 동영상에서 보듯이 머리에 흰수건을 두른 자들이 21일 오전 무장시민군을 금남로로 집결시키며 전남도청 공격 작전을 지휘하였다.



5월 21일 오전 광주 금남로 인근에서 무기와 실탄을 분배한 자도 머리에 두른 백색수건으로 비표를 한 자요,

시민군 실탄 분배

시민군 장갑차 작전을 지휘한 자 역시 머리에 두른 백색수건으로 비표를 한 자였다. 이렇듯 20일 오후 목포에서 온 별동대가 21일 오전에 광주를 무장폭동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시민군 장갑차

목포에서 온 별동대가 전원 목포 깡패 조직이었을까? 아래 사진에서 철모에 백색수건으로 비표를 한 시민군이 장갑차에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대형 무전기를 휴대하고 있다. 이 시민군은 전투병과 통신병의 역할 등을 동시에 수행하는 특수부대원급 시민군이다. 조폭이 장갑차와 기관총과 통신장비 등을 저렇게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까? 아마도 별동대 속에는 도시게릴라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원급의 제3의 조직이 끼어있었다는 견해가 저 무장폭도가 광주시민이라는 주장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폭도들이 탈취한 20사 지프차

김영택 기자는 5월 21일 오전 8시에 낫으로 무장한 농민 50명이 광주 톨게이트 인근에 매복하고 있다가 20사단 인솔대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사실을 기록한다. 어디서 온 농사꾼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운전면허 소지자가 극소수였던 시절에 모두가 능숙하게 군용 지프차를 운전하며 긴 지프차 행렬을 이루며 어디론가로 가고 있다. 그런데 지프차에 탑승한 농사꾼들이 한결같이 머리에 백색띠로 비표를 하였으며 입은 옷들이 세가지 색상의 동일 무늬 제복이다. 농촌에서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라 각기 다른 마을에서 모여든 청장년들이었다면 각자의 개성에 따라 민간인의 옷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인데 어떻게 모든 같은 옷을 입고 있는가? 동일 비표와 동일 제복으로 보아 이들은 분명 한 조직에 속한 자들이었다. 이 농민들이 도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였기에 5월 21일 이른 아침에 광주에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이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21사 지프차들을 탈취하여 몰고 다녔던 것인지 이제 5.18 단체들도, 5.18 재판을 주도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 사형을 구형하였던 채동욱 떡검도,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공수부대원 복장의 시민군


위 사진에서 보면 농민들이 어느새 공수부대 군복으로 갈아입고 지프차를 몰고 다니고 있다. 첫번째 지프차에서 서있는 시민군은 잠시 목으로 내린 복면과 양쪽 귀 옆의 장발을 제외하면 누가 보아도 진짜 공수부대원으로 혼동할 만하다. 아무 민간인에게나 공수부대원 군복을 입힌다고 강인하고 날렵한 공수부대원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농사꾼이 저렇게 오랜 훈련으로 단련된 공수부대원이 외모를 지닐 수 있겠는가? 그래서 20사 지프차들을 탈취한 농민들의 정체가 수상한 것이다. 여하튼, 공수부대원들에게 누명을 씌울 작정으로 공수복장을 한 시민군 숫자가 저렇게 많았다는 사실이 이 사진으로 다시금 확인되었으니 애매한 공수부대원들이 지난 33년간 썼던 누명에 대해서는 이제 재조명이 불가피하다. 공수부대원 복장의 시민군들이 지프차들에 탑승하였음을 보여주는 이 사진에서도 머리에 흰색 수건을 두른 자가 조장처럼 보인다.

