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 理 枝

언제까지나 동행이 되어...

만촌동 형제봉과 모봉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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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201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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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행일시 : 2011년 3월15일(화요일), 날씨 : 흐림(시야보통)

    ▶ 산 행 지 :  만촌자전거경기장 - 제봉 - 형봉 - 동대사 - 제봉 - 만촌자전거경기장

    ▶ 참 석 자 :  혼자서

    ▶ 산행시간 : 06:30 ~ 09:00 (약2시간30분)

    ▶ 교 통 편 :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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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촌자전거경기장을 끼고 옆으로 돌아가면  고모령을 넘어 고모역으로 가는 2차선도로가 나오고

 

 

도로건너편에 철로를 건너는 육교가 있다.

 

 

이 육교건너편에 봉오리 두개가 보이는데 왼족 낮은 봉오리가 제봉, 오른쪽 약간높은 봉오리가 형봉이다.

 

 

육교를 건너고 다시 시지방면 4차선도로를 건너면 2군사령부초소가 보이고 그 옆으로 등산로입구가 있다.

 

 

 

 

등산로입구에는 안내도가 있지만 별도움이 안된다. 일단 제봉부터 찾아간다.

 

 

 

 

등산로에 진입하니 얼마못가 2군사령부 철조망담이 나오고 담을 오른쪽으로 끼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아래쪽으로 시민휴식공간이 있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매점은 비어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헥헥거리며 오르다 뒤돌아보니  금호강변의 아파트단지가 내려다보이고...

 

 

산행시작 30분만에 제봉부근의 능선에 올라선다. 그러나 정상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저 철조망 안에 있다. 좌측으로는 동대사방향 하산길이고 오른쪽으로는 형봉가는 길.

 

 

 급경사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지나야 형봉이다. 제법 운동이 되는 코스다.

 

 

왼쪽으로 보이는 이 봉오리가 모봉, 즉 어머니봉이다.

 

 

내리막을 다 내려오면 움막이 있다.  이 움막에서 왼쪽으로 동대사가는 길이 있다.

 

 

지금부터 형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운동시설이 보이는걸로 봐서 정상에 다온 모양이다.

 

 

 

나무에 형제봉의 표식을 메달려 있지만... 형봉의 정상은 역시 철조망안이다.

 

 

이제 동대사로 하산한다.

 

 

 

 

 

하산길에 왼쪽으로 보이는 제봉.

 

 

뒤돌아본 형봉.

 

 

동대사와 서당지.

 

 

 

 

아름다운 저수지뒤로 보이는 제봉.

 

 

아름다운 절, 동대사.

 

 

 

 

 

모봉등산로는 동대사 정문에서 저수지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현수막이 보인다.

 

 

 

군사요새같은 모봉.

 

 

 

 

 

담티고개방면 하산길.

 

 

반야월방면의 조망.

 

 

시지의 천을산방면.

 

 

좌측 월드컵경기장과 성암,대덕산.

 

 

형제봉의 두봉오리.

 

 

대구시 장묘사업소방면.

 

 

 

내려다본 동대사.

 

 

 

모봉에서 다시 서당지앞으로 내려왔다.

 

 

제봉능선을 바로 치고 올라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형봉가는 길.

 

 

제봉에서 만촌자전거경기장으로 내려가는 길.

 

 

봉오리 4개를 넘은 오늘 산행끝!

 

 

 

 

 

 

박시춘에 의해 작곡되어 가수 현인에 의해 1946년에 불린 “비내리는 고모령”은 일본제국주의 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담은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였다.

 

고모령은 대구시 동촌 유원지 부근에 있는 인터불고 호텔과 만촌 자전거 경기장 사이의 길을 통해서 고모리와 고모역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이곳에 전해지는 전설은 유행가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다. 고모령과 관련이 있는 전설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제국주의 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식과 어머니의 일화를 간직한 전설이 그것이다. 고모령에 얽힌 전설 중 “오누이 힘겨루기” 는 전국에 걸쳐 전승되는 이야기로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갓날 갓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이 마을에는 남매를 데리고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남매는 힘이 어찌나 센지 나라에서 그 힘을 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특히 누이동생은 여자였지만 오빠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대단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사람들이 자기보다 누이동생을 더 칭찬하고 아끼는 것을 본 오빠는 점점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흥, 계집애 주제에 남자인 나보다 힘이 셀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동생만 이뻐하지? 그렇지, 내가 누이와 힘겨루기 시합을 해서 내가 이기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다져먹은 오빠는 어머니가 외출한 날을 골라 시합을 하리라 작정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볼일을 보러 외출한 틈을 타서 오빠는 누이동생을 들판으로 불러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매가 사는 마을 주변에는 산이 없고 평지만 있었다. 들판으로 불려나온 누이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누이동생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 살살 약을 올렸다. “내가 요즘 보니까 네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 돼서 그런다.” 약이 오른 누이동생은 오빠의 계획에 말려들어 그만 자신의 힘이 줄어들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오빠와 힘겨루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오빠는 못이기는 척 하고 동생과 내기를 시작했다. 들판에 있는 흙을 파다가 산을 쌓는 것인데, 해질 때까지 누가 높게 쌓는가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열심히 흙을 퍼날라다가 산을 쌓기 시작했다. 오빠는 저고리의 앞섶으로 흙을 날라다 산을 쌓았고, 누이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다 쌓았는데, 해가 질 때 서로 비교를 해보니까 누이동생이 쌓은 산이 훨씬 더 높았다. 이에 심술이 난 오빠는 누이동생이 쌓은 산을 발로 뭉개버렸다. 그리하여 두 개의 봉우리 중에 뭉툭하게 된 것이 누이동생이 쌓았던 봉우리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이 두 봉우리는 형제봉, 혹은 남매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남매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에 집을 나와 버렸다. 마을을 나와서 작은 고갯길을 넘어가던 어머니는 차마 그냥 갈 수 없어서 그곳에서 고개를 돌려 남매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고 하여 고모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모령 옆에 있는 형제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 줄기가 북쪽으로는 낙동강에 닿아 있고, 동쪽은 경산벌판이며, 서쪽은 대구가 되는데, 이곳에서 대구시 전체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전략상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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