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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바람구름 2015. 6. 27. 00:00

국민이 배신당했다.. 박 대통령, 정치권 비난 '부메랑'

         경향신문 | 이용욱·심혜리 기자 | 입력 2015.06.26. 22:25 | 수정 2015.06.26. 23:10

 

 

 

국민이 죽든말든  밥그릇싸움질   -- 뽁바리당수  독재자딸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배신의 정치에 대한 심판’(25일 국무회의)을 주장하며 비난한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 정치”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 등 격한 표현을 동원해 ‘정치권=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정작 박 대통령 자신은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권 후 2년 반 동안 2012년 대선 때 내걸었던 국정철학과 주요 공약들을 하나하나 ‘없었던 일’로 파기하는 등 국민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비판에 ‘배신당한 것은 국민’이란 토로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장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제1구호이자 국정철학이라 할 ‘100% 국민대통합’은 공허한 말이 된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의 지난 2년 반은 국민을 ‘찢고, 가르고, 싸우게 한 통치(痛治·고통스러운 정치)’의 시간이었다. ‘두 국민 정치’ ‘분열 정치’라는 비판은 박근혜 정부의 주홍글씨가 됐다는 말도 있다.

지난해 4월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때 정부·여권은 노골적인 편가름 정치로 위기 국면을 타넘었다.

세월호 참사 초기 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세월호로 경제가 다 죽는다” “세월호 유족들만 국민이냐”는 여론전으로 일관했다. 세월호 유족들을 고립시키는 것으로 정부·여당의 무기력·무능을 덮어간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상징되는 종북몰이도 정권의 위기 국면마다 되풀이됐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대선개입 사건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응수하며 우리 사회를 이념논쟁 속으로 몰아간 것은 그 시작이었다. 매번 종북 이념논쟁은 청와대가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 대국민 여론전에 동원하는 수단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원동력이라 할 ‘경제민주화’ ‘복지’ 공약도 일찌감치 폐기됐다. 2013년 6월 임시국회에서 일부 법안의 입법화를 끝으로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로 대체됐다. 이후 “경제가 어렵다”는 위기론과 샴쌍둥이처럼 맞닿은 ‘규제완화·투자활성화’ 주장은 박 대통령과 정부가 매번 국회가 열릴 때마다 ‘박근혜표 입법’ 관철을 위해 야당을 압박하는 유행가가 됐다.

대표적 복지공약인 기초연금제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원안에서 소득하위 70%에게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외교안보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공약도 파기됐으며, 2014년 완성을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2015년 이후로 미뤄졌다.

폐기된 공약들은 모두 중도 내지 진보적 의제에 가까운 것들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실천의지도 없는 공약을 남발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배신당한 것은 국민이며 심판받아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서 “정작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아야 할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라며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향한 독기 어린 말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배신은 박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욱·심혜리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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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바람구름 2015. 6. 26. 04:59

박 대통령의 기억,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청와대 일기 24] 국회법 거부하며 국회 공격한 박 대통령, 예전에는...

             15.06.25 18:05l최종 업데이트 15.06.25 18:05l이경태(sneercool)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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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첫 번째 거부권 행사이자 제헌 국회 이래 역대 73번째 거부권 행사입니다.

청와대는 이를 헌법수호 의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원칙'에 따른 것이라 설명합니다.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은 위헌인 만큼 박 대통령이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하고 원칙대로 나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 말대로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한 탓인지 박 대통령은 날이 바짝 서 있었습니다.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44명 중 211명 찬성으로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당장의 정치적 편의",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라며 여야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정치를 이용하는 자"로 거침없이 깎아내렸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원칙'에 따른 것이란 설명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은 정말 1988년 박 대통령의 정치 입문 후 유지해 온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걸까요.

야당 땐 '하극상 시행령' 비판해 놓고 태도 바꿔

아니요. 우선, 박 대통령은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해 국회의 시정요구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야당 의원일 때 공동 발의했습니다. 즉, 야당 의원일 땐 현 국회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의 법안에 지지한 겁니다.

