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인천광역시

도봉산고양이 2021. 5. 2. 21:14

 

1. 문학산 숲길 (선학역 법주사에서 올라가는 길)
인천의 남쪽 지붕이자 오랜 진산인 문학산은 해발 217m의 뫼로 미추홀구와 연수구 사이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시가지에 꽁꽁 감싸여있지만 예전에는 인천 시내 남쪽 끝으로 산 남쪽과 동쪽은 완전한 시
골이었다.
고구려 동명성왕(추모성왕)의 부인이자 졸본 세력의 세력가였던 소서노에게는 아들인 비류와 온조 형제가

있었다. (이들의 생부에 대해서는 '우태'란 이야기도 있음) 요서와 요동반도 북부, 요하 상류에 넓게 자리했

던 부여에서 탈출해 남쪽으로 내려온 추모(동명성왕)의 세력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일군 소서노는 추모성왕
의 아들인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 부여에서 내려오면서 추모성왕 세력과 갈등을 빚게 된다. (태자 책봉 문제,
세력 간의 알력 등)
추모성왕을 많이 사모했던 소서노는 그 갈등을 해결하고자 그와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졸본 세력(요서나 요
동 북부에 있던 것으로 여겨짐)을 이끌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그들이 정착한 곳이 지금의 한강 유
역과 인천 지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나 비류는 인천(미추홀)에 자리를 잡았고, 온조는
서울 북부 지역에 자리를 잡아 각자의 세력을 일구었는데, 그때 비류가 자리잡은 미추홀의 중심지가 문학산
이라는 설이 있다.
비류의 세력은 실적이 영 좋지 못해 비류는 자결했고, 온조가 형인 비류의 세력을 흡수해 나라 이름을 십제
에서 백제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백제는 마한의 일원으로 전하는데, 마한은 옛조선 남쪽에 있던 '한'의 일원

으로 마한과 진한, 변한이 있었으며, 이들의 영역은 4천리에 달했다. (허나 식민사관 쓰레기들은 1천리를 4
천리로 잘못 썼다고 개우기며 지금의 남한 땅으로 영역을 못박아버림)
조선 때는 문학산 북쪽에 인천도호부 중심지가 닦여져 인천의 진산이 되었으며, 산에 씌워진 문학산성은 인
천 고을을 지키는 요새로 임진왜란 시절 왜군을 격퇴했던 현장이다. 


인천 고을 남쪽에 있어서 오랫동안 남산이라 불렸으며, 문학산 정상에 있는 봉화대가 마치 사람의 배꼽처럼
보여서 배꼽산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문학산이란 이름은 인천도호부에 닦여진 인천향교와 학이 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란 뜻에서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6.25시절 인천상륙작전 때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 앞바다에 상륙해 문학산을 탈환했으며, 1965년부터 미군
이 정상부를 점거하여 지키다가 국군이 접수하여 주둔했다. 하여 산 정상부는 50년 동안 금지된 곳이 되었

으나 2015년 10월 15일 비로소 개방되어 자유의 공간이 되었다. 허나 아직은 낮시간에만 정상을 개방한다.

이번 문학산 나들이는 문학산의 동쪽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선학역(인천1호선) 법주사에서 시작하여 문학산

동쪽 능선, 문학산 정상, 서쪽 능선, 청학사를 거쳐 청학4거리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2. 늦겨울에 잠긴 문학산 동쪽 능선길 (이때가 2월이었음)

3. 문학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인천문학경기장 
인천문학경기장은 문학산 동북쪽에 넓게 자리해 있다.  

4. 문학산 동쪽 능선 계단길
선학역 법주사에서 문학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길은 거의 완만한 편이다. 정상까지는 거의 40~60
분 정도 걸리며, 동네 사람들의 마실, 나들이와 답사, 야간 등산까지 찾는 수요도 다양하다. 

5. 문학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미추홀구와 동구 지역 

6. 문학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승학산(123m)과 관교동, 학익동 지역
문학산과 승학산 사이 공간이 옛 인천도호부의 중심지로 도호부 관청과 객사, 향교가 이곳에 있었다. (지금
은 향교와 복원된 도호부 건물이 있음)

7. 문학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인천문학경기장과 남동구 지역

8. 문학산 동쪽 봉우리에 닦여진 조망대

9. 문학산 동쪽 봉우리 조망대에서 바라본 연수구와 송도국제도시, 서해바다
문학산 남쪽에 펼쳐진 연수동, 청학동, 동춘동 지역은 1990년대 이후에 닦여진 신도시라 아파트가 즐비하
다. 그 남쪽에 서해바다를 매립하여 송도국제도시를 지었는데, 그로 인해 가깝던 서해바다는 그만큼 더 멀
어졌다. 

10. 문학산 동쪽 봉우리에서 바라본 문학산 정상 방향

문학산 정상까지는 금방 닿을듯 하면서도 아직도 길이 한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