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호암산·삼성산 북부(서울 구역)

도봉산고양이 2008. 11. 28. 00:05

 

' 늦가을 산사 나들이 ~ 호암산 호압사(虎巖山 虎壓寺) '

▲  연등을 두르며 사월초파일을 기다리는 호압사 약사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솟아난 호암산(虎巖山)은 삼성산(三聖山, 480m) 서북쪽에 있는 봉우
리로 삼성산의 일원이다. 호암산은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호
랑이의 기운이 관악산(冠岳山)과 더불어 한양 도성을 위협하므로 그 기운을 누르고자 산자
락에 호랑이를 누르는 절인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처럼 호암산에는 호압사
를 비롯하여 오래된 우물인 한우물, 신라 때 만들어진 호암산성(虎巖山城), 광화문(光化門
) 해태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석구상(石狗像) 등 옛 흔적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옛적부터
무척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호암산에서 삼성산(삼막사)까지는 완만한 능선길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아기자
기한 모습의 바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듬뿍 더해준다.  


▲  '호암산문(虎巖山門)'이라 쓰인 호압사 일주문(一柱門)

서울시내에서 시흥2동 벽산아파트, 경인교대 방면으로 가는 시내버스(152,5517,5520번)를 타고
해발 150m에 자리한 호압사입구 정류장에 발을 내려서면 길 건너 산쪽으로 어여쁘게 단청을 한
호압사 일주문이 중생들을 맞이한다.
문이라고는 하나 문을 여닫는 문짝은 없으며 절을 찾은 중생들, 산을 찾은 등산객, 부자와 서민
등 어느 누구 가리지 않고 반가히 맞이해 준다. 일주문처럼 넓은 포용력을 지니며 살리라 다짐
을 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어버린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신이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일주문 부근에는 호암산에 대한 내용과 지도가 베풀어진 안내문이 있으니 가볍게 읽어보고 문을
들어서면 될 것이다.


▲  늦가을에 잠긴 호압사 가는 길

여름의 제국을 몰아내며 잠시나마 하늘 아래 세상을 점거한 가을은 고운 색채의 단풍으로 천하
를 가득 물들이며 위세를 떨어보나 그 여력이 한없이 부족하여 이내 추위를 앞세운 겨울의 제국
에게 서서히 내몰리기 시작한다.
길 주변 나무들은 겨울의 제국에 대비하여 슬슬 거추장스러운 옷을 길에 떨구고 그들의 버림을
받은 낙엽은 쓸쓸히 콘크리트 길을 덮어주며 묵묵히 겨울을 기다린다.

일주문에서 호압사까지는 걸어서 8분 거리로 수레가 들어오게끔 길이 잘 닦여져 있다. 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나 호압사 표석을 지나서부터 경사가 다소 급해진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길을 오
른다면 금세 호압사의 산문이 그대를 반겨줄 것이다.

일주문에서 4분 정도 오르면 호압사를 알리는 거대한 표
석을 만나게 된다. 표석의 한쪽 면에는 한글로 '호암산
호압사'라 쓰여 있고, 다른 쪽에는 한자로 쓰여있다.

표석을 지나면 별로 넓지 않은 호압사 주차장이 나오고
하늘과 한발자욱 가까워질수록 호압사의 모습이 솟아나
듯 보이기 시작한다.

경내 못미처에는 약수터가 하나 있는데 샘터로써의 기능
은 이미 오래 전에 상실했다.
절에는 으례 중생들에게 물을 베푸는 샘터가 있건만 여
기는 아쉽게도 그런 샘터가 없어 요사채 부근에 마련된
물통에서 물을 받아 마셔야 된다.


▲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 호압사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범종각)

 약수터를 지나니 범종각을 비롯한 호압사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돌로 쌓은 석축 
 위에 둥지를 튼 절이라 계단을 또 올라야 되지만 그동안 올라온 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범종각 우측 석축 아래로 백의관세음보살(白衣
觀世音菩薩)의 조그만 거처가 있다.
등 뒤로 넓직한 광배(光背)와 두광(頭光)을 두
룬 인자한 누님의 모습으로 절을 찾은 중생을
반겨주는 관음보살로 어느 부부가 시주하여 만
든 것이라고 한다.


