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넷째주} 박근혜&민주당경선&안철수룸살롱, 삼성애플특허소송, 강남스타일, 인터넷실명제, 한국전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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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사정리

201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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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보도한 한국전력 하청업체에서

20일간 1명꼴로 3년간 55명이 감전사했다는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청업체'가 노예도 아니고...

하청업체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이런일을 방관하고 있는 한국전력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청업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된 대우와 관리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것이 다 생겨서는 안될, 직업의 귀천을 발생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시급히 해결되어야 교육열, 대기업 편중, 전문직종 선호 등의 문제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 순 서 - 

 

8월 26일과 27일의 역사

만지케르트 전투, 윤보선, 켈로그-브리앙 조약

 

*정치외교

'조용한 이슈'들 - 유로존, 시리아, 공천헌금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박근혜' 선출 / 민주당 경선 모바일 투표 논란 / 경찰 안철수 뒷조사논란

 

*사회국제

'강남스타일' 열풍

인터넷실명제 위헌

계속되는 '묻지마 범죄'

한국전력 하청업체, 3년간 사망자 55명

 

*경제산업

미국 특허소송, 애플이 삼성에 완승 -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8월 26일과 27일의 역사

Wikipedia

 

 

 

8월 26일

1071년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대패하다.

1346년 - 백년 전쟁 중 처음으로 잉글랜드 군대가 프랑스크레시 전투에서 승리하다.

1743년 -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 탄생.

1789년 - 프랑스 혁명: 인간 및 시민의 권리 선언이 제헌 의회에서 채택되다.

1883년 - 크라카토아 화산이 폭발하다.

1897년 - 대한민국의 4대 대통령 윤보선 탄생.

1908년 - 일본, 조선 수탈위한 동양척식주식회사법 공포.

1910년 - 알바니아계의 로마 가톨릭 수녀 테레사 수녀 탄생.

1920년 - 미국, 여성참정권 인정.

1948년 - 한국의 노동운동가 전태일 탄생.

1957년 - 소비에트 연방, 대륙간탄도탄(ICBM) 실험에 성공.

1965년 - 대한민국 정부, 한일협정 반대시위 확산되자 서울에 위수령(衛戍令) 발동.

1978년 -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263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하다.

1996년 - 서울지방법원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란·내란수괴죄 등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하다.

1999년 - 대한민국 대우 채권금융기관 대우그룹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결정.

2008년 - 남오세티야 전쟁: 러시아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하다.

2012년 - 미국의 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사망.

 

8월 27일: 몰도바독립기념일 (1991년)

1907년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경운궁에서 즉위하다.

1928년 -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15개국이 전쟁을 거부하는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파리에서 서명했다.

1939년 - 독일에서 최초의 제트기하인켈 He 178 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하다.

1958년 - 소비에트 연방, 두 마리의 개를 태운 우주선 스푸트니크 3호 발사

1962년 - 미국의 금성 탐사선 마리너 2호, 발사 성공.

1975년 -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사망.

1976년 -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최초로 유전자 합성에 성공

1980년 - 전두환통일주체국민회의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되다.

2002년 - 코미디의 황제로 불린 대한민국의 희극인 이주일폐암으로 사망하다.

2003년 - 베이징에서 · · · · · 의 여섯개 나라 대표가 모여 첫 6자 회담을 열다.

2003년 - 화성지구에 6만 년 만에 처음으로 55,758,006 km까지 대접근하다.

 

   #. 만지케르트 전투는 비잔틴 제국이 셀주크 제국에게 완패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비잔틴 군대가 궤멸되고 황제 로마누스 4세는 셀주크 제국의 알프 아르슬란에게 끌려간다. 그곳에서 로마누스 4세와 알프 아르슬란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알프 아르슬란 : 만약 내가 당신 앞에 포로로서 보내졌으면 어떻게 하시겠소?
로마누스 4세 : 아마 당신을 죽이고 콘스탄티노플 거리에 내걸었을 것이오. 
알프 아르슬란 : 내 처분은 더 무겁소.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해방시키겠소.

