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복음과 문화

역사학도 2000. 2. 22. 07:10

   우리는 새 선교적 소망을 품고 새 선교적 과제를 위하여 새 천년 대의 동틈을 맞이하였습니다. 문화적 변혁과 더불어 새 천년 대의 동틈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시대에 전하기 위하여 보다 깊은 문화의 신학 이해를 요구합니다. 문화적 다원성의 시대에 문화와 장벽을 넘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며 받으시는 모든 분들께 새 천년 대 새해 구정의 문안을 드리면서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수필 광장으로 초청합니다.

   본 칼럼의 창간호를 쓰는 필자는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신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과정을 밟고 있으며 현재 작성 중인 논문의 주제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권에서의 복음의 선교적 선포입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신 윌버트 셍크(Wilbert Shenk) 박사께서 말씀하시듯이 21세기 교회가 받는 가장 큰 도전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유의 모형,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몰고 오기에 기독교회의 복음 전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도전에 모험과 기회가 있습니다. 점차 다원화되어 가는 우리의 문화, 정보 시대에 들어선 우리의 사회, 지구촌에서 인류가 거리적 공간 개념을 초월하여 상거래하거나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케 한 세계적 규모화(globalism), 그리고 기존 권위의 인정을 거부하며 등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우리에게 21세기의 시대 상황에 대한 각별한 분별을 요합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런 급변하는 시대의 정황 속에서 시대의 선각자들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바라보며, 또 창출해 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문화사조의 도전에 대한 선교적 대응을 위하여 새 천년 대 새해의 동틈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정신 문명의 지각 변동은 분명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기독교 문화 창출의 희망을 안겨주는 도전입니다. 근대성(modernity)에서 종교와 과학을 양분하여 과학적 사실만을 객관적 진리로 인정하려 하던 가치관도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절대적 가치관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것이 우리의 문명이며, 여기에 우리가 21세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함께 생각하며 배움을 공유하고자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를 창간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왕왕 듣는 말 중에"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도 여전히 우리 귀에 생소하게만 들릴 뿐더러 이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는지 부정적으로 쓰이는지조차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한 논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양자 택일의 여지가 없는 21세기 정신문명의 대안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 논객은 21세기의 정신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경계 대상 제1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적 규모화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터진 봇물처럼.이 시대의 사상 풍조의 추세입니다. 한 예를 들어봅시다.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처럼 우주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과학 철학을발전시켰던 시대 풍조를 근대성(modernity)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근대성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과학이란 말이 우주적 진리추구룰 위하여 깊이 사색하는 철인의 모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과학은 경제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최첨단 과학과 미신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핵방어 미사일은 과학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일으킨 현대 문명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 지난 주의 미국 공군의 시험에서 그 모든 컴퓨터의 정확한 계산에도 불구하고 빗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단지 미사일 하나가 빗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근대성의 문명에 대한 실망과 함께 21세기의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지 문명을 건설하겠다던근대사조의 약속에 대한 실망이 있는 곳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싹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모던 상황을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탈근대성)란단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21세기의 첫 대통령 연두 교시이기에 어제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 세계의 언론이 각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정책 보좌관들에게 에워싸여 있고, 또 뭐든지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이건만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한가지 실토한 것은 금세기의 이 문명의 향방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되 우리 중 아무도 그 행선지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온갖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화 시대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지식 사회의 밝은 면의 그늘에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잣대가 오히려 흐리멍덩해진 면이 있습니다. 더구나, 갓 새 천년 대를 맞이한 지금처럼 미래가 한 미지의 대륙으로서 우리 앞에 놓여있었던 시대가 또 언제 있었습니까?

   이렇듯 새 천년이 동틈과 더불어 우리 앞에 도래하는 신문화를 환영하는 우리에게 또한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할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명을 21세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적 사명의 핵심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의 문화의 언어로 선포하는 복음의 선교적 선포가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문화적 다원성의 시대와 문화와 장벽을 넘어 기독교의 메시지를 주고 받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배움을 공유하며,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수필 광장을 저와 함께 꾸려나가지 않으시렵니까? 환영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시고 건강하세요 잘보고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