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성북구·강북구

도봉산고양이 2021. 1. 19. 09:51

 

1. 정릉동 봉국사 (봉국사 일주문)

북한산(삼각산) 남쪽 자락이자 정릉 북쪽에 자리한 봉국사는 1395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나

옹선사가 1354년창건했다고 내세웠음) 무학은 이곳에 절을 짓고 약사여래불을 봉안하여 약사사라 했다고 전하며, 

1468년조의 지원으로 절을 중창했다고 전한다. 허나 정릉이 복원된 17세기 중반까지 무려 200년 동안 적당한 내

력이 전하지 않고 있으며, 봉국사의 사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669년 이후이다.

1669년 태종에 의해 260년 가까이 속세
의 뇌리 속에 잊혀져 쑥대밭이 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현종

명으로 1669년에 복원되었다. 이때 정자각과 전례청 등 정릉의 부속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인근 경국사와 이곳을 
원찰로 삼았는데, 이때 나라를 받든다는 착한 뜻에서 봉국사로 이름을 갈았다. 특히 봉국사는 정릉과 같은 산자
락에
있고, 정릉 바로 북쪽이라 원찰의 자격으로 아주 충분하다.

1882년 임오군란 때 군인들에 의해 절이 피해를 입었으며, 1883년에 한계, 덕운이 중건했다. 1885년 3월에는 명부전에

장탱을 조성했고, 1898년에 운담, 영암, 취봉 등이 명부전을 중건하고 시왕도를 봉안했다. 1913년에 주지 종능과 
주 
월하봉연이 칠성각을 중건했고, 1938년 화주 금파가 조인섭의 시주로 염불당을 새로 지었다.

1979년에는 주지 현근이 2층 크기의 일음루를 세워 범종루와 천왕문으로 삼았고, 1986년에 산신각을 중수하고 만월보

전에 신중탱을 봉안했으며, 1991년에 천불전에 신중탱을 봉안했다. 1994년 3월에는 안심당을 새로 마련해 승려와 신도
의 수행처로 활용하였고, 주지 선관과 신도들이 합심해 경내에 나무 1,000여 그루와 온갖 꽃을 심어 경내 분위기를
하게 살렸다. 

2. 정릉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일주문

일주문이 정릉로 도로변에 있어서 그렇지 일주문과 일음루를 지나면 산사의 내음이 오각을 간지럽힌다. 정릉로와 내부

순환도로가 절 앞에 있고 주택가와 가깝지만 숲에 짙게 둘러싸인 경내는 아늑하고 적막해 깊은 산골에 들어선 기분이다.

지금이야 속세의 기운이 절 밑까지 들어와 실감이 덜하겠지만 옛날에는 완전 첩첩한 산주름 속이었다. 한양도성에서 오

려면 동소문<혜화문>을 나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야 했는데 워낙 외진 곳이라 호랑이의 등장이 잦았다. 

일주문은 북한산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경내 서쪽과 남쪽, 동쪽은 산지라 정릉천이 있는 북쪽이 그나마 진입

이 쉬웠다. 그래서 그곳에 문을 내고 속세와 왕래했으며, 그 길이 절과 속세를 잇는 유일한 통로이다. 경내는 일주문에
각박한 오르막길을 200m 올라야 나오는데, 법당(만월보전)은 지형상의 이유로 동쪽을 향하고 있고, 명부전은 남쪽
을 향
하고 있다. 법당 뒤쪽에는 높은 벼랑이 병풍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벼랑에 독성각과 산신각을 아슬아슬하게 걸쳐
았다. 


조촐한 경내에는 만월보전을 비롯해 명부전, 천불전, 산신각, 독성각, 납골당인 연화
원 등 10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목조석가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지장3존상과 시왕상 및 권속일괄,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아미타괘불도, 지장시왕도, 시왕도와 사자상 등 지방문화재 6점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 1월에 한꺼번에 지방

화재의 지위를 받았다. 

3. 범종루(일음루)와 천왕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2층 크기의 일음루가 등장한다. 1층은 천왕문으로. 2층은 범종루로 쓰이고 있는데, 이들을 합쳐 일
라 한다. 일음(하나의 소리)이란 부처의 중생구제를 향한 메세지를 뜻한다.
이 건물은 1979년 10월에 주지 현근이 세웠으며, 일음루 편액과 주련은 청사 안광석이 썼고, 천왕문 현판은 여초 김응
의 글씨이다.

4. 일음루 천왕문을 지키는 사천왕상

5. 봉국사 천불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넓직한 맞배지붕 집으로 이름 그대로 천불의 거처이다. 

6. 봉국사 만월보전

만월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약사여래불로 통하는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관
세음보살과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배치했으며, 이중 석조여래좌상과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쓰인 만월보전 현판이 있으나 지금은 종무소에 보관중이며(보관 장소는 변경될 수 있음) 그 글씨를

확대한 새 현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7. 봉국사 명부전

만월보전 옆구리에 자리한 명부전은 명부(저승) 식구들의 거처이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1989년에 중건했는데, 지

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지장시왕도, 시왕도, 사자도 등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만월보전과 더

불어 이곳의 보물창고이니 그들 내부를 꼭 둘러봐야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다.

8. 명부전 석조지장삼존상과 지장시왕도

명부전의 주인장인 석조지장3존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돌로 만들어 금동 옷을 입힌 것으로 조금 매서운 맵시로

앉아있는데, 북한산(삼각산) 동쪽에 있는 본원정사 지장보살상과 비슷한 모습이다. 
지장보살 옆에는
도명존자무독귀왕협시해 있으며, 그들 뒤로 1885년에 제작된 지장시왕도가 든든하게 걸려있다.

9. 명부전 시왕상과 시왕도

석조지장삼존상 좌우로 시왕상과 시왕도가 자리한다. 이들은 1898년에 제작된 것으로 19세기 후반 탱화 양식을 보여주

고 있으며, 시왕상 외에 판관, 녹사, 사자상, 인왕상 등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