 

   로마누스 4세는 영토 일부를 양도하고 자신의 딸을 알프 아르슬란과 결혼시키고 황금도 내줘야 했지만, 목숨을 부지했고 좋은 대접을 받은 뒤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로마누스 4세는 이후 끔찍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자신의 부재로 인해 로마누스 4세의 아내 '에우도키아'는 로마누스 4세를 폐위하고 자신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미카엘 7세'를 황제로 즉위시킨 후였고, 로마누스 4세는 그와 싸우다가 세번이나 패한 뒤 그들에 의해 잔인하게 눈을 실명당하게 되었으며, 섬으로 추방당해 그곳에서 눈에 입은 상처에 감염이 생겨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 모두가 잘 모르는 윤보선에 대해서 좀 길게 써봐야 할 듯 하다. 1897년 8월 26일, 훗날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이 된 '윤보선'이 충청남도에서 태어난다. 대대로 벼슬을 해오고 부유했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이 일본에게 진 빚이 많아 '국채보상운동'이 진행되려 한다는 이야기에, 밥을 굶고 그 대신 돈을 부모님으로 부터 받아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려 하여 부모님을 염려케 하기도 했다 한다. 결국 국채보상운동이 본격화 되고 나서 용돈을 내기도 했다는 그는, 후에 어린나이임에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게 되지만 그리 오래 배우지 못한채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에서 발생한 민주화 혁명인 신해혁명(1911) 때문이었다. 신해혁명에 자극받은 그는 국내로 돌아왔고, 집에는 신학공부를 위해 미국에 간다고 하고 그를 위해 상해를 경유한다며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그곳에서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하던 그는, 1921년에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며 역시 자금을 모금해 임시정부로 송금하게 된다. 훗날 집에서의 독촉으로 애든버러 대학교를 졸업한뒤 귀국하게 되는데(1932), 귀국후에는 일본인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해방이 되던 날까지 13년간 조용히 지냈는데, 그를 지켜본 일본 순사는 그를 정신이상자로 의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창씨개명도 끝까지 거부하면서 친일행적도 없고, 임시정부 활동도 했으며, 영어에 능통했던 그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공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한 장관직, 대사직을 연이어 사절했던 그는, 1949년에 결국 서울시장에 거의 강제로 임명된다. 허나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민중을 강경탄압하는 것을 보고 그와 결별하게 되며, 이후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뒤 4.19 혁명이후 내각책임제로 바뀐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1960). 허나 내각책임제 속에서 실질적 권한이 많았던 총리 '장면'과 많은 부분에서 대립하게 되고, 민주당 우선적으로 행동하던 장면 총리를 막으려는 갈등 속에서 정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장면 총리가 수녀원으로 숨어버리게 되자 윤보선의 결단이 중요해지게 되었는데, UN군에서는 쿠데타를 막기위해 병력 동원을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국군 동원시 생길 북한의 남침, 국군끼리의 전투 등을 우려한 그는 진압을 포기한다. (장면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명목상 대통령자리에 있던 그는 1962년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여기까지가 위키에 나와있는 '윤보선' 글의 내용중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너무 길다.  

 

   #. 1928년 8월 27일, 파리에서 15개국이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서명한다. 미국 국방장관 '프랭크 켈로그'와 프랑스 외무부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이름을 딴 조약으로, 전쟁 규탄 조약이다. 프랭크 켈로그는 이 조약의 공로로 192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고, 1939년까지 무려 63개국이나 이 조약에 가입하게 되지만, 이 조약에는 위반시의 대처방안에 대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1939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명무실해지게 되었으며, 현재는 국제법적인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

 

  

 

 

 

 

 

 

*정치외교

 

 

   #. 휴가도 끝나고, '어디 한번 써볼까' 하고 보니 소식이 별로 없다. 아래 경제 쪽에서 해야 될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로존 문제가 일단 소강상태다. 그렇다고 유로존 문제가 해결된건 아니다. 여전히 그리스의 잔류냐 탈퇴냐, EU요구대로 긴축재정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우고 있다.  갑자기 뭔 소식이 들려올지 모른다. 또 시리아 사태의 경우도, 화학무기까지 사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는데, 뭔가 사태 해결의 '활성화 에너지'를 넘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내소식 중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이야기도 잠잠한 상황이다. '3억원'의 전달 과정에 대한 의문점들은 '배달사고'로 정리될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누가 누구한데 뭘 줬다' 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묻혀서는 안 될, 국회의원자리를 사고판 사건인데 답답할 따름이다.