저 위 칼러 사진에서 지프차를 타고 다니는 농민들이 진짜 농민이었는지의 의문을 푸는 하나의 단서가 아래 사진이다. 5.18 사기꾼들은 5월 21일 오후 한시 반 이후에 광주시민들이 무기 탈취하러 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아래 두 장의 사진에서 보듯 이미 정오가 되기 전에 외지인들이 금남로 4거리 인근에서 무기 분배를 시작하고 있었다. 연한 녹색 복면을 하고 짙은 녹색 상의를 입은 이 무장폭도의 상의 무늬를 눈 여겨 관찰하면 위 지프차 행렬 칼러 사진에서 지프차틀 타고 있는 농민들의 상의에 박힌 원형 체크 무늬와 동일한 무늬가 박혀 있다. 뮬론 사복이요, 민간인 복장이다. 그러나 항상 군인들이 군복 혹은 전투복 상의를 바지 속에 넣고 혁대를 메듯이 원형 체크 무늬 상의 입은 농민들이 그런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이들은 하나의 군사 조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선가에서 탈취해 온 총과 실탄을 분배하는 데도 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북한군 특수부대원처럼 보이는 시민군
시민군 총과 실탄

만약 뉴욕이나 런던이나 서울에서 괴무장단체가 저렇게 도심지에서 무기분배를 하고 관공서를 접수하여 해방구를 설치할 목적으로 총기 테러를 감행하려고 할 때 국가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광주에서만 그 대처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가?

해남경찰서 무기탈취

 5.18사기꾼들은 광주시민들이 5월 21일 오후 한 시반 이후에 여러 도시로 무기 탈취하러 출발하였다고 거짓말하지만 위 사진은 이미 정오에 해남경찰서에서 무기 탈취가 자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 명의 전남대 운동권 학생을 동행시킨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폭도들은 한결같이 복면을 하였다. 사진 왼쪽에서 운동권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왼손에는 두 자루의 총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카메라처럼 보이는 물체를 들고 있다. 이 청년 뒤의 세 명의 복면폭도들이 모두 총을 소지하고 있다 (이 사실은 5월 21일 정오 해남경찰서 무기탈취 큰 사진으로 보기를 눌러 큰 사진으로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음). 이처럼 위 사진은 힌츠페터의 영상물과 김영택 기자의 증언에 이어 시민군이 이미 21일 정오 이전에 여러 자루의 총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물이다. 5월 21일 정오에 해남경찰서를 습격한 이 복면폭도들은 광주시민들이었는가 아니면 외지에서 동원된 조폭 조직이었는가? 이것은 5.18 단체들이 답변해 주어야 할 문제이다.

박금희 양이 탄 시민군 트럭

위 사진의 차량은 당시 춘태여상 3학년이었던 박금희 양이 5월 21일 오후3시경 시민군 총기오발 사고로 사망하기 직전 타고 다니던 시민군 군용트럭이다. 이 시민군 차에서도 인솔자는 트럭 적재함 앞쪽 중앙에 서있는 무장폭도이며 역시 머리에 백색 비표를 두르고 있다.

시민군

위 사진 속의 시민군은 동아일보 기자가 자신을 찍을 때 기자를 노려보기도 하고 아래 사진에서처럼 얼굴을 푹 숙여 얼굴이 찍히지 않게 하기도 하였다. 시민군이 군복 입고 철모를 쓰고 있으니 광주시민들 중에는 이 자를 군인으로 오인한 시민들도 꽤 있었음 직 하다. 이처럼 군복으로 위장한 이 시민군은 철모에 백색띠 비표를 두르고도 얼굴에 복면을 걸치고 있었다. 철모를 두른 비표에 쓰인 문자 "김대중씨 석방하라"는 이 자가 김대중 계열 별동대 소속이었음을 시사한다.

