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남부(수원·화성·오산·평택)

도봉산고양이 2021. 5. 1. 22:22


1. 무봉산 만의사 (만의사 일주문)

동탄제2신도시 동북쪽에 솟은 무봉산(360m) 서쪽 자락에 만의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조계종 제2교구인 화
성 용주사의 말사로 신라 말에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화성시 신동(옛 화성군 동탄면 신리)에 창건되
어 이름은 비록 같지만 한자가 다른 만의사()라 했다고 전한다. (지금 만의사의 한자는 '萬儀寺')
1284년에 정길과 현묵이 중창했다고 하며, 1312년 천태종 소속 진구사의 주지였던 혼기가 주지로 들어와
절을 크게 불리고 법화도량을 열어 천태종의 중심 사찰이 되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어 의선이 절의 사세

더욱 불렸으며, 충혜왕 시절 이곳 주지였던 묘혜는 요원이 '법화영험전'을 간행할 때 비용을 대주었다. 

고려 우왕 시절부터 천태종과 조계종에서 이곳 주지를 교대로 맡았다. 그 이유는 만의사가 사전과 노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꿀단지 같은 절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로 인해 두 종파간의 진흙탕 다툼이 심해지자 보
다못한 조정에서 절 노비
를 수원부로 넘기고 절은 천태종이 관할하게 했다.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회군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공을 세웠던 신조가 주지로 들어오면서 수원부로 넘어간

노비를 찾았으며, 사전 70결도 받았다. 그리고 조선으로 바뀐 이후에도 위화도회군을 도운 공로 덕분에 큰
사세를 유지했다. 그로 인해 많은 승려들이 이곳을 찾아 신세를 졌는데,
서산대사 휴정이 이곳에서 여기서
수도를 했고, 사명대사의 제자인 선화도 이곳에 머물다가 1644년에 입적했다.

1669년 송시열의 무덤 자리로 공교롭게도 만의사 자리가 정해지자 부득이 현 자리로 절을 옮겼는데, 송시
열은 말년에 만의사에 잠깐 들린 인연이 있다. 그때 만의사와 무봉산에 크게 군침을 흘린 듯 싶으며, 그 연
유로 만의사가 강제 이전되는 수고로움을 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허나 그의 묘는 이곳에 닦이지 않고 멀리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둥지를 틀었으며 송시열 때문에 강제로 정든 자리를 떠난 만의사는 현재 이름인 만
의사로 이름을 갈았다. (이름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꿈)


1796년 수원 화성을 건설하면서 만의사의 동종을 가져가 팔달문에 걸었으며, 1894년 지장전이 무너지자 그
안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십대왕상, 판관상, 사자상, 인왕상 2구 등 명부 식구들이 싹 용주사로 옮겨지는 등

절의 보물들이 적지 않게 외부로 유출되었다.


너른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천불전, 산신각, 요사, 봉서루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으며, 짜투리

공간에 계속 건물을 올리고 있다. 현재 가람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고색의 내음은 싹 사라
진 실정이다.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1791년에 조성된 지장탱이 고작이며, 옛 자리인 화성시 신동에는 법화종
소속의 원각사가 들어섰으니 동탄2신도시 난개발과 골프장 난개발로 인해 근래 다른 곳으로 이전된 듯 싶
다.

2. 무봉산 등산로 안내도

마음 같아서는 만의사의 후식거리로 무봉산도 1바퀴 둘러보고 싶었으나 늘 그렇듯이 그넘의 시간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3. 맞배지붕을 지닌 만의사 천왕문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과 연못이 마중을 한다. 천왕문은 만의사의 2번째 문이나 그 좌우가 뻥 뚫려 있어
굳이 천왕문을 거쳐가지 않아도 된다.

4. 천왕문과 연못에 닦여진 돌다리

5. 만의사 경내

천왕문을 지나면 무봉산을 뒷배경으로 삼은 만의사 경내가 펼쳐진다.

6. 만의사 경내와 무봉산을 뒷배경으로 삼아 포즈를 취한 똥배 포대화상의 위엄

7. 만의사 대웅전과 3층석탑

대웅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보통 법당 건물은 팔작지붕을 많이 취하
나 이곳은 맞배지붕을 취했다.

8. 근래 조성된 대웅전 금동석가여래3존상과 후불탱

9. 만의사 대웅전 지장탱 
지장보살과 명부(저승)의 식구를 담은 늙은 탱화로 1791년에 조성되었다. 만의사의 거의 유일한 문화유산이
나 아직까지 지정문화재 등급은 받지 못했다.

10. 근래 조성된 석조미륵불입상과 해태상

11. 육환장을 쥐어든 석조지장보살상

12. 천불전 금동석가여래상과 조그만 천불의 금색 물결

13. 한글 현판을 내건 천불전

천불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팔작지붕 집으로 금동석가여래상과 원불로 조성된 조그만 천불이 봉
안되어 있다.

14. 1칸짜리 산신각

달랑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산왕대신)의 거처이다.

15. 범종이 들어있는 맞배지붕 범종각

16. 경내 구석에 있는 하얀 피부의 승탑(부도탑) 2기

왼쪽 승탑이 송암당정오대선사 부도탑이다. 

17. 송암당정오대선사 부도탑과 바위를 활용한 그의 행장 비문(부도탑 밑의 바위)

18. 천왕문 앞 연못과 돌다리

돌담에 감싸인 곳이 연못이다. 만의사는 이상의 사진이 거의 전부로 고색의 내음은 진작에 사라졌고, 소장
문화유산도 지장탱(비지정문화재)이 전부이다. 근래 절 밑에 동탄제2신도시가 넓게 닦였고 그로 인해 신도
가 많이 늘어 수입도 폭풍 증가를 하였는지 건물을 계속 올리며 경내 여기저기를 손질해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잘나갔던 시절을 재
현하려는 기세이다.
전성기를 되찾는 것은 좋으나 속세를 구하고 챙기는 절의 본연의 의무는 절대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