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진·답사기/서귀포시 동부

도봉산고양이 2019. 6. 16. 06:13



* 제주도의 시조인 삼신인의 혼인 설화가 깃든 혼인지
혼인지는 제주도의 시조로 추앙받는 3신인(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이 혼인을 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3신인은 약 4,300년
전, 모흥혈(삼성혈)에서 솟아나왔는데, 처음에는 수렵과 어로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가 주변을 살피다가 동쪽 바다에서 오색찬란한 나무 목함이 떠내려와 해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발
견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가 배를 여니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정도의 아리따운 공주 3명과 소와 말, 오
곡의 종자가 있었다. 공주를 데리고 온 사자가 3신인에게
'나는 동해 벽랑국에서 왔습니다. 우리 군주께서 공주 3명을 두었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서
해 높은 산(한라산)에 3명의 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배필이 없다는 것을 듣고 신에게 명해 세 공주를 모
셔왔으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십시오~~!' 말을 끝내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세 공주를 아내로 정하고, 혼인지에서 혼례를 치루고 첫날 밤을 지냈다. 공주가 가져온 소(송아지
)와 말(망아지)을 기르고 오곡 씨앗을 뿌리며 태평한 삶을 누리니 이때부터 제주도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세 공주가 타고 온 배가 발견된 곳은 '쾌성개'라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 부른다.


흔히 3신인은 제주시 삼성혈 구멍에서 솟아났다고 하나 1세기 경에 있었던 한라산 대폭발 때 살아남은 몇 안되
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살아남은 사람을 통솔해 제주도를 다스렸고, 교역을 하던 바다 바깥의 다른 나라
나 세력의 우두머리가 딸을 시집보낸 것으로 파악된다. 그들이 혼인지 근처에 상륙을 했고, 그들을 맞이해 혼인
지에서 성대하게 혼인을 치룬 것이다. (또는 땅을 잃고 제주도로 망명한 세력을 제주도 세력이 맞이하면서 통합
차원에서 혼인을 치뤘을 가능성도 있음)


혼인지는 500평 정도의 자연산 연못으로 3신인이 혼인을 치룬 설화 때문에 지역 사람들이 여기서 많이 혼인을 하거나 혼
인 뒷풀이로 많이 찾았다. 지금도 전통혼례관을 두어 적지 않게 혼인이 치루어지고 있다. 비록 외지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
아 찾는 이는 많지 않으나 제주도에 신혼여행으로 갔을 경우 꼭 들려볼만하다. 혼인지 주변에는 삼신인이 첫날 밤을 보냈
다는 신방굴과 세공주 추원각, 생태연못이 있으며, 탐방로가 잘 닦여져 있다. 또제주올레길 2코스(광치기~온평, 15.2
km)가 이곳을 지나간다.



1. 혼인지 표석

혼인지의 지는 연못을 뜻하는 '池'인데, 이 표석은 그 지가 아닌 이런 '址'를 쓰고 있다. 혼인을 했던 터를 뜻하고자 저렇게

쓴 모양이다.


2. 혼인지 안내도

혼인지 주변은 산뜻하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3. 혼인지 앞에 세워진 혼인지 표석


4. 평화로운 풍경의 혼인지
대자연이 빚은 자연산 못으로 3신인이 여기서 혼인을 치룬 인연으로 제주도의 대표 성역으로 애지중지되고 있다. 연못 주변
에는 제주도에서 매우 흔한 현무암으로 낮게 경계석을 둘렀다.


5. 점필재 김종직이 제주도 3신인을 위해 남긴 시 (탁라가 14수 중 2번째 시)
먼 옛날 신인이 세 곳에 도읍하셔
해 돋는 물가에서 배필을 맞으셨다네

그 시절 삼성이 혼인했던 일은 전해내려오는

주진의 전설과 같네


6. 잘 닦여진 혼인지 탐방로 (제주올레길2코스)


7. 삼공주추원비
어딘지 모를 벽랑국이란 곳에서 건너와 3신인의 배필이 되어 제주도 발전에 크게 공헌을 했던 3공주를 추모하고자 후손들이

세웠다. (후손들은 제주고씨, 제주양씨, 제주부씨)


8. 제주도 삼신인의 혼인 설화를 조용히 품고 있는 혼인지

연못 주변으로 누렇게 뜬 갈대와 수초들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연못의 풍경을 크게 거둔다.








9. 혼인지 소나무숲길 (신방굴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