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주} 북미합의, 나경원기소청탁, 제주해군기지, 엘피다, 평창땅, 조선일보창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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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사정리

2012. 3. 4.

 

 

 

 

 

 

 

 

 

 

 

 

 

자,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다.

중동 민주화와 카다피의 몰락은 북한에게 핵의 필요성을 그 어느때보다 더욱 키워준 반면,

북한의 3대 세습, 몰락해가는 북한의 상황은 핵을 가지는 것 만으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는,

핵을 통한 협상의 절박함을 역시 더욱 높여주었다.

세번째 북핵 문제 사이클... 이번엔 끝일까?

 

 

 

 

 

 

- 순 서 -

 

3월 4일과 5일의 역사

조선일보 창간

 

*이슈

(지지난주 피드백)

 

*정치외교

18대 국회 종료, 공천 논란

북, 'IAEA사찰' 미, '영양지원' 합의 - 이 끝은 어디?

나경원 기소 청탁 논란 - 진실은 금새 드러날 듯

 

*사회국제

교통비 인상, 승부조작

재벌들의 평창 땅 투기 논란 - 법 위반이 문제

채선당 사건, 국물녀 논란 - 변화의 계기가 되길

MBC이어 KBS도 파업 결의 - 할만하다

제주해군기지 강행 논란 - 제대로된 해명을 해야

 

*경제산업

단신 : 삼성-애플 특허전 / 구글 개인정보 통합

일본 반도체 업체 '엘피다' 파산보호 신청 - 기나긴 전쟁의 끝

 

 

 

 

 

 

 

 

3월 4일과 5일의 역사

Wikipedia

 

3월 4일

1193년 - 쿠르드족 출신 술탄, 살라흐 앗딘 사망.

1461년 - 장미 전쟁: 랭커스터 왕가헨리 6세가 물러나고 요크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다.

1824년 - 선거인단 수와 총 득표 수에서 모두 뒤졌던 존 퀸시 애덤스가 하원의 결선 투표를 통해 미국제6대 대통령에 취임하다.

1892년 -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이광수 탄생.

1942년 - 숙칭 대학살이 종료됐다.

1948년 -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엘로이 탄생.

2000년 - 일본에서 플레이스테이션 2(사진)가 발매되다.

2012년 -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 2를 방송하게 되다.

 

 

3월 5일

254년 - 교황 루치오 1세, 22대 로마 교황 사망.

1770년 - 보스턴 학살: 보스턴에서 영국군과 시민 간의 충돌이 벌어짐.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됨.

1827년 -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사망.

1915년 - 프랑스의 수학자, 필즈상 수상자 로랑 슈와르츠 탄생.

1918년 - 소비에트 연방이 수도를 페트로그라드에서 모스크바로 옮기다.

1920년 - 조선일보 창간.

193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김복동 탄생.

1946년 - 윈스턴 처칠미국 미주리 주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의 연설에서 ‘철의 장막’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

1953년 -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 스탈린 사망.

1970년 - 핵 확산 금지 조약이 발효되다.

1979년 - 미국의 탐사선 보이저 1호, 목성에 접근. 최초로 목성 근접 촬영에 성공함.

1987년 - 기아자동차 기아 프라이드COEX에서 발표함.

 

- 1920년 3월 5일 -

조선일보 창간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다. 그에 대해 Wikipedia에 나와있는 기술 정도를 축약해 옮겨보고자 한다. 끝 부분에는 내 의견도 좀 실어주고... 그런데 Wiki에 조선일보 역대 사장에 대한 정보가 좀 뒤죽박죽이고 조선일보 홈페이지와 다른 부분이 많아, 정확히 특정인물이 '몇대 사장' 또는 '몇대 발행인'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틀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리며 전체적 맥락을 봐주시길 바란다.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되었는데, 창간된지 1개월만에 대한제국의 영친왕과 일본왕족인 마사코와의 강제결혼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압수를 당하고, 8월에는 일본경찰들을 비난하는 논설을 실었다가 1주간 정간당한다. 결국 창업주인 조진태 사장이 5개월만에 물러나고 2대 사장 유문환이 취임했는데, 한달후인 9월에는 '당국(일본)의 소위 문화통치는 기괴하지 아니한가'라는 논설을 실어 무기정간을 당한다.  

