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진·답사기/제주시 서부

도봉산고양이 2020. 1. 17. 15:37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절부암 주변, 제주올레길12코스)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서 바라본 와도(왼쪽)와
차귀도(오른쪽)

절부암 용수리 제주올레길12코스

▲  절부암

▲  용수리 제주올레길12코스



묵은 해가 아쉬움 속에 저물고 새해가 막 기지개를 켜던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를 찾았다.

달님이 하늘 높이 걸린 새벽 3시,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심야시내버스(N버스)를 줄
줄이 이어타 김포공항으로 이동했다. 비수기 평일임에도 제주도(濟州島)와 따뜻한 남쪽
을 꿈꾸는 사람들로 김포공항 국내선청사는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마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나를 제주도로 옮
겨줄 6시대 비행기에 몸을 담는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만석의 기쁨을 누리며 활주로
를 10여 분 정도 방황하다가 창공 속으로 높이 날개짓을 펼친다.
이륙 시간을 기준으로 제주공항 착륙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고 활주로 이동 시간을 포
함해 1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이 소요시간은 내가 처음 제주도에 갔던 1988년과 별로 차
이가 없다.
제주공항 서쪽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하니 공항청사로 인도할 셔틀버스가 넉넉히 대기하
고 있었다. 하여 그 버스에 탑승하여 3분 정도를 달려 제주공항청사로 들어선다.

제주도에 나를 떨어트리긴 했지만 이미 정처(定處)는 싹 정해둔 상태이다. 남들은 거의
렌트카를 이용해 이동을 하지만 나는 극서민이라 마음 편하게 대중교통을 택했다. 제주
도는 육지보다 시내버스 차비가 저렴하고 무엇보다 무료환승이 아주 휼륭하여 섬 1바퀴
(180km)를 기본 요금(1,250원, 카드는 1,150원)에 도는 것도 가능하다. (제주도 간선노
선인 201번과 202번을 이용하면 됨)

제주국제공항을 나와서 제주시내 서부와 애월읍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제주도 간선노
선 202번(제주터미널~고산리~서귀포등기소)을 타고 용수리 충혼묘지에서 내렸다. 202번
은 외도 월대(月臺)부터 다음날 가는 천제연폭포까지 쭉 신세를 진 노선으로 제주도 급
행버스 102번과 함께 서일주(일주서로) 구간을 책임지고 있다. (동일주는 급행 101번과
간선 201번이 맡고 있음)

정류장 바로 남쪽에 용수교차로가 있는데, 여기서 용수리포구로 인도하는 용수1길로 접
어들어 15분 정도 걸으니 이곳에 상륙했던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기리는
'성(聖)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이 잠깐 들리라며 손짓을 한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곳이라 통과하려고 했으나 그냥 지나치기가 조금 아쉬워 여로(旅路
)를 좀 살찌울 겸, 기념관의 손짓에 응했다. 하여 그곳을 둘러보고 커피까지 기분 좋게
얻어 마시며 바로 서쪽에 자리한 용수리 포구로 이동했다.
표착기념관은 옥상을 개방하고 있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차귀도와 와도, 용수리 지역 조
망이 제법 괜찮으니 꼭 누려보기 바란다.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 대한 내용은
생략함)

용수리 포구에는 나를 이곳으로 부른 절부암이 있는데, 바로 그곳을 시작으로 수월봉까
지 제주올레길12코스(용수리↔무릉리, 17.5km)를 거닐었다. 앞서 둘러본 명소들은 코스
요리에서 앞에 먹는 맛보기 음식이고 이번에 다룰 제주올레길 12코스는 그날의 중심 메
뉴라 할 수 있다. 
이 코스는 남해바다와 산, 해안 절벽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 올레길로 용수리 방
사탑과 생이기정, 당산봉, 고산리 유적, 엉알해안 등의 상큼한 명소가 있으며, 바다 너
머로 차귀도와 와도가 다양한 각도로 포즈를 취해 눈과 마음이 지루할 틈이 없다.
나의 정처없는 마음을 수없이 앗아가고 놓아준 올레길 12코스, 우리집과 가까웠다면 즐
겨찾기 명소로 삼아 두고두고 누리고 싶지만 서로의 제자리가 너무나 머니 실로 아쉽다.
(내가 조물주라면 우리 동네로 그대로 옮겨오고 싶음)


