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점순이~~~~~ 2021. 3. 7. 09:44
햇볓이 화창한 어느봄날 긴ㅡ행여 줄을 따라 시골길을 걷고 갔던 기억이 새상태어난 첫번째 기억이다
슬펏는지 기뻤는지 그거는 모르겠지만 살갗을 쓰다듬는 바람은 참으로 부드러웠고 행여앞에서 흔드는 방울소리가 자장가 처럼 달콤했다
그리고 기억은 주름치마에 마이옷에 단발머리 곱게 빗은 언니가 우리집에 처음온날부터 나에 유년시절 은 평견과 차별이 시작되었다
예쁜언니가 생겨 넘ㅡ좋았다
아버지가 언니랑놀아라 해서 앞 둥구나무 아래 시냇가에 데리고 갔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는데 언니가 발바닥에 유리를 찔러 피가나고있었다
집으로 급히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언니를그곳에 데리고 갔다고 나를 엄청 두들겨 패셨다
많이 아팠는지 그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이 지난 후에
엄마한테 그이야기를 하였더니 엄마는 깜짝놀라시며 네가 5~6 살 때쯤이라신다
그때부터 언니가 울기만하면 나는 맞았다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아버지는 나를 때리므로 나는 악발이가 되어가고 부당한것은 뒤새김질을 하므로 인해 나에 기억속에 저장을 해놓았느지 어릴때 기억이 많이난다
어느날 큰엄마 오빠되는 사람이 찾아와 엄마와 한참을 이야기 하고 계시다가 내가 옆에가니 엄마가 걱정마세요 끝까지 잘키우겠으니 그러시길래 소 한마리 가져오는줄 알았는데 그뒤로 외삼촌은 안오셨다
엄마가 언니와 나를데리고 어데를가든 사람들은 수근거렸고 내가가면 제가 그애야 ? 그리곤 눈을 깜빢 깜빡이시곤 신평리 외삼촌네 잔치에 엄마가 철질을 하러가면 나도따라갔다 그러면 여기저기 수근거리고 내가가면 애들으니 그만하라고 아줌마들이 말하며 어떤아줌마는 어린애가 뭘아냐고 괜찮다 하시곤 했지만 나는 나를보고 수근거리는것을 다ㅡ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이라 부르는 그집에서도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냥 투명 인간처럼 그냥아무도 살갑게 해주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
아버지는 여전히 새옷도 과자도 외출도 언니만 챙기셨고 따라가거나 언니과자 한개 훔쳐먹으면 빗자루로 때리기 바빳다
그래도 나는 언니만 이뻐하는 엄마가있어 엄마사랑 받고싶어 잘때도 엄마등에 귀를데고 엄마 숨소리에 맞추어 숨을쉬곤했다 언니와 잠자리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나를 벽으로 밀어 붙히셨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나는 늘ㅡㅡ공부를 하고싶어했다 책을 좋아했고 공부가 재미있고 자연 공부는 넘ㅡㅡ신기해서 곤충들한없이 바라보며 관찰을 하곤했다
입학은 하였지만 아버지가 병들어 아픔으로 언니와 나는 학교보다는 일을 하기위해 결석할날이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소 풀을 벼다가 소를 먹여야했구 서대산을 누비며 나무도 해야했으며 일꾼을 얻어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리밭에 일을하면 나는 국수도 삶아 새참을밭에 내어갔으며 감자를 한다라 몽뎅이 수저로 긁어 가마솥에 불을때어 삶아서 밭으로 이어날았으며 동생이 태어났을때는 애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학교는 못갔다
그러나 애기를 보는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애기를업고 학교에 갈수 있었으니 애기는 등에서 계속 오중도 쌓고 배도 고파 울으면 복도를 나와 창문으로 공부를 하곤했다
엄마가 남에 밭일을가고 채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오면 아버지는 술과 병원비로 다ㅡ쓰시고 우리들에 육성회비는 안주셨다
나는 학교에가면 육성회비 안냈다고 앞에나가서 손들고있고 손바닥 맞고 하는게싫어 아침이면 아버지한테 돈달라구 대들곤했다
돈없다고 하는 아버지한테돈없으면서 학교는 왜 ? 입학시키고 돈없다면서 술은 왜 ? 먹냐구 매일 대들며 아버지랑같이 소리질렀다
나는 공부가 하고싶었지만 아버지는 노트를 사주지 않으셨다 해서 다쓴노트를 지우고 또 지우고 쓰기를 하다가 결국은 마당에 글씨를 쓰곤 지우곤 했는데 그게 또 마당 흙이 비가오면 쓸려 내려간다고 혼내시고 낮에일하고 밤에 책을보면 호롱기름 단다고 혼내시고 달밤에 책을 읽으면 청승떤다고 혼내셨다