♠  서울을 위협하는 호암산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고자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세워진 조선 초기 사찰 - 호암산 호압사(虎壓寺)


▲  호압사 석약사불좌상(石藥師佛坐像)

호압사는 호암산 자락에 단정히 들어앉은 조선시대 사찰로 1394년(태조 2년) 태조의 명으로
학대사(無學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은 절에 호압(虎壓)이란 현액(現額)을 하사했으며, 1841년 의민(
)이 상궁(尙宮) 남씨와 유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했다.
1935년 만월(滿)이 약사전
6칸을 중건하고 1995년 삼성각을 세워 지금에 이른다.
서울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로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서울에 궁궐(경복궁)을 지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괴물이 눈에 불을 뿜
으며 궁궐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폼을 잡자 태조는 군사를 시켜 괴물에게 화살을 쏘게 했다. 하
지만 괴물은 화살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껏 만든 궁궐을 보기 좋게 때려부시고는 유유히 사
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에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
"한양은 정말 비할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

태조가 깜짝 놀라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그건 아실 것 없구요.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습니다"
태조가 정색을 하며 그 묘안을 묻자 노인은 저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
다.
태조는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킨 곳을 보다가 깜짝 놀라며
"호랑이 머리를 한 저 봉우리가 한양을 바라보고 있다"

태조는 노인에게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물었다.
노인은 "호랑이란 꼬랑지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산 꼬리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  호압사를 세운 무학대사의 진영(眞影)
삼성각 우측 벽에 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무학대사를 불러 이곳에 절을
짓게 하고 절의 이름을 호랑이를 누른다는 뜻에
'호압사'라 하였다. 그후로는 호랑이도 맥을 못
추는지 궁궐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호암산과 관악산(冠岳山)은 풍수지리적으로 그
생김새가 각각 호랑이와 활활 타오르는 불을 상
징한다고 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이 바로 서
울 도심인데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조선 정부에서는 두 산의 기를 막고자
호암산 밑에 이 절을 세우고, 관악산 자락에 연
못을 파고, 연주암(戀主庵) 등의 절을 지었으며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배치하였다.

이와같이 호압사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일환
으로 세워진 절로 국가의 지원이 상당했을 것이
나 지금은 600년 내력에 걸맞지 않게 많이 왜소
하다. 건물이라고 해봐야 약사전을 비롯하여 삼
성각, 범종각, 요사(寮舍)등이 전부이며 고찰의
내음은 거의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아늑한 산사의 멋과 분위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규모도 조촐하여 두 눈에 넣
고 살피기에 별 부담이 없다. 서울시내와 가까움에도 산중 깊숙히 들어온 기분이 물씬 풍기며
속세를 잊고 한동안 묻혀 살고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절을 품고 있는 호암산에 올라
서면 서울 금천구(衿川區)를 비롯한 서울의 서남부와 광명시 땅이 거침없이 내려다보여 전망도
가히 명품급이다.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단아한 외모의 석약사불좌상과 500년 묵은 오래된 느
티나무 2그루가 있다.

 ※ 호압사 찾아가기 (2008년 12월 기준)
 <152, 5517, 5520번 시내버스를 타고 호압사입구(벽산아파트) 하차>
 * 2호선 신림역(3번 출구)에서 152번 버스 이용
 * 2호선 서울대입구역(3번 출구)에서 5517, 5520번 버스 이용
 * 1호선 노량진역(한강대교 방면으로 가면 정류장 있음)에서 152, 5517번 버스 이용
 * 1호선 금천구청(시흥)역에서 금천구마을버스 1번 청색버스 이용, 호압사입구 하차
 * 호압사입구 정류장에서 걸어서 8분 거리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234 (☎ 02-803-4779)


♠  호압사 약사전(藥師殿)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자리한 부처의 세계를 오르듯
계단을 오르면 가을 옷을 걸친 500년 먹은 느티나무
2그루가 중생들을 맞이한다.

