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북악산·북악산길

도봉산고양이 2021. 5. 19. 09:20


1. 한양도성 창의문(자하문)

서울 도심의 북현무인 북악산(백악산, 342m)과 서울 도심의 우백호인 인왕산(339m)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
이 있다. 그곳은 서울 도심부와 부암동, 평창동, 신영동을 잇는 자하문고개로 그 고개에 한양도성 4소문의 
일원이자 북소문인
창의문이 있다.

 

창의문은 성밖 부암동의 계곡 이름을 따서 자하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1396년 한양도성을 지을 때 조성
된 것으로 문의 이름인 '창의
(彰義)'는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다. 14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
아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해 1416년에 문을
아걸었다. 다만 1422년 군인들의 통로로 쓰인 적이 있고, 1617년 창덕궁을 보수할 때 이 문을 통해 석재
를 운반했다. 또한 성밖 부암동 지역에 왕족과 귀족들의 별장과 그들의 즐겨찾기 명소가 즐비하여 그들의

통행로 역할도 했다. 즉 철저히 나라 일과 높은 작자들에게만 문을 허락했던 것이다.

1623년 광해군의 정치에 쓸데없이 불만을 품은 서인 패거리의 김유, 이귀, 이괄 등은 세검정에서 칼을 씻으
며 역적질을 모의, 역촌동 별서에 있
던 얼떨떨한 능양군(인조)을 앞세워 도성에 쳐들어가 광해군을 폐위시
킨 이른바 인조
반정을 저질렀다. 그때 그 반역도당들이 들어간 문이 바로 창의문이다. 그래서 문루에는 인
조반정을 저지른 작자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문이 백성들에게 전격 개방된 것은 1741년이다. 그때 훈련대장 구성임이 인조반정 때 의군이 진입한 곳
이라며 성문을 중수하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문루를 다시 세
울 것을 건의해 지금의 문루가 지어졌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서소문(소의문)은 왜국 통감부가 만든 성벽
처리위원회에서 1908년에 무단 철거했고 동소문(혜화문)은
왜정 때 없어진 것을 근래에 다시 지었다. 남소
문인 광희문은 성문만 오래되었을 뿐, 문루
와 성곽은 1970년 이후에 복원되었다. 그에 비해 창의문은 6.25
때도 총탄이 알아서 비켜가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며, 1958년 중수한
것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 정정함을 과
시한다. 바로 그런 점이 인정되어 2015년 12월 2일, 국
가 보물로 특진되었다. 

 

오랫동안 도성 성문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으나 1960년 이후 자하문고개를 밀어내고 신작로를 닦으면서 성
문의 통행 기능을 잃게 되었다. 요즘이야 산꾼과 답사꾼, 나들이꾼들로 심심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예전 같
지는 못하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물건이든 현역에서 물러나 뒷전에
물러나 앉은 모습은 정말 초라하고 쓸
쓸하기 그지없다.


문 서쪽에 신작로를 내면서 한양도성은 50m 남짓 끊어져 있다. 끊어진 반대쪽<현재 윤동주시인의 언덕과
청운공원이 들어서 있음>
을 애타게 바라보는 인왕산 쪽 성벽이 견우와 직녀를 보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끊
어진 구간은 도로 위에 흙을 덮어 성벽을 세우지 않는 이상
은 복원은 어려우며, 창의문 바로 앞에는 북악산
길이 지나가 시야를 제대로 방해한다. 

2. 창의문의 고색창연한 뒷모습 (남쪽, 성내에서 바라본 모습)

창의문 바로 앞에는 성벽처럼 높이 다져진 공간이 있는데, 그 위에 북악산길이 지나간다. 하여 성문 밖 조망
은 막혀있다. 문 안쪽 동쪽에는 북악산(백악산) 주능선으로 인도하는 창의문안내소가 있으며, 그곳을 통해
북악산 주능선으로 들어서면 된다. (여름에는 9~17시, 봄과 가을에는 9~16시, 겨울에는 9~15시까지 입장,
퇴장은 최종 입장시간+2시간까지)

3. 창의문 성문 천정에 그려진 봉황(또는 닭)과 구름무늬

창의문에는 그만의 매력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빗물이 잘 흘러가도록 문루 바깥 쪽에 설치된 1쌍의 누혈
장식으로 이것은 연꽃
잎 모양으로 조각되어 성문의 매력을 수식해주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성문 천정에 그
려진 봉황 1쌍으로
속설에는 봉황이 아닌 닭이라고 하는데, 성문 밖 부암동 지형이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비보풍수에 일환으로 그 천적인 닭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림을 가만
히 보면 머리와 목, 날개는 닭을 많이 닮
았다. 허나 몸통과 꼬리는 닭과는 거리가 먼 봉황의 모
습이다.

봉황이 1마리가 아닌 둘이 있는 것을 보면 암수 1쌍일 것이다. 그들 주변으로 와운문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신선의 오색구름처럼 영롱하게 그려진 구름 모습이 마치 물결의 거센 소용
돌이를 보는 듯하다.

4. 창의문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자하문고개 신작로가 닦이기 이전 모습으로 지금보다 파릇파릇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