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안양·과천·군포·의왕

도봉산고양이 2021. 7. 16. 02:16

 

1. 의왕시 김유선생묘, 김유신도비

백운사 서쪽인 왕곡동 안골 산자락에 김유묘가 있다. 안골을 비롯한 백운사 서쪽 산자락에는 김징(김유의
부친), 김유, 김인백, 김우증 등 청풍김씨 집안의 무덤이 많이 둥지를 틀었는데, 청풍김씨에서 이들 묘역을
관리하고자 1894년에 산불로 파괴된 백운사를 그 밑으로 옮겨 재건하고 묘역의 원찰로 삼았다. 

무덤의 주인인 김유(1653~1719)의 자는 사직, 호는 검재로 김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의길의 딸이다. 어
렸을 적부터 학문에 소질이 깊어 박세채가 그를 후계자로 삼았으며, 송시열도 그의 재주를 중히 여겼다고

전한다.

1674년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쓸데없는 예송 다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송시열과 박세채가 떨려나자 과거
를 포기하고 경기도 이천으로 내려가 은거했다.

1683년 사마시에 합격, 경학으로 추천받아 창릉 참봉이 되었으며, 정랑을 거쳐 169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찬수낭관이 되어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했다.

1715년 황해도관찰사를 지내고 이조참판 겸 양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서흥 화곡

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이며, 남긴 서적으로는 소학집주, 증보주자외기, 존주록, 검재집 등이 있다.

 

묘역 밑에 자리한 신도비는 1744년에 마련된 것으로 이관명이 비문을 짓고, 윤득화가 글씨를 썼으며, 유척
기가 전액을 했다. 커다란 비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로 마무리를 지은 형태로 김유의 생애와 업적이

빼곡히 적혀 있다. 비석 옆에는 지붕돌 1기가 누워있는데, 그는 이 신도비의 원래 지붕돌로 근래 지붕돌을
갈면서 바닥에 내려앉은 신세가 되었다.

김유 묘 밑에는 그의 자식들인 김취노, 김약노의 묘가 있으며, 무덤 봉분들이 하나 같이 둥근넓적한 모습이
다.


김유묘도 그렇고 이 다음에 언급하는 김인백(그의 증손자가 '김유'임) 묘도 그렇고 조선 중~후기 무덤 양식
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비지정문화재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묘역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없어 정말
관심이 없으면 찾기도 어렵다. (다행히 다음카카오지도에 이들 묘역이 표시되어 있음)

참고로 1716년에 제작된 김유의 초상화가 있는데,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초상화는 문중 사당에서 관
리했으나 신변 보호를 위해 경기도박물관에 의탁했다.

2. 김유 묘 밑에 자리한 만휴 김약노와 연안이씨 부부묘
만휴 김약노(1694~1753)는 김유의 아들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했던 김상노의 형이다. 숙종~영조
시절에 노론의 영수로 위엄을 날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3. 근래 세워진 만휴 김약노와 연안이씨 묘표

4. 김취노와 한산이씨묘

김취노는 김유의 아들로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묘표(묘비)를 따로 두지 않고 상석에 무덤 주인의 이름을 새
겼다. (김유의 아들은 이름 끝자가 '노(魯)'자 돌림임)

5. 김취노묘 상석에 새겨진 글씨들

상석이 묘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6. 김유와 전주이씨, 여산송씨 묘

묘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들어앉아 자식들의 묘를 굽어보는 김유묘는 김유와 그의 전처인 전주이씨, 후처인
여산송씨의 합장묘이다. 호석이 둘러진 둥근 넓적한 봉분과 상석, 묘표(묘비), 향로석, 망주석, 석양, 문인석
을 지니고 있다.

7. 정면에서 바라본 김유묘

8. 뒤쪽에서 바라본 김유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