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북부(의정부·양주·포천·연천)

도봉산고양이 2021. 5. 15. 13:30
연천 은대리성(한탄강)



' 연천에서 만난 고구려의 작은 흔적, 전곡 은대리성 '
연천 은대리성


여름 제국(帝國)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7월의 한복판에 경기도 북부에 자리한 연천
(漣川)을 찾았다. 남북분단의 비애가 서린 연천 고을에서 가장 큰 읍내이자 구석기유적
의 성지(聖地)로 추앙받고 있는 전곡읍(全谷邑)까지 어찌어찌 가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찾은 전곡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마침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는 은대리성을 더듬
기로 했다.

은대리성은 전곡읍내 서쪽에 위치한 연천군보건의료원 서쪽에 자리해 있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보건의료원 내부를 거쳐야 된다.


♠  한탄강 언덕에 깃든 옛 고구려(高句麗)의 조그만 성
연천 은대리성(隱垈里城) - 사적 469호

▲  은대리성 내부

한탄강(漢灘江)과 주상절리로 유명한 차탄천(車灘川)이 만나는 삼각형 지형 강변 언덕에 장대
한 세월이 묻힌 은대리성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한탄강은 용암대지의 하천 침식작용으로
주상절리(柱狀節理) 등의 벼랑이 참 많은데, 그중에서 3각형 모양의 강변 언덕도 적지 않다.
강변은 높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윗쪽에 평지가 벼랑과 반대 방향으로 점차 넓어지는
형태로 은대리성도 바로 그 지형을 바탕으로 닦여진 것이다.

은대리성은 적당한 기록도 없이 이곳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는데, 1995년에 발간된 연천군사료
집에 의해 속세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과 토지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이곳을 찾아 간단하게 발굴/지표조사를 벌였고, 2003년에 단국대 매장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이 이루어져 성의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성의 평면은 삼각형으로 3면은 막다른 벼랑이고, 동쪽만 속세로 이어진 평지라 수비하기에는
딱 좋은 요새이나 만약 성이 적군에게 털린다면 이건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항복하기
싫다면 싸우다 죽던지, 아니면 벼랑에 몸을 던지던지 해야 된다. 이는 무조건 성을 사수하고
만약 성이 함락되면 성과 함께 최후를 마치라는 제왕(帝王)의 차가운 배려가 담긴 것이다.

성은 크게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성의 폭은 동서 400m, 남북 130
m, 둘레 1,005m의 조그만 규모로 외성의 동벽은 평지를 가로질러 축조되었다. 성벽 내부는 점
토와 모래로 다지고 외벽은 돌로 쌓았는데, 다른 성과 달리 현무암(玄武岩)을 사용한 것이 특
징이다.
동벽의 길이는 60~120m, 성벽 높이는 6m 정도로 성벽 상당수가 대자연과 세월의 태클로 녹아
내려 북쪽으로 가면서 2~3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벽의 내벽 부분에는 기둥을 설치했던 흔
적이 나왔고, 최소 2번 이상 성을 고쳐 쌓았음이 밝혀졌다.
내성은 길이가 230m 정도로 성의 핵심부이다. 여기서는 대형 건물터가 하나 나왔으며, 외성을
포함하여 문터 3개, 치성(雉城) 3개소(어떤 자료는 2개소), 도랑 흔적이 확인되었다. 치성은
성의 북동쪽과 북문터 서쪽, 남문터 서쪽에 있었으며, 북문터와 남문터 치성은 8x5 규모로 '
ㄷ'자형으로 돌출되었다.

성에서 수습된 유물은 별로 없으나 상당수가 토기 파편이며 소량의 철기편이 나왔다. 토기 상
당수는 고구려 토기(土器)로 약간의 백제 토기도 나왔는데, 동벽을 처음 쌓은 시기와 일치하
는 배수구 바닥에서 고구려 토기가 집중적으로 나와 이곳이 고구려성임을 알려준다.

