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주} 4.11총선결과의 원인&의미 : '과한 좌클릭'의 민주통합당?

댓글 48

주간시사정리

2012. 4. 17.

 

 

 

 

 

 

 

 

 

 

 

 

 

 

 

 

내가 좋아하는 그래프는 진보와 보수가 나란히 있는 이번 총선 비례대표 그래프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에는 대한민국이 확실히 보수쪽, 우파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었고,

난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안철수 교수가 최근 19대 총선 투표 독려 동영상에서 말한

'균형의 시대'가 도래해야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완전히 변화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 진보세력의 집권, 보수세력의 집권...

그런 대장정 끝에 대한민국이 도출한 답안은 바로 '복지'였고,

성향을 좀 더 '왼쪽'으로 옮겨 중도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이긴 '정당'은 새누리당이었다.

그것에 대해 이 블로그에 오시는 많은 젊은 분들이 불만을 가지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고,

나 역시 우파쪽으로 치우친 대한민국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외쳐왔지만,

 

이번 19대 총선 결과는 승자가 누구였더라도

내가 원하는 '균형'의 대한민국에는 한층 다가가서는 계기가 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 순 서 -

 

4월 15일과 16일의 역사

간단 : 다빈치, 오일러, 링컨, GE, 리버풀, '괴물', 마사다 요새

 

 

*정치외교

4.11총선, 새누리당 승리 - 민주통합당의 '과도한 좌클릭'의 결과

 

4.11 총선을 되짚어 보기 위한 시작

일단 결론

분명 민주통합당은 패배했지만 변화는 체감된다 : 내 예상

당신은 왜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나?

젊은층은 일부일 뿐이다

결국 원인 : 부동층

또 그것의 원인 : 민주통합당이 실수한 것

우리 정치가 갈길

 

 

 

 

 

 

 

4월 15일과 16일의 역사

Wikipedia

 

4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태양절

 

1452년 - 이탈리아의 미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탄생.

1642년 -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2세 탄생.

1684년 - 러시아의 최초 여황제 에카테리나 1세 탄생.

1707년 -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탄생.

1861년 - 링컨 대통령, 3개월 계약 기간의 지원병 소집 공고. 3개월이면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1865년 -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사망.

1892년 - 제너럴 일렉트릭(GE) 창립.

1912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석 김일성 탄생.

1919년 -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학살사건 발생.

1923년 - 인슐린 본격적으로 보급.

1969년 - 동해상에서 미해군 소속 EC121 정찰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군에 의해 격추됨.

1989년 - 영국의 셰필드에 있는 힐즈브러 스타디움에서 힐즈브러 참사

1989년 - 중국의 정치가 후야오방 사망.

1989년 - 후야오방의 죽음으로 베이징에서 시위가 시작. 이는 후에 천안문 사태로 이어짐.

2001년 - 미군당국이 법무부에 맥팔랜드(한강에 포름알데히드 방류)가 공무수행중이었다는 공무증명서 제출.

2002년 - 에어 차이나 767 여객기가 부산에 추락.

 

 

4월 16일

 

73년 - 마사다 요새가 함락되고, 로마 제국에 대한 유태인들의 반란이 진압되다.

958년 - 과거제고려에서 처음 시행되다.

1889년 - 찰리 채플린 탄생.

1917년 - 블라디미르 레닌이 망명지 핀란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국하다.

1927년 - 교황 베네딕토 16세 탄생.

1945년 - 소피에트 연방의 붉은 군대가 베를린 주변의 독일군에게 최종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다.

1946년 - 시리아가 독립하다.

1972년 - 아폴로 16호케이프 커내배럴에서 발사되다.

2001년 - 이봉주 선수, 제 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였다.

2003년 - 제 1회 세계 음성의 날 (World Voice Day) 행사가 개최되었다.

2007년 -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하여 32명이 사망, 23명이 다치다.

 

 

   오늘의 역사들, 역시 또 큰 소식들이 많다. 이거 다 다루다가는 한참 걸리겠는데... 아무튼 또 간단히 짚어보자. 너무 큰 소식들이 많아서 좀 건너 뛸테니, 궁금하신 것들은 클릭해서 꼭 보시길!

