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북한산(서울 은평·종로·강북 구역)

도봉산고양이 2021. 3. 14. 22:46


1. 맑은 계류와 하얀 반석, 암반이 어우러진 구천폭포 중단

구천폭포는 북한산(삼각산) 3대 폭포의 하나로 오랫동안 추앙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겼고,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은 아예 구천폭포 주변에 별서(송계별업)를 차려 머물기도 했다. 하
여 송계별업의 흔적들이 일부 남아있으며, 숙종 시절 사릉(단종의 왕후인 정순왕후 송씨의 능)을 능역
화하
고자 여기서 돌을 채석해 갔는데, 그와 관련된 흔적도 여럿 깃들여져 있다.

2. 구천폭포 중단에 살짝 깃든 사릉 석물 채석장터의 흔적(사릉부석감역기 바위글씨)

구천폭포 중단에는 인평대군이 폭포 밑에 세운 송계별업(조계동별업)의 흔적인 '송계별업' 바위글씨와 구천
폭포 주변에서 사릉에 쓰일 석물을 채석하고자 새긴 '사릉부석감역기' 바위글씨가 전하고 있다. 그리고 폭포
상단
에는 인평대군과 가까웠던 '이신'이 남긴 '구천은폭' 바위글씨가 덩달아 전한다.

구천은폭 바위글씨는 폭포 상단 피부에 선명하게 깃들여져 있어 속세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으나 송계
별업 바위글씨와 사릉부석감역기는 2018년에 한국산서회에서 발견하여 뒤늦게 속세에 노출되었다. 허나 이
들은 벼랑에 깃들여져 있고 글씨들이 작아서 숨은그림찾기 수준이 아주 고난이도급이다. 하여 나는 침침한
두눈을 무릅쓰고 '사릉부
석감역기' 바위글씨만 겨우 찾았다.

'사릉부석감역기' 바위글씨의 내용은 이렇다 '司評李焌 奉事趙正誼 書吏朴興柱 石手 趙金 歲己卯正月日
陵浮石監役 畢後書記' <사평 이준과 봉사 조정의, 서리 박흥주, 석수 조금 등이 기묘년(1699년) 정월, 사릉
공사에 쓰일 채석 작업을 마치고 기록을 남긴다>

이 글씨들은 피부가 다소 바랜 주름진 바위에 작게 새겨져 있는데 험한 곳에 있기는 하나 그나마 벼랑급은
아니다. 허나 송계별업은 이보다 각박한 곳에 있어서 찾지 못했다.


구천폭포가 사릉 채석 부석소가 된 것은 이곳의 돌이 굳고 강하다는 이유였으나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창군
정, 복선군 이남, 북평군 이연이 남인과 결탁하며 놀던 현장이라 서인 패거리들이 이를 고의적으로 훼손
하고자 그런 듯 싶다. 남인이 1680년 경신환국 때
서인에게 크게 털렸기 때문이다.

'사릉부석감역기' 바위글씨의 내용은 이렇다 '司評李焌  奉事趙正誼  書吏朴興柱  石手趙金 歲己卯正月日 
思陵浮石監役  畢後書記' (사평 이준과 봉사 조정의, 서리 박흥주, 석수 조금 등이 기묘년(1699년) 정월, 사릉
공사에 쓰일 채석 작업을 마치고 기록을 남긴다)

이 글씨들은 피부가 다소 바랜 주름진 바위 피부에 작게 새겨져 있는데, 험한 곳에 있기는 하나 그나마 벼랑
급은 아니다. 허나 송계별업은 이보다 각박한 곳에 있어서 찾지 못했다. 

구천폭포가 사릉 채석 부석소가 된 것은 이곳 돌이 굳고 강하다는 이유였으나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창군 이
정, 복선군 이남, 북평군 이연이 남인과 결탁하며 놀던 현장이라 서인 패거리들이 이를 고의적으로 훼손하
고자 그런 듯 싶다. 남인이 1680년 경신환국 때 서인에게 크게 털렸기 때문이다.

3. 작은 글씨들이 또렷하게 깃들여진 사릉부석감역기

4. 사릉부석감역기 주변에 채석을 한 흔적

바위 가운데에 직선으로 인공이 가해진 흔적이 있는데 이는 사릉 공사에 쓸 돌을 채석하던 흔적이다. 구천
폭포 주변에서 캔 돌은 직선거리로 거의 30~40리 떨어진 사릉으로 옮겨 사릉 능역을 닦는데 쓰였다.

5. 송계별업 건물터(추정 영휴당터)
구천폭포 하단 서남쪽에 영비천이란 샘터와 너른 공터가 있는데, 이곳이 송계별업의 흔적으로 영휴당터
로 
여겨진다.
인평대군의 별서인 송계별업은 숙종이 사릉을 손질하던 때인 1698~1699년이나 그 이후에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인평대군의 아들이 남인패거리들과 어울리다가 1680년 경신환국으로 싹 털렸고 서인
패거리들
이 송계별업을 남인들의 역모 현장으로 몰아부쳐 사릉 채석
장으로 삼게 하여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석축터와 건물터 일부만 남아있으며, 송계별업의 나머지 건물터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못했다.
 

6. 송계별업 영휴당터(추정)에 있는 영비천

이곳에는 북한산(삼각산)이 베푼 약수가 있는데, 신비로운 숨겨진 샘이란 뜻에 영비천이란 좋은 이름을 지
녔다.
허나 내가 갔을 때는 수질부적합 빨간 딱지를 받은 상태라서 마시지는 못했다.

약수터의 수질부적합 판정은 도시화와 주변 개발 등으로 물이 오염되서 받는 경우도 있으나 가뭄과 약수터
청소 불량으로 물이 영 좋지 않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럴 때는 비가 많이 오거나 약수터 주변만
결하게 해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7. 영비천약수터의 임시 성적표(2020년 7월)

8. 영비천약수터 윗쪽 송계별업터
예전에는 배드민턴과 족구 등을 하는 체육공간으로 쓰였으나 근래 나무를 심어놓아 체육공간의 역할은 크
게 축소되었다. 

9. 송계별업 영휴당터(추정) 윗쪽
건물을 받쳐들던 석축과 주춧돌이 숲 밑에 어지럽게 널려 장대한 세월에게 처참하게 흩날린 옛날의 영화를
노래한다.

10. 윗쪽에서 바라본 송계별업 영휴당터
이곳 주변과 구천폭포 하단 주변을 더 들춰보면 송계별업의 나머지 흔적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복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고, 그저 송계별업 건물터와 바위글씨를 잘 보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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