전곡 지역은 오랫동안 백제(百濟)의 영역으로 북방으로 진출하는 요충지였다. 4세기 후반, 고
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백제를 공략하면서 한강 이북을 점유했고, 이때 전곡과 연천
지역도 고구려의 그늘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고구려 입장에서는 전곡을 비롯한 한탄강 주변이
남쪽으로 진출하는 요충지이자, 강을 낀 천험의 요새지로 포천 반월성(半月城, ☞ 관련글 보
)과 호로고루(瓠蘆古壘), 은대리성 등 작은 성을 많이 구축했다. 그러니 빠르면 5세기 초/
중반, 늦어도 5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가 먼저 세웠을 가능성도 있
으나 요즘은 거의 고구려성으로 몰고 가고 있음)
이후 백제가 신라와 합심해 고구려를 북쪽으로 몰아내면서 6세기 중반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
게 되었는데, 한강에 군침을 흘린 신라 진흥왕(眞興王)은 백제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한강을
가로채는 비열한 짓을 벌인다. 그 기세로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북부, 함경도 남부까지 북진
을 하였고, 이때 은대리성도 신라에게 털리게 된다.

은대리성을 지키던 고구려군이 신라군과 전투를 벌였는지 아니면 성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유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신라가 잠깐 이용하다가 주변
성과 통폐합시키거나 7세기 중반 이후 버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이곳은 방치되어 수풀이
무성한 자연의 공간이 되었다.

성의 이름은 이곳의 지명인 은대리를 따서 붙인 것으로 2003년 이후 동벽과 북벽 일부를 손질
했다. 허나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복원하지 못하고 성 밑도리에 돌을 입히는 선에서 끝나버
려 거의 토성(土城)으로 남아있으며, 남벽에는 목책(木柵)을 다시 세웠다. 성 내부와 토성에
는 풀을 곱게 입혀 싱그러운 녹색 도화지가 되었으며, 토성과 목책, 도랑 외에 흔적은 모두
풀로 뒤덮었다.

연천에는 은대리성 외에 고구려가 쌓은 것으로 여겨지는 당포성(堂浦城), 호로고루성 등의 성
곽 유적이 있는데, 모두 3각형 지형의 강가 언덕 평지에 조성된 것이 특징이라 고구려 축성술
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남한 땅에 흔치 않은 고구려 유적으로 그 가치와 희소성이 높다.


▲  연천군보건의료원에서 은대리성으로 인도하는 언덕길
(언덕 위가 바로 은대리성)

▲  어설프게 복원된 은대리성 동벽과 남문터

성벽 밑도리는 돌을 끼워 넣었으나 나머지는 그냥 흙만 다져 복원했다. 그래서 졸지에 팔자에
도 없는 토성이 되버린 은대리성. 이러면 이곳이 토성인줄 알지 누가 석성으로 보겠는가? (나
도 토성으로 알았음..)

▲  남벽과 마주한 남문터 서쪽

▲  동벽 중앙 부분

▲  동벽 동쪽

▲  동벽 내부


▲  동벽 남문터에서 바라본 천하 (보건의료원 산책로와 소나무숲, 한탄강)

▲  동벽 동쪽에서 바라본 천하 (보건의료원 산책로, 소나무숲)

▲  토성이 되버린 동벽 윗쪽
지금은 토성이라 이런 곳에서 과연 수비가 가능할까 싶겠지만 나중에 석성으로
재현된다면 지금과 180도 달리 보일 것이다.

▲  동벽과 성 내부

▲  은대리성 내부
지금은 온통 초록 도화지라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곳에는 건물과 군사 주둔지가
있었다. 성 내부와 건물, 주둔지의 모습, 군사들의 삶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이 없는 실정, 그러니 저 푸른 도화지에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보자.

▲  푸른 수풀 너머에는 북벽이 있었다. (북벽도 벼랑임)

▲  남벽에 설치된 목책 - 목책이 여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  수풀과 뒤엉킨 남벽 목책

▲  도랑 흔적
도랑은 빗물이나 생활용으로 쓰인 물을 바깥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성 안에서
아직 우물터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식수는 인근 산이나 한탄강에서
힘들게 운반했을 것이다.