 

   #. 오늘날 더욱 주목받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52년 4월 15일 태어났다. 그는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인상깊었던 사물이나 관찰한 것, 떠오른 것들을 바로 스케치 했다고 하는데, 그림 실력도 참 뛰어나서 대충 메모처럼 휘갈긴 정도가 아니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이 그의 작품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가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스티브 잡스'에서 시작된 인문학 열풍 때문이다. '공학자가 공학만 알아서는 안되고 인문학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시작에는 다빈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를 단순 '마구잡이 짬뽕식 컨버젼스'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필요한 것 끼리만 딱딱, 심플하게 융합시키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혁신시키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넓고 깊게 보고 통찰하는 눈을 키우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가자.

   아차차, '인문학' 하면 뭘 말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있다. '철학,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포함된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시길.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AC%B8%ED%95%99) 

 

   #. 1642년 4월 15일에는 오스만제국의 쉴레이만 2세가 탄생했고, 1684년 4월 15일에는 러시아의 최초 여황제, 에카테리나 1세가 태어났다. 이 블로그에서 연재하기도 했던 유명한 게임 '문명5'에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가 등장하는데, 대표 지도자로는 '쉴레이만 1세'와 '에카테리나 2세'가 등장한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에카테리나 1세는 바로 아래에 쓸 오일러에게 큰 재정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 수학자 오일러! 1707년 4월 15일에 탄생했다. 오일러의 아버지는 그를 목사로 키우게 하려고 성서를 공부하는 쪽으로 그를 교육시키려 했지만, 그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 '요한 베르누이'가 오일러의 아버지를 설득하고, 토요일에 특별 과외를 시킨다. 그 '사교육'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수학적인 성장을 이룬 '천재' 오일러는, 20살이 된 1727년 '파리 아카데미 문제풀이 경진대회'에 출전해 '배에 돛대를 세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대회 과제를 풀게되는 데 그곳에서 2등을 한다. 1등은 훗날 '선박 구조학의 아버지'라는 '피에르 보우거'였다고. 그렇게 천재들끼리 놀던 1727년의 경진대회 이후, 오일러는 1년에 한번 열리는 그 대회에서 12번 1등을 하게 된다. 위대한 수학자였던 오일러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쾨니히스베르그의 다리' 문제의 대한 증명이 유명하다. 수학책에서 한번 보셨을듯?

 

   #. 한국 사람들이 위대한 위인으로 '세종대왕'을 뽑은다면 미국에는 '링컨'이 있다. 링컨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엄청나게 길어질테니 오늘의 역사에만 국한에서 말하자면, 1861년 4월 15일, 링컨은 남북전쟁을 위한 3개월 계약 지원병을 모집한다. 링컨은 1861년 3월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는 '노예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1700년대부터 시작된 노예제 논란은 링컨의 당선으로 정점에 달해, 링컨의 당선되자 미국 남부의 주들이 미국 연방에서 탈퇴하며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3개월만에 끝날 것이라는 링컨의 생각과 다르게, 4년뒤인 1865년 4월 9일에 끝나게 된다. 그리고 6일뒤인 1865년 4월 15일, "영원한 폭군이여! 남부는 복수했다!" 라는 외침과 함께 남부 지지자 '존 월크스 부스'에 의해 극장에서 총에 맞아 암살당한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로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도 한번 찾아보시길. (http://ko.wikipedia.org/wiki/%EA%B2%8C%ED%8B%B0%EC%A6%88%EB%B2%84%EA%B7%B8_%EC%97%B0%EC%84%A4)

 

   #. GE, 제너럴 일렉트릭은 1878년 4월 15일 발명왕 '에디슨'이 창립한 회사이다. 원래 이 회사에 큰 돈을 투자한, 남북전쟁 당시 링컨과 대립했던 남부의 장군, 크리스토퍼 장군의 이름을 따서 'General Christopher's Electric'이라는 이름을 지었었는데, 1878년은 남북전쟁 이후였고, 북쪽의 승리로 끝이났기 때문에 북측의 권력층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름'은 빼고, 'General Electric'이라고 지었다. '장군전기회사' 정도? 하지만 General이 '보편적인'이라는 뜻도 있어, 요즘엔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모두를 위한 전기회사'가 되었다. 유명한 경영가, '젝 웰치'도 GE의 경영자였는데, 그가 애초 이 회사의 창업정신인 '전기회사'를 버리고 금융에만 너무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여전히 위대한 기업으로, 삼성전자보다 매출이 10% 정도 큰 상황이다.

