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隨筆】

하늘 2007. 2. 26. 09:48



하늘과 땅 그리고 사이 2006. /신 영
어디에선가 흙바람을 일으키며 금방이라도 달려오듯 맨발의 발자국 소리 귀에 익어온다. 엊그제는 우리 교회의 선교부에서 주관하는 8일 동안의 Belize(중남미) 선교여행(청소년 사역과 의료선교 사역)을 다녀왔다. 청소년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한 귀한 여행이었다. 함께 다녀온 교인 중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이 동행한 귀한 여행이었다. 벨리즈의 '마야 원주민 마을'과 벨리즈 국경선을 넘어 '과테말라'까지 다녀온 여행이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으며, 바꿀 수 있을까? 그저, "그들 속에서 나를 만나고 돌아왔을 뿐인 것을…" 그들의 해맑은 모습에서 내 마음과 얼굴을 씻고 돌아온 것이다. Bleize는 5년 전 한 번 다녀온 곳이라 낯설지 않고 좋았다. 익숙한 사람처럼 별 불편함 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만남이란 것이 이토록 새로운 꿈과 소망을 또 갖게 하는가 싶다. 서로가 통하지 않는 언어에서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가슴의 말, "그 말 이전의 말"이 우리에게는 이미 있었다. "사랑의 말"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벨리즈란 국가는 1981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독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이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그 외에도 에스파냐어, 마야어, 가리푸나어, 크리올 등이 사용되고 있다. 벨리즈 시내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6시간 정도 들어가면 '마야 원주민 마을'이 나온다. 마야인들은 거의 영어를 쓰지 않는다. 간혹 아이들은 조금씩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 어른들은 마야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야 여인들을 만나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여인들에게서는 웃음을 찾기란 어렵다. 그 옛날 우리 조상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속 모를 깊은 정을 느끼고 말았다. 문명에서 뒤떨어진 것이 아니고, 문명을 멀리서 관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이 하도 맑아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이 되니 '무수히 달려드는 반짝이는 개똥벌레(반딧불), 불꽃들은 과히 장관이었다' 산을 사이에 두고 깊은 영혼의 쉼터에서 축제를 벌이는 폭죽의 솟음처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복잡하지 않아 깊이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 발가락 사이마다 뽀얀 먼지가 끼어 있다. 땅과 그대로 하나 될 수 있는 맨발로 말이다. 땅의 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금세라도 내려와 앉을 듯한 맑은 하늘은 그들을 진정 깊은 호수의 눈을 갖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한 하늘을 이고, 한 땅을 밟고 걸어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멀게 만들었을까? 물질문명에서 익숙해진 아이들의 가슴에 무엇을 담아왔을까? 궁금해지는 날이다. 또, 그곳에 있는 그들에게 남은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서로서로 담을 수 있다면 더 없을 꿈이고 희망일 것이다. 통하지 않는 언어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누는 마음일 게다. 서로 이어주는 그 끄나풀 "그것은 '사랑'뿐이다" "선교란 말만 들어도 헛구역질을 한다"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커다란 망치로 내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그렇다, 오래전 많은 것을 잃고 빼앗긴 인디언들의 속 가슴에는 더욱이 그럴 것이다. 허울 좋은 인심의 검은 손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아직도 치유를 원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누굴 돕는다는 의미를 벗어 던졌다. "나를 내려 놓기 위해 그들을 찾은 것이다. " 우리의 참모습을 찾으려고 그들과 우리는 만난 것이다. "먼 길에서의 바라봄은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한다" 나를 볼 수 없었던 가까운 거리에서 멀리 있는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하늘과 땅 그리고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자연들을, 생명을 그렇게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2006/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