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강화도(강화군)

도봉산고양이 2021. 6. 10. 09:35


1. 강화 초지진(초지돈대)

초지진은 강화초지대교 북쪽 강화해협 해변에 자리한 성곽 유적이다. 바다를 통해 강화도나 서울로 기들어
오려는 외적을 막고자 1655~1656년에 강화유수 홍중보가 세웠는데, 1871년 신미양요와 1875년 운양호 사
건 때 크게 고통을 받은 우울한 현장이기도 하다.
1871년 강화도를 공격한 미국 양키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무차별 포격해 점령했다. 그
때 미국 양키들은 3명이 죽은데 반해 조선군은 수백 명이 전사하고 군기고와 화약창고, 성곽 방어 시설 상
당수가 파괴되었으니 참으로 우울하다 못해 암이 걸릴 지경이다.
그리고 1875년 또 다시 개망신을 당하니 바로 왜국 운양호 사건이다. 운양호가 강화해협을 기웃거리며 시

비를 걸자 보다못한 조선군이 먼저 공격을 가했고, 이때다 싶어 무차별 포격을 가해 초지진은 또 초토화가
되고 만다. 

이후 폐허의 상태로 버려져 돈대터와 성곽 일부만 아련히 남아있던 것을 1973년 초지진의 일원인 초지돈대

만 복원했다. 초지진이 광성보, 덕진진에 비해 규모가 작은데 이는 초지진을 모두 재현한 것이 아닌 초지진
에 속한 초지돈대만 복원해서 그렇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것은 초지진의 초지돈대이다. 그 작고 우울한 공
간을 강화군은 유료의 공간으로 삼아 입장료를 받고 있다. 

2. 초지진 소나무 (강화군 보호수)

초지진에는 강화군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느티나무가 2그루 있다. 그들의 추정 나이는 400년 정도(2015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치)로 아랫 사진의 나무는 높이 12m, 나무둘레 2.8m이다. 

이들은 강화유수 홍중보가 1656년에 초지진을 조성한 기념으로 심은 것으로 여겨지며, 굵은 줄기가 위로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가지가 늘어났고 그로 인해 삿갓 모양으로 쳐지면서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수형을 지니게 되었다.
건강 상태도 양호하나 초지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 때 포탄 파편을 적지 않게
받아 그때 생긴 상처 자국이 역력하다. 

참고로 신미양요 때 미국 양키 대령인 슐레이란 작자는 초지진을 점령하고 이런 전쟁 후기를 남겼다.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를 한 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로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

한 미군에 대항해 용감하게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고자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

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3. 초지진 소나무 (강화군 보호수)

추정 나이는 400년 정도(2015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기준), 높이 10m, 나무둘레 2.3m이다. 

4, 초지진 주차장에서 바라본 강화해협과 강화초지대교

서해바다를 통해 서울을 공격하려면 강화해협을 거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여 17세기 이후, 조선 조정은
강화해협에 진, 보, 돈대 등의 군사시설을 주렁주렁 닦아 방어력 상승을 꾀했다. 허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양넘들에게 뚫리고, 1871년 미국 양키들에게 털렸으며, 1875년에는 왜열도 애들에게도 털리니 기
껏 백성과 군사들을 동원해 닥달하여 쌓은 군사시설이 중원대륙의 만리장성처럼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것이 오랫동안 부국강병을 등한시하고 국제 정세에 한심하게 대처했던 동아시아의 대표 호구 국가 조선
의 한계였던 것. 이럴 때는 진짜 너른 대륙과 바다를 다스렸던 옛조선(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가야연맹, 발
해, 고려, 금이 사무치게 그립다.

5. 초지진주차장에서 바라본 강화해협과 김포 대명포구(대명항)

6. 남쪽(초지진 주차장)에서 바라본 초지진과 400년 묵은 소나무들

7. 서쪽에서 바라본 초지진(초지돈대)

8. 초지진 안내문과 안내도

9. 신미양요 시절 초지진의 모습을 담은 빛바랜 흑백 사진

1871년 6월 10일 미국 양키군은 2시간 동안 맹렬하게 함포 사격을 가해 초지진을 정신없이 유린한 다음,
16시 경에 상륙하여 거의 무혈점령했다. 이곳을 점령한 양키 잡것들은 기념 사진을 여럿 남겼는데, 포격을
받지 않은 초지돈대의 성문, 성벽 사진과 포격으로 박살이 난 초지돈대 내부 사진, 그리고 초지돈대에서 바
라본 덕진돈대의 원경 사진이다. 

10. 북쪽에서 바라본 초지진(초지돈대)

초지진은 북쪽 문을 통해 들어서면 되는데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 된다. (어른 700원, 학생과 어린이는 500
원) 그냥 지나칠까 했으나 입장료가 3자리 수라 있는 동전을 털어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유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11. 초지진 화포

1973년에 초지진을 복원하면서 장식용으로 설치한 화포이다. 이곳 뿐 아니라 갑곶진, 덕진진, 광성보 등은
이런 화포를 설치해 이들이 19세기 말, 혼란기의 극한 현장이었음을 알려준다. 

12. 초지진 포문

화포는 성곽 밑에 닦인 화포문(포문)에 두어 포격을 가했다. 조선은 초기까지만 해도 화약 무기가 엄청 발달
해 명나라를 능가하는 화약 강국이었으나 세조 이후 쇠퇴했으며, 임진왜란과 광해군, 효종 시절에 잠깐 발
전을 거듭하다가 다시 쇠퇴시켜 완전 나락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프랑스와 미국, 왜의 화포에 비해 사정 거리도 개판, 화력도 개판, 그리고 군사도 개판이니 개털리는 것은 어
쩌면 당연하다. 

13. 초지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과 강화초지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