 

   #.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와의 FA컵 준결승이 영국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리버풀의 원정경기였는데, 무려 25000여명의 리버풀 팬들이 찾아오게 된다. 요즘에도 일부 그러지만, 보통 원정팀은 다른 쪽으로 입장을 시키게 되는데,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때는 축구장에도 '입석'좌석이 있었고, 리버풀팬 용 입석좌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쪽 펜스로 몰리면서 압사사건이 발생한다. 경기시작 20분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해, 경기가 시작된지 6분만에 경기는 중단되고, 무려 95명의 리버풀팬이 압사하게 된다. 그리고 1명은 1993년까지 혼수상태에 있다가 결국 사망한다.

   이 사고는 당시 경기를 중계중이던 BBC를 통해 생중계 되어 영국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며, 경기장의 입석은 이 사고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추모비도 세워졌는데 그것이 바로 옆의 사진이다.

 

   #. 2000년 7월 녹색연합이 맥팔랜드 미육군 군무원을 고발한다. 시체보관에 사용하는 '포름 알데히드'를 무려 470병이나 한강에 무단방류한 혐의였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를 미루다 6개월 뒤인 2001년 3월에야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를 하는데, 2001년 4월 5일 법원은 직권으로 맥팔랜드를 재판에 회부시켜버린다. 하지만 맥팔랜드는 SOFA(한미주둔군협정)규정을 내세우며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고, 4월 15일, 미군당국은 맥팔랜드를 재판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8월 22일 법원 집행관이 용산미군기지로 직접 찾아가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만다. 그러던 와중 2002년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이 발생하며 반미 감정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결국 사람 없이 재판이 진행되게 되어 사건 발생 큰 4년뒤인 2003년 12월에야 재판이 열리게 되고, 징역 6개월이 선고된다. 미군은 SOFA 협정에 따라 재판 자체의 무효를 주장했으나, 항소시한 하루를 남겨두며 항소하게 되고, 2004년 12월에 드디어 맥팔랜드가 재판정에 출석한다. 그리고 2005년 1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에 2년의 유죄를 선고받으며 사건은 종결된다. 봉준호 감독의 1200만 관객의 영화 '괴물'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 마사다 요새는 기원전 37~31년사이에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66년 1차 유대-로마 전쟁이 발발하고,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대인들은 마사다 요새로 대피하여 960명이 항전하게 되는데, 72년 로마군 15000명이 마사다요새로 가게 되지만 워낙 높은 고원에 자리하고 있어 사실상 공격 불가능의 상태였다. 결국 로마군은 그 높은 고원만큼의 성채를 옆에 쌓아올리기로 했고, 73년에 그것이 완성된다. 그리고 4월 15일, 공성기로 벽을 부수고 진입하게 되는데, 성 내부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집단 자살이었다. 유대교는 자살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비를 뽑아 서로가 서로를 죽였고, 마지막 2명이 남았을때 한명이 한명을 죽이고, 한명은 자살했다 한다. 건물들을 모두 불태웠지만 식량창고는 태우지 않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걸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7명의 생존자들이 있었지만, 954명이 집단으로 자살한 소름끼치는 광경에 로마군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 이스라엘 군은 신병교육과정에서 마사다 요새에 올라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는다!"라는 맹세를 한다고 한다.

 

 

 

 

 

 

 

 

 

 

*정치외교

 

 

   오늘은 총선이야기만 다룰 생각이다. 큰 소식이었으니까. 북한 로켓 이야기나 자본주의 개방 이야기, 그리고 안철수의 대선 출마 이야기 등은 다음주에 하도록 하자.

