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과 28일의 역사 - 아이패드 출시 3년, 일본이 가장 강력했을 때, 잭슨 폴록, 트라이아누스

댓글 12

오늘의 역사

2013. 1. 24.

 

 

추천? 손가락 클릭!

 

 

 

 

 

 

 

 

 

아이패드가 등장한지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아이폰으로 흥했던 애플은 한계를 보여주고 있고,

이제 슬슬 다양한 태블릿PC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아이패드 시리즈를 넘어서는 태블릿PC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절묘한 융합으로 찾아온 혁신...

앞으로의 미래는 그러한 혁신의 연속일까, 아니면 의미없는 하드웨어 스펙 전쟁의 연속일까?

혁신을 해낸다면 누가 해낼 수 있을까? 그 혁신의 결과물은 무엇일까?

 

예측 할 수 없고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 혁신적인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 순 서 -

 

1915년전, 98년 1월 27일 

트라이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

 

101년전, 1912년 1월 28일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이 탄생하다.

 

81년전, 1932년 1월 28일

중국과 일본 간의 제1차 상하이 사변이 발발하다.

 

3년전, 2010년 1월 28일

애플에서 아이패드1을 공개하였다.

 

 

 

 

 

 

 

 

1월 27일과 28일의 역사

Wikipedia

 

1월 27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98년 - 트라이아누스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

1756년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출생하다.

1888년 - 미국의 국립 지리학회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설립하다.

1918년 - 핀란드 내전이 시작되다.

1945년 - 소련붉은 군대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7,500여명의 죄수를 해방시키다.

1962년 -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 출생.

1988년 - 서울 여의도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이 완공되었다.

1989년 - 전두환 정부 시절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이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2011년 -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대법원 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도지사직을 잃게 되었다.

 

1월 28일

1547년 - 에드워드 6세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하다.

1912년 -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잭슨 폴록이 탄생하다.

1932년 - 중국과 일본 간의 제1차 상하이 사변 발발

1973년 - 베트남 전쟁 종결을 위한 파리 협정이 발효되다.

1986년 - 미국항공우주국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발사된 지 1분 13초 만에 폭발하다.

2002년 -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사망하다.

2010년 - 한국 시간 기준으로 이 날 애플에서 아이패드를 공개하였다.

 

 

 

 

 

 

 

   #. 98년 - 트라이아누스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

 

   시작하기에 앞서, 가끔보면 한글 위키피디아의 내용이 영문 위키와 차이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트라이아누스의 재위 시작 시기도 영문 위키와 한글 위키가 다른데, 더 활성화된 영문 위키의 날짜를 따라가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 치면 1월 28일로, 위에 있는 27일은 아닌데, 오늘은 1월 28일의 역사도 다루니 그냥 진행하고자 한다. 아참, 잘못된 위키 내용도 직접 수정했다.

 

 

   98년이라는 연대는 가끔 쓰면서도 참 어색하다. 아무튼 98년 1월 28일, 훗날 로마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 다섯 중 하나, 즉 '오현제'중 하나로 불리게 되는 트라이아누스가 45세의 나이로 로마 제국 황제의 자리에 즉위한다. 트라이아누스는 로마의 속주인 히스파니아(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지역) 지역 출신이었다. 300년전 로마가 카르타고로 부터 빼앗은 지역의 출신이었던 건데, 그 지역에서 300년 뒤에 황제가 나온 것이다. 페르시아, 로마, 미국과 같은 제국들이 가졌던 '용광로' 문화의 결과물이랄까? 흑인대통령 오바마도 떠오르는걸?

 

   그런 트라이아누스는 지난 12명의 황제들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친다. 그 결과 로마 제국 역사 최대의 영토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내정에 있어서도 빈민들을 구제하고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등의 정책을 펼쳐, 빈부에 상관없이 폭 넓은 지지를 받았으며, 황제였지만 원로원과의 협의를 중시하여 원로원과의 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트라이아누스는 동성애자로, 후손이 없었다. 로마 황제임에도 암살당하지 않고 64세까지 살았으며, 결국 다음 황제에는 양아들로 삼은 사촌형제 '하드리아누스'가 계승하였다. 트라이아누스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히 끝.

 

 

 

 

 

 

 

 

 

#. 1912년 -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잭슨 폴록이 탄생하다.