▲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옥상에서 바라본 용수리 지역
저 멀리 구름에 감싸인 곳이 제주도의 심장이자 성지인 한라산(漢拏山)이다.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  용수리 포구에서 바라본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
김대건이 청나라 상해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다가 풍랑을 만나 용수리에
표착했다. (차귀도에 먼저 표착했다고 함) 그때 타고 온 배는 복원되어
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바닷가 언덕, 절부암(節婦岩)
- 제주도 지방기념물 9호

▲  서쪽에서 바라본 절부암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린 용수리 포구에 이르면 유난히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시선을 붙잡는다.
온갖 나무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뒤섞여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그 언덕은 용수리의 오랜
상징이자 나를 이 머나먼 남국(南國)으로 오게 한 절부암이다.
서쪽을 바라보고 선 절부암은 이름 그대로 절개를 지킨 부인을 기리는 바위로 다음과 같은 슬
픈 이야기가 속삭이듯 서려있다.

때는 1863년 경, 용수리에는 강사철(姜士喆)과 16살(또는 19세) 먹은 고씨 여인이 살고 있었
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여 혼인까지 했으나 살림이 영 좋지 못해 차귀도에서 대나무를 베어와
바구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혼인 며칠 후, 강씨는 바구니를 만들 재료를 취하고자 마을 사람들과 테위(테배)를 타고 차귀
도로 건너갔다. 허나 정오가 지나면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몰아치자 서둘러 마을로 돌아오다
가 강풍의 희롱에 제대로 흥분한 바다 파도로 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만다. (다른 이야기로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강풍으로 침몰해 죽었다고 함)
졸지에 남편을 잃은 고씨는 크게 통곡하며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시신을 찾을 수 있기를 절절
히 빌었다. 그렇게 3달을 빌었으나 남편의 시신은 소식이 없었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결
국 해안 절벽에 있는 팽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때까지 행
방이 묘연하던 남편의 시신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씨가 목을 맨 자리 밑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해괴한 일에 지역 사람들은 중원대륙 조아(曹娥)의 일과 같다며 감탄을 했다. 여기서 조아는 조간의 딸로 그가 강을 건너다 급류에 빠져 죽자 조아는 70일 동안 아버지를 찾아 헤매다가 너무 비통하여 강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5일 뒤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고씨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대정(모슬포) 사람 신재우(愼哉佑)는 크게 감동을 먹고 자신이 과
거에 붙으면 고씨의 열녀비(烈女碑)를 세워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여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올라
가 과거에 응시했으나 정성 부족인지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만다.

풀이 죽은 신씨는 고향으로 가다가 답답한 마음에 점집에 들렸다. 점쟁이는 한 여인이 따라다
니고 있으니 그를 잘 모시면 급제를 할 것이라 답을 했다. 허나 그 여인이 누군지 전혀 알 수
가 없었고 집에 와서도 계속 머리를 굴렸으나 딱히 떠오르는 여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고씨 부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하여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 여인이 고씨라 여겨져 고씨의 묘를 참배했다. 그리고 다시 상경
하여 과거에 응시해 드디어 급제를 하였다.
그는 대정판관(大靜判官)의 직을 제수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조정에 상소하여 고씨의 열녀비를
세우는 한편, 70냥을 지원해 고씨 부부의 묘를 당산봉(고산봉) 서쪽 비탈에 합장해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냈다. 또한 고산과 용수 마을에 100냥을 내주어 제사를 꼭 챙기도록 했으며,
고씨가 목을 맨 절벽을 절부암이라 이름 지었다.

왜정(倭政) 때는 왜정의 태클과 재정 문제로 제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마을 부인회가
돈을 모아 300평 정도의 절부암전을 마련하여 그 소출로 매년 꾸준히 제를 지낸다.