 

  1924년 2월, 3대 사장인 안재홍이 취임한 뒤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논설로 안재홍 사장이 옥고를 치르게 되고, 같은해 4대 사장인 이상재 사장이 취임하여 한글 홍보에 힘쓰지만 곧 사퇴한다(3년뒤 병사한다). 이후 5대 임경래 사장을 거쳐 6대 방응모 사장이 취임하게 되고 한일학생 차별을 비판했다가 기사가 압수당하기도 하지만, 이 때부터 항일 성격은 많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1940년 태평양 전쟁을 벌이던 일본은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 역시 강제로 폐간하게 되고, 이를 '님의 침묵' 한용운 시인이 시를 직접 써 위로하는데, 해방 이후 1945년 11월, 미국에 의해 조선일보는 복간되고, 김구선생은 친필 휘호를 조선일보에 보내 축하한다. 그 후 6대 사장 삼촌 방응모에게 입양된 방일영이 뒤를 잇게 되며, 아들 방상훈이 오늘날까지 조선일보를 이끌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단 사장들에 대한 논란이 가장 큰 것 같다. 창업주이자 1대 사장인 조진태는 대한제국시절 성공한 경제인이었고, 안중근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으며 대한제국 황실과의 친분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일본황실과도 친하게 지내지내면서 활발하게 친일 경제 활동을 벌인다. 1935년 조선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 공로자 명감'에도 이름이 실려 있어, 한 때 시끄러웠던 '친일인명사전'과, 참여정부의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모두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

 

  2대 사장인 유문환 부터는 사장과 다르게, 자금력이 부족한 1대 사장 조진태로부터 실질적으로 조선일보를 금전적으로 넘겨받은 인물이 뒤에 따로 있었는데, 그가 바로 송병준이다. 그는 '이완용'과 함께 친일파로 대표되는 인물로, '창씨개명'을 조선인 중 가장 먼저한 창씨개명 1호 인물이며, '일진회'를 통해 한일합방에 적극 가담했다. 송병준은 조선일보를 넘겨받은 뒤 5년만인 1925년 뇌일혈로 사망하는데, 재미있게도 조선일보 홈페이지의 역대 인물 소개에는 이 송병준과 창업주 조진태에 대한 설명이 없다.

 

 3대 사장 안재홍, 4대 사장 이상재의 경우, 일제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인정했으나, 5대 사장 방응모 부터 친일논란이 다시 시작된다. 방응모의 경우 언론 활동을 하다 광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모아 훗날 조선일보를 인수한 기업가형 인물인데, 한용운 시인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고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했지만, 동시에 친일 활동을 다수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친일 행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일장기가 들어간 위의 일본 천황 찬양 기사도 방응모 사장 때(1940)의 일이다.

 

  그는 1950년 북한군에게 납북되어 끌려가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친일 여부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데, 2012년 1월에는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의 결과에서, 일부 친일 혐의는 벗었지만 다수의 친일혐의를 벗지 못해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잔류하게 되었다.

 

 

  조선일보만 Wikipedia를 통해 들여봤기 때문에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장들이 아무래도 쌓아온 자산을 잃지 않기 위해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면서 친일행적을 보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친일,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뭐 사실 그건 한편으로는 공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해방된 오늘날, 독립운동가들과 당대의 양심있는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숱하게 존재했다는 것을 볼 때 변명일 뿐인 것 아니겠는가?

 

  조금 봐주자면, 뭉뚱그려서 설명하긴 그렇지만 조선일보도 그렇고 동아일보도 그렇고, 193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나름 민족적 색채를 띄고 항일의 모습을 보여왔던 것 같다. 동아일보의 경우는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는 사건을 벌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친일 성향의 사장과 달리 일부 기자들이 벌인 '사건'들이 항일행적으로 보이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일단 그랬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내부 인사들이 일본에 의해 물갈이 되어가면서, 또 탄압을 받아온 결과로, 분명한 친일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1970년대 군사정권에 들어서면서 역시 내부 인사들이 물갈이 되며 보수성향의 신문으로 변화했고 말이다.