 

   아래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의 그림들이다.

 

 

가을의 리듬 (Autumn Rhythm, 1950)

 

 

 

라벤더 안개 (Lavender Mist, 1950)

 

 

 

 

No.5 (1948)

 

 

 

   사실 이런건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한 것 같다. 세상에.

 

   하지만, 나도 미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님에도 이런 그림에는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던한 어떤 공간에 이런 그림 하나가 떡하니 걸려있으면, 다른 그림이라면 분명 그렇지 않을텐데 멋들어진 느낌이 살아나고 '포스'가 느껴진다. 분명 대작이 아닌 그림이 걸려있다면 가질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대작이 아닌 그림을 걸어 놓고 구분해보라면 못할 것 같긴 하다)

 

   이런 그림들은 어떻게 보면 분명 단순하고 막 그렸다 느낄 수 있는 그림이지만, 그러한 멋진 모양새는 대충 따라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게 맞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따라하면 어색하기 마련... 물론 '복사'를 작정하고 정교하게 따라한 모조품이라면 원작과 거의 같은 느낌을 가지긴 하겠지만,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이런 느낌의 작품'은 이 작가가 처음 생각해 낸 것이라는 거다.

 

   잭슨 폴록의 작품들도 역시 그렇다. 그의 작품은 '액션 페인팅'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멋들어지지만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것 처럼 그냥 물감 뿌리는, 그런 난잡한 방식으로 그린 그림인데, 중요한건 이전까지는 이런 작품이 없었다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40년대에 등장한 잭슨 폴록의 혼란스러운(?) 작품은, 시대와 맞아 떨어져서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큰 인기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형태만 대충 봐도 잭슨 폴록이 떠오를 수 밖에 없게되었다. 피카소의 그림의 느낌이라는 것이 바로 와 닿듯, 잭슨 폴록의 그림은 어쩌면 꼬마아이가 실수로 그렸을 법한 그림이지만, 이제 그런 그림을 꼬마아이가 실수로 그려도 잭슨 폴록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인간, 동물, 또는 자연현상이나 우연한 사건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2차원적 이미지의 그 '느낌'이 잭슨 폴록의 것이 된 것이다.

 

   그렇다. 그 '느낌'이라는 것... 확실히 예술작품은 그 결과물을 현실에 빗대어 가치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 그냥 '느낌 있다'는 한마디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작품의 배경, 역사, 또 예술가에 대한 뒷이야기들 같은 것이 더해져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면 그 '느낌'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공감각'적인 느낌을 불러내 감동을 배가 되게 한다. 그러고 보니 '공감각' 이라는 단어를 정말 오랜만에 써 본 듯?

 

   1912년 1월 28일에 태어난 잭슨 폴록은, 이름있는 예술가답게 44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1956년 8월 11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끔찍한 생각이지만 그의 혈흔이 어떻게 튀었을지 갑자기 살짝 궁금하긴 하다. 보고 싶지는 않지만... (고인 모독의 의도는 없으니 양해해주시길...)

 

 

 

 

 

 

 

 

 

 

 

   #. 1932년 - 중국과 일본 간의 제1차 상하이 사변 발발.

 