장갑차 탄 시민군

아래사진 속의 무장폭도는 철모를 쓰고 있지 않으나 위 사진의 철모 쓴 폭도와 동일 규격의 비표를 머리에 두르고 있으며, 백색비표에 쓰인 문자 "김대중씨 석방하라"도 동일하다. 오늘 우리가 저런 띠를 만들려 해도 인터넷에서 어떻게 저런 규격의 백색 천을 주문해야 하는지 모르며, 어떤 필기도구로 저런 글씨를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저것은 볼펜으로 쓴 글씨가 아니다. 5월 21일 오전 시민군 차량들이 광주외곽으로부터 금남로로 시민들을 수송하여 왔을 때 시민들이 각자 저런 동일 규격의 백색 천과 필기도구를 준비해 왓다가 금남로 무장시위 현장에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문자 "김대중씨 석방하라"를 그 천에 쓰고 머리에 동여맸던 것인가? 그것이 아니었다. 동일 구호가 동일 필체로 쓰인 동일 규격의 비표를 사전에 조직적으로 준비한 조직이 있었다.

무장폭도의 백색수건 비표

아래 사진에서 전방에 보이는 하이콜드 간판은 당시 8층건물인 관광호텔 건물 옥상에 설치된 광고탑이며 지금은 광주일보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맞은편 백색 11층 건물이 당시 전남일보 사옥이다. 이 사진에서 시민군이 전경 복장으로 위장하고 총을 들고 시민군 군용트럭을 타고 있는데, 운전석의 인솔자는 머리에 백색 수건을 두르고 있다. 인솔자가 길을 묻자 두 명의 남자가 도청분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보아 전남대병원이나 기독교병원 혹은 사직공원 쪽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듯하다. 98번 트럭 위에 2개 분대 병력의 시민군이 타고 있으나 아무도 도청광장에서 도청 인근 지리를 모르고 있다. 98번 트럭에 탄 시민군 중 아무도 광주시민이 없었고, 모두 외지인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그 누가 보더라도 이들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경 복장으로 위장한 시민군

5월 22일부터 전국의 기자들이 광주로 모여든 것은 21일에 민간인 무장단체가 전남도청을 함락한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이었다. 신문기자들이 모여든 광주는 군인과 경찰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도시였다. 전 날 경찰은 모두 민간인 옷으로 갈아 입고 광주를 빠져나가 멀리 피난 갔다. 군인들 역시 모두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였다. 따라서 이제 전혀 복면을 쓸 필요가 없었을 때 오히려 복면괴한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장폭도들이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의식해서였다. 광주사태 희생자들 중에 카빈소총 총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고 M16 총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던 이유는 무장시민군이 카빈소총과 M16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손에 M16 소총을 들고 지프차에 올라탄 무장폭도를 보면 5월 21일 오후에 전남대 인근 평화시장 길목 전봇대에 총을 가리고 숨어 있다가 임산부 최미애씨에게 총을 쏜 북한군 모습이 어떠하였을 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폭도가 눈만 남기고 복면을 하였는데, 김영택 기자가 본 목면부대의 인상착의가 이러했다.    
 

  M16소총을 든 시민군

아래 사진에서도 지프차를 탄 두 명의 무장폭도가 머리카락만 남기고 복면을 하였는데, 사회생활하는 민간인처럼 보이지 않는 두발상태만 보아도 이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5.18 복면무장괴한


목포에서 온 별동대가 광주에서 사납고 과격하게 무장봉기를 주동하였을 때 광주에서는 광주운동권 윤상원과 아세아자동차 직원 김영업 등 광천동 운동권 조직이 합세하였다. 따라서 복면부대가 100 퍼센트 외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광주시민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장폭도들은 무장폭동이 떳떳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복면을 하였다는 것이다.

아세아자동차 공장 차량탈취범

위 사진 왼쪽 붉은 점퍼 무장폭도가 똑같은 수건 두 개로 복면한 것을 주목해 보자. 이 수건이 아래 사진의 세 명의 시민군이 복면으로 사용하는 수건과 동일한 수건이다. 이 세 명의 무장괴한들이 한 형제가 아니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상의 역시 모두 비슷한 줄무늬이다. 이들이 모두 똑같은 수건으로 복면을 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5월 21일 정오에 광주시민들이 금남로로 모여 들었을 때 초여름의 화창한 봄날씨가 추울 것이 걱정되어 각자 수건을 지참해 왔는데 우연히도 모두 똑같은 수건이었던 것이었을까?

