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촌 생활

은하공주 2011. 1. 11. 13:34

여행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자나깨나 꿈만 꾸지

아무때나 훌쩍 나설 수 없는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크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또 이런저런 구실로 내 발목을 잡기가 일쑤다.

이럴 때 전혀 예상하지 않은 돌발 여행을 제안 받으면 무조건

가고 보는게 원칙이다.

제안 받고 결정하고 두시간 만에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

마치 복권을 쥐고 당첨 여부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두근두근

흥분에 싸여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텍사스 샌 안토니오와 쿠퍼스 크리스티.

물론 우리들은 초행길이다.

예상 시간 11시간. 목적은 낚시.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새로 사서 트렁크에 실었다.

당일로는 안되니 가다가 모텔에서 1박하고.

동행하는 분은 우리보다 연장자이신 윤사장님 내외분이시다.

10월 13일.

시월 중순이면 아직 기온이 그리 내려 갈 날씨가 아니건만

헤스톤에서는 히터를 켜고 싶을 만큼의 첫 추위가 찾아왔다.

그러니 따뜻한 남쪽으로의 여행은  달콤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3시반에 위치타 몰앞에서 출발했다.

뉴욕에서 돌아온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관계로 사모님은 몹시 피곤해 하셨지만 그래도

즐거운 옛날 얘기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셔서 여행 내내 매우 즐거웠다.

세시간 가량 남쪽 으로 내달리다가 가장 먼저 보이는 맥도날드에 가서 간단히 저녁을 때웠다. 

 7시 경.

 해는 서산으로 지려 하고

 바람도 을씨년스러운게

아직 텍사스 근처에도 못 온 듯

모텔 6의 마당에서 체크인  기다리는데 잠시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 생각이 나서 기분이 멜랑코리해 졌다.

이틑날 8시 반에 만나자고 해놓고 우리는 늦잠을 잤나 보다.

바깥에서 들리는 윤회장님의 목소리에 깜짝 일어나니 8시가 다됐네 그려.

허둥지둥 세수하고 옷입고 나가니 8시 반이다.

얼른 블랙퍼스트 메뉴를 고르고 한숨 돌려서 오늘 여정을 살펴보니

가다가 점심 먹고 샌 안토니오에 들어가면 되겠다신다.

그러나 쿠퍼스 크리스티 에서 양회장님 내외분을 만나면

시간이 절약될 듯 하다고 하시는 사모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고.

굳이  샌 안토니오에 꼭 들리라시는 분의 의도도 이해가 갔다.

아무려면 초대해 주신 분의 스케줄을 따르는게 순리일거 같다.

우리 내외는 샌 안토니오의 양회장님의 댁으로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이 엄청 많은 은퇴자이므로.

이러구러 자동차는 샌 안토니오로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교외의 주택단지로 들어가는데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는 주택들의 규모와

잘 관리된 정원들이 사람답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 주택단지 옆에는 꼭 골프장도 끼어 있다.

"아 저기 골프장도 보이네" 나의 들뜬 흥분에 남편은 좀 신경이 거슬리는지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 여자가 골프장 첨보나 아니면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싶다고 앙탈 부리나 하고.

사실 말이지 내가 미국에 와서, 그리고 헤스톤에 살면서 젤로 부러운 게 골프장 옆 주택들이다.

우리 골프 멤버 몇몇이 살고 있는 주택들은 집은 그리 크지 않은데 드넓은 잔디밭은  가로 세로

100야드가 넘는다. 그 잔디밭을 남편들이 관리하느라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며 로운 무어에 앉아

소음과 씨름할 때 나도 저런 집에 살아봤으면 하는 부러움이 없지 않았다.

고로 텍사스의 고급 주택단지안의 골프장은 말해서 뭐하랴.

비단같은 초록색 그린이 휙 지나가네. 아 저기가 입구 구나.

이쯤에서 남편 신경을 다른데로 돌리고.

할로윈이 아직 멀었건만 집집마다 호박이며 허수아비며

잔뜩 치장을 해 놓은것이 참 보기 좋았다.

인생은 이벤트며  열심히 이벤트를 계획하는게 삶의 진수가 아니던가.

은퇴하신 회장님은 멋진 저택을 새로 지으셔서 이사 오셨다.

