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인천광역시

도봉산고양이 2021. 5. 7. 19:59

 

1. 문학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길

문학산 정상(217m)에서 서쪽 능선과 청학사, 청학동, 노적봉, 연경산, 학익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
상에서 문학산역사관과 정상 조망대, 일품 조망 등 누릴 것은 다 누렸으니 서쪽 능선을 통해 적당한 곳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2. 문학산 서쪽 능선에서 바라본 연수구 일대와 송도국제도시
문학산 남쪽인 연수구 지역은 인천의 신도시 지역으로  문학산 이북과 이서의 구시가지보다 잘나가고 있
다. 

3. 잘 닦여진 문학산 서쪽 능선길 (청학동, 학익동, 노적봉 방향)

문학산 정상에 있던 군부대를 이어주는 길로 지금은 문학산 탐방로이자 등산로로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

4. 삼호현 안내문

문학산 정상에서 서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에 삼호고개란 고개가 있다. 이곳은 사모현,
삼해주현, 사모지고개, 사모재고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머나먼 백제 시절(그것도 한성백제 시절), 중원
대륙으로 가는 사신이나 요서와 산동, 오월 지역 등 중원대륙에 있는 백제의 대륙 영토, 백제의 속방인 왜열
도로 파견되는 관리나 백성들이 이 고개를 넘어 그 시절 해안 항구였던 능허대로 갔다고 전한다.

그런데 한성백제의 중심지인 하남위례성은 한강변 송파/강동구 지역으로 크게 여기고 있으니 그게 맞다면
한강을 타고 바다로 많이 나갔을 것이다. 허나 일부는 육로로 인천 능허대까지 와서 대륙과 왜열도를 오갔
던 모양이다.

중원대륙이나 왜열도로 파견되는 관리나 장수, 사신을 배웅하러 온 가족들이 인근 별리현에서 작별을 했고,
사신과 관리들도 삼호현에 오르면 그때까지 별리현에 서 있던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작별 인사를 3번을 하
고 고개를 넘어갔다고 하여 삼호현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개 위에 있는 큰 바위를 삼해
주바위, 중바위 등이라 부른다.

삼호현 안내문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 어쩌구 하면서 내용도 참 처량하게도 나왔는데, 이는 더러운 식민
사관의 영향으로 보인다. 꼭 굳이 저런 식으로 안내문을 써야 했는지 관련 인천시 철밥통과 사학자들의 뚝
배기를 함 열어보고 아작내고 싶다. 그 시절 백제는 중원대륙의 무수한 해안 지역과 왜열도를 다스리고 운
영하던 큰 나라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하지만 백제 본토에서 중원대륙이나 왜열도로 가려면 서해바다는 무조건 건너야 되는 바, 바다를 건너는 일
은 지금도 그렇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바람과 물길이 잔잔하면 빠르고 무탈하게 가지만 바다는 가끔식 험
악한 얼굴을 보이기 때문이다. 

 

삼해주바위(중바위)에는 물동이 모양으로 패인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에 삼해주(술)가 고여 있어 고개를 넘

어가는 사람들이 갈증 해소용으로 마셨다고 한다. 또한 1잔으로도 능히 갈증을 풀 수 있으니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허나 다른 비슷한 전설과 마찬가지로 욕심 많은 작자가 그 술을 2잔 이상 마셨더니 술이 말라 없어졌다고 

한다. 그 연유로 이 고개를 삼해주현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어느 땡중이 이곳을 지나다가 술 맛이 너무 좋아

한번에 여러 잔을 마셨더니 술이 말라 없어졌다고 해서 중바위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5. 삼호현 고개 갈림길

여기서 정면으로 내려가면 연수동, 청학사이다. (나는 청학사 쪽으로 내려갔음)

6. 삼호현 전통숲 인공폭포

삼호현 갈림길에서 연수동, 청학사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런 곳이 나온다. 벼랑의 모습을 보아하니 과거
에 채석장이거나 산사태로 아작이 난 곳 같은데, 주름선이 강렬한 자연산 벼랑 밑에 너무나 어색해보이는
인공 벼랑을 닦고 그곳에 인공폭포를 내었다. 아마도 채석이나 산사태로 깊게 파인 벼랑 아랫도리를 채우
고자 저리 한 듯 싶은데, 너무나 어색하다.

7. 삼호현 전통숲 안내문

8. 연수동, 청학사로 이어지는 삼호현 남쪽 길

9. 청학사로 인도하는 숲길

문학산 서쪽 자락이자 문학터널 윗쪽에 청학사란 산사가 있다.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현대 사찰로 절 주차
장에 오래된 비석이 있다고 해서 한번 들려보았다. 

10. 청학사 주차장에 있는 비석, 황운조 청백선정비

황운조 청백선정비는 그 흔한 지붕돌 비석이나 대머리 비석이 아닌 바위에 글씨를 새긴 일종의 마애비이다.
비석의 주인공인 황운조는 조선 후기 사람으로 1797년과 1799년 2번 연속 인천도호부사를 지냈다. 즉 4년

동안 인천고을을 다스린 고을 수령이다.

황운조는 명필로 명성이 자자하여 강도삼절로 일컬어졌는데, 1797년 정조 임금이 수원 현륭원(사도세자의

묘역)으로 행차하면서 지역 인심도 살필 겸, 일부러 우회하여 인천을 들렸다. 이때 시 1수를 지어 황운조로

하여금 쓰게 하고 인천도호부 관아에 걸게 했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마애비는 선정비로 그 앞에 '청백' 2자가 붙어있어 청백과 선정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 황운조를 기
념하고자 세운 것으로 비석이 되버린 바위는 높이 150cm, 폭 150cm, 두께 100cm 규모이며, 정면에는 '부사

황공운조청백선정비'라 쓰여 있고, 그 우측에 '숭정기원후삼기미오월 일립'이라 쓰여 있어 비석의 조성시기
를 알려준다. 여기서 숭정기원후삼기미는 1799년을 뜻한다. (명나라 숭정제 이후 3번째 기미년이란 뜻)

 

이 비석은 원래 여기서 50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98년 문학산터널 공사로 부득이 이곳으로 옮겨졌으

며, 그의 선정비는 인천향교 앞에도 2기가 더 있어 그의 명성을 알려준다.

11. 연수동 곰솔 (인천시 보호수)

청학사에서 문학터널 남단 동쪽 옆구리를 통해 연수동, 청학4거리로 내려가니 100년 묵은 곰솔이 마중을
나왔다. 이 나무는 2003년에 인천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그 시절 추정 나이가 80년이라고 하니 이제
100년 정도 되었다. 높이 12m, 둘레 0.6m로 4계절 내내 푸른 피부를 자랑한다.

이렇게 하여 선학역 법주사에서 시작된 문학산 나들이는 이곳에서 흔쾌히 마무리를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