 

  사실 그런 배경에는 역사가 있고, 수십년의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냐를 보여준다. 군부정권의 언론탄압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기회주의자들은 득세해서 친일의 흐름을 타거나 군부정권에게 아부했고, 그러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게 다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이렇게 대한민국을 친일 논란과 이어진 미소군정,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게 하여 갈등의 나라로 만든 일본의 일제강점기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이슈

 

- 이번주에는 이슈에서 다를 소식이 없습니다 -

 

 

  잠깐! 재미있게도, 지지난주 '이슈'란을 통해, '표'퓰리즘을 균형잡히게 제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데이터'를 들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을 했었는데, 하루 뒤인 2월 20일 월요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등장했다.

 

정부내 7인조 '포퓰리즘 방어부대' 떴다, 재정부 사상 첫 고위직 TF 구성 - 조선일보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20/2012022001005.html

 

  재정부에서 20일에 '복지TF'를 구성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뭐 구성이 딱딱 나온걸 보니 내가 글쓰기 전부터 당연히 내 글과 상관없이 준비했던 것 같은데, 잘된일로 보인다. 정부에서 편향되지 않은 정확한 재원분석으로, 어느정도로 복지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지, 예산 확보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어떤 정책은 어떤 이유로 실현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주장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복지 예산을 늘리자는 정치권도, 정부에서 이렇게 데이터를 들고 나오는 것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정부와 복지의 당위성만이 아닌 데이터를 제시하며 싸워줬으면 좋겠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복지 정책의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외교

 

  18대 국회가 종료되었다. 뭘 했는지 모르겠다. 지역예산 잔뜩 챙기고 듬성듬성 예산이 빠져있었던 '최루탄' 예산안 처리? 아무튼 끝났단다. 흠... 요즘 새누리당이고 민주통합당이고 공천논란이 거세다. 일단은 혁신을 위한 진통이라 지켜보고 싶지만, 영 난장판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이 이상하게 가더라? 선거가 이제 1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야권연대도 쉽지 않아보인다. 새누리당은 안정적인 듯 한데, 민주통합당은 이번 선거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승리자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되는 것일까?

 

 

 

 

 

 

북, 'IAEA사찰' 미, '영양지원' 합의 - 이 끝은 어디?

 

  사실 이 소식을 '이슈'에서 다룰까 했었지만, 너무 많이 한 이야기다. 지난주에도 한 이야기고... 관련된 글을 아래에서 확인해주기 바란다. 여튼 이미 김정일 사망전에 북한과 미국이 잠정 합의했던 것 처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영양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잠정합의가 있었기는 했던 것이지만 김정일 사후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만나자마자 북미 양국은 빠르게 합의했다. 여러번 말한 것 처럼 '강성대국'을 선포해 놓고도 부족한 것이 많은 북한과, 이제 대통령선거가 다가와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또 꾸준히 진행되는 북한 핵개발을 막고 북한 붕괴이전에 핵안보를 확보해야 하는 미국의 이해가 맞지 않았나 싶다.

 

  이는 여러번 말했던 돌고도는 북핵문제가 다음번 사이클의 마지막에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제 결말은 어떨까? 단순한 북핵불능화가 끝은 아닐 것이다. 완벽한 끝맺음이 필요하다. 영변 외 다른 곳의 핵시설, 완성된 핵무기, 미사일 쪽으로 까지 해체수순을 밞을 수 있을까? 분명 쉽지는 않아보이나 과거와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진 느낌은 든다. 하지만 북한 체제는 불안하고, 911테러나 중동 민주화 혁명처럼 미국을 과민하게 만들고 북한을 움츠리게 만들 변수들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일단 다음의 빈티나는 표로 이 이야기는 끝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표라고 생각한다만...

 

1985 북, NPT가입, IAEA 거부

1992 1월 IAEA 보고서 첫 제출

1992 IAEA 첫 사찰, 플루토늄 양 불일치 논란 

1993 조지HW부시 -> 클린턴

1993 북한의 NPT탈퇴

1994 북미 제네바협약 (중유,경수로 - IAEA, NPT잔류 등)

1998 금강산 관광

2000 남북 정상회담 (김대중)

  

2008 7월 금강산 피격사건

2008 8월 플루토늄 양 불일치 논란

2008 8월 북한, 핵불능화 철회, 재가동선언

2009 조지W부시 -> 오바마

2009 북한 2차 핵실험

2009 UN논의, 한국PSI참가

2010 3월 천안함 침몰

2010 대북 UN결의안

2010 북미, 남북 접촉 시작, '출구전략'