▲  북서쪽에서 바라본 절부암

절부암 언덕에는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포나무, 느릅나무, 박달목서(환경부 지정 멸
종위기 야생생물 2급) 등이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우거져 있다. 예전에는 절부암 바로 앞
까지 바닷물이 넝실거렸으나 개발의 칼질이 여기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강제
로 받게 되었다.
절부암 앞에 돌로 다져진 산책로가 닦여 바닷물은 서쪽으로 조금 밀려났으며, 그 앞바다에 도
로가 생기고 항구가 생겼다. 게다가 절부암 뒤쪽에도 집들이 마구 들어서 마치 도시 속에 갇
힌 외로운 공간처럼 되었다. 이곳이 대도시 한복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엄연한 시골 포
구이다. 개발의 칼질에 절부암의 공간이 다소 쪼그라든 느낌을 주며, 절부암 바로 뒷쪽에 옥
의 티를 선사하면서까지 건축 허가를 내줬어야 했는지 제주도 철밥통들에게 실로 회의감이 든
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계속 망가지고 고통받고 있는 제주도의 현실임)


▲  절부암 앞 산책로 (북쪽 방향)

▲  절부암 앞 산책로 (남쪽 방향)

산책로가 닦여진 이곳에는 층층이 주름진 바위들이 있었고 그곳까지 바닷물이 손을 내밀어 절
부암과 진한 정을 나누었다. 산책로 조성으로 절부암 접근이 좀 쉬워지긴 했으나 1980년대 절
부암 사진과 비교해보니 개발이 씌운 굴레에 단단히 갇혀있는 듯한 모습이다.


▲  절부암 제단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을 갖춘 이곳에서 절부암 제사가 이루어진다.
평소에는 먼지가 놀이터로 삼을 정도로 한가하지만 3월 15일만 되면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낸다.

▲  세월을 너무 간지나게 탄 절부암 바위들

▲  절부암 바위글씨의 위엄
감동 김응하(監董 金應河)가 글을 짓고 동수 이팔근(洞首 李八根)이 글씨를 썼다.
제주도에서 유일하다는 전서체 바위글씨로 독특한 글씨라 절부암이면서도
아닌듯한 아리송한 모습이다.

▲  신재우가 남긴 바위글씨

절부암 바위글씨 주변에는 '同治丁卯紀平三字(동치정묘기평삼자, 여기서 '동치정묘'는 1867년
)','判官愼裁佑撰(판관 신재우찬)' 바위글씨가 있다. 이들은 절부암을 있게 한 신재우의 흔적
들로 그 주변 바위에는 절부암 제사를 주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어 절부암의
과거와 현재가 깃든 소중한 일기장 같은 곳이다.

* 절부암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41-5


▲  바다를 향해 작게 입을 벌린 용수리 포구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섬은 와도와 차귀도이다. 저들은 용수리에서
수월봉까지 다양한 각도로 아주 지겹도록 구경을 했다.

▲  차귀도(遮歸島)

손에 닿을듯 가까이 떠있는 차귀도는 0.16㎢의 조그만 섬으로 제주도의 서쪽 끝을 잡고 있다.
지실이섬, 죽도, 와도 등의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으며, 1970년대까지 약간의 사람들이 거주
하고 있었으나 박정희 정권 시절에 여러 번 터졌던 북한의 도발 행위(1968년 김신조 공비 패
거리 서울 침투, 1974년 공비단 추자도 침투 등)로 외딴 섬들의 안보 취약이 문제가 되자 섬
사람들을 제주도 본토로 이주시켜 무인도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금지된 섬이 되어 완전 자연의 공간으로 남아있다가 2011년 이후 개방되어 섬
나들이가 가능해졌다.
차귀도는 고산리 차귀도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며,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참돔과 돌
돔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잡힌다. (1~3월, 6~12월에 많이 잡힘~) 이번에는 그림의 떡처럼 차
귀도를 대했지만 다음에는 저곳에 꼭 발을 들이고 싶다.

차귀도 일대는 '차귀도 천연보호구역'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422호로 지정되었다.


▲  와도(臥島, 누운섬)

와도는 차귀도에 딸린 작은 바위 섬으로 용수리에서 보면 마치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
인다. 얼굴과 가슴(조금 뾰죡하게 나온 부분은 젖꼭지), 다리 부분이 제법 현실감있는 모습으
로 대자연 형님의 위대한 작품성을 느끼게 한다. 허나 용수리에서 볼 때나 그렇게 보이지 당
산봉과 고산리, 수월봉에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의 와도 때문인지 그곳과 가까운 고산리에는 예로부터 과부들이 많았다
고 한다.