모두 두 차례입니다. 1988년 12월 갓 정치에 입문한 초선의원일 때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서명했습니다.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된다'는 국회의 의견이 제시되면 중앙행정기관장은 이를 수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개정안은 현 국회법 개정안과 취지가 사실상 같습니다. 1999년 11월 변정일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도 동참했습니다. 이 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에 행정입법의 법률 위반 여부를 정기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의무를 부여토록 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국회 상임위에 행정입법 심사권을 줄 수 없다'는 게 현 정부의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 제정부 법제처장은 이날(25일) 국회법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에서 "상임위가 수시로 행정입법을 고치라고 요청하고 정부가 이에 따라야 한다면 정부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없고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어 국민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당시 초선의원이었다고 상기시킵니다. 힘 없는 초선이 선배 의원들의 요구에 응한 것뿐이라는 얘기입니다(관련 기사 :
청와대 "박 대통령, 98년 국회법 개정안 땐 서명만 한 것").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야당 당대표 당시에도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은 잘못됐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05년 5월 14일 한나라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과 관련, "한나라당이 독소조항이라고 반대해 삭제된 내용이 문화관광부 시행령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라며 "이는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질타했습니다.

2005년 12월 당시 정부시행령으로 사학법 관련 반발을 줄여보고자 한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모법은 놔두고 시행령만 어떻게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발상"이라며 "이것은 대통령이 시행령을 통해 이 악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여지까지 주는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청와대 입성 전 '하극상 시행령' 반대는 '사실').

결국, 박 대통령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정부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을 바라보는 '잣대'를 달리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유족에게 약속한 진상규명만 생각했더라도...

▲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에 앞서 팽목항 분향소에 들렀으나 분향을 못하고 돌아 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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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놓고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주장한 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애초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때문입니다. 해양수산부가 진상조사특위 조사1과장을 비롯한 핵심 직책을 공무원이 맡도록 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내면서 '진상규명 통제령'이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를 '폐기'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나왔습니다. 국회의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시행령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진 거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지난달 29일 국회법 개정안 처리 직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는 '신뢰를 바로잡는 정치'였습니다. 정치권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에게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극심한 진통 끝에 특별법을 도출했습니다. 그런데 특별법(상위법)에 따라 마련된 시행령(하위법)이 진상규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바로잡는 게 수순 아니겠습니까.

이런 과정을 비춰보자면, 박 대통령이야말로 신뢰를 어기고 있는 셈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반드시 단계별로 철저하게 규명해서 무책임과 부조리,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강력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시행령을 다시 마련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화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시행령 철회 요구에는 끝내 침묵을 지켰습니다. 지난 4월 중남미 4개국 순방 출국 직전 사고해역 인근인 팽목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빠른 시일 내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라고만 했을 뿐 시행령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관련 기사 :
박 대통령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 인양").

'새 사람·새 정치' 강조한 박 대통령, 협박 정치인가?

박 대통령이 이날 "기가 막힌 사유들로 처리 못한 법안들을 열거하는 것이 어느 덧 국무회의의 주요의제가 돼 버린 현실정치가 난감할 따름"이라며 국회를 '악(惡)'으로 내몬 것도 수긍하기 힘듭니다.

국회가 정략적 이유로 국민과 국정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주장이 생뚱맞은 것은 아닙니다. 주로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정부·여당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도 "새 정부 2년 동안 정치권의 장외정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야당을 공격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라며 '심판론'을 언급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를 향한 심판론을 제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보면 갸우뚱합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그해 9월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곧 친북활동의 합법화를 의미한다"라며 장외투쟁 불사 방침을 밝혔습니다. 2005년엔 무려 53일 간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임시국회 전면 보이콧에 따른 새해 예산안 및 8·31 부동산종합대책 후속입법의 지연으로 '예산을 볼모로 정쟁을 벌인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밀어붙였고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사학법 장외투쟁의 명분이었던 '국가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공감을 크게 얻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당내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은 사학법 문제를 '색깔론'과 연결시키는 것에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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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신이 야당이었을 때 쓴 '저항수단'을 대통령 당선 후 '죄악'으로 몰아붙인 겁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여당 의원일 때도 '당내 야당'을 자처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했을 때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서 부결에 앞장섰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라고 했을 땐,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맞받아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청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박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주셔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총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여당을 향한 '협박'처럼 느낀 건 과한 것일까요.

