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호암산·삼성산 북부(서울 구역)

도봉산고양이 2009. 3. 5. 14:04

 


~~~ 볼거리가 풍부한 서울의 숨겨진 속살, 호랑이를 닮은
호암산(虎巖山) 둘러보기 ~~~


▲  호암산 한우물

▲  호암산에서 바라본 천하 (서울 서남부와 광명시)



서울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안양시 경계에 솟아난 호암산(385m)은 삼성산(三聖山, 480m)의 일원
으로 삼성산 서북쪽에 자리한다. 호암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습이 호랑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
이라 전한다. 
1394년 개경(開京, 개성)에서 서울로 도읍을 옮긴 조선 정부는 호랑이를 닮은 호암산과 활활 타오
르는 불 모양의 관악산(冠岳山, 629m)이 사이좋게 서울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잔뜩 기겁을 하게
된다.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신봉하던 옛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서울을 위협하는 그 이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서울을 지키기 위해 호암산에 호압사를, 관악산에 연주암(戀
主庵) 등의 절을 짓고 산 아래에 연못을 팠으며, 광화문(光化門)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2008년 2
월에 불에 타버린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을 세로로 세우는 등,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떤 것이다.

이처럼 호암산에는 산의 매서운 기운을 누르고자 세운 호압사를 비롯하여, 거대한 옛 우물인 한우
물, 비보풍수로 세워진 귀여운 자태의 석구상, 신라 때 축성된 호암산성, 흔적만 간신히 남은 제2
우물터와 호암산성 건물유적 등, 옛 흔적들이 아낌없이 깃들여져 있어 옛날 이곳의 중요성을 가늠
케 한다.  게다가 조망(眺望) 또한 천하일품이라 금천구를 비롯한 서울의 서남부 지역과 안양, 광
명, 부천, 인천 등 주변 도시들까지 거침없이 두 눈에 들어온다. 또한 호랑이를 닮은 뫼답게 멋드
러진 바위가 심심치 않게 포진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호암산은 호압사나 벽산5단지, 신림10동, 삼성산성지, 서울대, 석수역, 시흥3동에서 오를 수 있으
며, 장군봉과 깃대봉을 거쳐 삼성산으로 이어진다. 서울 지역에서 인기가 자자한 등산지로 휴일이
면 등산객들로 넘쳐나지만 삼성산의 일부로 조용히 누워있다보니 정작 호암산의 존재를 모르고 오
르는 이들이 많다. 삼성산으로 가는 길목 정도로만 인식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 서린 호압사
나 석구상, 한우물 등의 문화유적도 그 가치에 비해 인지도가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호암산을 좋
아하고 많이 발자욱을 남긴 사람으로서  그런 현실이 몹시나 안타까워 본글을 통해 서울의 숨겨진
속살, 호암산의 명소를 짧고 굵직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  서울을 위협하는 호암산의 기운을 누르고자 비보풍수로 세워진
오랜 사찰 - 호암산 호압사(虎壓寺)
석약사불의 거처 ~ 호압사 약사전
▲  낙엽이 쓸쓸이 내려앉은 호압사의 법당(法堂), 약사전(藥師殿)
1935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건물 앞에는 호암산 호랑이의 공격에 대비해서인지
조그만 사자상 2개를 배치했으나 왠지 어림도 없을 것 같다.


호암산 자락에 단정히 자리한 호압사는 호랑이를 짓누른다는 뜻으로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와는 그
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허나 호랑이를 닮은 호암산의 기운이 조선의 심장부인 서울에 크게
부담이 된다 하여 그 기운을 누르고 서울을 지키고자 그런 이름을 취했다고 한다.
이 절은 1394년 태조의 명으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창건하여 호압사라 했으며,
태종(太宗)은 호
압(虎壓)이란 현액(現額)을 하사했다. 1841년 승려 의민(義旻)이 상궁(尙宮) 남씨와 유씨의 시주
로 법당을 중창하고,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 6칸을 중건했으며, 1995년에 삼성각을 지어 지
금에 이른다.


▲  새로이 2층을 얹힌 호압사 요사(寮舍)


▲  호압사 일주문(一柱門)

     ◀  호압사 삼성각(三聖閣)과 9층석탑
1995년에 지어진 삼성각은 산신(山神)과 칠성(七
星), 독성(獨聖,나반존자)의 보금자리로 우측 벽
에 절의 창시자인 무학대사의 진영이 걸려 있다.