복면수건이 동일한 시민군


아래 사진에서 똑같은 수건으로 복면을 한 붉은점퍼 무장폭도는 5월 21일 오전 9시에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군용차량들을 탈취할 때 이미 이 수건으로 복면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수건은 그 날 정오 무렵 금남로로 모여든 시민들이 각자 지참해 온 것이 아니라, 그 날 아침 9시 이전에 어떤 조직에게 단체 지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왼쪽의 두 명의 무장폭도는 이미 21일 오전 9시에 언제든 연발사격할 수 있도록 탄창이 장착된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에서 머리에 백색띠 비표를 한 자가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지프차 뒷칸에 서서 몸을 굽히고 있는 두 청년의 상의는 저 위 오전 8시에 20사 지프차들을 탈취하여 몰고 다니는 농사꾼들의 지프차 행렬을 보여주는 칼러 사진 속의 농사꾼들의 상의와 동일한 상의이다. 오전 8시에 20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조직이 오전 9시의 아세아자동차 군용차량 탈취에도 개입되어 있었다. 오전 8시와 9시 사이에 지프차를 탈취하자마자 지프차 앞에 붉은색 글씨로 "전두환 물러가라"고 쓴 현수막이 붙어 있다. 폭도들이 광목과 필기도구들을 지참하고 다녔던 것인가 아니면 미리 제작된 현수막이었는가?

붉은점퍼 무장폭도

붉은점퍼를 추적하기 위해 이제 탄창이 장착된 총을 들고 지프차를 타고 다니던 폭도들을 찾아보자. 아래 사진에서는 두 명의 폭도가 전경 판쵸 우의 복장으로 위장하고 언제든 연발 사격할 수 있도록 탄창이 장착된 총을 든 채로 시민군 차틀 타고 있다. 민간인에게 총을 쥐어 주어도 도저히 저렇게 각이 지고 절도 있는 군인의 폼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명의 폭도가 광주시민인지 외지인인지는 5.18측에 대답해 주어야 할 문제이다. 만약 한가지 단서가 있다면 아래 사진 오른쪽의 전경 우의를 입은 시민군이 눈 위를 가린 수건과 눈 아래를 가린 백색 마스크는 위 사진 붉은 점퍼의 것과 동일하며 탄창이 장착된 총 역시 똑같은 총이다. 붉은점퍼는 빨간색 잠바의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될 때 정체가 노출될 수 있으므로 전경 복장으로 위장하였던 것이다.



탈북자들은 광주사태에 동원된 북한군이 가발을 썼다고 증언한다. 시민군 중 가발 쓴 자가 있었다는 가정 하에 아래 사진의 빨간잠바 무장폭도를 보면 그는 한 다리 건너 윗 사진의 빨간잠바 무장폭도와 동일인물이다. 무장폭도의 코 밑으로 검정색 복면이 하나 더 추가되었지만 검정색 안에 삼색줄무늬 수건, 즉 하얀색과 분홍색과 노란색 줄무늬 수건이 있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눈 위로 삼색 무늬 수건이 복면으로 사용된 것도 위 두 장의 사진의 인물과 동일하다. 이 세 장의 사진에서 폭도가 탄창이 장착된 총을 들고 언제든 사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일하다. 한가지 다른 것이 아래 사진에서는 폭도의 옆머리가 유난히 길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에서 직장생활하는 사람 중에 저렇게 옆머리가 긴 사람이 있을 수 있었는가? 남한의 직장인이라기보다는 투박한 가발을 쓴 것처럼 보이지 아니하는가?