○ 편집ㅣ최은경 기자


 
 
 

캄보디아--태국--이야기

하얀바람구름 2015. 6. 20. 15:17

 

 

(보도) The Cambodia Daily 2015-6-20  (번역) 크메르의 세계

 

 

 

[종합] 캄보디아, 사망한 찌어 심 상원의장 국장(國葬) 엄수   

Thousands Bid Farewell to Chea Sim 

 

 

 

(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다비용 점화 토치를 들이대자, 유족 대표인 사켕 내무부장관이 촛불을 들어 불을 붙이고 있다.

 

 

 

기사작성 : Khy Sovuthy 및 Matt Blomberg 

 

 

사망한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당의장(=총재) 찌어 심(Chea Sim) 상원의장이 금요일(6.19) 반나절에 걸친 장례식을 거쳐 영면에 들었다. 그의 장례식은 프놈펜(Phnom Penh)의 '왓 보떰'(Wat Botum) 사원 앞 공원에 설치된 다비식장에서 진행됐고, 화장용으로 설치된 탑에 안치된 그의 관에 불이 당겨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노로돔 대로'(Norodom Boulevard) 양편에는 오전 7시부터 수천명의 추모객들이 나와 운구 행렬을 맞이했다. 고(故) 찌어 심 상원의장의 운구 행렬은 쩜까몬(Chamkar Mon) 구의 자택을 출발해, CPP 중앙당사와 상원의사당을 거친 후,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상원 의원들이 도열해서 기다리던 '독립기념탑'으로 향했다.

 

오랜 기간 상원의장으로 으찌어 심 상원의장은 지난 6월8일(월)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운구행렬의 선두에는 3개의 머리를 지닌 나가(naga)로 장식된 운구 차량 위에 화려한 황금색 관이 안치돼 있었고, 흰옷을 입은 왕궁 근위대가 호위했다.

 

군인들을 비롯한 조직화된(=동원된) 추모 군중들이 다비식용 탑에 도착해 대열을 정돈하자, 자발적으로 참석한 이들 대부분은 흩어졌고, 훈센(Hun Sen) 총리가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를 위해 찬사를 늘어놓는 연서을 하는 동안에는 불과 수백명의 청중들만 남아 있었다. 훈센 총리는 다비용 불탑 앞에 서서 귀빈들이 착석해 있는 천막을 향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섬다잇(Samdech [대공, 大公] = 찌어 심의 왕실하사 칭호)의 육신은 한순간이면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종교(=불교), 국왕, 사회, 국민을 위해 섬다잇께서 보여주신 선행, 위엄, 투쟁, 인내, 열정, 진지함, 이상, 위대한 업적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고, 결코 육신과 함께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귀한 덕목들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찌어 심 상원의장의 운구 행렬.

 

(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장례식에 참석한 훈센 총리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훈센과 찌어 심은 1979년 베트남이 수립시킨 꼭두각시 정권의 출범과정에서 정치적 동지였고, 이후 집권 권력 내에서 라이벌 계파의 리더로서 경쟁하기도 했지만, 훈센이 그 최종적인 승자가 됐다. [크세]

 

 

내무부 장관이자 찌어 심 상원의장의 매제이기도 한 (Sar Kheng) 부총리는 장례식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유족들과 여타 귀빈들을 이끌고 불길을 점화하기 전에 정성들여 설치한 탑 주변을 돌았다. 그 뒤에는 께 낌 연(Ke Kim Yan) 부총리와 유임 처일 리(Yim Chhay Ly) 부총리, 쭈온 소봔(Chuon Sovann) 프놈펜 경찰청장, 찌어 심 상원의장의 경호실장이었던 유임 리엉(Yim Leang) 장군이 숙연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고, 캄보디아 전통 대나무 플룻(클로이, khloy)의 연주가 이어졌다.

 

이후 훈센 총리와 그 부인 분 라니(Bun Rany) 여사가 고인이 생전에 수여받은 훈장들 왼쪽에 화환을 헌화하는 또 다른 상징적 의례가 이어졌다. 이어서 서이 춤(Say Chhum) 신임 상원의장과 헹 삼린(Heng Samrin) 국회의장이 훈장들 오른쪽에 헌화했고, 여기에는 황금빛 장식이 달린 흰샌 관복을 입은 모습의 찌어 심 상원의장의 영정이 설치돼 있었다.

