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주} 간단: 러일전쟁, 노건평, 가계부채, 민간우주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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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사정리

2012. 5. 28.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국가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20년 뒤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이 거주지가 건설되어 유럽인의 상주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100년뒤에는 민간의 신대륙 탐험과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대륙을 놓치지 않은 국가들이 경제의 활기를 얻었으며,

사람들이 몰리는 강대한 '제국'이 되어 400여년간의 세계 역사를 지배했었다.

 

1961년 유리가가린이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을 성공해 우주에 인류가 진출하는데 성공하고,

1998년부터 건설된 국제우주정거장, ISS가 완성되어 인류가 우주에 상주하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민간 우주선이 ISS에 도킹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미국은 민간기업들이 우주산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며,

당분간은 1500년대에 그랬던 것 처럼 '신세계'를 개척하는데 돈을 쏟아부어야 겠지만,

이미 미국에서 '우주공항'이 완성되었고 우주여행이 시작된 것 처럼,

필시 수십년뒤에는 우주 여행과, 국가 개발 프로젝트의 수행, 또 달의 자원을 얻기 위해

민간 우주선들이 수시로 우주로 향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높은 기술과 자본과 인력이 우주산업 붐을 타고 미국과 일본, 유럽으로

어쩌면 러시아와 중국, 인도로도 몰리게 될 것이며,

 

우주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쇄가 결정될 것이다.

 

이것은 필연이다.

 

우리도 절대 늦어서는 안된다.

 

 

 

 

 

 

 

 

- 순 서 -

 

5월 27일과 28일의 역사

러일전쟁 : 쓰시마해전

 

*정치외교

민주당대표경선과 새누리당 / 노건평 / 북한 핵실험 / 러시아 vs 나토

 

*사회국제

일제징용피해배상 판결 / 이집트선거실망? / 시리아 훌라학살

 

*경제산업

가계부채 PIIGS초과 / 민간우주선

 

 

 

 

 

5월 27일과 28일의 역사

Wikipedia

 

 

5월 27일

 

1564년 - 프랑스의 신학자 장 칼뱅 사망.

1703년 -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1세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우다.

1829년 - 프로이센, 헤센,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사이에 통상조약 체결. 훗날 관세동맹으로 발전.

1840년 -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사망.

1905년 - 러일 전쟁: 쓰시마 해전이 시작하다.

192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재혁 사망.

1923년 - 미국의 정치인 헨리 키신저 탄생.

1941년 -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가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북대서양에서 침몰하다.

1971년 - 소련의 축구 골키퍼 레프 야신이 은퇴하다.

1980년 - 대한민국에서 신군부광주 재진입 작전을 시행해 전남도청을 무력으로 점령하다.

1980년 - 광주 민주화 운동이 완전히 진압되다.

1988년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 2.1이 출시.

  

 

5월 28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공화국일, 부처님 오신 날 (2012년)

 

1787년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레오폴트 모차르트 사망.

1901년 - 이재수의 난 발생

1905년 -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장군이 이끄는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다.

1905년 -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다.

1918년 - 이슬람권 최초의 민주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이 세워지다.

1988년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창립.

1989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1995년 - 러시아 사할린 대지진 발생

1998년 -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했다.

2005년 - 1867년에 설립된 독일필름 회사 아그파(AGFA)가 파산을 선언하다. 

2008년 - 네팔의 제헌의회가 네팔의 정치체제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의 실시를 선언하다. 

 

 

 

 

1905년 5월 27일

러일전쟁 : 쓰시마 해전이 시작되다

 

 

   1905년 5월 27일, 러시아와 일본은 동해에서 1년여간 이어진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해전을 벌였다. 바로 쓰시마해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 해전, 일본에서는 일본해 해전이라고 부르는데, 세계적으로는 대마도, 즉 쓰시마섬의 이름을 붙여 쓰시마 해전이라고 부른다.)

 

   러시아는 이미 몇번 일본에게 당한바가 있어, 유럽에 있던 발트함대를 동해쪽까지 이동시켜, 블라디보스토크의 함대와 합류시킨뒤 일본과 싸우고자 했다.