 

참고 기사

현영희 의원, 공천헌금 3억원 전달의혹은 브로커의 배달사고? - 동아일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박근혜' 선출 /

민주당 경선 모바일 투표 논란 /

경찰 안철수 뒷조사논란

 

 

   대선을 앞두다보니 온갖 관심은 대권주자들에게만 집중되고 있고 다른 의원들과 정치권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다보니 소식들은 매우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민과 언론이 대선 주자들의 행동과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 좀 북적북적하고 누가 말실수도 하고 해야 재미있는거고 우리 정치환경에서 늘상 있었던건데, 그런 흔한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대선이라는게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일단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비박 의원들의 완전국민경선제 경선룰 논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공천헌금 논란, 토론에 약한 박근혜를 도와주기 위해 토론회 질문을 사전 지정&공유 했다는 논란 등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박근혜는 강했다. 사실 강했다기보다는 늘상 말했던것 처럼 어떻게 했어도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경선룰 논란 같은 것들은 승패가 뻔히 보여 무미건조 할 수 있는 새누리당 경선의 '떡밥'이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비박 의원들도 이번 경선에서 '작은 이변'을 일으켜 생각보다 많은 표를 얻어 미래 당의 주축이 되고자 했던것 같은데 박근혜 후보가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면서 그들의 작은 기대도 날아가 버렸다.  

 

   아무튼 박근혜는 신뢰의 정치인이다. 지금까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 그렇게 행동해 왔다. 나도 그걸 좋게 봤고... 하지만 최근 봉하마을을 방문하고, 젊은 2030 세대를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정치인' 인가 싶기도 하더라.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난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박근혜에게서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같은 멋들어지고 강직한 보수의 여성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보았고 그를 기대해왔지만, 지금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이다. 뭐 시대가 박근혜를 바꿔놓은 것일 거다.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것이고...

 

   그럼 바로 그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지금 박근혜가 보여주는 모습은 진실된 모습인가? 그 부분이 걱정이다. 반값등록금을 절대 반대했던 인물이 박근혜다. 하지만 대선후보가 되고 나서 바로 반값등록금 토론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데 동참했던 인물이 박근혜다. 하지만 봉하마을에 가서 권양숙 여사를 만나는 모습은, 그가 반성해서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녀는 지도자가 된다면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

(오른쪽 이미지는 8월 18일 조선일보 기사 중 이미지)

 

 

 

   민주통합당도 갑자기 경선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고 결국 경선이 파행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결과 공개를 강행하기도 했고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모바일 투표였다. 제주경선에서는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했었고, 특히 문제가 불거진 울산 경선에서는 "1번은 누구... 2번은 누구... 3번은 누구... 4번은 문재인 입니다." 뭐 이런식으로 후보를 불러주는데, 이 문항을 끝까지 다 듣지 않고 앞쪽 번호를 누르면 무효가 되어, 마지막 4번 문재인 후보의 표가 무효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게 문제로 제기되면서 후보들이 경선을 보이콧 했다. 보면 확실히 문제는 문제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중앙선관위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주장이다. 뭐 결과적으로는 문제라는 말인가?  

 

   이건 고쳐져야 할 부분인게 맞다. 하지만 언론도 경선 보이콧 소식을 전하는 듯 하다가 당연히 문재인 후보가 이긴 것이 맞는 것 처럼 결과만 달랑 기사로 내보내고 있고, 문재인 후보측에서도 별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는 결선 투표를 쿨하게 받아들인 것 처럼, 이 문제도 스스로 인정해줘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만큼(지지율 80%대) 문재인 후보(지지율 50%대)가 압도적이진 않지만, 룰이 조금 바뀐다고 해서 당락이 뒤바뀔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괜히 경선 자체가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는 것 보다는 다시 경선룰을 재정비하여 경선을 재개하는게 더 이득이 될 것이다.  

