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 출간도서】

하늘 2015. 6. 27. 05:30

 

 

 

 

             살풀이꾼 예수

         

                 - 수필집(2008)

         

         

         

 

 

 

 

  혼자 있어 외롭다 한다. 둘이 있어, 여럿이 있어 외로울 때의 캄캄함이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길, 언제나 힘겨움이다. 한 자리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아이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지루함이다. 얽어매진 답답함이기도 하다.

 

  난 가끔 비가 하늘을 뚫고 쏟아지는 날이면, 진흙탕에서 뒹굴고 싶은 가슴으로 도화살이 도진다. 난 가끔 눈이 오는 날이면, 저 밑바닥의 신들린 여인처럼 끓어오름의 피를 만난다. 견디지 못해 뛰쳐나가 춤을 춰대고 싶은 미친 여자의 가슴으로.

 

  이슥한 밤이 새도록 그림을 그리거나 누구에겐가 글을 써대는, 그리고 음악을 틀어놓고 쉼 없이 춤을 추어대는 그 미친병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들을 이제는 알았다. 가슴을 열어 놓는 일임을, 마음을 열어 놓는 일임을, 가슴속의 불을 끄는 방법임을.

 

  이젠, 이제는 오랫동안 타지 않으려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저 타게 내버려두는 일을 알았으니 그저 태우는 일, 그냥 태워지는 일일 터, 살을 풀어내는 일을 미친 가슴으로 광기 어린 예술혼의 식지 않는 불꽃을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가정의 며느리로 우뚝 서 있어야 하는 그 일이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이제는 나 스스로 살을 풀어내고 있다.

 

  밀어내지 않고 마다하지 않는 법을 받아들여 가슴으로 만나가는 일을 알아 간다. 그리고 넓게 깊게 멀리 만나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흩어 내어놓는 일들이 결국, 나의 살풀이었음을 깨달아 간다. 오늘도 그래서 미친 가슴 한 조각으로 눈군가의 가슴을 만나러 떠난다.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인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치 않는다. 다만, 살풀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찾아가는, 그래서 아픈 가슴들을 만나주는 것이 나의 일임을 알았기에 이 시린 세상에서 가슴 하나 내어놓는다.

 

  배운 공부라 나누는 것이 아닌, 저 밑바닥 깊은 가슴으로 너와 만나는 일임을 나 오늘도 시린 가슴 하나 찾아 만나러 떠난다. '푸닥거리' 한 판 하러 떠난다. 살을 풀러 떠난다. 푸른 하늘 아래 훨훨 거리는 흰구름을 찾아 지금 떠난다.

 

  숯이 오래되면 보석이 된다는데 가끔, 아주 가끔은 혼잣말을 한다.

 

  "혹여, 우리 예수님은 '살풀이 춤꾼'은 아니셨을까? 가슴에 응어리 진 영혼들의 아픔을 풀어주시고 눌리고 가둬진 것들을 열어주시는, 그리고 묶여진 것들마저 풀어주시는 그런..."

 

 

                                                                                                                                                                                     2008년의 하루...   /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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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는 곧 부활을 의미한다

 

                        박세문(『창작과 의식』발행인, 시인)

 

 

 

  '신 영' 작가의 산문은 한마디로 동시다발적이다. 언어가 그렇고 그가 베풀어 내는 관계의 리듬감이 그렇다. 경험하는 독자로서 동시에 젖어드는 생과 문학의 카타르시를 일컫는다. 이는 작가가 의도하는 부분이 뚜렷하면서도 삶에 가락의 조화를 붙여 살풀이라는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경우라 하겠다. 사람이란 부단히 고단하거나 자조적이어서 자칫 자학의 오류에 빠직 된다. 긍정보다는 부정과 타협보다는 독선으로 자기하를 일구면서 간혹 문학도 독설이 되기 일쑤다. 이는 희망의 창출이 아니며 메시지가 없는 텍스트의 노동에 부과할 뿐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는 삶의 한 컷 한 컷 마다 관찰된 짜임새와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대상과의 정서적 소통을 진심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축하자면, 부지런하며 진지한 작가다. 그녀에게 하루의 시작이란 대상(인칭과 사물)을 찾아가고 찾아내여, 그래서 만나고 인사하고 어루만지며 에너지의 부단한 생산성을 일궈낸다. 이를 생생하게 보도하는 삶의 자료이며 행복 시스템이 그녀의 목록이다.

 

  산문이란 자체가 그렇다. 시나 소설 등에서 일컫는 허구보다는 체험적인,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요소가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녀의 글은 대부분 희로애락을 수반하지만 그 안엔 분명 짧은 전율이 있다. 그리고 환희로서의 여운은 길다. 고통마저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작가다. 특히, 유년에서 부모님의 세월 속으로 깊이 박힌 옹이아도 같은 한, 그만큼의 시간을 다 헤아려도 감내하기 어려웠으며 아직 그분들의 길은 멀고 멀리 있었다. 소통은 고 글이었다.

 

  예수, 자칫 오해의 소지를 가져올 수 있는 절대자를 '살풀이꾼'으로 비유해 간다는 것은 도전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경외다. 춤이란 승화다. 천사를 말하며 자신은 어쩌면 이 땅을 떠나 날개를 달고 하늘 오르막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관조가 아니라 시대의 불안과 고통을 보살피며 위로하려는 작가의 포용이다. 예수의 면류관과 부활을 동시에 경험하려는 것이 또한 살풀이의 모티브다. 온 백성에게 사랑과 소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이에 작가는 '창'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하늘이 잘 보이는, 소통이 원만하게 말이다.

 

  작가는 현실을 직시한 상상력이 풍부하다 보겠다. 그렇다보니 작가는 틀이란 자체를 벗어난, 학문적인 서술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획득하에 이른다. 이것이 작가 자신이 심적이든 육체적이든 '춤'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도 엿본다. 동시에,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작가만의 정신적인 세계가 아니겠는가.

 

  문화적인 며에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열정적인 작가의 필력을 높이 평하고 싶다.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올려주길 바라며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