 

 

 

   일본은 당연히 그를 막아야 했는데, 러시아가 쓰시마해협을 통과해 동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것인지, 태평양쪽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일본은 발틱함대라는 '끝판왕'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력이 열세여서, 모든 해군을 한부대로 묶어 러시아 해군과 싸워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쓰시마해협과 태평양 둘중 한곳을 망설이던 일본의 유명한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오른쪽 사진)는 일단 쓰시마해협쪽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태평양쪽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본국에서 대기를 명령해 기다리다, 해전 하루 전날인 26일에 러시아 해군이 쓰시마해협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27일 새벽, 남해의 진해항을 출발해 쓰시마해협으로 떠난다.

 

   재미있게도 이 과정에서 도고 헤이하치로의 함대와 일본 본국, 그리고 정찰선들은 1903년에 전력화된 무선전신기를 이용했고, 서로 방해전파까지 쏘기도 했는데, 마르코니가 무선전신이 가능함을 1894년에 처음으로 입증하였고, 미국-유럽간 무선 통신이 1907년에야 상용화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군사적 활용도가 높았기도 했지만, 애초에 기술자체가 너무나도 유용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아무튼, 러시아 해군은 지구를 반바퀴를 도는 오랜 항해로 지쳐있었는데, 반면 일본군은 러시아 해군을 제압하기 위해 포탄의 관통력 보다는 폭발력과 화재를 일으키는 능력을 향상시킨 '시모세'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일본 해군은 쓰시마 해협을 막 통과한 러시아 함대를 만나게 되는데, 일본해군은 러시아군을 만나자 급격히 좌현으로 선회하면서('도고 턴') 도고 헤이하치로의 주 전술인 '정(丁)자 진형'을 구사, 선두함 부터 집중 포격으로 격침시키기 시작했다. 그 와중 일본 해군의 포탄 '시모세'는 러시아 함선의 부식방지 페인트들을 격렬히 불태워 버렸고, 결국 해전 초기에 러시아 제독 로제스트벤스키가 부상을 당해 다른 배로 이송되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러시아 해군은 몇번이나 '도고 턴'을 하며 러시아 함대의 선두를 막아서는 일본 함대와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 했다. 27일 낮부터 시작된 전투는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신형 전함들은 줄줄이 침몰했다. 운좋게 살아나간 배중 7척은 중립국 항구로 도망갔다가 나포당했고, 4척만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당도한다. 38척의 발트함대에서 날아남은 배는 4척 뿐이었던 것이고, 대형 전함들은 모두 일본군에 의해 격침당하거나 자침(빼앗기는 것보다 일부러 침몰시키는 것)되어 모두 침몰되고 말으며, 결국 발트함대는 사실상 괴멸되고 말았다.

 

 

 

   러시아 해군은 전사 4830명, 포로 6106명의 막대한 인명피해도 입었는데, 이런 반면에 일본군은 3척의 어뢰정만이 침몰하는데 그쳤으며 117명이 전사, 583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일본군의 함선은 바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타고 있던 기함 '미카사'였다.

 

   러시아 배중 일부는 주변의 배들이 모두 침몰하자 결국 백기를 올리고 투항하기도 했는데, 그 배에는 바로 부상당한 러시아 제독 로제스트벤스키가 타고 있었다. 결국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로제스트벤스키의 병문안을 하는 일이 벌어지니, 러시아 해군,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발트함대의 치욕이었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러일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전의를 상실했음은 물론이었고, 러시아 내부적으로도 회의적 시각이 팽배해졌음 역시 물론이었으며, 전략적으로도 큰 위기가 닥친것 또한 물론이었다.