▲  바다에 나란히 떠서 물놀이를 즐기는 와도와 차귀도(오른쪽)

▲  용수마을 방사탑(防邪塔) 2호 - 제주도 민속문화재 8-9호

제주도에는 방사탑이라 불리는 동그란 돌탑들이 많이 전하고 있다. 이 땅에 흔한 서낭당이나
돌탑 스타일의 탑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 비보풍수(裨補風水)에 따라 허한 곳을 채워주는 용
도로 지어졌는데, 답, 답데, 거욱, 거왁, 답단이, 거욱대 등의 별칭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쓰이는 명칭은 '방사탑') 탑 위에는 돌하르방 모양의 돌이나 사람 얼굴 모양으로 다듬은 돌,
새 모양의 돌을 추가로 올려놓는다.

용수리포구에는 남쪽과 북쪽에 총 2개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차귀도 주변은 바다가 툭하면
심술을 부려 배가 자주 좌초되었고 그때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이 마을로 밀려왔다. 하여 마을
주민들은 그런 재앙을 막고자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화성물 가까이에 있어서 화성물답, 화성물탑이라 불리기도 하며, 탑의 꼭대기에 새의 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길쭉한 돌이 바다와 차귀도가 있는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새 부리 비슷하
게 생긴 돌이 놓여 있어서 '매주제기'라 불리기도 한다.
새는 예로부터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고 인간의 소리를 하늘로 전해주는 존재로 여겨져 용수리
앞바다에 사고가 없게끔 하늘에 민원을 넣는 용도로 단 것으로 보인다.

* 용수마을 방사탑2호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88-6번지

▲  가까이서 본 용수마을 방사탑 2호

▲  방사탑 주변 바닷가


♠  제주올레길12코스 거닐기

▲  제주올레길12코스 (용수리 방사탑2호~생이기정 구간)

제주올레길 12코스는 용수리 절부암에서 무릉리까지 이어지는 17.5km의 올레길이다. 이 올레
길은 용수리에서 제주올레길 13코스(용수~저지, 15.9km)로 간판이 바뀌며 무릉리에서 제주올
레길 11코스(무릉~모슬포, 17.3km)로 이름이 바뀌어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간다.
나는 12코스 구간 중 가장 꿀단지라 할 수 있는 용수리~수월봉 구간을 거닐었는데, 12코스 전
체의 ⅓ 남짓 정도 된다. 허나 일몰 시간의 압박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는다. 2시간 내에
수월봉까지 가야 일몰의 눈치를 피하며 마음 놓고 사진 셔터를 누를 수 있고, 안전하게 모슬
포(摹瑟浦)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워지면 출사도 힘들고 올레길 이동도 힘들어짐)

햇님의 퇴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일단 12코스에 나를 던지기로
하고 길에 임했다. 이 구간은 생이기정 북쪽에 이르면 고산리 유적까지는 완전 속세(俗世)와
등을 지게 되므로 적어도 고산리 유적까지는 무조건 가야 된다.
12코스 구간 중, 용수리~수월봉 구간은 해안 구간으로 당산봉을 넘어가며, 수월봉~무릉리 구
간은 내륙이다. 해안길 중 용수리 방사탑~당산봉까지는 거의 벼랑길로 키 작은 줄난간 외에는
안전시설이 없으므로 괜히 사진 찍는다고 안전선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게다가 속세와 떨
어진 외진 곳이라 가급적 일몰 전까지는 산책을 마쳐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  누렇게 뜬 억새들이 나그네를 반기는 제주올레길12코스
(용수리 방사탑2호~생이기정 북쪽 구간)


12코스는 제주도의 야심작인 올레길의 일원이라 길은 잘 닦여져 있다. 방사탑2호 남쪽 구간에
는 무려 박석(薄石)까지 입혀져 있어 마치 시내 해안 공원을 거니는 기분이다.
제주도가 아무리 따뜻한 남쪽이라고 하지만 바닷바람이 얼마나 격한지 두 손이 얼어붙을 정도
이다. 그날 제주도 기온은 영상 4~9도라고 나왔으나 체감온도는 거기서 7~8도 정도는 빼야 했
을 정도이다. 너무 두꺼운 잠바까지는 아니더라도 패딩 잠바나 덜 두꺼운 잠바를 입어야 무리
가 없을 것이다. (모자 달린 잠바를 입으면 더 좋음) 대신 내륙 지역은 바닷바람의 간섭을 덜
받아 조금 따스하다.