 

 

 

 

 

 

 

4.11 총선, 새누리당 승리

- 민주통합당의 '과도한 좌클릭'의 결과

 

 

 

 

◆ 4.11 총선을 되짚어 보기 위한 시작

 

   많은 사람들이 의외였다는 반응이었다. 글쎄, 너무 정치적으로 '액티브' 한 사람들 끼리의 말만 공유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사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데 말이다. (이거 아주 중요하다)

 

   일단 다양한 분석들이 많다. 민주통합당의 공천논란에서 부터 시작해 김용민 막말 파문까지의 각종 악재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악재로 치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따라갈 수가 없다. 심지어 '원래 전통적으로 그런 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의 선거패배를 '악재'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제와서 결과론적으로 '그런 것들 때문이었네'라고 하는 끼워맞추기 느낌이다. 물론 그 악재가 영향은 있었겠지만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는게 맞을 것 같다.

 

 

 

◆ 일단 결론

 

   일단 글이 꽤 기니, 결론부터 딱 쓰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번 19대 총선은 "박근혜라는 접착제로 18대 총선때와 마찬가지로 변화없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기존 보수의 벽을, 지난 4년간의 역사를 소재로 야권연대가 '부동층을 모아' 과연 뚫을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추락하는 서민경제에서 시작된 야권의 지지세는 여권의 다양한 악재들로 더욱 부각되었고 선거 결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있게 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민주통합당이 '너무 좌편향'된 이유로 젊은층을 제외한 '다양한 연령층의 마지막 부동층'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 분명 민주통합당은 패배했지만 변화는 체감된다 : 내 예상

 

   난 처음에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상했었다. 1) 새누리당이 1당은 1당, 2) 하지만 과반은 안됨, 3) 민주통합당이 2당, 4) 통합진보당과 합치면 과반 초과, 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왜 그렇게 예상했냐면, 일단 진보는 '야권연대'로 뭉쳤기 때문에, 애초에 민주통합당 단독으로 과반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민간인 사찰'사건이 터졌을 때는 가능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예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번 선거는 야권연대를 반드시 하나로 봐야 맞는 것이었다. 또 역대 총선, 대선, 지방선거등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큰 선거인 국회의원 선거, 즉 총선은 보수적인 선택이 강했다. 진보세력이 승리했던 때는 '탄핵역풍'이 불었던 열린우리당 시절의 16대 총선이 유일했다. 따라서 그 추세를 본다면 새누리당이 의석수를 쪼개쓰는 야권연대보다 1당이 될 확률은 당연히 높았다. 하지만 지난 6.2 지방선거나 10.26 재보선, 그리고 근래의 분위기는 확실히 야권에게 유리했기에 야권의 약진을 예상해 진보통합당과 합치면 과반을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누리당이 1당임과 동시에 과반이 되면서, 2, 4번의 예상이 틀려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 해도 민주통합당과 야권세력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18대 총선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냈다. 옆에 보이는 이미지가 18대와 19대 총선의 최종 의석수다. 185 vs 89에서 157 vs 140의 변화... 역사적 결과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통합당, 진보세력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아래에 지도로 표시된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의 지역벌 결과를 살펴보면 더욱 주목할만한 부분들이 있다.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조금씩 지역구를 차지했지만, 서울과 경기권에서는 아예 색깔이 뒤바뀐 것이다. 도대체 4년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우려스럽게 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분명 의미있는 변화이다. 새누리당 152 vs 야권연대 140, 수도권의 변화,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변화이자 대한민국 진보세력이 스스로 성과라고 자평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진보측 지지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세력이, 그것도 민주통합당이 '1당'을 차지하지 못한것에 아쉬워하고 있으며, 심지어 보수쪽 지지자들도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가 이길거라고 생각했다는 반응이다. 그럼 왜 그런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걸까?

 

 

 

◆ 당신은 왜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나?

 

   일단 왜 그렇게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를 생각해보기 이전에 생각해볼것이, 왜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당연하다고 확신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나도 새누리당이 1당은 하더라도 야권연대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충 몇가지 지적해보겠다.

 

   큰 것들만 지적해보자면, 일단 '민간인 사찰' 문제가 있었다. 정말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도 안되는 사건이었다. 누구나 이명박 대통령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 문제에 새누리당, 과거 한나라당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비난의 화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 분명히 맞다.