정원도 아름답게 꾸며 놓으시고 골프도 열심히 치시고 노후에 하고 싶은 취미는 다 하시는 분,

맛있는 근대 된장국과 현미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얼른 쿠퍼스 크리스티로 출발했다.

두시간 가량 운전하여 남쪽으로 더 내려 가야 있는 곳.

은퇴한 근인들과 그 가족을 위한 휴양소에 우리가 머물 콘도가 있었다.

들판은 벌써 누렇게 가을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 이었다.

해가 뉘어 넘어가려고 할 즈음 우리는 군 부대앞에서 각자의 신분증을 내밀고 출입허가를 받았다.

넓디 넓었다. 얼마나 넓은지 입구에서 콘도까지 가는데도 한참 걸렸다.멀리 회색빛 바다가 보였다.

콘도에 짐을 부려놓고 부랴부랴 낚시 도구와 아이스박스를 챙겨서 자동차로 낚시 장소인 방파제로 나갔다.

왠일인지 한국인 아줌마들이 줄지어 서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되신분 사흘 되신분 모두 인사를 하고 나니 머나먼 아메리카 에 와서 그것도 텍사스

까지 와서 해변에서 한국인끼리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쳐 인사하다니. 세계 어디에나 가면 한국인을 만날수 있다던 말이 실감났다.

얼른 미끼를 꿰고 낚시줄을 던졌다.

해는 막 서쪽 으로 지려하고 바람은 좀 불었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고 한낮의 햇볕에 달아오른 방파제 시멘트 바닥에 주저 앉아

낚싯대를 바라보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는데 정말 놀랄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회장님이 물었다 하고 소리치셔서 달려가니 낚싯대가 활처럼 휙 구부려졌는데 아마 큰놈이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정말 25센티는 족히 되는 길이였다. 정말 흥미로웠다. 다들 열심히 낚싯대를 던겼다 건져올렸다 반복을 하면서

고기들이 약아서 미끼만 빼먹고 가기도 한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불평도 잠시 연이어 윤회장님 양회장님 남편이 서로 번갈아가면 고기를 낚아 올리는데 나는 허둥지둥 달려가서 아이스 박스를

열어서 고기를 던져넣는 역할을 하였다.

그저 10초마다 한마리씩 건져 올렸다.

날이 어두워 지고 배도 고파왔지만 낚시 삼매경에 빠져서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씨알이 굵은 놈들만 연신 건져올린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정도로 고기가 잘 잡혔다.

두분 사모님께서 저녁식사 준비하러 콘도에 가시자 남은 낚싯대로 나도 도전을 해 보았다,

난생처음으로. 휙 하고 낚싯대를 던져 넣고 잠시 기다리니 무언가가 줄을 건드리는 느낌이 왔다.

미끼를 요리조리 맛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못 참고 확 물면 나는 낚싯대를 사정없이 당겼다.

큰놈이다. 몇번인가 낚싯대에 두마리도 걸려왔다.

작은 놈도 더러 올라왔는데 성에 차지 않았지만 다 아이스박스 속으로 들어보냈다.

해가 지고도 한참 더 있다가 아이스박스가 3분의 2정도 찼을때 우리는 배가 고파서 철수를 했다.

옆에 있던 한국 아줌마들은 먼저 왔지만 고기는 전혀 못 잡았다. 원인이 뭔가하고  보니 미끼에 있었다.

부드러운 새우나 다른 고기를 미끼로 쓰면 고기들이 쉽게 뻬 먹고 달아나기 일쑤였지만

우리가 쓴 미끼는 오징어였기에 쉽게 빠지지 않아서 고기들이 잡힌 것이었다.

양회장님이 준비하신 오징어 두마리로 우리는 무려 20킬로나 넘는 생선을 잡은 것이다.

저녁식사는 회를 떠서 초장에 찍어먹었더니 꿀맛.

콘도에서 세쌍의 부부가 자고 이튼날 아침 7시쯤 다시 낚시터로 갔는데

어제와는 달리 고기들이 입질을 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니 바다 밑이 훤하게 보이고 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연신 낚싯대의 미끼만 쏙쏙 빼 먹고는 달아난다.

어제 저녁의 친구들의 어리석음을 보상하듯이 한마리도 낚여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 연거퍼 그렇게 많이 잡으면 낚시가 아니지. 때로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기도 해야하는걸.

얼른 철수하고 다음 스케줄로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