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성북구·강북구

도봉산고양이 2021. 1. 22. 00:47


1. 독성각에서 바라본 봉국사 경내 뜨락 (천불전과 만월보전 사이)

2. 독성각 독성상과 독성탱

독성각은 독성(나반존자)의 공간으로 그의 상과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모두 근래에 장만했음)

3. 벼랑에 자리한 독성각

독성각은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깃들여져 있다. 

4. 만월보전 옆에 있는 나무상자(괘불함)

봉국사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아미타괘불도란 괘불이 있는데, 그 괘불이 저 나무상자에 들어있다. 괘불은 석가탄신
일 등 절의 특별한 날에만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비싼 존재로 평소에는 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봉국사 괘불은 아직까

지 친견을 못해 마음 같아서는 저 괘불함을 열어보고 싶으나 그가 들어있는 괘불함을 이렇게 보았으니 그것으로 일단

만족을 하련다 (나에게 그 비싼 괘불함을 열 수 있는 권한은 없음)

봉국사 괘불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진 아미타3존을 그림에 가득 묘사하고 그 밑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했다. 이런 도상은 흥천사 비로자나삼신불괘불도
(1832년, 친견했음), 봉은사 석가모니괘불도(1886년, 친견했음) 등과 동일한 도상을 공유하면서 상단 부분만 아미타삼
존으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괘불 화기의 '三角山 奉國寺(삼각산 봉국사)'가 쓰여있는데 원래 글씨를 지우고 덧쓴 흔적이 뚜렷하여 원래부터 봉국사

괘불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이 괘불도는 서울,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수화승 금곡영환, 한봉창엽, 덕월응륜, 명응윤감, 금화기형, 계은봉법, 의

현조, 용담규상, 긍조, 계웅, 원익, 성련, 봉옥 등 14명이 그렸다. 상궁 하씨와 공씨, 정씨, 이씨, 백씨 등 상궁 5명이 
도로 
26명이 시주를 내어 괘불 조성에 참여했으며, 서울 지역에서 연대가 제법 올라가는 괘불로 형태, 필선, 채색, 문양,
장식 등 
각 세부 묘사가 당시 불화와 비교하여 완성도가 높아 19세기 말 서울 지역에서 제작된 새로운 괘불도 형식의
선형적인 사례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다.

5. 만월보전 석가여래좌상 (봉국사 석가여래좌상)

만월보전의 주인장이자 봉국사의 대표 불상으로 돌로 만든 석불좌상이다. 돌에 약간의 호분을 입혔을 뿐, 그 흔한 도금

은 입히지 않아 석불 본연의 느낌을 주고 있는데, 두 손에 약합으로 여겨지는 둥근 보주를 들고 있어 절에서는 오랫동안

약사여래상으로 여겨 애지중지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큰 편으로 머리 중앙에 중계주가 새겨져 있고 머리 정상에는 정상계주가 낮게 새겨져 있다.
둥근 머리에는 큼직한 나발이 가로 세로의 폭이 일정한 공간에 입체적으로 조각되었으며,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과 우
뚝한 코, 미소 띤 작은 입이 표현되었다. 좁고 쳐진 어깨에 이중착의 형식으로 표현된 가사에는 단조롭지만 단정한 3조
의 층단 주름이 양 깃과 어깨에 걸쳐진 대의 자락, 옷소매와 발목을 덮은 군의에 일정하게 새겨져 있다.

결가부좌한 다리 발밑으로 옷자락이 V자형으로 늘어져 있고 오른쪽 무릎의 아랫부분은 훼손되어 보수된 상태이다. 두
손을 포개어 선정인을 선보이고 있고, 그 위에 보주(약합)가 있는데, 이런 비슷한 불상이 서울과 경기도에 여럿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으나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으며, 왜정 때 작성된 '봉은본말사지'에 '만월전에 봉안된 석질분

상의 약사여래로 높이는 3.3촌, 너비는 2.3촌이다' 기록이 있어 돌에 호분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40년에 작성된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에 봉국사에 약사여래상이 1구 있다고 나와있어 왜정 이전부터 이곳에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쨌든 생김새와 지물을 통해 약사여래상이 분명하고 절에서도 그렇게 여기고 있음에도 문화재 지정명칭은 석가여래상

로 따로 놀고 있으니 석조약사여래상(석조약사여래좌상)으로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

6. 정면에서 바라본 만월보전 석가여래좌상과 후불탱

7. 만월보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봉국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석가여래좌상(약사여래상) 옆에 자리한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무릎부분과 얼굴부분을 붙인 흔적이 역력한 접목식 조성의

불상으로,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등과 머리의 나발부분이 훼손된 것을 수리했던 흔적이 보인다.
항마촉지인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머리에 봉긋 솟은 육계에 정상계주가 있으며, 머리칼은 나발이 선명하다. 턱이 각지지

않고 둥근 얼굴은 단정한 이목구비를 갖췄으며, 눈꼬리가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간 눈에 오뚝한 코와 끝이 살짝 올라가 미

소가 번지는 입을 하여 표정이 밝고 명랑한 느낌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 위를 살짝 덮은 변형 우견편단으로, 대의자락은 왼쪽 팔 위에서 Ω를 이루며 좌우로 흘러 무릎을 덮

고 발목부분에서 뒤집힌 뒤 부채꼴로 펼쳐지고 있다. 대의 깃 사이로 드러난 가슴에는 상단부가 수평을 이루는 군의가

단정하며, 약간 굴곡진 가슴과 볼록한 복부 표현으로 신체의 부피감이 있어 보인다.
두 손 가운데에 별도로 만들어 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길게

내리고 있는데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했음을 볼 수 있다.

이 불상에서 다라니 및 시주목록 등 복장품이 발견되었으나 조성기가 보이지 않아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으

나 넓게 벌어진 둥근 어깨에 머리를 앞으로 살짝 수그려 굽어보는 듯한 자세를 하여 원만하면서도 당당함이 엿보이는 점,

간략해진 옷 주름으로 신체의 윤곽이 뚜렷하고 부피감이 있어 보이는 점, 단정한 이목구비의 표현으로 인한 활달한 표정

등을 통해 18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8. 만월보전 금동관세음보살상
화려한 보관을 쓴 고운 모습으로 앞서 석가여래좌상(약사여래상)과 금동석가여래좌상과 달리 근래 조성된 따끈따끈한

보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