2010 9월 정부, "천안함-북핵 별개"

2010 10월 김정은 등장

2010 11월 연평도 포격

2011 1월 북, 조건없는 대화 제안

2011 2월 중동 민주화 혁명 시작

2011 3월 북, 백두산 연구, 러 가스관 제안

2011 6월 북,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폭로

2011 6월 북한 영변핵시설 건설재개 위성사진

2011 7월 정부, "천안함,연평도-북핵 별개"

2011 7월 북미 대화 표면화

2011 8월 남북 대화 시작

2011 12월 북미 잠정합의 (영양지원 - IAEA)

2011 12월 김정일 사망

2012 3월 <현재> 12월 북미잠정합의 확정

 

2012? 핵불능화 본격 재이행 합의?

2012~2013? 남북 정상회담? (?)

2012~2013? 금강산 관광재개?

2013 오바마 -> ?

2013? 새로운 북핵문제 발생? or 6자회담 '그랜드 바겐', 북핵종료?

 

2001 클린턴 -> 조지W부시

2001 911테러

2002 CIA의 '북 우라늄농축 정보입수'논란과 '악의축' 발언

2003 북한의 NPT탈퇴

2003 6자회담 시작

2005 미국 대북금융조치

2006 북한 1차 핵실험

2006 대북 UN결의안

2007 2.13합의 (중유 - 핵불능화,IAEA 등)

2007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2008 6월 영변원자로탑 폭파

 

참고 링크

{2월 셋째주} 3차북미대화 - Weekly Voice

{2011년 12월 넷째주} 김정일 사망과 미래 - Weekly Voice

 

 

 

 

 

 

나경원 기소 청탁 논란 - 진실은 금새 드러날 듯

 

  요즘 뭐 노무현 전 대통령 딸의 집 논란과 더불어 나경원 전 서울시장 후보의 기소 청탁 논란까지... 이젠 '털릴대로 다 털린'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이거 참 의혹들이 다 사실로 밝혀지고 난다고 해도 뭐가 남나 싶다. 이런거 보면 참 '헐뜯기 위한 헐뜯기'로 보일 뿐이다. 여권의 도덕성, 야권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인데, 뭐 이제 더 깎여나갈 도덕성이 어디있다고 새삼스럽게... 물론 괜히 선거에 영향이 있긴 할거다. 실제로는 아무의미 없음에도.

 

  아무튼, 그래도 나경원 전 서울시장 후보의 기소청탁 논란은, 나경원이라는 인물의 공격이기 이전에 법원과 검찰에 대한 신뢰문제가 매우 크게 연관되어 있어 지금 의미가 크고 파괴력도 있다고 생각된다. 논란의 발단이된 2004년, 당시 나경원 의원의 자위대 행사 참석 이후, 나경원 당시 의원이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도움을 받아, 누리꾼 김모씨를 '본보기'로 기소해 달라고 서울서부지검 박은정 검사에게 기소 청탁을 했고 실제 기소되어 벌금 700만원을 받았다는건데, 이건 뭐 '법원' 김재호 판사, '검찰' 박은정 검사가 연루되어 있다보니 마치 영화처럼 법원과 검찰이 그렇고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사건이라 결과가 기대된다. 그래도 진실은 금방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박은정 검사가 사의를 표명(검찰에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한다)한 것을 보면, 일단 정황으로는 사실로 흘러가는 것 같고, 박은정 검사가 기소 청탁을 시인 했다고 폭로한 '나꼼수'의 경우도, 단순 의혹으로 주장하기엔 너무 큰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박은정 검사가 어서 입장을 표명했으면 좋겠는데, 선거도 1달 앞으로 다가오고... 어떻게 끝날지, 여파가 어떨지 기대가 된다.