삼성각 좌측 아래로 2008년 후반에 조성된 하얀
맵시의 9층석탑이 뿌리를 내렸는데, 호압사 유일
의 탑임에도 법당 정면이 아닌 엉뚱하게도 좌측
구석에 배치되었다.

서울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로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전설은 어디
까지나 전설일 따름이다.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궁궐(경복궁)을 지을 때의 일이다. 전국에 잘나가는 장인들을 불러 궁궐을
짓는데 집이 완성되면 이상하게도 하루도 못버티고 계속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자
태조는 뚜껑이 열린 나머지 공사책임자를 불러 추궁했다. 책임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소인들이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면 호랑이를 닮은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저희를 위협하고 건
물을 죄다 부시고 사라지옵니다. 소인들이 막으려고 해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궁궐 공사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통촉해 주시옵소서~~!!'
그 말을 듣던 태조는 어이없어 하며
'너희들이 지금 나를 우롱하냐~~?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책임자는 더욱 오금을 저리며
'어찌 전하께 거짓을 아뢰나이까. 믿기 어려우시면 오늘 밤 몸소 확인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그래서 태조는 직접 확인할 겸 그날 밤 군사를 이끌고 공사현장에서 괴물을 기다렸다. 과연 어둠
이 짙어지자 반은 호랑이고, 반은 그 모양을 알 수 없는 괴물이 눈에 불을 강하게 뿜으며 현장에
나타났다. 괴물은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폼을 잡자 태조는 군사들에게 화살을 쏘게 했다. 허나 괴
물은 화살비에도 아랑곳 않고 기껏 만든 건물을 죄다 때려부시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괴물의 기세
에 간이 콩알만해진 태조는 침통함에 잠기며
'제길~! 한양은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구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갈까?'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
'한양은 정말 도읍지로 제격이다!!'

태조는 깜짝 놀라 소리가 들리는 밖으로 나가보니 아름다운 수염의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장은 뉘시오?'
'허허~ 그건 아실 것 없구요. 전하(殿下)의 근심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습니다'
태조가 정색을 하며 그 묘안을 묻자 노인은 저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태조는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킨 곳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호랑이 머리를 한 봉우리가 한양을 바라보고 있구나!!'

태조는 노인에게 산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물으니,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호랑이는 꼬랑지를 밟히면 꼼짝 못하니 산 꼬리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
알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  가을 옷을 걸친 500년 먹은
호압사 느티나무(서울시보호수 18-5호)

태조는 바로 무학대사를 호출하여 호랑이의 꼬
랑지 부분인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짓게 하고 호
랑이를 누른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호압사라 하
였다. 그후로는 호랑이도 맥을 못추었는지 궁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호압사는 비보풍수로 세워진 절로 국가
의 지원이 상당했을 것이나 지금은 오랜 내력에
걸맞지 않게 많이 왜소하다. 건물이라고 해봐야
약사전과 삼성각, 요사 등이 전부이며, 고찰의
내음은 거의 시들시들해졌다.
허나 아늑한 산사의 멋과 분위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규모도 조촐하여 두 눈에 넣어
살피기에 별 부담이 없다. 서울시내와 무척 가
까움에도 산중 깊숙히 들어온 기분을 물씬 풍기
며 속세를 잊고 잠시 머물고 싶은 충동을 진하
게 불러 일으킨다.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인 석약사불좌
상과 보호수인 500년 묵은 느티나무 2그루(서울
시보호수 18-5,-6호)
가 있다.


▲  단아한 자태의 호압사 석약사불좌상 - 서울시 지방문화재자료 8호

호압사는 석가여래 대신 약사불을 모신 약사도량(藥師道場)이다. 그래서 법당 불단(佛壇)에는 약
사불 하나만 달랑 있으며, 법당 이름도 대웅전이 아닌 약사전을 칭했다.
촛불 2개가 밝히고 있는 약사전 불단에는 온후한 인상의 약사불이 대좌(臺座)에 앉아 명상에 잠
겨 있다. 아무리 심술쟁이 호암산 호랑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자한 표정 앞에선 꼬랑지를 살랑 내
리며 온순한 호랑이가 되지는 않을까?

