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과 24일의 역사 - 아프가니스탄 근대사, 최초의 장기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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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01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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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전후의 아프가니스탄 근대사를 살펴보면,

정말 이렇게까지 나라가 망가질 수도 있나 싶다.

 

공산주의 세력, 이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외세의 개입이 결국 최악의 파국을 낳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지난 역사도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이 스스로 이뤄낸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감격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더욱 성장하고, 더욱 살기 좋고,

더욱 완벽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 순 서 -

 

58년전, 1954년 12월 23일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의 콩팥을 이식함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의 장기 이식을 성공시키다.

 

33년전, 1979년 12월 23일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다.

 

 

 

 

 

 

 

 

 

 

 

 

12월 23일과 24일의 역사

Wikipedia 

 

12월 23일

1794년 - 중국주문모 신부가 조선 최초 사제로 입국함

1888년 -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다.

1947년 - 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가 발명한 트랜지스터의 시험 가동이 벨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다.

1948년 -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A급 전범 7명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하다.

1954년 -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콩팥을 이식함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의 장기 이식을 성공시키다.

1958년 - 도쿄 타워가 완공되면서 정식으로 개방하다.

1970년 - 대한민국의 정부중앙청사 본관이 완공되다.

1979년 -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다.

1990년 - 슬로베니아 공화국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분리에 찬성하는 투표 결과를 내다.

1993년 -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다.

2007년 - 네팔이 국민 투표를 통해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결정하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1524년 - 포르투갈의 탐험가, 항해가 바스쿠 다 가마 사망.

1934년 - 한국의 시인 김소월 사망.

2000년 - 한국의 시인 서정주 사망.

1777년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환초 섬인 키리티마티 섬제임스 쿡이 발견하다.

1798년 -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다.

1865년 - 퇴역한 남부 동맹 군인들이 백인 인종 차별 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KK)을 결성하다.

1871년 - 베르디오페라 <아이다>가 초연됨

1906년 - 레지널드 페센든이 세계 최초로 무선으로 음성 신호를 전송하여 라디오 방송을 하다.

1949년 - 문경 양민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1991년 - 러시아국제연합에 가입하다.

 

 

 

 

 

 

#. 1954년 -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콩팥을 이식함으로써 처음으로 인간의 장기 이식을 성공시키다.

 

   1954년,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인류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에 성공한다. 사실 1905년 체코에서 최초의 각막이식이 성공한 사례가 있었지만, 그는 장기라기 보다는 생체조직(눈이라는 장기의 일부분, 조각)의 이식이었다. 

 

   한국에서의 장기이식은 언제 부터 시작되었을까? 최초의 장기 이식이 성공한지 15년 뒤인 1969년, 역시 콩팥이식을 시작으로 장기 이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1988년 뇌사자로부터 얻은 간으로 장기이식에 성공하면서 '뇌사'를 죽음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었다고 하고, 1992년에는 췌장과 심장이식이 성공하면서 장기이식이 활성화 되었다 한다.

 

   그리고 2009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에이즈 보균자간의 장기이식이 성공했다고 한다. 에이즈 보균자의 신장을 다른 에이즈 보균자에게 이식했다고...

 

   장기 이식이라는 것이 시작된지 말그대로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장기 기증자들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장기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데도 안타깝게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복제 돼지를 통한 장기이식도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아직까지 활성화 되지 못한 상태이고, 줄기세포를 통해 장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말그대로 연구단계인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장기 밀매가 증가하고 장기 가격이 높아지면서, 빈곤 속에서 장기를 팔려는 사람들까지 등장하며 도덕적 파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장기기증이 절실한 사람 들을 위해, 남은 사람들의 장기거래라는 악행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장기 기증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거 매장 문화 일 때는 장기를 빼내간다는 것이, 내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뭔가 내 몸의 손을 대는 것 같아 거부감이 심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화장문화가 매장문화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장기 기증에 대한 선택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책 '넛지Nudge'에서 나온 것 처럼, 장기 기증 서약을 받을 것이 아니라, 장기 기증 거부 서약을 하지 않은 전국민의 장기기증을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충분한 장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흠...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 생각해봐도, 내 장기를 드러내 다른 사람에게 이식 한다는 자체가 뭔지 모르게 꺼림칙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생명을 살리고, 앞을 못보던 사람을 보게 하는 등, 단 한사람에게라도 새로운 삶을 선사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자원봉사자, 자선사업가, 종교인이 그런일을 할 수 있겠는가? 거의 신에 준하는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장기기증이 아닐까 싶다.

 

 

 

 

 

 

 

 

 

#. 1979년 -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프가니스탄의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좀 길듯? 1차세계대전 이후 줄곧 혼란의 역사를 이어왔던 아프가니스탄... 그러던 1973년, 1953년부터 1963년까지 총리를 지냈던 무함마드 다우드(오른쪽 사진)가, 왕 '무함마드 자히르 샤'(1933~1973 재위)가 해외로 순방을 떠난 사이 무혈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리고 초대 대통령이 된다.

