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隨筆】

하늘 2021. 7. 23. 23:18

 




   임진강 '화이트교'의 전설      /신 영

 

 

 * 사진은, 웹 이미지 공간에서 발췌

 



 

경기도 연천군 그 이름만으로도 내 어린 시절의 꿈들이 몽실거린다. 그리고 임진강 '화이트교'는 어린 유년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동네는 살지 않았지만, 큰 댁에 가려면 화이트교를 건너야 갈 수 있었다. 아들이 없었던 아버지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쉰둥이 막내의 손을 꼭 잡고 그 다리를 건너곤 하셨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금은 큰아버지도, 아버지도 계시지 않지만, 그 강물을 떠올리려니 내 아버지 더욱 그리운 날이다.

 

임진강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몇 날 며칠을 몸 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아침부터 괜시리 몸이 아프고 짜증이 오르기에 곁에 있던 큰 녀석에게 잔소리만 늘어놓고 말았다. 그렇게 내 얘기만 퍼 놓고 보니 은근히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오늘의 짜증이 날씨 탓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바로, '임진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데 자료는 넉넉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낳고 자란 고향의 얘기를 어떻게 써야 좋을지 생각하다 그만 욕심이 과했던 모양이다.

 

또한, 늦은 막내둥이로 자라 외로움을 많이 탔던 기억이다. 언니들이 셋이나 있지만 나이 차가 있어 함께 놀아주지 않아 늘 혼자인 때가 많았다. 엄마, 아버지 들에 가시고 혼자 남아 먼 산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사색에 일찍부터 잠겼던 아이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외로움과 그리움의 자락을 놓지 못하고 사는가 싶다.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몹쓸 병, 밀려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무엇으로 달랠까. 그저, 저 혼자 삭이다 지쳐 제풀에 죽고 제멋에 겨워 사는 일인 게지. 이제는 외로움을 그리움을 타지 않고 달래는 법을 배워 간다.

 

이맘 때쯤이면 여기저기의 한국 인터넷 뉴스마다 장마철 호우주의보가 눈에 들어오고 수해 지역의 가슴 아픈 사진들이 올라온다. 문득, 미국 땅에 있는 내 가슴과 먼 한국의 고향 땅에 있는 나 사이에 시공간을 오가는 찰나를 만나는 것이다. 먹먹한 가슴으로 한참을 있다가 가슴이 아려오고 몸이 아파져 오는 임진강의 한恨 맺힌 애환이 그대로 내 가슴에 닿아오는 것이다. 고향이란 이처럼 어머니 뱃속의 탯줄처럼 나를 이끌고 간다. 눈을 떠 바라보는 곳이 미국의 산천일지라도 눈을 감으면 아련히 나를 감싸오는 따뜻한 느낌의 감성은 무얼까.

 

'임진강 화이트교'의 전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곳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목숨이 주검의 옷을 갈아입고 억울한 영혼들이 떠도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삼팔선은 북한과 남한의 허리를 끊어놓고 있지 않은가. 어린 기억에 무서움 증으로 남은 소리 그것은 한미합동 CPX 훈련에 하루도 멎을 날 없던 포성 소리였다. 6,25 전에는 물론, 휴전 후에도 북한 땅이다가 다시 민통선 내(內)의 마을이었다. 그러다 이내 풀려 40여 년 전부터는 완전히 수복돼 이제는 엄연한 대한민국이 된 파란만장한 질곡과 수모의 땅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종횡으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를 아직도 다 못 씻고 서럽고도 슬픈 나날을 묵묵히 유유히 내뱉으며 흐르는 한恨 많은 강하(江河), 합수(合水)머리 부근의 그 광활한 광야가 바로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눈만 감으면 온몸을 타들고 가슴을 흔드는 내 영혼의 강(고향)인 것이다. 타국에  있으니 더욱 그리운 것이 고향인가 보다. 눈만 감으면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감성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계절과 계절 사이마다 느끼는 감성과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희노애락의 삶의 노래를 배우게 했는지도 모른다.

 

"임진강 '화이트교'는 6.25 전쟁 때 북진하던 UN군이 건설한 작전용 교각이다. 당시 교각을 건설한 미 공병대대 화이트 소령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처음 이 다리(화이트교)는 목조다리로 건설된 뒤 1970년에 콘크리트로 개축되었다. 그리고 화이트교는 그동안 군남면 진상리와 왕징면 무등리 등을 왕래하는 차량과 함께 주민들의 통행로로 이용됐으나 너비가 좁은데다 난간마저 제대로 없어 잦은 추락사고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1994년 하류쪽 200여m 지점에 길이 431m, 너비 10.5m 규모의 임진강의 '임진교'를 건설했다."

 

 

 

 

                                                                                                                      07/22/2010_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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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화이트교’ 역사속으로 미군건설 53년간 애환얽혀 - [한겨레 2003.08.25]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임진강 ‘화이트교’가 53년의 애환을 역사 속에 묻은 채 오는 10월21일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화이트교는 1950년 9월28일 미군 공병대대 ‘화이트’ 소령에 의해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205m, 너비 5.4m의 목조다리로 건설된 뒤 1970년에 지금의 콘크리트로 개축됐다. 화이트교는 그동안 군남면 진상리와 왕징면 무등리 등을 왕래하는 차량과 함께 주민들의 통행로로 이용됐으나 너비가 좁은데다 난간마저 제대로 없어 잦은 추락사고로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또 장마철마다 침수돼 등・하교하는 학생과 출・퇴근하는 주민들의 발을 묶었으나 오랫동안 임진강변의 유일한 통행로로 주민과 애환을 함께했다. 군은 지난 봄에 화이트교에 대해 정밀안전 진단을 실시한 결과 재난관리 위험시설로 지정돼 장마철 이전에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철거업자 선정이 늦어져 철거시기가 연장됐다. 군은 화이트교 철거 등에 대비해 지난 1994년 하류쪽 200여m 지점에 길이 431m, 너비 10.5m 규모의 임진교를 건설했다.

 

 

[연천/연합  한겨레 I입력 2003.08.25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