 

 

 

 

 

 

*사회국제

 

  버스, 지하철 요금이 150원 인상되어 기본요금이 900원에서 1050원이 되었다. 16.7%의 인상률이다. 그래 뭐 몇년동안 인상 안하다가 누적되는 적자때문에 못버텨서 올렸다니 그러려니 하는데, 참 부담스럽더라. 또 프로야구 승부조작도 진짜... 모 투수는 천연덕스럽게 말도 안되는 것 처럼 말하다가 조사를 받더니 다 실토해버렸는데, 벌써 야구팬들 쪽에서는 난리도 아니더라. 세계가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 야구를 어떻게 바라볼까? 계속될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재벌들의 평창 땅 투기 논란 - 법 위반이 문제

 

  강호동씨도 그렇고, 재벌그룹 오너 일가들이 평창 땅을 대거 매입해 6년동안 10배의 수익을 올려 투기 논란이 일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블리스 사장, 그녀의 어머니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오빠 장재영씨, 그리고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전무, 한미석유 박신광 회장의 아들 박제형씨 등... 하지만 투자와 투기는 그 경계가 모호한게 사실이다. 사전적으로는 단기적 가격 변동을 추종하는 매매행위가 투기인데, 그런 기준이 모든 사례에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이번 사례의 경우 6년이나 장기 보유를 했다. 따라서 개발호재를 노린 투자로 볼 수 있는것인데, 사실 문제가 있다. 바로 불법성이다. 이들이 산 땅의 상당 부분은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는 '농지'였다. 강호동씨도 그랬고 말이다. 이와 관련된 법을 상당수 위반했더라. 그렇다면 지탄받아 마땅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씁쓸하기 그지 없다. 이러니 맨날 재벌이 욕먹지...

 

참고 링크

[단독] 평창 땅 소유 재벌 ‘소작료로 거액 챙겨’, 불로소득임에도 비과세 혜택, 세금 한 푼 내지 않아 - 세계일보

 

 

 

 

 

 

채선당 사건, 국물녀 논란 - 변화의 계기가 되길

 

  음식점 '채선당'에서 논란이 된 임산부 폭행 논란, 음식점에서 아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히고 그냥 갔다며 논란이 된 '국물녀'논란... 하지만 임산부 폭행의 경우, 임산부가 '배를 맞았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지만 경찰 조사 결과 배를 맞지 않았다는 발표가 나왔고(임산부는 여전히 맞았다고 주장중이다), '국물녀'의 경우 아이가 뛰어오다 스스로 부딪히면서 화상을 입었으며 '국물녀' 당사자도 화상을 입어 옆에서 치료를 받았음이 CCTV로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었다. '채선당'과 '국물녀'는 인터넷 상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금은 애매모호해진 상태...

 

화상을 입은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화상 사진을 올리며 논란이 된 '국물녀'사건은

'테러'라며 국물녀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지만, 위 CCTV에서 보이듯

아이가 충돌 후 뛰어가버려 당사자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누리꾼들도 성급한 판단에 대해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뭐 이건 인터넷의 문제 같은 것을 떠나 원래 우리 모두가 그런 것 같다. 왜 소문 같은 것으로 수군거리곤 하는 그런 것들... 하지만 그 수군거림이 인터넷에서는 규모가 커지게 되고 군중심리가 더 강력해지니 조심하긴 해야 하는 것 같다. 이번 일이 우리 모두의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MBC이어 KBS도 파업 결의 - 할만하다

 

  MBC가 파업으로 정상적인 방송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KBS도 KBS 기자협회 투표결과 72% 이상이 파업에 찬성하면서 파업이 진행되게 되었다. '공정방송'과 '김인규 사장 퇴진'을 외치는 그들의 요구 사항은 '새노조 전 집행부 13명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와 '이화섭 보도본부장 임명 철회'. 일단 보도국이 파업에 들어가고, KBS 새노조(새로 생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문제의 이화섭 보도본부장은 지난 2월 1일 임명되었는데, 2010년 5월에 친구인 박재완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논문 이중게재 보도를 누락시키라고 지시한 인물로 KBS내에서 반발이 심하다고 한다. 이어 2월 2일에 2010년 7월 KBS 파업과 관련해 노조 전 집행부들에 대한 징계를 단행하면서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참 안타깝다. 정부에서 성향이 맞는 인사를 사장에 앉히거나 하는 '코드 인사'는 어느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친정부' 성향인 인사들이 MBC와 KBS에서 자리를 잡는 모습은 정말 화나지 않을 수 없게한다. 보도를 누락시킨다? MBC도, KBS도, PD 개개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PD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윗선'의 지시가 개입하는 쪽으로 언론이 변해가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이대로라면 파업 할만 하다 진짜.

