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송파구·강동구

도봉산고양이 2019. 10. 22. 23:03



1. 석촌동고분군 제3호분
서울, 수도권의 대표적인 백제고분 유적인 석촌동고분군에서 가장 큰 무덤이 3호분이다. 높이 4.5m, 동서 길이
49.6m, 남북 길이 43.7m, 둘레 190m 규모의 적석총(계단식돌무지무덤)으로 수도권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 중 가
큰 편에 속한다. 고구려 최대의 돌무덤인 장군총보다 둘레와 폭이 조금 큰 편이나 대신 키가 매우 작다. 키
까지 받쳐줬다면 그 위엄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3세기 중반~4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무덤의 위엄으로 보아 백제 고이왕이나 근초고왕의 능으로 보는 이
도 있다. 석촌동에는 80여 기의 백제 고분이 전하고 있었으나 겨우 8기(4기는 터만 남음)만 있으며, 발굴조사
한 20여 기는 땅 속에 묻어버렸다.
한성백제 최대 무덤인 3호분 너머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제2롯데월드가 바라보인다. 사우론의탑처럼 생긴

저 건물을 볼 때마다 꼭 저런 건물을 지어야했는지 긍정보다는 회의감이 더 든다.




2. 석촌동 제4호분

3호분 남쪽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적석총이 있다. 길이가 17m 정도인 정사각형 돌무덤으로 겉모습은 완전한 적

석총(돌무지무덤)이나 내부는 흙으로 채워져 있어 고구려 적석총 양식과는 조금 다른 한성백제 스타일의 돌무

지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1974년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무덤 윗쪽 3단에 동서 4.6m, 남북 4.8m의 정사각형 돌방과 너비 2m 정도의 널길의
윤곽만 상징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추정했다. 허나 1984년 복원을 위해 다시 벌인 조사에서 원래 진흙을 다져서
쌓은 흙무지무덤이던 것을 겉모습만 돌무지무덤으로 바꾼 것임이 확인되었다.

시신을 묻은 흔적은 흙을 다져 쌓은 지점 3군데에서 각각 확인되었으며, 특별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돌무

속에서 벽돌, 토기, 기와 조각 등이 나왔다. 돌을 쌓은 방식으로 보아 석실(돌방무덤)을 만들려고 한 것으

로 4~5세기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3호분이 근초고왕의 능이 확실하다면 이 무덤은 그의 왕비능일 가능성이 크

다.



3. 남쪽에서 바라본 제3호분
이곳은 잠실 지척이라 고분공원 어디서든 저 이상한 키다리가 바라보인다.





4. 서쪽에서 바라본 제4호분



5. 석촌동 제2호분
2호분은 4호분과 비슷하게 생긴 적석총(돌무지무덤)이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무덤이 헝클어져 돌로 덮힌 봉우리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주변에 민가와 집 돌담이 있던 것을 1985년 복원했다.
4호분처럼 겉모습은 돌무지무덤이고 내부는 흙으로 채웠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발굴 조사 때
돌무지는 기단부의 1m 정도, 내부 흙무지는 높이 3.8m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하여 이를 토대로 3단의 계단식 적석총으로 복

원하였다. 서북쪽 모서리 지점에서 나무널 1기가 발견되었는데, 움을 파지 않고 널을 놓은 뒤 작은 봉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흙무지 널무덤을 먼저 닦고 나중에 확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널무덤과 서남쪽 봉분 안에서 3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굽다리접시와 곧은입항아리가 발견되어 3~4세기에 조성된 것

으로 보인다.




6.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석촌동 제4호분


7. 제2호 움무덤(토광묘)

이 무덤은 원래 북쪽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가져와 재현했다.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안에 널을

어 묻은 무덤으로 석촌동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집단 움무덤과 대형 움무덤이 여럿
발견되었다.

동남동-서북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무덤 내 동쪽 바닥에서 회백색의 짧은 목 단지 1개
놓여있었으며, 움 안에서는 지름 1.6cm 크기의 민고리 금귀고리 1개가 나와 백제 귀족의 무덤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