복면 쓴 시민군

아래 사진에서도 복면을 쓰고 거총 자세를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폭도와 주변 민간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이 폭도의 제식동작은 도저히 민간인의 폼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무장폭도 오른편에서 머리에 비표를 단 사나이가 함께 걷고 있는데, 그 두 명의 앞다리와 뒷다리의 행군제식이 정확히 일치함이 주목된다.

광주시민군의 인민군식 제식걸음

인민군 제식걸음

옆 사진의 인민군 제식걸음과 위 사진의 두 시민군 제식걸음을 비교해 보면 이 두 명의 시민군은 민간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민군 제식걸음으로 걷고 있다. 시민군은 인민군 제식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규율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이 두 시민군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외지인들이었던가? 이 역시 5.18단체들이 답변해 주어야 할 문제이다.

 

 

 

 

 

 

 

 

 

 

광주시민이 아님이 그 몸동작으로 드러나는 이 괴한들은 누구인가? 방금 전 그들이 지프차 옆에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아래 사진은 이 무장폭도가 시민군 순찰조 조장급임을 시사한다.   

정체가 수상한 복면시민군

방독면 복면 쓴 시민군옆 사진의 총을 멘 시민군도 경찰과 군인인 단 한 명도 없는 광주해방구에서 방독면을 복면 삼아 쓰고 있는 꼴이 외계인의 기괴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시민군 뒤에 5월 하순의 화창한 초여름 날씨에 가죽점퍼를 입은 괴한이 화염병처럼 보이는 병 두 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방독면 쓴 복면괴한

복면괴한들은 머리가 단정하여 경찰처럼 보이는 행인이 있으면 붙잡고 검문검색하였다. 아래는 5월 24일 단지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한 행인이 복면괴한들에게 검문검색을 당하고 있는 장면.
행인을 검문검색하는 복면 무장단체

잠시 복면을 내린 시민군 얼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그런데 그의 손에 특수 장갑이 끼어 있는 것이 보인다. 5월의 초여름 날씨에 손이 시려서 낀 장갑이 아니다. 사격에 방해가 되는 장갑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는 장갑이요, 포복 등을 할 때 손의 피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장갑이요, 도시 게릴라전을 위해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장갑이다.

특수장갑 낀 시민군

아래의 복면 시민군 사진에서 왼쪽의 한 시민군이 비슷한 종류의 특수장갑을 낀 손을 쳐든 것이 보이며, 그의 옆 폭도 역시 손에 특수장갑을 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폭도의 복면을 자세히 보면 그냥 수건을 두른 것이 아니라, 눈구멍과 입 구멍이 있는 복면이다. 명령을 전달하기 편리한 복면을 쓴 것으로 보아 지휘관으로 보이며, 시민군 옷차림인데도 장교 혹은 군관 제복처럼 보이며, 복면 위의 곱슬머리는 아무리 보아도 복면 위에 곱슬머리 가발을 올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폭도들의 복면과 특수장갑들은 어디서 생겼는가? 5.18측 주장의 성립되려면 5월 21일 대낮에 광주시민들이 금남로로 모여 들었을 때 그 화창한 초여름 대낮에 너무 추울 것이 예상되어 볼이 시리지 않도록 복면을, 손가락이 시리지 않도록 특수장갑을 소지하고 모여든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위 아래의 사진들에서 이 장갑들은 전혀 손가락을 따스하게 해 주지 않는 특수장갑들이다. 이 특수장갑은 도시 게릴라전을 위한 장갑이었으며, 도시 게릴라전 혹은 무장폭도을 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이런 장비들을 조직적으로 준비해 둔 조직이 있었다.  

복면 무장단체의 특수장갑

아래 사진에서 보듯 위 사진 왼편에서 특수장갑을 낀 손을 쳐들어 보이는 무장괴한의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 자의 복면도 눈 아래를 수건으로 가린 복면이 아니라 가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발을 동여맨 복면처럼 보인다. 복면 위로 솟아나 있는 헤어스타일이 참으로 특이하지 아니한가? 이 자의 눈매가 선량한 광주의 학생이 눈매가 아니라 예사롭지 않은 눈매이니깐 기자도 얼른 카메라에 포착하였을 것이다.