조선 초기에 조성된 이 불상은 돌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으로 불두(佛頭)에는 작은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히 표현했으며 얼굴은 둥근 넓적한 모습으로 약간의 양감이 표현되었다. 선정인(禪
定印)을 취한 듯, 다리 위에 모은 그의 두 손에는 고달픈 중생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합(藥盒)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불상 뒤에는 색채가 고운 후불탱화가 든든한 후광(後光)처럼 걸려있으며,
탱화 좌우로는 헤아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조그만 금동불이 빼곡히 자리를 채운다.

 ※ 호압사 찾아가기 (2009년 3월 기준)
* 152번(화계사◀동대문,서울역▶안양경인교대),
  5517번(서울대◀숭실대,시흥2동▶중앙대입구),
  5520번(봉천5동◀관악구청▶안양경인교대) 시
  내버스를 타고 호압사입구 하차
* 2호선 신림역(3번 출구)에서 152번 버스 이용
* 2호선 서울대입구역(3번 출구)에서 5517, 5520
  번 버스 이용
* 1호선 노량진역(한강대교 방면으로 가면 정류
  장 있음)에서 152, 5517번 버스 이용
* 1호선 금천구청(시흥)역에서 마을버스 1번 청
  색노선 이용, 호압사입구 하차
* 호압사입구 정류장에서 걸어서 8분 거리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234 (☎
  02-803-4779)
* 호압사 후기를 보고자 한다면 (☞여기를 클릭)
 

◀  석약사불좌상



♠  호암산에서 바라본 천하 (호압사→호암산 서남능선→한우물)

▲  야트막하게 고개를 든 호암산 남쪽 봉우리
바로 저곳에 한우물과 석구상, 호암산성이 숨어있다.

▲  호암산 능선에서 바라본 안양시내와 수리산(修理山)

▲  솔내음으로 가득한 호암산 능선길

▲  호암산 상공에 아득히 떠 있는 비행기
호암산은 경상도(김해, 울산, 포항, 진주)와 김포공항을 오가는 비거(飛車)들의 길목이다.



♠  해태일까? 개일까? 그 모습이 정말로 기이하면서 귀여운
호암산 석구상(石狗像, Stone Dog)

호압사에서 부드러운 느낌의 호암산 능선을 더듬으며 남쪽 봉우리로 가면 한우물을 200m 가량 앞
둔 지점에서 왼쪽으로 오르는 산길이 나온다. 그 길로 접어들면 바로 사방을 난간으로 두룬 돌로
쌓은 대(臺)가 나오고, 그 안에 호암산의 명물인 조그만 석구상이 북쪽을 바라보며 정말 귀엽게
도 앉아있다.

지금은 돌로 만든 개의 상, 석구상으로 통하지만 예전에는 광화문 해태상과 마주 보게 하여 관악
산의 화기(火氣)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해태상으로 여겼다. 허나 부근의 한우물을 발굴조사하면서
'석구지(石狗池)'라 새겨진 장대석(長臺石)이 출토되었고, 시흥읍지 형승조(始興邑誌 形勝條)에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 4두(四頭)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지금 현남7리(縣
南七里, 시흥동)에 사견우(四犬偶, 개의 형상 4개)가 있다'
란 기록이 있어 해태상이 아닌 호암산
의 기를 누르고자 세운 석구상으로 크게 무게가 쏠리고 있다.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으나 대략 조선 중기 이후로 여겨진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m, 폭이 0.9m, 높이가 1m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 부분
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해태의 모습은 아닌 거 같다. 해태치고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
렇다고 완벽한 개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앞 모습을 보면 강아지의 모
습같기도 하지만 양과도 좀 비슷해 보인다. 어떤 이는 개구리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참 보면 볼
수록 기이한 석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제 눈이 안경이라 사람마다 보이는 모습이 각각 다
를 것이다. 그의 뒷부분에는 길다란 꼬리가 말려져 있는데, 이는 개의 꼬리가 아닌 고양이나 호
랑이의 꼬리와 비슷하여 손으로 잡아보고 싶은 충동이 나를 괴롭힌다.


▲  석구상의 뒷부분 (꼬랑지가 말려져 있다)

석구상은 그 모습이 참으로 아담하고 깜찍한지라 등산객들의 눈길을 단단히 잡아끈다. 보는 이들
마다 귀엽다는 말이 연성 터져 나오고, 표정에서 웃음이 넘치며,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석구상의 높은 인기를 보여준다. 오
늘도 북쪽을 흠모하듯 바라보는 석구상은 늘 그 모습 그대로 호암산을 찾은 이의 귀여움을 누리
며 그 자리를 지킨다.