 

   아무튼 참 새누리당도 그렇고, 민주통합당도 그렇고,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유력 후보를 밀어주는 모양새가 자주보이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안철수 쪽에서도 소식이 하나 있었다. 주간지 '신동아'에서 안철수 교수의 '룸살롱' 출입 의혹이 나오고 안철수 측에서의 반박 성명이 있었던 그 순간, '뉴시스'의 단독보도로 경찰이 작년에 안철수 교수의 여자관계와 룸살롱 출입여부에 대한 조사를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때 경찰이 조사한 곳이 'R룸살롱'인데, 바로 '신동아'에서 언급된 곳 역시 바로 그곳으로, 경찰이 내사한 내용이 '신동아'와 새누리당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뉴시스'에 밝힌 한 관계자는, 안철수 교수의 R룸살롱 출입여부와 한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조사했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미 인지도가 있었던 그에 대한 2011년의 조사... 민간인 사찰의 일환이었을까? 2011년 9월에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왔으니, 안철수 교수에 대한 민간인 사찰이 사실이라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할 사람은 제대로 고르긴 고른듯.

 

   아무튼 이에 대해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경찰이 무슨 흥신소냐"라고 비난했는데, 27일 월요일 부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해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뭐 민간인 사찰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는데 이거라고 될까?

 

   한편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룸살롱 기사에 대해 징징대면 안된다" 라는 트윗을 올려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흠... 뭐 사실 안철수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이니 실제 그렇게 생각했거나 공격을 위해 그렇게 말했을 수는 있겠지만, 경찰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상 이건 더 이상 그렇게 말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이건 이미 '징징댄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정의', '민간인 사찰'과 같은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글쎄, 안철수가 설령 징징댔다고 해도, 어쩌면 안철수 쪽에서 징징댄다 싶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대응'을 보여줄 만한 문제가 '룸살롱 출입여부' 정도 밖에 없다는 반증 아닐까? 오히려 이번 계기로 안철수의 청렴도에 대한 신뢰는 한층 높아진 듯 하다.

 

 

 

 

 

 

*사회국제

 

 

   #.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엄청난 인기다. 싸이가 작사했고 작곡은 싸이와 과거 그룹 '언타이틀'의 '유준형'이 함께 했다고 한다. 글쎄, 졸지에... 라고 표현하면 너무 폄하하는 건가? 아무튼 갑자기 미국에서 박지성, 김연아 보다도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의 가수가 된 싸이... 아이돌 그룹들이 그렇게 미국 시장을 파고들고자 했지만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었는데, 이건 단순 흥미와 유쾌함 때문에 미국인들이 반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넘어 미국 유명 가수들이 합동 작업을 제의해오고 있으니,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 리그 진출, 최초 골프대회 우승, 뭐 그런 것 처럼, 한국인이 미국 음악계에 본격 진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크~ 정말 문화의 힘은 엄청난 듯 싶다. 

 

   #. 인터넷실명제가 위헌판결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고 있으며, 그런 기본권의 제한을 위해서는 공익적 효과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라고 밝혔다. 그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터넷실명제로 악성댓글을 막지 못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실이나 피해자의 검거에 유용하다'라는 주장을 했다. 흠, 사실 '검거하기 위해' 기본권을 제한하는건 안될말이다. 그건 잘못된 반박... 그런데 정말 실명제가 효과가 없다니... 실명제가 주민번호와 이름만 입력해서 관리자만 그를 확인할 수 있는 소극적 방식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정말 실명을 매번 노출시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애초에 인터넷 실명제라는게 말이 안되는게 맞나 싶다. 생각보다 결론을 내리기 힘든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악성 댓글에 평범한 사람이 공공기관을 통해 쉽게 대처할 수 있다면 모든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 '묻지마 범죄'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젠 뭐 일본, 미국처럼 도심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는 상황이니... 확실히 이런건 한번 사회에서 낙오되면 사채를 쓰게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식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 능력이 중시되고 따라서 경쟁이 중요한 절차가 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사실 불가피한 부분이다. 따라서 그냥 그대로라면 묻지마 범죄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는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를 막기위해서는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 특히 힘들게 살아가는 유년기의 아이들에 대한 것들이 절실하고... 원인과 대책은 답이 딱 나오는데, 실천이 어렵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실천은 쉬운데 윗사람들이 외면하는걸까?

