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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바람구름 2015. 6. 26. 04:59

박 대통령의 기억,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청와대 일기 24] 국회법 거부하며 국회 공격한 박 대통령, 예전에는...

             15.06.25 18:05l최종 업데이트 15.06.25 18:05l이경태(sneercool)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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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첫 번째 거부권 행사이자 제헌 국회 이래 역대 73번째 거부권 행사입니다.

청와대는 이를 헌법수호 의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원칙'에 따른 것이라 설명합니다.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은 위헌인 만큼 박 대통령이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하고 원칙대로 나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 말대로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한 탓인지 박 대통령은 날이 바짝 서 있었습니다.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44명 중 211명 찬성으로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당장의 정치적 편의",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라며 여야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정치를 이용하는 자"로 거침없이 깎아내렸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원칙'에 따른 것이란 설명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은 정말 1988년 박 대통령의 정치 입문 후 유지해 온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걸까요.

야당 땐 '하극상 시행령' 비판해 놓고 태도 바꿔

아니요. 우선, 박 대통령은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해 국회의 시정요구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야당 의원일 때 공동 발의했습니다. 즉, 야당 의원일 땐 현 국회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의 법안에 지지한 겁니다.

모두 두 차례입니다. 1988년 12월 갓 정치에 입문한 초선의원일 때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서명했습니다.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된다'는 국회의 의견이 제시되면 중앙행정기관장은 이를 수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개정안은 현 국회법 개정안과 취지가 사실상 같습니다. 1999년 11월 변정일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도 동참했습니다. 이 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에 행정입법의 법률 위반 여부를 정기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의무를 부여토록 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국회 상임위에 행정입법 심사권을 줄 수 없다'는 게 현 정부의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 제정부 법제처장은 이날(25일) 국회법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에서 "상임위가 수시로 행정입법을 고치라고 요청하고 정부가 이에 따라야 한다면 정부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없고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어 국민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당시 초선의원이었다고 상기시킵니다. 힘 없는 초선이 선배 의원들의 요구에 응한 것뿐이라는 얘기입니다(관련 기사 :
청와대 "박 대통령, 98년 국회법 개정안 땐 서명만 한 것").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야당 당대표 당시에도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은 잘못됐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05년 5월 14일 한나라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과 관련, "한나라당이 독소조항이라고 반대해 삭제된 내용이 문화관광부 시행령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라며 "이는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질타했습니다.

2005년 12월 당시 정부시행령으로 사학법 관련 반발을 줄여보고자 한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모법은 놔두고 시행령만 어떻게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발상"이라며 "이것은 대통령이 시행령을 통해 이 악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여지까지 주는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청와대 입성 전 '하극상 시행령' 반대는 '사실').

결국, 박 대통령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정부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을 바라보는 '잣대'를 달리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유족에게 약속한 진상규명만 생각했더라도...

▲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에 앞서 팽목항 분향소에 들렀으나 분향을 못하고 돌아 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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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놓고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주장한 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애초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때문입니다. 해양수산부가 진상조사특위 조사1과장을 비롯한 핵심 직책을 공무원이 맡도록 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내면서 '진상규명 통제령'이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를 '폐기'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나왔습니다. 국회의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진 거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지난달 29일 국회법 개정안 처리 직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는 '신뢰를 바로잡는 정치'였습니다. 정치권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에게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극심한 진통 끝에 특별법을 도출했습니다. 그런데 특별법(상위법)에 따라 마련된 시행령(하위법)이 진상규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바로잡는 게 수순 아니겠습니까.

이런 과정을 비춰보자면, 박 대통령이야말로 신뢰를 어기고 있는 셈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반드시 단계별로 철저하게 규명해서 무책임과 부조리,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강력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시행령을 다시 마련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화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시행령 철회 요구에는 끝내 침묵을 지켰습니다. 지난 4월 중남미 4개국 순방 출국 직전 사고해역 인근인 팽목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라고만 했을 뿐 시행령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 인양").

'새 사람·새 정치' 강조한 박 대통령, 협박 정치인가?

박 대통령이 이날 "기가 막힌 사유들로 처리 못한 법안들을 열거하는 것이 어느 덧 국무회의의 주요의제가 돼 버린 현실정치가 난감할 따름"이라며 국회를 '악(惡)'으로 내몬 것도 수긍하기 힘듭니다.

국회가 정략적 이유로 국민과 국정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주장이 생뚱맞은 것은 아닙니다. 주로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정부·여당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도 "새 정부 2년 동안 정치권의 장외정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야당을 공격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라며 '심판론'을 언급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를 향한 심판론을 제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보면 갸우뚱합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곧 친북활동의 합법화를 의미한다"라며 장외투쟁 불사 방침을 밝혔습니다. 2005년엔 무려 53일 간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임시국회 전면 보이콧에 따른 새해 예산안 및 8·31 부동산종합대책 후속입법의 지연으로 '예산을 볼모로 정쟁을 벌인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밀어붙였고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사학법 장외투쟁의 명분이었던 '국가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공감을 크게 얻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당내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은 사학법 문제를 '색깔론'과 연결시키는 것에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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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신이 야당이었을 때 쓴 '저항수단'을 대통령 당선 후 '죄악'으로 몰아붙인 겁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여당 의원일 때도 '당내 야당'을 자처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했을 때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서 부결에 앞장섰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라고 했을 땐,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맞받아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청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박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주셔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총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여당을 향한 '협박'처럼 느낀 건 과한 것일까요.

○ 편집ㅣ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