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송파구·강동구

도봉산고양이 2019. 10. 24. 00:10



1. 늦가을에 잠긴 석촌동고분군 산책로 (석촌동 제4호분과 2호분 옆)
늦가을에 알록달록 젖은 나무들 너머로 제2롯데월드와 푸른 가을하늘이 바라보인다. 하늘은 참 맑고 청명하여 자꾸 두 눈
이 가며, 옛 백제의 무덤들도 눈과 마음, 그리고 지식과 정신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주는데, 제2롯데월드는 왜 보면 볼수록
비호감일까? 서울공항 전투기들의 동선을 개무시하고 잠실 지역의 좋지 않은 지반까지 무시하면서 저런 빌딩을 허가해준
위정자들 저런 걸 지어올려야 했던 졸부들의 주름진 뇌 속이 궁금하다.


2. 2호분 동쪽 발굴현장에 내걸린 안내문들 (2018년 11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2015년에 2호분과 3호분 주변을 다시 조사를 벌였더니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백제 돌무지무
덤(적석총)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기단 석축은 동~서,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고 점토를 쌓아 올린 부분도 여럿 확인되었다. 처음 닦여진 적석총에
잇대어 다른 무덤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그 무덤의 정체와 보다 명확한 구조를 밝혀내고자 굳은 집념으로 3~4년이 넘게
사를 벌이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 숨겨진 백제의 이야기 꾸러미가 100%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만큼 백제는 숨겨진 부분이 너무 많다.




3. 백제식 적석총 양식의 석촌동 제4호분(바로 앞 무덤)과 제2호분
석촌동 고분의 대표 무덤인 제3호분은 고구려 적석총(돌무지무덤) 양식이나 2호분과 4호분은 다소 변형이 가해진 백제 스
타일의 적석총으로 일컬어진다. 완전 돌로 이루어진 3호분과 달리 겉모습과 석실은 돌로 다지고 안쪽과 무덤 윗부분은 흙
으로 닦여졌다.



4. 석촌동 제2호분

2호분은 4호분과 비슷하게 생긴 적석총(돌무지무덤)이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무덤이 헝클어져 돌로 덮힌 봉우리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주변에 민가와 집 돌담이 있던 것을 1985년에 복원했다.
4호분처럼 겉모습은 돌무지무덤이고 내부는 흙으로 채웠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발굴 조사 때
돌무지는 기단부의 1m 정도, 내부 흙무지는 높이 3.8m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하여 이를 토대로 3단의 계단식 적석총으로 복

원하였다. 서북쪽 모서리 지점에서 나무널 1기가 발견되었는데, 움을 파지 않고 널을 놓은 뒤 작은 봉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흙무지 널무덤을 먼저 닦고 나중에 확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널무덤과 서남쪽 봉분 안에서 3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굽다리접시와 곧은입항아리가 발견되어 3~4세기에 조성된 것

으로 여겨진다.


5.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석촌동 회화나무

2호분 서쪽에는 오래된 회화나무 1그루가 철을 지팡이로 삼아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는 높이가 12m, 둘레 2.3m,
추정 나이는 약 240년 정도로 2호분 주변에 다시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잠시 금지된 구역에 묶이게 되었다. 아직

11월의 한복판(이때가 작년 11월이었음)으로 다른 나무들은 아직 나뭇잎들이 무성한데 이 나무는 벌써부터 노화

가 되었는지 잎사귀는 커녕 가지 조차 부실하여 머리숯 일부만 남은 대머리처럼 되어버렸다. 2010년에도 저런 상

태였는데 이러다가 골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6. 제2호분 서쪽 산책로


7. 제3호 움무덤(토광묘)
이 무덤은 길이 208cm, 너비 58cm, 깊이 26cm 규모로 네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네모난 모습이다. 장축은 동북-서남 방향

이며, 제2호 움무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시설은 없다. 북서쪽 모서리에서 회청색 짧은목단지 1개가 놓여 있었으며, 원래

움무덤은 방수보호시설로 덮고 그 위 50cm 지점에 그럴싸하게 재현했다.



8. 2호분 주변 발굴현장 (제3호 움무덤에서 바라본 모습)


9. 제3호 움무덤과 제2호분 주변 발굴현장



10. 밑도리만 남은 석촌동 제1호분
제1호분은 동네 사람들이 집을 만들고자 무덤을 무너뜨리고 무덤에 쓰인 돌로 집을 지으면서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래서
3호분, 4호분, 2호분과 달리 정확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발굴조사를 통해 남쪽 무덤 내부 맨 아래 기단부가 확인되었
데, 무덤 2개가 남북으로 이어진 쌍분으로 밝혀졌다. 북쪽 무덤은 3세기 중반, 남쪽 무덤은 3세기 말~4세기 초에 조성된 것

으로 여겨진다.

남쪽 무덤과 북쪽 무덤의 기단부는 서로 비슷한 크기이며, 두 무덤 사이 공간을 진흙으로 메우고 서쪽으로 길게 돌을 덧쌓아
무덤을 연결했다. 길이 20~30cm 크기의 깬 돌로 네 벽을 쌓았으며, 바닥에는 10cm 안팎의 돌조각과 자갈 등을 깐 돌덧
4개가 있었다.  가장 큰 돌넛덜을 한가운데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놓고, 작은 돌넛덜 3개를 북쪽 벽에 잇대어 동서 방향으
나란히 놓았다. 무덤 내부와 주변에서는 백제 토기와 기와, 금귀걸이 등이 나왔으며, 무덤의 원래 모습을 알 수가 없어서

밑도리만 우선 수습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