▲  남벽 목책 너머로 보이는 한탄강

▲  서쪽에서 바라본 은대리성 내부

▲  은대리성 내부를 가로지르는 황토색 산책로


♠  한탄강전망대와 3형제바위

▲  은대리성에서 전망대로 가는 숲길 입구

은대리성은 조그만 성이라 학술조사나 정밀 답사까지 벌이지 않는 이상은 금방 둘러본다. (길
어봐야 30~40분, 보통 사람은 10~20분 정도) 그래서 좀 싱거울 수 있는데, 이것이 은대리성의
전부는 아니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대륙을 누비던 통 큰 고구려의 성곽 유적인데 설마
이것으로 끝나겠는가..? 고구려 유적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성 서쪽을 보면 우거진 숲이 보일 것이다. 솔내음이 그윽한 숲 오솔길을 따라가면 그 길의 끝
에 한탄강전망대가 자리한다. 소나무숲과 전망대도 엄밀히 따지면 은대리성 내부로 성곽 서단
(西端)에 해당된다.


▲  은대리성에서 전망대로 인도하는 숲길 ①

▲  은대리성에서 전망대로 인도하는 숲길 ②

▲  은대리성에서 전망대로 인도하는 숲길 ③

▲  벼랑에 자리한 한탄강전망대

오솔길 끝에 자리한 전망대는 의자가 여럿 있는 것이 전부인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전망대이다
. 이곳에 서면 한탄강(왼쪽)과 차탄천(오른쪽)이 하나가 되어 하류로 흘러가는 현장이 보이는
데 여름의 기운을 먹고 자란 수풀 때문에 완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난간에 오르거나
난간 너머에서 아슬아슬하게 보거나, 겨울에 와서 보던가 해야 제대로 보인다.
한탄강 물소리가 얼마나 패기가 진한지 여기까지 울린다. 차탄천 너머 서쪽은 군남면 지역이
고, 한탄강 너머 남쪽은 전곡읍 고능리이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탄강 (파주 방향)

▲  수풀에 가려 보일까 말까하는 삼형제바위

전망대에는 조그만 안내문이 있는데, 그 안내문에는 임진강과 차탄천 합류지점에 있는 삼형제
바위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담겨져 있다. 삼형제란 이름 그대로 조그만 바위 3개가 나
란히 수면 위에 고개를 들고 있는데, 무성한 수풀이 시야를 방해하여 본의 아니게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인 어느 옛날, 어느 과부가 삼형제를 기르고 있었다. 그들 형제
는 우애가 참 깊었는데 어느 날 여름, 일을 하다가 무더위에 지쳐 한탄강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막내가 부주의로 깊은 곳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그를 구하고자 형들이 다가갔지만 결국
그들 모두 강제로 저승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졸지에 아들을 모두 잃은 과부는 강가로 달려가 3달 동안 대성통곡을 했는데, 3달 뒤에 삼형
제의 형상이 강 가운데에 나타나더니 그대로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이후 해마다 이곳에서 익사사고가 발생하여 큰 바위에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 그들을 달
랬다고 전했다고 하니 전설을 통해 인근에 살던 삼형제가 강에서 사고를 당하자 그들의 넋을
달래고자 제사를 지내면서 바위를 그들의 화신으로 삼은 모양이다. 설마 그들의 시신이 바위
로 변할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전망대에 잠시 머물며 한탄강의 유유히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시간은 어느덧 19시가
되었다. 여름이라 낮이 무척 길어 아직도 한낮 같고 더위의 기운도 거의 여전한 것 같다. 다
만 한탄강의 보우로 그 기운이 많이 수그러들었고 땀이 나오기가 무섭게 강바람이 그들을 털
어가니 땀도 나오는 것을 포기한다.

전망대를 나와 은대리성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고 연천군보건의료원을 거쳐 전곡읍내로 나왔
다. 이렇게 하여 은대리성 여름 나들이는 그 막을 고한다.

* 은대리성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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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5월 1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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