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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산행후에 태고사와 사계고택을 탐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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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2018. 9. 10.

 

 

 

* 대문사진 : 태고사 대웅전

 

 

대둔산을 산행 한후에 낙조대 아래 대둔산의 중턱에 있는 태고사 사찰을 탐방하게 된다 ( 2018.9. 5. 수 )

태고사는 지난 연초에 잠시 들린적이 있지만 기록을 남기지 못 한지라 오늘은 자세히 보고 기록도 해 본다 

주차장에서 오르막 길로 올라서니 석문이 나온다 

 

 

 

*석문은 거대한 돌로 문을 이루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태고사는 이곳을 일주문이라 한다

 

석문(石門)

태고사로부터 100m 떨어진 이곳 기암이 문처럼 생겼다하여 석문이라 했으며

이곳에서 수학하던 이조 명재상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친필로 석문이라 쓴것을 음각해 두었다

 

 

 

우암 송시열이 음각해 둔 석문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범종루가 높게 쌓은 축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금강문으로 들어서 본다

 

 

 

 

 

 

 

 

 

 

 

지장전이 2층으로 웅장하게 보인다

 

 

 

 

 

普賢堂도 2층인데 아래층은 공양간이다

공양시간은 아침 : 6시40분, 점심 12~13, 저녁은 오후5시30분 ~6시20분이라고 한다

 

 

 

 

이제 태고사 대웅전으로 가게 된다

 

 

 

 

 

* 태고사 대웅전이다

 

태고사(太古寺, 충남문화재제27호)

태고사는 대둔산(大芚山,878m) 마천대 동쪽 능선 낙조대 밑에 위치한 절로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 하였다

처음에 이 절터를 본 원효대사는 주변 경관이 너무도 빼어나서 기쁜 마음에  " 세세 생생 도인이 끊어지지 아니 하리라 "

하고 3일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삼창(三創)하였다고 한다

경내 건물은 한국전쟁때 모두 불타 버렸으며 이후 1962년에 도천대사께서 주지를 맡으셔서 3칸 규모의 작은 집을 지어

불상을 모셔 오다가 1976년에 무량수전,관음전과 함께 대웅전은 정면7칸,우측2.5칸,좌측3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로 복원하였다

 

대웅전을 본 후에 극락보전과 관음전을 보게 된다

 

 

 

 

 

 

 

 

 

 

 

 

 

 

 

 

 

 

 

 

 

 

 

 

 

 

 

 

 

 

 

 

 

 

범종루에서 금산 방향으로 바라다 본다

충남의 제일봉인 서대산(西臺山, 904m)이 보인다 

주변에 많은 산들을 거닐고는 ......

여기도 일출 보는 명소라 한다

 

 

 

 

 

 

 

 

 

범종루에서 태고사 대웅전 뒤를 바라보니 낙조대 방향의 기암들이 보인다

대둔산은 정말 기암들이 즐비한 산이다

그래서 많은 산객들에게 사랑받는 산이요 윤슬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산이다

 

이제 태고사 경내를 떠나게 된다

천년고찰 태고사는 옛 건축물은 전난으로 소실되고 재창하였지만 좋은 사찰임을 느끼게 된다

오죽했으면 원효대사가 절터를 보고는 3일동안 춤을 추었다고 할까

애마?를 타고는 집으로 오는길에 계룡시에 있다는 <사계고택>을 찾게 된다

 

 

 

 

 

 

 

 

대둔산을 산행 한후에 낙조대 아래에 위치한 태고사를 탐방하고는

귀가길에 계룡시에 있는 사계고택(두계은농재)를 들리게 된다 ( 2018. 9. 5. 수 )

주차를 해 놓고 고택으로 들어서본다

 

 

 

대문에는 *사계고택이라 현판이 보인다

 

계룡 사계고택(鷄龍 沙溪古宅)충남 계룡시에 있는, 김장생(1548∼1631)이 말년에 살았던 사랑채 건물이다. 1990년 9월 27일 충남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11월 11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90호로 재지정되었다.

사계고택은 김장생선생이 고향에 내려와 살던 1602년에 건립한 건물로 고택경내에는 은농재를 비롯하여 안채, 문간채, 광채, 부속채, 별당채, 영당, 행랑채 등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2,8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남에서부터 대문채, 사랑채인 은농재, 중문과 사랑채가 달린 안채, 그리고 그 뒤로 집안의 조상들을 모신 가묘(家廟)가 있다. 안채의 왼쪽으로 나가면 별장이 있고 그 앞에 연못이 있는데 이 주위에 회화나무가 우거져 있다.

은농재는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원래는 초가지붕이었는데 현재는 기와지붕으로 바뀌었으며,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위키백과에서 ) 

 

 

 

 

대문에 들어서기 전에 안내문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해 두었다

 

사계고택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2,850m2의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곳간채, 광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 사랑채(隱農齋)는 전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평면에 홀처마 우진각지붕의 기와집으로 고택의 중심적인 건물이며 단아하고 수수한 자태가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사계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향리인 연산(連山)을 세거지로 하여 성장하였으며, 일찍이 율곡 이이(栗谷 李理)와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에게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였던 당대의 대학자이다. 특히, 조선 최고의 예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그의 예학사상은 조선 중기 이후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몇 차례 벼슬에 나가기도 하였으나 향리에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사후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학문은 아들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을 비롯하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초려 이유태(草廬 李惟泰) 등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 안내문에서 )

 

 

 

사계고택(혹은 두계은농재라고도 함)에는 수시로 문화행사를 하는것 같았다

오는 15일에는 <사계고택인문음악회>를 갖는다고 한다

혹 이글을 보시는 분은 음악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인 <은농재(隱農齋)>를 보게 된다

고택의 중심인 은농재 안은 사계선생의 유물과 판액이 걸려 있었다 

 

 

 

 

 

 

 

 

 

 

 

 

 

 

 

 

사랑채 우측 뒤로 가 보게 된다

성례당과 가묘를 모시는 영당이 나온다

 

 

 

 

뒷뜰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상사화가 피어 있었는데 이제 시들어 가고 있었다

 

 

 

 

 

 

 

 

 

 

 

 

 

 

 

 

 

문을 나서니 ㄱ자 형식의 별당이 있었다

 

 

 

 

 

 

 

 

 

 

 

고택 뒷편 울타리 밖에서 본 모습이다

 

 

 

 

 

별당을 지나 연못이 있는곳으로 가니 정자가 보인다

가는 길엔 배롱나무에 배롱꽃(백일홍)이 피어 있었다

정자는 구화정(九花亭)이라 했다

연못엔 ㅁ자 형식인데 연꽃은 보이질 않았다

 

 

 

 

 

 

 

 

 

 

 

 

 

 

 

 

 

 

 

 

 

 

 

 

 

 

 

고택 구석구석을 잘 보고는 대문을 나서게 된다

사계고택도 모두 보고는 귀가하게 된다

 

 

 

 

대둔산을 산행한 후에 천년고찰 태고사를 탐방하고 계룡시에 위치한 사계고택을 본 하루였다

날씨는 너무도 맑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와 가을 문턱에 들어서게 되니

그토록 무더운 지난 여름은 이제 한갖 추억으로 묻히게 된다

좋은 계절을 맞아 종종 산행도 하고 나들이를 해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