 

  이후 무함마드 다우드는 5년뒤인 1977년, 단일 정당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헌법을 통과시키고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다시 재취임 한다. 그런데 1978년 4월 17일,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세력 인민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지도자 '미르 아크바르 카이바르'가 무함마드 다우드가 보낸 비밀요원의 총에 맞아 암살당한다. 인민민주당은 큰 위협을 느꼈는데, 역시나 무함마드 다우드는 4월 26일과 27일에 걸쳐 인민민주당 지도부를 대거 체포하면서 현실이 된다. 독재의 수순을 밟아갔다고 할 수 있겠다. 박정희와 비슷하지 않나? 쿠데타로 정권장악, 유신헌법, 김대중납치살인미수사건까지... 

 

   하지만 체포되지 않았던 인민민주당의 하피줄라 아민, 바브락 카르말,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 이렇게 3인이 군부와 협력하여 1978년 4월 27일에 쿠데타를 일으켰고, 4월 28일에 끝내 무함마드 다우드를 몰아낸다. 그리고 무함마드 다우드는 대통령궁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해된다.

 

   그렇게 하여 공산정권이 수립된다. 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3인 중 인민민주당을 창당했던 타라키(오른쪽 사진)가 대통령이 되고 하피줄라 아민은 총리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공산국가들과의 수교를 진행함과 동시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이끄는 등 이슬람 사회인 아프가니스탄의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자 당연히 이슬람 율법을 선호하는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그에 반발했다.

 

   이 때, 미국이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큰 연관성은 없었던 미국은, 가만히 아프가니스탄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다보니, 오래전부터 친소련 성향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소련파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타라키 정부에 반대하는 이슬람 세력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세력과 공산정부간의 내전 상태에 빠져든다. 그 혼란의 틈을 노려, 쿠데타 3인 중 또다른 한명인 하피줄라 아민이 타라키를 배신, 1979년 9월에 타라키를 배게로 질식사 시키고 병에 걸려 죽었다고 속여 발표한 뒤 2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대통령자리에 오른 하피줄라 아민은 반대파 18000명을 숙청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반발은 더욱 거세졌고, 아민 정부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자 이번엔 소련이 등장한다. 아민 정부가 붕괴되면 이슬람 세력이 들어서 소련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이 분명했고, 그 이슬람 세력이 친미관계를 형성할 가능성 역시 매우컸기 때문이었다. 소련은 소련-아프간 우호선린협력조약에 따라 반군으로부터 아프간 정부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냄과 동시에 KGB 요원들을 비밀리에 투입, 하피줄라 아민을 사살했다. 이후 소련은 쿠데타 3인 중 남은 한명, 카르말을 대통령직에 올린다.

 

   하지만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반정부 이슬람 저항세력인 '무자헤딘'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업고 소련과 아민 정부군에 맞써 싸웠다. 이슬람에 동조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도 계속되었고, 아민 정부군 일부마저 그에 동조하면서 전쟁 초기 금새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소련은 카르말도 결국 물러나게 한 다음, '모하마드 나지불라'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뒤 이슬람을 포함하는 범국민 정부 구성을 제안하며 아프간 정부군+소련군 vs 무자헤딘간의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게 되는데, 저항세력 '무자헤딘'은 소련군의 철수가 이뤄질때까지 싸우겠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일방적 휴전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고 노력했던 소련은, 결국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이 더해지면서 아프가니스탄을 포기, 침공 8년만인 1987년 철수를 선언하고, 1988년 철수가 시작되었으며, 1989년 완전한 철수가 끝이나게 된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그렇게 실패로 끝난다.

 

   수많은 지식층과 국민들이 죽거나 타국으로 피신한 아프가니스탄에는, 결국 군벌들 간의 권력 투쟁만이 남게 된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바로 '탈레반'이다. 소련군 철수 이후 소련을 두둔했던 정부와 이슬람 세력만이 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지불라의 정부군은 탈레반과의 내전에서 패배하게 되고 나지불라는 해외로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1996년,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하면서 1978년 시작된 인민민주당의 집권 시대는 18년 만에 끝나게 되고, 나지불라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뒤 동생과 함께 살해되어 광장에 내걸리게 된다. (왼쪽에서 노란색이 1996년 탈레반 점령지역. 빨간색과 초록색은 북부동맹 지역)

 

   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련은 물론 미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데 실패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후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나가는 것과 관련해 탈레반과 협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굉장히 반미성향이었던 탈레반과의 협상은 잘 될리가 없었다. 그러던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테러 주동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만든 조직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연관성 때문이었다(오사마 빈라덴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가하여 그 때부터 세력을 키워왔다). 오사마 빈라덴에서부터 탈레반으로 까지 연결되는 테러집단을 뿌리뽑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과거 무자헤딘을 지원하며 친미정권을 세우려고 했던걸 생각해본다면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러번 언급했던 이라크를 지원했다가 훗날 침공한 것도 마찬가지.)

 

   결국 테러의 뿌리를 뽑아냄과 동시에, 겸사겸사 아프가니스탄에는 기어이 친미정권이 수립되게 된다. 30여년만에 미국은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12월 23일과 24일의 역사

 

- fin -

 

 

 

 

 

 

오타수정(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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