   사실 우리가 참 잘 모르는 역사가 바로 1930년대 전후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 전에야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1910)된 이후 초반에는 3.1운동(1919), 청산리 전투(1920)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후 20년대 후반, 30년대 초반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도 기본적으로 잘 배우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다가 창씨개명(1939), 2차세계대전발발(1939), 진주만 폭격과 태평양전쟁 발발(1941) 이야기가 나오면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그리고 1945년의 광복으로 넘어간다. 아마 그냥 대다수의 분들은 '일제 강점기가 1900년대, 1910년대에 시작됐고 광복은 1945년' 뭐 그냥 그렇게 기억하실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세계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스토리텔링 형태로, 연속적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해가며 고대 인류의 발생에서부터 지금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게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블로그에서 연재중인 '문명 게임' 연재이지만, 이건 이거고, 일단 교과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다면 1920년대 말에서부터 1930년대에 무슨일이 있었나?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동아시아 상황에 대해서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에게 한국은 징검다리에 불과했을 뿐'이 되겠다. 많은 분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우리의 역사에만 몰입된 나머지, 흥선 대원군, 명성황후, 을사늑약, '일본은 나쁜놈' 그런 쪽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사실 일본의 입장에선, 세계사적 관점에선, 흥선 대원군, 명성황후, 을사늑약 같은 것은 일본이 쓴 1900년대 역사 중 몇 문장에 불과하다.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1895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이후 거칠것이 없었다. 바로 다음행동에 들어간다. (을사오적, 강제합방 이전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해하는 것이 일제강점기라는 사건을 더 크게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우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만주'에서의 이권을 통해 일본은 큰 이익을 얻는다. 이후 일본은 중국의 내전 상황을 이용해, 일본이 관리하는 지역을 더욱 넓히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이 밀어주던 중국의 '장쭤린'이 '장제스'에게 밀려 결국 암살 당하기에 이르자(1928), 이후 중국은 거세게 반일 운동을 벌이기 시작해 만주에서의 일본 이권이 위협받기 시작했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경제대공황은 일본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되면서 일본은 일본경제의 활로를 만주 침략에서 모색하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으로 일본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몇차례 일어난 가운데,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일본 군대를 이용해 남만주 철도 일부 구간을 폭파하고, 그것이 만주에 주둔하던 중국 동북군 소행이라고 발표한 뒤 그를 구실로 만주를 침략한다. 바로 '만주 사변'이다.

 

   한편 '장제스'의 중국 정부는 공산군과의 대결 때문에 일본과의 전면전을 피하고자 대응을 자제한다. 그 동안 일본은 빠른 속도로 만주 지역을 점령해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5개월만인 1932년 1월에 만주지역 전역을 장악하고 그 지역을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로 만든 뒤, 1931년 10월에 미리 탈출시킨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황제자리에 앉혀 모습도 번듯하게 갖춘다. 이후 만주지역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병참기지화 하여 '다음 침략'을 준비하는 한편, 석탄 등의 자원이 많은 화베이 지역은 아예 일본으로 합병해 직접 관리하기 시작한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은 상하이를 또 탐내기 시작한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외국인들에게 자치권과 치외법권을 주어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넓은 조계지가 상하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은 남만주 철도 폭파사건과 같은 명분을 만들었다. 중국인들을 매수해 일본인을 폭행하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은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게되고, 이를 구실로 1932년 1월 28일, 상하이를 침략해 제1차 상하이사변을 일으킨다. 조계지를 지키기 위한 외국군대도 있었지만, 결국 중국군이 무너지면서 외국군대들은 무장해제 당하게 되며, 이렇게 해서 일본의 1차적인 중국 침략이 완성되게 된다.

 

   그 이후? 일본은 또 '루거우 다리 사건(1937)'을 조작해 다시 중국을 침공하며, 중국은 내전을 벌이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연합해(2차 국공합작) 그에 저항한다. 전쟁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자 일본군은 중국인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기 시작했고(1937년의 난징 대학살도 그 중 하나), 이후 1944년의 '이치고 작전'은 일본군에게 엄청난 승리를 가져다 주게 되며 미국은 중국이 일본에 의해 완전히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보기도 했으나,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개입한 미군은 이미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을 압도해가고 있었고, 결국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되며 일본 제국은 패망하고 만다.

   ▒

 

   일본은 문명 게임을 하듯(정말로 유사하게) 도시와 지역을 점령하고 병참기지화 한 뒤 다음 지역을 점령하는 식으로 나아갔다. 한반도 같은 작은 땅은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농담이 아니고 일본이 중국을 아예 점령할 뻔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점령했더라도 지배가 얼마나 갈지는 몰랐겠지만 일본은 그 정도였다. 일본의 그 힘이 절정에 달했던 때가 바로 1920년대 말, 30년대였다.

 

   최근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일본 물건 불매운동을 벌이고, 센카쿠 열도에서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딱 그 1920년대, 30년대의 모습이다. 물론 달라진 점은 중국이 강대해졌다는 것... 그럼 별 상관 없는 걸까? 어쩌면, 중국이 치욕의 역사를 '역으로' 반복하려하는 중인 것이 아닐까?

 

 

 

 

 

 

 

 

 

 

 

   #. 2010년 - 한국 시간 기준으로 이 날 애플에서 아이패드를 공개하였다.