석구상을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H'라 쓰인 헬리콥터장이 있는데 그 너머로 거대한 연못, 한
우물이 누워 있다.



♠  산 정상부에 놓여진 거대한 옛 천정(天井)~
호암산 한우물 - 사적 343호

호암산의 또 다른 명물인 한우물은 큰 우물이란 뜻으로 산꼭대기에 저런 거대한 우물이 있었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2002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그 광경에 입이 벌어져서는 다물어
질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천하가 바라보이는 산 정상부에 자리해 있어 하늘의 우물인 천정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마땅한
수원(水源)이 없을 것 같은데, 항상 물이 풍부하게 모여 있으며, 가뭄 때도 물이 가득하여 그 신
비로움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연못처럼 넓은 한우물은 다른 말로 천정(天井), 석구지(石狗池, 한우물 발굴 때 '석구지'라 쓰인
장대석이 나왔음)
, 용복, 용초 등으로 불리며, 신라 후기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우물 자
리 아래로 신라 때 만들어진 연못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그 규모가 동서 약 17.8m, 남북이 약
13.6m, 깊이가 약 2.5m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한우물에서 동남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산능선에
도 한우물을 닮은 이른바 제2우물터가 발견되어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물을 발굴할 때 많은 유물이 앞을 다투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
'仍伐內力只來...' 문구가 새
겨진 청동숟가락이 나와 우물의 조성시기를 밝히는 귀중한 열쇠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
물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며 그 크기는 신라의 것보다 조금 더 컸다.

임진왜란 시절에는 선거이(宣居怡) 장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권율(權慄) 장군과 연합작전에 대비
하면서 이 우물을 군용으로 썼다고 하며, 세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虎岩
山 有固城 城內有一池 天早祈雨(☞ 호암산에 견고한 성이 있는데 성안에 연못이 하나있어 일찍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
란 기록이 있어 기우제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보풍수로 호암
산의 기를 누르고 서울의 화재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방화용설(防火庸設)도 설득을 얻고 있다.

한우물 주위로 난간이 2중으로 둘러져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 처음에는 서울지방유형문화
재 10호
였으나 1991년 호암산성과 제2우물터, 여러 건물유적을 모두 포함하여 사적 343호로 특진
되었다. 우물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천하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라 금천구를 비롯한 서
울의 서남부와 경기도 광명시, 부천시 등이 거침없이 바라보여 두 눈이 너무 호강을 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

    ◀  불영암 대웅전(佛影庵 大雄殿)
한우물 옆으로 불영암이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손바닥 만한 암자가 있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
사 등으로 쓰이는 당우(堂宇)가 전부이다. 하
지만 한우물의 이웃으로 우물을 지켜주고 있으
며 조망이 좋아 서울 시내를 넓은 앞뜰로 가슴
에 품은 절, 거침없이 펼쳐진 전망으로 마음까
지 시원해지는 곳이다.

 ※ 한우물, 석구상, 호암산성 찾아가기 <152번, 5520번 버스를 타고 벽산5단지 하차>
 * 2호선 신림역(3번 출구)에서 152번(화계사◀돈암동,신용산역▶안양경인교대) 버스 이용
 * 2호선 서울대입구역(3번 출구)에서 5520번(봉천5동◀서울대▶안양경인교대) 버스 이용
 * 벽산5단지 정류장(안양 방향)에서 지하도를 통해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등산로가 있다. 칼바위
   까지는 7분, 한우물까지 15분, 석구상과 호암산성은 17분 정도 걸린다.
 * 호압사에서 호암산 능선을 따라 25분 정도 (길이 다소 복잡하고, 이정표가 미비하므로 초행은
   반드시 길을 물어서 가는 것이 건강에 좋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산 83-1외

▲  한우물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1)
(금천구, 구로구, 관악구, 양천구, 강서구 지역)

▲  한우물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2)
(시흥2동 벽산아파트와 금천구, 광명시, 구로구 지역)



♠  호암산성(虎巖山城)과 부근 유적들 - 사적 343호

▲  장대한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혀져 간 호암산성

석구상에서 능선길로 가다 보면 낙엽에 파묻힌 채 현역에서 물러난 호암산성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산성이라고 해봐야 1m남짓 높이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성벽이 전부이다. 그것도 돌이 모여
있는 돌무더기처럼 남아있어 호암산성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그냥 산길로 여기고 지나가기 일
쑤다.