 

 

   쓰시마 해전이후 일본은 사할린 전체를 손쉽게 휩쓸었으며, 약 3개월 뒤인 9월 초, 러시아는 평화회담을 제안해야만 했다. 포츠머스 강화조약(오른쪽 사진)을 통해 일본이 한반도와 그 북부에 대한 사실상의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을 떠나게 된다. 자신감이 넘치고 넘치게 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쳤으며, 포츠머스 강화조약 2개월 뒤인 11월, 을사늑약이 맺어지며 대한제국은 주권을 상실하게 되고, 1910년에는 결국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고 만다.

 

   한편 러시아는 러일전쟁의 패배를 계기로 일어난 개혁 운동이 훗날 '피의 일요일'이라고 부르게 된 러시아 왕의 무력으로 무차별 진압으로 막을 내리게 되자, 신처럼 따르던 러시아의 왕, '차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의 씨앗이 싹트게 되고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다.  

 

 

   그렇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한반도의 운명은 물론, 동아시아, 크게는 소련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세계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었다. 정말로 그렇다. 물론 역사속에서의 모든 사건들은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일련의 역사속에서 한 사건만 결과가 반대로 되었더라도 모든 역사는 뒤집혀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러일전쟁, 특히 쓰시마 해전의 경우 러시아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하지만 일본은 애초에 강했다. 러일전쟁 와중에 벌어진 거의 모든 전투에서 일본은 승리했다. 우리는 그에 대한 미련을 두기보다는, 또한 일본이 한때 강대했음을 애써 평가절하하기 보다는, 그 역사에 교훈을 찾고 우리의 미래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작은 나라라 자학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 '식민 사관'이 가장 큰 문제일 뿐이다. 왠 외국 국가들 끼리의 전쟁으로 우리의 운명이 결판나게 되는 일은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그에 준하는 국력을 갖추게 되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될 뿐이다. 정말 그렇고, 사실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역사의 반복을 막자. (오른쪽 이미지 속 'Sea of Japan'은 Wikipedia의 게재된 사진에 적힌 내용으로 양해바랍니다.)

 

 

 

 

 

 

 

*정치외교

 

   요즘 정치권이 몸을 잔뜩 움츠린 상태라 뉴스도 없고 영 재미가 없다. 정치인들이 실언을 몇번 좀 해줘야 재미가 있는 것인데...

 

   #. 민주당 대표경선이 나름 흥미진진하게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대선경선'도 아니고 '대표경선'일 뿐인데, 지난 박지원-이해찬 연대가 '김한길'의 부상이라는 역풍을 불러오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듯 하다. 이를 본 새누리당에서는 흥행을 위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반대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야 한다는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친박'계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당권 확보에 자신이 없는 것일까? 더 흥미진진할것 같은데 말이다.

 

   #. 노건평 뭉칫돈 논란에서 검찰이 자꾸 뒤로 주춤거리머 물러서다 아예 발을 빼버렸다. 검찰은 노건평씨 '주변인의 계좌'에서 발견된 수백억의 뭉칫돈을 노건평씨의 것처럼 말해왔는데, 이젠 "분리해서 봐달라", "기자들이 오해했다" 이런식의 말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노건평씨가 조사받고 있는 모든 혐의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은 명백히 '피의사실 공표죄'를 저지른것 처럼 보인다. 유명인의 피의사실에 대해 '알권리'가 있을 수 있으나, 짐작이나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진술 한두개가지고 소문내는건 형법상 범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때도 그렇고 참 아마추어스럽다.

 

   #. 북한이 '핵실험 계획은 없다'라며 최근 위성사진으로 드러나고 있는 핵실험 움직임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보면 언제든 하려면 할 준비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최후의 카드로 미국과 협상의 여지를 두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이 원하는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이대로 가능할까? 미국과의 협상도 제쳐놓고 내부적으로 해야만했던 광명성 3호의 발사, 그리고 실패... 핵실험 카드로 다시 광명성 3호 발사 이전의 IAEA사찰단 합의로 이어질 수 있을까?