 

   한국시간으로 2010년 1월 28일, 애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패드'라는 태블릿PC를 공개한다. 2000년경에 애플은 이미 태블릿PC에 대한 특허를 제출했었다고 하니, 애플이 상대적으로 특허를 그리 많이 쓰지 않는 회사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 이미 10년전 애플은 태블릿PC에 대한 구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iPad 공개 영상. 영어를 몰라도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과거에도 태블릿PC는 존재했었지만 신기한 물건에 그쳤었다. 모양은 신기했지만 성능과 활용에 한계가 있었던 것인데,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는 얇은 태블릿PC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였으며, 무엇보다 애플의 '앱스토어'가 iOS기반의 아이패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그 활용도를 높여주어 대중화에 성공했다. 기존 아이폰의 성공도 아이패드의 인기에 한 몫했다.

 

   하지만 1월 28일 공개된 아이패드는 발매 전까지 엇갈린 평가를 받았었다. 이찬진 드림위즈대표는 "디자인, 기능, 콘텐츠 등에서 아이패드와 비교할 수 있는 비슷한 제품은 현재 없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제품이다"라고 말했고, 훗날 대통령 선거에 출마에 유명세를 치룬 안철수는 "큰 흐름의 모티브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건이다." / "아이패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IT 산업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와 통신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점을 지적해 '태블릿PC'라는 새로운 모바일 기기가 등장했음을, 또 태블릿PC에는 컨텐츠가 중요할 것임을 예측했다. 하지만 반대로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아이패드는 좀 더 커진 아이팟에 불과한 것 아니냐", "별로 놀랍지 않다"라고 말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회장인 빌 게이츠는 "내가 아이폰을 처음 봤을 때 'MS가 더 높은 목표를 잡았어야 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이패드는 그렇지 않았다" 라고 말해 아이패드를 평가절하했다.

 

   그런 논란속에서도 미국 내에서는 2010년에 아이패드가 1000만대 가량 팔릴 것이라는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 많았다. 실제로 아이패드1은 2010년 4월 3일 출시되어 초기 아이폰보다 빠른 판매속도를 보였으며, 2011년 3월 2일에 '아이패드2'를 발표할 때까지 1500만대가 팔렸다.

 

 

   요즘 애플이 스티브 잡스의 사후 이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다들 알다시피, 애플이 선보인 제품들은 없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잘 포장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기기 자체가 훌륭했으며, 중요한건 그런걸 만들 기술을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애플은 그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혁신'이 서구사회에서만 나온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볼 거리다. 지금 애플의 위기를 논하는 것이 어떤면에서는 굉장히 국소적인 부분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PC를 대중화 시킨 IBM, 전세계적 운영체제를 만들어낸 마이크로소프트,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과 오늘날 무인자동차까지 만들고 있는 구글, 그리고 애플까지... 애플이 주저 앉아도, 20년 뒤에, 어쩌면 겨우 몇 년 뒤에, 엄청난 제품을 들고 다시 혜성처럼 등장할 기업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뻔한 일이다. 또한 애플이 PC를 만들어 혁명을 일으킨 뒤 잠시 역사의 뒷편에 물러나 있다가 이번에 스마트폰 혁명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것 처럼, 그 기업이 또 애플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기업들도 이제 '혁신'이라는 것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다 애플 덕분이다. 애플이 없었다면 우리 기업들은 뻔하디 뻔한 제품들만 내놓다가, 시간이 흐르면 일본 기업들처럼 낡고 나태해져 부스러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애플은 우리 기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아쉽게도 너무 일찍 1위에 자리에 올라 이미 병이 곪아버린 일본 기업들은 그 충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아무튼 난 우리기업들이 적절한 시기에 큰 자극을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은 서서히 정신을 차려가고 있고, 중국은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로 따라오는 상황이다. 아이패드 등장 3년... 그야말로 놀랍고 신기한,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를 넘어선 '전례없는 새로운 제품군'이 우리나라에서 꼭 등장해보길 기대해 본다. 누군가 머릿속에 이미 떠올렸던 적이 있는 제품일 것이 분명한데...  

 

 

 

 

 

 

 

1월 27일과 28일의 역사

 

- fin -

 

 

 

 

 

 

 

현재까지 수정 내용 없음.

 

 

 

추천? 손가락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