복면 시민군 모습

복면 무장세력이 정체를 감추기 위해 복면을 하였어도 복면이 구멍이 있는 만큼 헛점이 있기 마련이다. 위 사진에서 복면 구멍이 점점 커져 눈과 코가 드러난 한 무장괴한 면상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복면 쓰고 광주에 침투하여 무장반란을 주도한 외지인 무장세력의 비표와 복면의 암호도 이제 드디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33년간 복면에 가려져 있던 5.18의 비밀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며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도
http://www.study21.org/518/photo/rioters-in-mask.htm

 

* 윗글 관련 보다 상세한 내용과 자료들은 역사로서의 5.18 제1권: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제2장과 3장 그리고,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제5장 등에서 읽고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힌츠페터와 김영택이 목격한 목포 별동대가 광주에서 무기 분배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영상물에 나타난 시민군 최초무장시점

이석기 및 채동욱 사태에 즈음하여 재조명하는 1980년 5월 19일



일단 날짜 근거부터가... 힌츠펜터 동영상에 관한 글을 올린 부분에도 제가 말했지만 날짜 자체가 근거로 쓰기엔 빈약합니다. 힌츠펜터의 영상물에는 날짜가 기록되어있지 않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힌츠페터의 기록물은 20일에 들어왔을 때는 도끼나 낫 외에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총이 있었다면 중요한 문제니 당연히 언급했겠죠. 그리고 외지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과도하게 과장하는데 일단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전두환에 대한 반감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갖고 있었지만 계엄령을 전두환이 확대하면서 시위를 일으키기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고 계엄군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커지자 이를 4.19처럼 전국적인 시위의 불꽃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울쪽에서 대학생들이 내려왔겠죠. 그리고 거기에 계엄군의 과도한 진압에 반감을 가진 광주시민들이 모였을 테구요.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만의 항쟁이라고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은 그 모든 것을 모종의 반국가 세력이 일으킨 폭동처럼 몰아가면서 말도 안되는 근거를 들이밀고 있네요. 왜 방독면을 계엄군이 없는데 쓰고 있냐? 왜 복면을 쓰고 있냐? 타당하지 않은 비판입니다. 솔직히 그런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안인지도 모르겠구요. 일단 복면이나 방독면은 계엄군과 부딪힐 때는 대체로 최루탄으로부터 막아주는 데 쓰였을 겁니다. 계엄군이 물러났을 때도 완전히 물러난 게 아닌 소강상태였기에 아직 경계하고 있다면 쓰고 있거나 일종의 시민군이라는 표식이었겠죠. 복면을 일종의 안좋은 인상으로 평가할 거라면 복면을 쓰지않은 시민군들이나 복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지 않은 마지막 사진의 예를 들수 있겠죠. 실제로 들어오는 트럭에도 얼굴을 가린 사람은 극소수네요.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다만 당신들이 무슨 꼬투리를 잡는들 이미 밝혀진 진실에는 영향을 줄수 없습니다.
전두환에 대한 반감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갖고 있었다구요? 그때까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몰라도 신문을 읽은 사람들, 운동권 대학생들이라면 12.12가 일어난 후 당연히 알았겠지. 12.12 사태로 당시 계엄군 사령관이었던 상관을 잡아넣었는데. 그리고 복면이야 최루탄을 막기 위해 당연히 쓸수 있지. 당시에 21일 총기발포 때도, 27일 도청 진압 때도 최루탄은 쓰였다. 그리고 앉아있는 자세가 수상하다고? 책상다리 한 사람들 다 수상하겠다 그럼? 복면 쓴게 수상하면 등산하거나 산책하는 아줌마들도 수상하겄네~, 사진으로 걷는게 다 보이나? 그래... 백번 양보해서 수상하다고 쳐... 근데 그런 얘들은 선무공작군임~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523/55345004/1
뭐냐이건님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픽션소설을 쓰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1980년에는 신문에 단 한번도 1979년의 12.12사태가 보도된 적이 없어요. 8년이 지난 1997년 겨울에 김영삼씨가 12.12를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정승화씨를 러닝메이트로서 삼으면서 비로서 12.12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이 7~8년 후의 신문기사를 어떻게 미리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인지요?
ㅋㅋㅋㅋ 픽션소설?? 밑에 aa님이 친절하게 링크까지 달아주셨네. '12.12사태가 보도된 적이 없다'고? 아예 12.12사태라는 이름으로 기사가 나갔구만 무슨.
이렇다 할 증거 없이 그냥 수상해보인다는게 끝인가요? 공수부대처럼 생겼으니 간첩이다? 그냥 의심스러워보이면 간첩이 되는군요 저도 이 글쓴분을 대한민국의 내부갈등을 유발하는 대남간첩으로 간주해도 될까요?
그리고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보세요 http://goo.gl/aRBiJ4 이미 12.12사태 다음날부터 보도가 되고 있었습니다 허위사실로 한국사회의 분열을 조장하시는것 같아서 더 수상해보이네요
12.12 사태라는 것이 정승화와 장태완 등 김재규의 부하들이 김재규의 군사혁명을 완성시킬 목적으로 군사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재규의 부하들의 부하들, 즉 4년제 육사 출신 영관급 장교들이 김재규의 부하들에게 항명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34년이 지난 지금도 님이 12.12사태가 뭔지 모르고 잘못 알고 계셨는데, 12.12사태 직후에 기자들이 무엇을 안다고 보도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보도된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간첩설만 해도 어이없는데 또 황당무계한 12.12사태 시나리오를 쓰시네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간첩설 들고 오는 분을 믿을수는 없으니 그것부터 설명을 해누시죠 어떻게 생긴게 공수부대처럼 생긴겁니까?
당장 바로 위에
[1980년에는 신문에 단 한번도 1979년의 12.12사태가 보도된 적이 없어요.]
[8년이 지난 1997년 겨울에 김영삼씨가 12.12를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 12.12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셨는데 다음날 12.12사태가 보도된것도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네요
http://goo.gl/aRBiJ4