아버지가 내일 놉얻었으니 학교 가지말라하시면 밤에 책보따리를 싸서 저~~믿풀섶에 숨겨놓구 아침 식사때 아버지가 숭능떠와라 하면 바블 먹다말고 벌떡일어나 책보를 찾아 학교로 내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점심밥도 안주고 소 풀을 베오라 하셨다 저녁 밥을 먹을때도 나는 일을 안했으니 밥 을 머그면 안된다고 안주신다
그럼나는 배고파울고 서러워울고... 운다고 맞아서 또 울고 늦은밤 엄마가 몰래 부억에 붙두막에 밥을 노하놓구 나보고 살짝 먹으라 하신다 그럼 먹다 들켜 또 엄마 아빠는 쌓으신다
엄마는 애를 굶겨 죽이냐고 하고 아버지는 굶겨 죽이라하고 그렇게 싸우고 엄마는 우신다 그런날들이 계속 됐지만 나는 또 학교로 도망을 다녔고 한날은 왜 입학을 시켰냐고 대들다가 붙잡혀 마당앞 밤 나무에 묶여서 어둑어둑 할때까지 있었다
하루는 또 학교로 도망쳤다가집에 왔는데 점심을 못먹게 하면서 나무를 해오라 하셨다
나는 아랫집 남숙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점심을 못먹을때는 남숙이 엄마가 점심을 부뚜막에 앉혀놓구 양푼에 밥을 물말아 주시곤하셨다 내가점심을 못얻어 먹는걸 아셨었나보다 그런데 그날은 밥이 없다고 어쩌냐고 걱정을 하셨다 나는 괜찮아요 배 안고파요 했지만 배가 많이 고팟다
심심하니 남숙아 나무하러가자 꼬셔서 나무를 하러갔는데 산에는 진달래가 많이 피어있었다
배고픈중에 마구 따먹었다 남숙이는 아침 점심을 먹었으니 진달래를 몇송이 안따먹었지만 배고픈 나는 많이 따먹었다
그날 저녁 집에와서 토하고 쓰러지고 ....
어떻게 하다보니 내몸이 둥둥떠다니고 마당에 누워있는 내 몸을 나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에 따먹은 꽃은 진달래가 아닌 철쭉이었던거다
엄마는 울으며 뭔가를 갈아 내입에 넣고 있으시고아버지는 저년은 죽었으니 가마니 자루에 둘둘말아 갔다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마당에는 동네 아저씨 몇명이 이관경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샛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남숙이네 집으로 날아가보니 남숙이도 죽을지 모른다며 이불을 덥고 아랫묵에 누워있고 할머니가 옆에 계셨다 나는 훨훨 날아 벽도 통과하고 넓은 꽃밭도 휭휭 날아 다니니 만양좋기만 하였다
암튼 엄마에 정성인지 나는 살았고 그이후에도 늘 ㅡ아버지와 싸우며 하교로도망가면 작대기 들고 학교까지 쫓아오구 점심을 안주면 남숙이 엄마가 주시고 펜티도 없으면 입지도 않고 학교에서 친구들에 놀링도 받고양발이 없으면 신지도 않으며 그렇게 6 학년 졸업할때쯤 중하교 원서를 쓰게됐다
학교를 가는날보다 못가는 날이 많았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였다 상위건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중학교원서를 썼다고 또 때리고 절대 안된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는 칭구들 무리를 바라보며 울었다 우리집은 산 중턱쯤돼서 큰길에 다니는 친구들이 보였었다
겨울 방학때 서울 고모부님께서 오셨다가 그런나를 보시고 서울 식모로 보내라며 델구 서울로 올라 오셨다
식모로 와서도 주인아들 책을 살짝갔다가 보다가 들켜서 나보다 어린애한테 혼나고 집에 가고싶어 울곤 하였다 주인아저씨가 한문책을 사다 주셔서 그때 한문공부는 혼자 터득을 많이 하였었다
월급은 아버지가 고모부손에서 받아가곤 하셨다 그러던어는날 열이 많이나고 토하는 열벼에 철도병원에 입원을 하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나는 시골집에 가고싶다고 우기고 또 우겨 결국 병원측에 각서를 저출하고 퇴원하여 시골집 마당에 눕는순간 풀내음이 코끗과 내몸에 퍼지며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맘이 편안해졌다 다음날 추부 의원에 입원을하고 ㅕㄹ이높아 헛소리를 해대니 병실어 언니도 안들어오구 혼자서 병마와 싸웠다 몸이부어 주사른 발에도 놓을수 없으니 목에다 놓구 죽는날만 기다리는중에 추부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가끔 찿아와주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병과 싸움에서 승리를 하였다
유년시절을대충 여기 까지 정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