 

   그리고 큰 것은 새누리당, 한나라당의 과거 그 자체다. 이명박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미지' 그 자체랄까? 확실히 새누리당으로 이미지 쇄신을 하였다고는 하나, 여러 안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민간인 사찰과 직전의 전당대회 돈봉투사건, 이명박 대통령 사저 논란만 해도 그들의 부도덕함을 충분히 의심스럽게 했고,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극도의 친미성향, 또 인천공항과 과거의 민영화 추진 사례 등은 매국, 사대주의와 같은 큰 우려를 낳았다. 급등한 물가와 전세값, 심해진 기업간의 양극화는, 그들의 직접적 책임여부야 따지기 어려운 문제지만 최소한 '경제 대통령이라서 특별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그 외에 개인별로 FTA나 BBK 문제, 4대강사업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테고...

 

 

   아무래도 특히 민간인 사찰이 가장 컸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새누리당,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도덕함이다. 물론 진보세력들도 부도덕 쪽에서는 걸릴 것들이 역시나 많다. 하지만 워낙 크리티컬한 문제들, 그것도 부도덕함을 떠나 '거대한 부패', '파렴치함'을 보여준 사례들이 참 많았다. 민간인 사찰이 가장 최근의 문제이고, 사저 논란도 확실히 '구린' 구석이 있으며, BBK 같은 것도 의심스러운 팩트(fact)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혹시 BBK가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내가) BBK를 설립했습니다!" 라는 '주어'빠진, 명백히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고 있는 그 동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처음부터 20초만 보면 된다)

 

너무 당연히 '음모론'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솔직히 이런 영상이 있는데 의심을 안가지는게 이상한것 아닌가?

난 당연히 이 동영상 하나만 봐도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보는데...?

 

 

 

 

 

 

젊은층은 일부일 뿐이다

 

   허나 그런 많은 것들에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앞서 4년전 18대 총선의 결과를 보여줬는데, 그들이 지금 극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는건 어렵다. 사회가 보수쪽으로 원래 치우쳐져 있는 상태라는 개인적인 견해도 말했다. 그런것들이 4년만에 과연 얼마나 바뀔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떠했는가? 게다가 박근혜라는 보수의 절대적인 단 한명의 대선후보가 등장한 이 선거에서 보수층의 결집이 풀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선거의 핵심은  "박근혜라는 접착제로 18대 총선때와 마찬가지로 변화없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기존 보수의 벽을, 지난 4년간의 역사를 소재로 야권연대가 '부동층을 모아' 과연 뚫을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 라고 본다. 이것이 4.11 총선결과를 설명해주는 단 하나의 문장이다. 물론 다양한 쟁점에 따라 표심이 움직이긴 하지만, 그 '움직이는 표심'은 부동층인 것이지 보수층이 아니다.

 

   그것은 쉽게 드러난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17대 총선 지역별 투표율 ▲서울 55.8% ▲부산 56.9% ▲대구 54.3% ▲인천 52.1% ▲광주 55.1% ▲대전 54.1% ▲울산 56.8%

▲경기 53.8% ▲강원 55.8% ▲충북 53.9% ▲충남 51.4% ▲전북 55.8% ▲전남 59.3 ▲경북 57.0% ▲경남 56.6% ▲제주 55.7%

 

 

왼쪽은 이번 19대 총선 지역별 투표율.

오른쪽은 연도만 쓰인 것은 각 해의 지방선거 지역별 투표율, 그리고 17대 대선, 18대 총선 지역별 투표율, 아래는 17대 대선 투표율.

  

 

 

   위의 데이터를 살펴보자. 그냥 막 찾다보니 모양새는 좀 조잡한데... 개괄식으로 정리해보겠다.

 

       과거 지방선거와 총선을 보면,

   1) 진보쪽인 전남&전북, 보수쪽인 경남&경북의 경우, 항상 서울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줬었다.

       지방선거때는 물론이고, 그나마 격차가 좁혀지는 총선때도 마찬가지였다. 