호암산성은 호암산 남쪽 자락에 만든 퇴뫼식 성으로 자연 지형을 이용했다. 성의 길이는 1.250m
정도로 추정되며 지금은 300m 정도만 간신히 살아 숨쉰다. 성곽은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길쭉
한 마름모꼴로 성을 쌓은 목적과 시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1990년 한우
물과 산성 일대를 발굴하면서 우물 2곳과 건물터 4곳이 드러났고, 수천 점에 달하는 유물이 쏟
아져 나왔는데, 이들 유물과 몇몇 기록에 나온 자료를 통해 대략 신라 후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
인다. 금천구청 자료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 시절에 당나라의 공격을 막고자 세운 요새
라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한우물과 관련된 기록들을 볼 때 성곽이 그런데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군사
들이 수시로 주둔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조선 중기 이후 중요성이 크게 상실되면서 산성의
운명은 지금의 상태가 잘 말해준다. 관리도 되지 않으니 자연의 무정한 장난과 수백 년 세월의
무게, 산을 오른 무수한 속인들의 발길이 산성을 짓누르면서 담벼락만도 못한 상태가 되버린 것
이다. 아무리 인간들이 멋드러지고 견고하게 만든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자연 앞에선 일개 장난
감에 불과하다.

▲  호암산성 건물유적

석구상에서 능선길(석수역 방향)로 3분 정도 가면
드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오른쪽에 제2우물터가,
왼쪽으로는 수풀에 파묻힌 건물터가 있다.

건물터에는 건물을 받쳤을 주춧돌이 떠받들 대상
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흩어져 옛날을 그리워하
며 나무에게 버림받은 낙엽들이 그 터를 따뜻하게
덮어주어 동병상련의 이웃이 되어준다. 이곳은 호
암산성을 관리하던 관청이나 군사들의 숙소로 여
겨진다.


▲  아련하게 모습을 드러낸 호암산 제2우물터

건물터 맞은편에는 또 다른 한우물인 제2우물터가 있다. 호암산성이 버려진 이후, 땅 속에 파묻
혀 오래도록 잠들어 있다가 1990년 발굴조사로 다시금 햇살을 맛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우물은 길이가 남북이 18.5m, 동서가 10m, 깊이가 2m에 이르며 산꼭대기에
하나도 아닌 2개의 큰 우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제천의식(祭天儀式)이나 신
앙의식이 거행된 곳마냥 신비롭게 다가와 범인(凡人)인 내가 차마 가까이 다가서기가 두려울 정
도이다.
발굴 이후, 한우물처럼 말끔하게 재현되지 못하고 잡초가 무성토록 방치되고 있으며 우물터 곳
곳으로 석축과 우물을 구성하던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조만간 복원한다고 하는데, 그게 언
제가 될지는 귀신도 알 수 없다.



♠  호암산을 내려가며 (호암산 남쪽능선, 칼바위)

▲  호암산성에서 바라본 매끄러운 곡선의 삼성산

▲  이채로운 구름조각의 호암산 나들이 ~ 하늘나라 신선님들이 날려
보낸 부메랑은 아닐까?

▲  호암산 남쪽 능선(경인교대 뒤쪽)에서 굽어본 서울 서남부

▲  예리한 칼날과 같은 칼바위 (아래로 벽산5단지)
한양 도성을 위협하던 호암산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은 아닐까?


한우물에서 불영암을 끼고 아래(벽산5단지)로 내려가면 칼바위 조망대가 나온다. 그 아래로 만지
면 살짝 피가 나올 것 같이 예리한 칼바위가 아래를 덮칠듯한 기세로 자리해 있다. 이 바위는 위
에서 이렇게 보는 것보다는 아래에서 봐야 그 자태를 제대로 볼 수가 있는데 가파른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둥지를 튼 모습이 정말 조마조마하다. 이곳은 임진왜란 시절 조선군과 왜군이 누가
오래 바위에 매달리나 시합을 벌였다는 황당한 거짓말이 전설로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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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09년 3월 5일부터 / 최종 수정 - 2009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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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 관할구역이었는데요. 너무 자세하고 상세하게 성의가 돋보입니다.
성벽 밑에 내려가면 성을 쌓은 흔적이 있는데 그게 하나 누락되었군요.
불영암 에서 칼바위로 내려가는 입구에 쇠말뚝이 있었는데 지금은 뽑혔는지 모르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