 

   #. 수요일, 러시아가 신형 ICBM을 발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MD계획 발표 사흘만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5세대 미사일 기술을 적용해 MD를 뚫을 수 있다"라고 대놓고 발표했다. 확실히 이건 미국이 MD계획을 오버해서 추진하면서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상황인듯 하다. 이렇게 까지 안해도 될텐데... 내가 볼땐 일단은 MD를 완성하고 봐야겠다는 야심인 것으로 보인다. MD 시스템의 배치가 완료되야 5세대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하든말든 할테니 말이다.

  

  

 

 

 

 

*사회국제

 

   #. 우리 대법원이 '자산 가압류'까지 가능하게 하는 일제징용에 대한 피해배상판결을 내렸다. 일제징용피해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에 대한 피해를 말한다. 한일간의 법적 효력 여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자산 가압류'라는 것이 일본기업의 한국내 재산 가압류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길은 완전히 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상액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데, 일제징용만이 아닌 위안부문제 쪽으로도 확대되었으면 하지만, 그쪽은 일본 국가가 관여된 문제라 어렵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번 일로 확실히 일제 피해에 대한 배상에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 무바라크를 퇴진시켰던, 중동 민주화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이집트에서 역사적 선거가 개시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국민들의 열망과 다르게 새로운 인물이 아닌 '이슬람 근본주의' 후보와 구 정권의 인사가 결선에서 맞붙게 되었다. 부정의혹도 있었지만 국제선거감시단은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는데, 결국 이렇게 된 이유는 50%대의 낮은 투표율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결집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뭐 아쉽게 됐지만, 이는 개혁세력의 등장을 더욱 가속화 시키지 않을까?

 

   #. 시리아 훌라학살이 이슈가 되고 있다. 시리아군이 훌라 지역에서 무차별 살상을 감행해, 100여명이 사망하고 그 중 30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UN과 서방국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역시나 석유가 있는 리비아와 같은 '숨가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래서 시리아 사태 끝이나 날 수 있을까?

  

참고 기사

[대법, 일제 징용피해 배상 판결] 日법원도 배상 자체 필요성은 인정… 한국시장 규모 고려하면 거부 못할 듯 - 한국일보

시리아 '훌라학살'…어린이 32명 희생(종합) - 연합뉴스

 

 

 

 

 

 

 

*경제산업

 

   #. OECD가 한국 가계부채 비율을 경고했다. 아슬아슬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한 유로존의 '재정적자 돼지들',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중 이미 '디폴트'가 되어버린 아일랜드를 빼고 나머지 4개국보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이다. 그래도 올해 우리 가계부채는 0.05%만큼 감소하면서 3년만에 처음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가 볼땐 오를대로 올라서 그렇지 상승세가 꺾였다고 보기는 그런 듯 하다. OECD는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최소 금리인상을 암시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안될 듯 하다. 시한폭탄이라고 지겹게 얘기한 가계부채라는 폭탄의 심지가 타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부동산 시장과 물가는 더 빨리 진정되었어야 했고, '햇살론'처럼 용이하게 대출을 하게 해주는 것 보다는(물론 그것도 필요했지만) 보편적 복지가 더 절실했던 상황인데 이미 많이 늦었다. 가계부채를 낮추기 위해 금리를 올리게 되면 부채가 많은 가계들은 힘들어질텐데,그에 대한 대비책이 더욱 시급해보인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미국 SpaceX사의 민간우주선 'Dragon'이, 화물 521kg을 싣고 25일, 국제우주정거장 ISS와 도킹에 성공했다. 민간우주선이 화물운송에 성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조만간 인력수송에도 나설것이라고 한다. 정말 엄청난 사건이라고 평가된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미국은 우주산업을 연구개발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산업이 아닌, 민간에서 정부를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으로 만들어주었고, 그 결과 그에 도전할 많은 기업들이 생겨날 것이며, 당연히 경제성이 좋아질 것이고, 첨단기술과 관련된 공학자들의 일자리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타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몰릴테고 말이다. 우리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다급하다. '우주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수십년뒤 국가의 흥망을 가를 것이다. 분명하다.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2012년 5월 넷째주

- fin -

 

 

 

 

 

 

가계부채 관련 글 논지 수정 (201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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