   2) 또 위 오른쪽 데이터에서 예로든 선거에서 서울의 투표율은 전체 평균 투표율을 넘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17대 총선에서는 1%만큼 넘긴 했었다. 그래도 전남전북 경남경북이 서울보다 높았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왼쪽에 있는 이번 19대 총선 지역별 투표율을 보자.

   1) 전국 평균보다 낮은적이 없었던 '전북'의 투표율이 평균이하이면서 서울보다도 낮았다.

   2) 지난 두번의 총선, 대선, 지방선거 모두 투표율 1위의 위엄을 보였던 '전남'은

       이번에도 높은 투표율을 보여줬으나 '경남'이 더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이 바로 진보로의 변화다. 실제 투표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를 뒷받침 해주는 출구조사 결과를 몇개 소개하겠다.

 

   1) 출구조사결과, 서울에서 20대 투표율은 64.1%로 집계돼 전국 평균 45.0%를 웃돌았다.

   2) 20대의 민주통합당 지지율은 47.9%로 새누리당의 30.4%보다 17.5%포인트 앞섰다

      30대에서도 민주당 지지는 53.5%였고 새누리당은 26.2%에 불과했다. - 경향신문

   3) 진보성향인 호남지역의 정당 투표에서 새누리당을 찍은 비율은

       광주 5.54%, 전북 9.64% 전남 6.33%로 18대 총선에서의 5.90%, 9.25% 6.35%와 비슷했다. - 뉴데일리

   4) 부산에선 접전 끝에 탈락한 문성근(45.2%), 전재수(47.6%) 후보의 득표율이 무려 45%를 넘었다.

      김정길(40.5%) 박재호(41.5%) 고창권(40.3%) 최인호(41.6%) 후보도 40%대 지지를 받았다.

      부산진갑 김영춘 후보는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와 39.5% 대 35.8%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 뉴데일리

 

   즉, 이번에 서울의 투표율이 전국 평균을 넘을 정도로, 영호남을 따라잡을 정도로 높았고, 보수층의 영남에서도 크게 선방한 것은, 서울의 경우 젊은층의 투표율이 급증했고 그들이 진보쪽 지지층이었기 때문이며, 이런 사회전반적인 진보로의 쉬프트(shift)는, 원래 진보성향인 호남에서는 당연히 크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정리하면, 보수층은 18대 총선때와 같이 유지되었던 가운데, 진보층이 전국적으로 크게 성장해 그들이 투표소로 나와 투표율도 올라갔지만, 영남에서는 아무래도 당연히 보수층을 벽을 넘지 못했고, 그래도 수도권에서는 그 벽을 넘어서, 18대 총선에서 보수층이 수도권을 휩쓸었던 것과 완전히 180도 다르게 야권연대가 수도권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수 185 vs 진보 89에서 157 vs 140의 변화의 원인은 그것이며,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가만히 있었던 보수층'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라는 것이 이번 19대 총선의 결과가 되겠다. 젊은층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례없는 157 vs 140의 결과(정말 전례없다)를 만들어 냈지만, 역사를 바꿀 수준은 아니었다, 라는 것이다.

 

 

◆ 결국 원인 : 부동층

 

   그렇다. 보수층에서 온갖 악재가 터졌다고는 하지만, 보수층의 결집 자체가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 그들이 이번 총선에서 유난히 결집했다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결집하고 있는 것이 '보수'층의 성향이다. 진보성향의 지지자들은 충분히 결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부동층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건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도 보수쪽으로 치우친 사회에서 진보쪽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쪽의 부도덕함을 강하게 비판해왔던 나지만, 그렇다해도 나 역시 진보쪽을 속 시원히 지지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은 부동층을 망설이게 했을것이다. 몇가지가 있는데, 시작하기 전에, 일단 중도성향이 아닌, 말그대로 '부동층'의 성향은 매우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한데, '깊이'보다는 '표면'적인 것에 반응하며, 보수나 진보쪽 양극단은 싫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것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1. 한미FTA 폐기 공약 : 한명숙 대표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 라는 말은 정확히는 "재협상 해보고 안되면 폐기하겠다"라는 것이었지만, 국민 다수에게는, 그리고 야권 스스로도 '폐기'에 무게를 둬서 홍보했던 만큼, 다수의 관점에서는 '한미FTA 폐기'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말바꾸기 논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협상으로 균형이 깨지고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을 받아들여 얻는 이점이 희석되었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지만, 이런 디테일한 주장은 부동층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부동층에게는 "예전에 찬성했었는데 왜 저래?"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결국 '(해도 되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로 경제성 포기'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너무 판을 뒤엎는, 극진보적인 '폐기' 공약은 부동층에게 먹히기 어렵다.