 

   #. SBS 뉴스에서 본 소식이다. 한국전력 하청업체에서 고압 전신주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이 3년간 55명 이나 된다고 한다. 20일에 한명꼴이다. 간만에 정말 분통터지는 소식이었다. 예산절감과 시민 편의를 위해 전기를 끊지 않고 수리하는 방식을 채택해서 그렇다는데, 한국전력에서는 하청업체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력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애플이 팍스콘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로 곤혹을 치른것 처럼, 한국전력도 오늘날 하청업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전력, 얼마나 한심한 기업인가?! SBS 앵커의 말대로, 자기회사 직원들이 그래도 그럴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아무튼 하청업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참...

 

 

 

 

 

 

 

*경제산업

 

 

 

 

미국 특허소송, 애플이 삼성에 완승

-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미국 특허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에게 완승을 거뒀다. 한국에서 삼성이 애플에게 약간의 승리를 거둔 것에 비하면 정말 큰 차이였다. 미국 배심원들이 애국심에 근거해 판결을 내린 것일까?

 

   일단 나는 다른건 몰라도 '둥근 모서리의 직사각형 디자인'이라는 내용을 가진 디자인 특허가 인정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생각외로 당연하게 인정되었다. 이럴수가, 그런게 특허가 되나?

 

   이것이 특허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미국에서 1989년 개정된 상표법에 추가된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게 이제서야 언론에, 그것도 일부 언론에 이야기가 나오는게 답답할 따름인데, 아무튼 '코카콜라 병' 처럼 제품이 주는 느낌을 반영한 개념이라고 한다. 덕분에 제품 외관과 아이콘의 둥그스름한 디자인등이 애플의 특허로 인정 받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제품의 디자인을 통일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일관된 디자인을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인정받은 애플의 노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참 놀라운 일인데.... 아무튼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트레이드 드레스에 대한 참고글 :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81942

 

   또 '멀티터치'도 특허로 인정되었다. 스마트폰에서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등의 행동이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하는 행동 자체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습성 그 자체라고 느낄 정도로 직관적이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특허가 될 만한 개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이 멀티터치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재능기부 형태의 강의, 'TED'에서 2006년에 시연된 내용이다. 삼성도 그를 내세워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했는데, 그 전에 애플에서 특허를 출원했던것일까?  

 

   반면 삼성의 특허들은 일단 애플이 주장한대로 특허료를 낸 업체의 칩을 사다가 쓴 것이라 문제가 안된다, 라는 주장등이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있었던 표준 특허에 대해 정당한 사용료를 내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FRAND' 조항은 인정받지 못한 듯 하다. 그랬다면 애플에게 삼성에게 일정한 사용료를 내라고 판결 내려졌을텐데 그런 것이 없으니 말이다. 최종 법원 선고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질까?

 

   그 외 등등... 종합적으로 봤을때, 사실 나도 삼성의 제품을 보면서 애플의 제품을 따라했다, 라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이것이 과연 독점권을 줄 만한 내용인가 라는 것에서는 회의적이었는데, 결국 그것이 인정되었다는 것에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미국에서는 애플이 스마트폰의 외관에서 느껴지는 '애플스러운 느낌' 자체를 창조해냈고 그에 '트레이드 드레스'의 개념이 적용 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걸 보면 '최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스마트폰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일관되고 통일된 제품의 디자인을 인정받은 애플...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한편으로는 결과가 법리적으로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게 옳은 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법적으로 맞다면 옳기도 한 것이겠고, 그러한 특허권들은 보호받아야 하겠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것을 만들어낸 애플... 다양한 스마트폰들을 스마트폰답게 사용하고 싶은 수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불행이긴 할 듯 하니 말이다.

 

 

 

 

 

 

2012년 8월 넷째주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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