절의 오랜 내력을 가늠케 해주는 산증인들로 가을도
호압사 약사불이 좋은지 이곳에 머물러 좀처럼 떠날
줄을 모른다. 그냥 머물기는 심심했을까? 저렇게 아
름다운 작품을 빚어놓아 약사불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한참 절정에 다다른 느티나무, 가을 햇빛에
한층 빛나 보인다.

약사전 정면에 자리한 느티나무(왼쪽 사진)는 키가
11m, 허리둘레 3.6m로 서울시보호수 18-5호이다.
요사쪽에 붙은 느티나무(사진 없음)는 키가 7m, 허리
둘레 4.2m로 서울시보호수 18-6호이다.

석약사불의 거처 ~ 호압사 약사전
▲  낙엽이 쓸쓸이 내려앉은 호압사의 법당, 약사전

경내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요사채가 있고 정면으로는 1935년에 새로 지은 약사전이 있다. 건물
앞에는 호암산 호랑이의 공격에 대비해서인지 조그만 사자상 2개를 배치했으나 왠지 어림도 없
을 것 같다.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얹힌 건물로 호압사의 오랜 보물인 석약사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호압사 석약사불좌상 - 서울시 지방문화재자료 8호

 호압사는 석가불 대신 약사불을 모신 약사도량(藥師道場)이다. 그래서 법당 불단(佛壇)에는 약
 사불 하나만 달랑 있으며, 법당 이름도 대웅전이 아닌 약사전을 칭했다.
 촛불 2개가 밝히고 있는 불단에는 온후한 인상의 약사불이 대좌(臺座)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있
 다. 아무리 심술쟁이 호암산 호랑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자한 표정 앞에선 꼬랑지를 살랑 내리며
 온순한 호랑이가 되지는 않을까?

조선초기에 만든 이 불상은 겉으로는 금동불(金
銅佛)로 보이지만 실은 돌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이다.

불두(佛頭)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
히 표현했으며 얼굴은 둥근 넓적한 모양으로 약
간의 양감이 표현되어 있다.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듯, 다리 위에 모은 그의
두 손에는 고달픈 중생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합(
藥盒)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불상 뒤로는 부처가 주인공인 후불탱화가 걸려있
으며 탱화 좌우로 헤아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금동불이 빼곡히 들어앉아있다.

▶  약사전 신중도(神衆圖)

약사불에게 인사를 드리고, 소망도 빌 겸 3배
의 예를 올렸다. 부디 약합에 담긴 약으로 이
불쌍한 중생 치료해 줍사 소망하며 약소하지만
나의 바램을 그에게 접수시킨다.

약사전 좌측 벽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정
신이 없어 보이는 신중도가 걸려있다. 이들은 
대부분 인도의 토속신들이라 하는데 불교가 인
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그들도 불교의 일원으
로 흡수되었다.


♠  호압사 삼성각(三聖閣)

약사전 좌측 높다란 곳에는 우리나라의 토속신(土俗神)으로 불교의 일원으로 흡수된 칠성신(七
星神)과 산신(山神), 독성(獨聖)을 모신 삼성각이 경내를 굽어본다.
호압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95년에 지어졌다.
허나 건물을 받치는 석축과 계단은 1999년에 완성되어 2000년에 비로소 건물 낙성식을 가졌다.

내부를 가득 메운 칠성도와 독성도, 산신도는 1978년에 그려진 것이며 우측 벽에는 호압사를 세
운 무학대사의 영정이 걸려있어 절의 창시자를 기리고 있다.

이렇게 하여 늦가을에 찾은 조그만 산사, 호압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  나반존자(那畔尊者, 독성)와 그가 몸을
 일으킨 천태산(天台山)을 묘사한
독성도(獨聖圖)

▲  치성광여래(칠성)가 그려진
칠성도(七星圖)

▲  산신과 호랑이, 동자(童子)가
그려진 산신도(山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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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08년 12월 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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