 

   2. 제주해군기지 논란 : 이 사안의 경우에는 '말바꾸기'의 느낌은 약한것 같다. 설계 변경 문제로 인해 야당과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단 과거 제주해군기지의 추진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핵심은 '미국'이다. 이제 더 이상 '반미감정'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부시정권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너무 좌파적인 느낌이 드는 주장이다. 결국 이 문제는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분명 우방인 미국'으로 물고 늘어져서는 부동층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아니었지만, '해적기지' 같은 것에 공감할 부동층이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구럼비 바위' 가지고는 '안보'를 이길 수가 없다.

 

   3. 김용민 막말 & 사퇴 실패 : 난 이것을 '제주해군기지'정도와 동급으로 두고 싶은 정도인데, 생각보다 총선 후 여론조사를 보면 이것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더라? '나꼼수'와 여권의 많은 문제들이 서울의 엄청난 20대 투표율과 전국적인 젊은층 투표율을 이끌어 냈지만, 김용민으로 인해 다양한 연령대의 부동층을 잃게한 셈이 됐다. 난 이전에도 아무리 과거 인터넷 B급 방송에서 한 말들이라고는 하나, 분명 '국회의원'이 되기에는 그런 것은 문제가 되며, 민주당에게도 큰 부담이되고 있기에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했었다. '인터넷 B급문화'가 다수에게 익숙하지는 않기 때문에, 부동층에게는 더 문제로 다가 왔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쓸때는 시기적으로 총선이 코앞이라 사퇴하기에도 확실히 늦었었지만... 아무튼 '다양한 연령의 부동층'에게 김용민 막말이 꽤 작용했던 것 같다.

 

 

 

◆ 또 그것의 원인 : 민주통합당이 실수한 것

 

    박근혜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은 보수층의 벽을 넘기 위해, 여권의 문제들을 바탕으로 젊은층이 모두 모였고 사회적으로 야권의 승리가 점쳐졌지만, 결국 위의 3가지 문제로 나머지 부동층을 모으지 못해 기대와 다르게 승리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위 3가지 문제들로 인해 여권을 지지하지 않아 야권을 찍을 생각이지만 그것이 망설여졌거나, 또는 어떻게 보면 난데없는 '거대 야당 견제론'도 먹힐 수 있었다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또 나도 앞서 적은 것 처럼 진보세력 지지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던, 부동층이 모이지 못했던 원인에는, 저 3가지 문제를 낳은, 민주통합당의 잘못된 포지션이 있다.

 

   너무 많이 좌편향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좌파성향이지만 그것이 더욱 심해졌다는거다. 민주통합당의 포지션은 과거 '3+1'정책을 내 놓으며 무상정책을 처음 내놓아 복지를 화두로 만들때, 그 때가 딱 좋았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변했다. '한미FTA 재협상'의 구호는 어느덧 '폐기'로 바뀌고 말았는데,'선 재협상, 후 폐기'라는 것으로 못을 박고, 재협상에 더 비중을 둔 홍보를 했어야 했다. 제주해군기지도 '건설 중단', '백지화'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다. 논란을 촉발시킨 '잘못된 설계'에 한해 집요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은 야권연대를 위해 노선을 다소 변경한 원인이 컸다. 야권연대는 확실히 필요했기에 어쩔수 없었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과도한 좌클릭'에 대해 전면에 나선 한명숙 대표에게는 정치적 실패의 책임이 크다. 민주통합당이 주도하지 못하고 '통합진보당'화 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새누리당 역시 상당한 '좌클릭'을 하여, 과거 열린우리당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좌파 성향을 보이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민주통합당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즉 오늘날의 통합진보당과 그 성향을 같이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정도가 심하다. 중도로 이동해온 새누리당과 다르게(그렇다고 중도층을 흡수하진 못했다), 민주통합당은 중도에서 더 왼쪽으로 도망갔고, 분명 나름 진보세력은 결집되었지만 중도층을 흡수하지 못했다. 이는 등록금 문제와 여권의 부도덕성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부동층 지지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투표율은 60%가 넘을 거라는 기대와 다르게 54.5%에 그치고 말았고 말이다. 정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진보세력을 결집시키려 했다고 보여지는데 그게 너무 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민주통합당이 '거대 정책에서의 과한 좌클릭'으로 지지층을 뭉치게 하려 한 반면,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접착제로 뭉친 보수층을 '과하지 않은 것들', 예를 들면 '민간인 사찰 특검' 등의 수로 악재로 인해 이탈하지 않도록 가볍게 유지시키는데 성공했고, 그 18대 총선의 지지층을 유지 자체로 승리할 수 있었다.