설마 [그건 잘못된 보도였기때문에 보도된거라고 할수 없다]라고 하시진 않겠죠? 인간적으로 변명은 하지 맙시다.
어쨌거나 보도된적이 없어서 학생들이 전두환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보도는 물론이고 이름까지 다 나와있지 않습니까?
ㅋㅋ 12.12사태가 정승화와 장태완의 군사혁명!? 법원에서 그럼 군사반란이라고 잘못 판결내린건가? 그럼 여기서 짖을게 아니라 법원 앞에 가서 시위라도 벌이지!? 12.12사태가 보도된 적이 없다고 팩트 없이 헛소리하다 발리니까 바로 튀었네 ㅎㅎ
♡추월은 마케팅 강자의 특권이다.
저기 대답좀 해주시죠? 거의 2주만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버로우타시네 여기가 일베애들도 글 퍼가고 5.18단체에게 고소도 먹은 그 유명한 자칭 역사학도님의 블로그 아닙니까? 처음엔 몰랐는데 대단한 분이시더만 팩트체킹도안하고 허위사실을 맘대로 유포했단 말입니까? 뭐라고말좀 해보세요 역사학도가 아니고 소설쓰시는 인문학도신가 ㅋㅋ
뭐냐 ? 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사륜안 가지셨어요?
저거 아무리 봐도 뛰어가기 직전의 모습 같은데 그걸 인민군 제식걸음이라고 생각하시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랄도 풍년이다...
대령아 너 좆됐다 ㅋㅋㅋㅋ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31615600550286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