 

이후 사켕 부총리가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조문객들 및 찌어 심 상원의장이 지난 2000년 10월 심장마비 이후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곁을 지켜준 측근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찌어 심 섬다잇께서 투병하는 동안 치료를 해주신 베트남, 프랑스, 싱가포르에서 온 의료진과 캄보디아 의료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과 노로돔 모니니엇(Norodom Monineath) 왕대비는 대부분 흰색 의상을 차려입은 조문객들 사이에 검은 옷을 입고 참석했다. 국왕이 발치를 들어 긴 토치를 내밀자 사켕 부총리가 촛불을 들고 그 끝에 점화를 했다. 국왕이 불붙은 토치를 퓨즈에 갖다 대자, 관을 향해 섬광이 날아갔고, 이후 화장이 시작되면서 연기가 올라왔다. 오전 11시가 되기 직전 흰 연기는 사라졌고, 시종들이 불길에 바람을 넣기 시작하자 관에서는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프놈펜시청의 롱 디만쩨(Long Dimanche) 대변인은 장례식이 끝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故)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 국왕의 장례식과 이번 장례식을 비교하긴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 규모가 전 국왕의 장례식에 이어 2번째일 것으로 생각된다. 대단한 존경심을 담아 장례식을 준비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찌어 심 상원의장이 사망한 지 몇 시간 후에 성명서를 발표하여, 그가 과거 살인적인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에서 담당했던 역할을 조명하고, 그럼에도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롱 디만쩨 대변인은 회견에서 찌어 심 상원의장의 입장을 변호했다. HRW의 브래드 애덤스(Brad Adams) 아시아 지부장은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찌어 심이 크메르루주 이후의 캄보디아 정권에서 조사도 받지 않고, 체포나 기소되지 않은 채 수십년간 지도자로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사법정의에 대한 조롱이다.

 

이에 대해 프놈펜시청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공무원, 프놈펜시청, 프놈펜 시민들은 이러한 주장을 수용할 수 없으며, 고인은 크메르루주 정권의 피해자였다.

 

금요일 장례식이 진행되는 한켠에서는, 젊은이 단체가 찌어 심 상원의장에게 마지막 조문을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고인이 크메르루주 정권에 참여했던 일보다는 그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담당한 역할을 기억하길 선호했다. 보이스카웃 멤버인 속 리(Sok Ly, 15세) 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분이 돌아가셔서 정말 유감이다. 그는 좋은 지도자였고, 훈센 섬다잇과 함께 국가에 이바지했다. 그는 중립성을 지켰던 단순한 지도자였고, 어느 누구도 착취한 적이 없다.

 

'캄보디아 적십자사'(CRC)의 자원봉사자 까 오은 뻬쩻(Ka Oeun Pecheta, 17세) 양은 찌어 심 상원의장을 "폴 포트(Pol Pot) 정권에서 캄보디아를 구한 지성적인 지도자"로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다음 세대들이 그의 모범을 따랐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는 국가를 발전시킨 지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캄보디아의 집권당은 전국에서 거의 배타적인 선전활동을 벌여왔다. 집권당 권력의 주축 3인방인 찌어 심 상원의장(당서열 1위, 당의장), 훈센 총리(당서열 2위, 당 부의장), 헹 삼린 국회의장(당 서열 3위: 명예 당의장)의 사진이 실린 입간판은 캄보디아의 시골마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3인 체제는 사실상 훈센 총리의 권력 독점 체체로 변화돼 왔지만, 찌어 심의 사망으로 이제 그 형식적 완성까지 이루게 됐다. 이 수많은 집권당 입간판들의 모습도 앞으로는 변모하게 될 것이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크세]  [사진출처: 블로그 'BARANG']

 

 

 

 * 관련 게시물

 

      - "[속보] 캄보디아 '2인자' 찌어 심 상원의장 사망 (6.8. 월), 향년 82세"(크세 2015-6-9)

 

* 상위화면 "[기사목록] 2015년 캄보디아 뉴스"

 

 

  

출처 :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아세안)
글쓴이 : 울트라-노마드 원글보기
메모 : 당 중앙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오늘부터 훈센 총리가 CPP 당의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사켕 부총리와 서이 춤 상원의장이
부의장으로 선출됐군요..

이미 예정돼 있었지만,
오늘부로 공식화됐습니다.
 
 
(동영상) 장례식 중계방송 제1부

http://durl.me/93bcsk
 
 
(동영상) 장례식 중계방송 제2부

http://durl.me/93bc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