 

  

 

◆ 우리 정치가 갈길

 

   이렇게 본다면 민주통합당이 갈길은 분명하다.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과거의 '중도좌파' 성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새누리당은 이미 상당히 중도쪽으로 이동한 상태이다.

 

   이것은 우리 정치가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번 말했었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가 난 좋다고. 의석수를 보면 19대 총선으로 대한민국은 양당제의 상황에 아주 근접하게 되었다. 양당제 상황에서는 거대한 두 여야 정당은 불가피하게 중도로 다가가게 된다. 국민의 성향이 진보, 보수, 중도 또는 부동층 으로 나뉘어져 있다면, 두개의 거대한 정당의 승부처는 당연히 중도와 부동층에서 이뤄지게 되기 때문에, 정책들은 유사해지면서 몇가지 쟁점사안을 놓고 싸우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양당제 상황에 오게된 19대 총선 직전 복지 정책으로 정당의 정책이 수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기적으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이러한 세상을 '균형의 시대'라고 19대 총선 투표 독려 동영상에서 말했는데, 그 쉬운 말이 나는 왜 생각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누차 말했던 그 양당제의 대한민국이 바로 나에게는 그 '균형의 시대'를 말한다. 지속가능한 정치에 가장 가까운 길 말이다. 물론 양당제도 길을 잘못들게 되면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바로 가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이를 대한민국 정치가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래서 민주주의 역사가 길고 봐야 하나 하는 것도 느끼게 되고 말이다.

 

   나와 같은 많은 젊은층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의 패배에 많은 실망을 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해치는 '민간인 사찰' 만큼은 꼭 죄를 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야권의 승리를 기대하기는 했지만, 앞서 적은 민주통합당의 '과한 좌클릭', 그리고 좀 빠르다고 느껴지는 복지속도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또 박근혜와 안철수 모두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에 큰 안타까움은 없다. 물론 만약 박근혜 대표가 '공약은 꼭 지키겠다'라고 했지만 민간인 사찰을 어영부영 지나간다던지 하면 나같은 사람들과 부동층은 다시끔 크게 분노하게 되겠지만...

 

   끝으로, 확실히 이번 선거에서 매스미디어는 여당 편이긴 했다고 생각한다. 김용민 막말파문의 이슈화도 그렇고... 그런건 야권 지지층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긴 하겠다.

 

   하지만 더 큰 부분은, 보수층은 애초에 굳건하며, 그래서 보수이고, 박근혜는 정치를 매우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부동층은 더욱 중요하며, 지속가능한 정치를 위해서도 그것이 맞고, 따라서 대한민국의 현재 진보세력은 좀 변화해야 한다. 그제서야 진보와 보수는 제대로된 싸움을 할 수 있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 난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그거면 된다.

 

   이제 진보에게도 '탄핵역풍' 같은 것에 기대지 않아도 정책으로 다수당이 될 수 있는 역사적 여건이 조성됐다. 전례없던 일이다. 보수쪽은 준비를 마쳤다. 진보도 대한민국의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방향을 바로 잡을 때다.

 

 

 

 

 

 

 

 

 

 

2012년 4월 셋째주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추천? 손가락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