 

 

 

 

 

 

제주해군기지 강행 논란 - 제대로된 해명을 해야

 

  아니 이게 도대체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일단 제주해군기지의 전략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여러번 했던 것 같다. 게임연재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고...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인데, 정부는 15만톤의 크루즈선도 제주해군기지에 입항이 가능하다며 제주도의 발전 가능성,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홍보를 해왔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는 지난 2월 17일 '15만톤 크루즈선이 오가기에 설계가 적합하지 않다', '구조물 재배치가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당연히 해군기지 건설 반대측에서는 난리가 났고, 정부는 '서측 돌출형 부두'를 가변식으로 해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수요일인 29일 내놓았다. 지금 보면 국무총리실에서 지적한 것에 비해 설계 변경 내용이 극히 부분적이어서 지적사항을 해결할 수 없는 듯 하더라. 그리고 15만톤 선박 입출항 능력에 대한 재검증작업이 정부 단독으로 진행되어 그에 대한 불만도 크고, 애초에 설계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던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졌고 말이다. 정부쪽인 국무총리실에서 나온 지적인데 이렇게 무시해서야 되겠나? 이명박 정부에서 보면 국가기관의 조언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던데, 참 우려스럽다. 왜 이대로 해도 상관없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필요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설계를 적정 수준으로 반드시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링크

총리실, 강정 해군기지 ‘설계 오류’ 확인 - 경향신문 (구체적 지적 내용)

정부 “제주 해군기지 보완은 하나 예정대로” - 국민일보

 

 

 

 

 

 

*경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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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 삼성-애플 특허전 / 구글 개인정보 통합

 

  삼성과 애플이 독일에서 벌인 특허전이 상호간에 모두 기각되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삼성은 통신기술특허로, 애플은 터치기술특허로 '진검승부'를 벌였던 것인데 무승부가 되어 서로 힘이 빠진 상황. 또 다시 '화해'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삼성의 충격은 커보인다. 진짜 무기라 생각했던 통신기술특허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면 삼성이 많은 특허를 가지고는 있지만 알짜배기 특허가 전체 특허수에 비하면 많지 않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구글 개인정보 수집 논란이 있었다. '빅브라더'가 되는게 아니냐는 말이 많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구글 검색 결과가 다르다. 특정 사람의 선호 클릭 패턴을 인식하여 그에 맞는 결과를 더 앞쪽에 보여주기 때문인데, 그걸 알고나니 유용하기도 하면서 분명 사생활 유출 가능성도 있어 보이더라. 단순 구글을 넘어 Youtube, 크롬브라우져까지 여러 사이트와 프로그램의 그런 정보가 통합되는 것이니... 그것이 걱정된다면 오른쪽의 이미지를 참고하시길!

 

 

 

 

 

 

일본 반도체 업체 '엘피다' 파산보호 신청 - 기나긴 전쟁의 끝

 

  지난 월요일. 사카모토 유키오 회장이 고개를 숙이며 세계 3위(1위 삼성전자, 2위 하이닉스)의 D램업체, 엘피다의 파산보호 신청 소식을 전했다. 일본 내 제조업체의 파산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반도체 산업은 끊임없는 기술개발 전쟁으로 대변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이 확보 될수록 제품 자체의 성능과 함께 원가 경쟁력이 엄청나게 향상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개발 경쟁이 계속 되었었는데, 2011년 엘피다는 세계최초로 25나노 D램을 7월에 양산하겠다고 발표해 파장을 일으켰었다. 엘피다는 30나노 D램도 제대로 양산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30나노급으로 양산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엘피다가 25나노 D램을 양산하면 한국이 기술력에서 따라잡히는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몇 달뒤 25나노를 건너뛰어 20나노 D램을 발표, 그 해 8월부터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9월에는 하이닉스가 역시 20나노 D램을 내년(2012년) 상반기부터 양산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이어진 2012년 2월의 엘피다 파산... 이미 2011년부터 엘피다는 기술력의 한계와 파산의 위기속에서 거짓말로 주가를 유지하고 자금을 끌어오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엘피다는 파산했다. 1980, 90년대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의 몰락이다. 우리는 2010년대 반도체 강국의 자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다른 산업은 어떨까? 반도체산업은 초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로 누군가 따라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스마트폰, 자동차와 같은 우리의 주력산업은 중국 등에게 순식간에 따라잡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말로는 기업의 파산이고, 국가적 자존심의 상처가 될 것이다.

 

 

 

 

 

 

2012년 3월 첫째주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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