▲  여기서도 변함없이 나와 놀아주는 와도와 차귀도
마치 양이(洋夷)들이 말하는 천지창조의 현장 같다. 와도와 차귀도가 막
빚어진 듯한 모습, 하늘은 저들을 만드느라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  가까이서 바라본 와도의 위엄

12코스를 거닐면 꼭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다. 바로 차귀도와 와도이다. 이들은 수월봉까지 계
속 나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준다. 절부암과 용수리포구에서는 윗 사진처럼
보였으나 올레길을 1굽이 돌 때마다 조금씩 다른 자태를 보여주며, 고산리에 이르면 누워있는
여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바위섬으로 모습이 바뀐다. 사물과 사람을 하나의 각도가 아닌 다양
한 각도로 봐야된다는 진리를 이 올레길12코스가 몸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허나 사람은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존재들이라 그 당연하면서 단
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  해안 벼랑으로 이루어진 제주올레길12코스 (생이기정 북쪽)
이곳은 바다 낚시터로 좋은 곳이라 낚시도구를 챙기고 벼랑 밑으로
내려가는 낚시꾼이 여럿 눈에 띄었다.

▲  제주올레길 12코스 생이기정 북쪽 해안 벼랑
오른쪽에 보이는 섬은 와도와 차귀도이다.

▲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 (생이기정 북쪽)
인생이란 이렇게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챙겨야 정신 건강에 좋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  저만치 멀어진 용수리

올레길 12코스 경관에 퐁당퐁당 홀리다보니 어느덧 이곳에 우두커니 선 나를 발견했다. 여기
가 용수리~수월봉 구간의 ¼ 정도 되는 곳으로 길은 한참이나 남았다. 과연 수월봉까지 일몰
직전까지 갈 수 있을까? 수월봉은 내 조급한 마음을 외면하며 아직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
고 있다.


▲  생이기정 북쪽에서 바라본 용수리 앞바다
바다 파도는 제법 패기 있는 모습으로 뭍을 때려대고, 바닷바람은 태풍 같은
기세로 홀로 거니는 나를 때려댄다. 오늘도 고통 받는 내 인생...

▲  바람개비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용수리

제주도 해안과 앞바다에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많이 닦여져 있다. 제주도의 거센 바람을 활용
해 풍력발전(風力發電)을 얻고자 설치한 것인데, 바다에 설치된 것들은 해질녘이나 저녁, 흐
린 날에 보면 마치 커다란 괴물이 칼 같을 것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듯 무시무시해 보인다.


▲  슬슬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와도와 차귀도 (생이기정 북쪽)

▲  생이기정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이렇게 보니 와도가 전혀 누워있는 여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귀도 또한
용수리에서 보이지 않던 숨겨진 남쪽 속살을 비추기 시작한다.

▲  생이기정
난간 너머로 억새들이 펼쳐져 있는데 겉으로 보면 완만해 보이지만 그건
억새가 나그네를 낚으려는 함정이다. 완만해 보이는 억새밭 너머에
천길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으나 가급적 난간을 넘지 말자.
 

용수리 포구와 고산리 유적 중간에 '생이기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제주도 사투리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것으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란 뜻이다.
올레길에서 보면 생이기정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차귀도나 바다에서 보면 꽤 높은 벼랑
으로 화산재와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 켜켜히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생이기정도 그
렇고 엉알해안과 수월봉 모두 용암이 빚은 대작품들이다.


▲  생이기정 남쪽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①
와도의 숨겨진 남쪽 속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  생이기정 남쪽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②

▲  당산봉에서 바라본 수월봉과 고산리 유적
드디어 수월봉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다를 향해 자라 목처럼
고개를 내민 해안 언덕이 바로 그 수월봉이고, 사진 가운데 들판이 
고산리 선사유적이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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