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용인·이천·안성

도봉산고양이 2021. 7. 20. 00:52


1. 안성 청원사입구
안성의 서북쪽 끝으머리인 원곡면 성은리 천덕산 남쪽 자락에 청원사란 오래된 절이 있다. 비록 안성 땅이
긴 하나 안성의 서북쪽 변방이고 오산, 용인과 더 가까운 곳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오산에서 접근하
는 것이 편하다. (1호선, 경부선과 만나는 오산역환승센터에서 평택마을버스 11번이 40~60분 간격으로 청
원사입구 성은리까지 운행함) 

성은리 정류장, 청원사입구에서 통심길이라 불리는 1.5차선 크기의 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그 길의 끝에

청원사가 있다.

2. 청원사 밑에 있는 성은지(성은낚시터)

천덕산이 베푼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작은 저수지로 주변 풍경이 좋고 물고기가 잘 잡혀 낚시터로 명성이
자자하다.

3. 청원사 밑에 있는 부도탑 2기와 지붕돌 비석

지붕돌 비석은 청원사에 크게 재정적 지원을 주었던 이장현과 황조수를 기리는 대시주공덕비이고, 가운데
에 키 작은 늙은 부도탑은 자세한 것은 전하지 않으나 생김새로 보아 조선 후기~20세기 초반 것으로 보인
다. 그리고 오른쪽에 키가 큰 부도탑은 근래 지어진 것으로 설담당정명대화상의 탑이다. (경내에 고려 충렬
왕 시절 승려인 '안제'의 부도탑이 있다고 하나 확인하지 못했음)

4. 청원사 경내 (대웅전 뜨락)

천덕산(335m) 남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청원사는 화성 용주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이를 입증할 유물과 기록은 없는 실정이며, 창건 당시 산에 푸른 안개가 끼어 있어서 절 이름을 청원사라 했

다고 전한다.

1973년(또는 1975년) 도공이 대웅전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을 개금했을 때 아미타불 뱃속에서 사경을 비롯한
여러 전적, 문서들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한자만 조금 다른 '청원사()'라 나와있다. 허나 1481년에 편
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현재 절 이름인 청원사(寺)가 나와 조선 초에 이름이 약간 바뀌었음을 알려준
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터지고 인조와 그의 신하들이 남한산성으로 급히 줄행랑을 쳐 힘겨운 겨울을 보내
자 이를 돕고자 의병 1,000명이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이곳에서 안전하게 대피했는데, 하늘의 덕으로 피신
했다고 해서 산 이름을 천덕산이라 했다고 한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극락전 등 7~8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
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과 7층석탑, 고려 말에 종이로 만들어진 희귀한 형태의 건칠아미타여래좌
상, 후불탱, 부도탑이 전한다. 그리고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뱃속에서 나온 유물 중 '감지은니 보살선계경 권
8'은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서울 동국대박물관에 가 있으며, 나머지 유물은 '안성 청원사 건칠아미타여래좌
상 복장전적'이란 이름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그들도 신변 보호를 위해 용주사 성보박물관으로 자
리를 옮겨서 청원사에는 관련 복장유물이 아무것도 없다.

5. 천덕산을 뒷배경으로 삼으며 남쪽을 향하고 있는 청원사 

6. 청원사7층석탑

대웅전 앞에 우뚝 솟은 7층석탑은 110㎝ 크기의 정방형 석재 3매로 구성된 바닥돌 위에 1층 기단과 7층의
탑신을 얹힌 3.45m 높이의 늘씬한 탑이다.
탑 기단은 수미단 형태로 하대석 상면과 상대석 하면에 복련 형식의 연잎 문양을 조각했고, 측면에는 각 면
4구씩 안상 문양을 표현했다. 그리고 기단 면석은 4매의 판석을 닦았는데, 모서리에 측면 기둥인 우주를 형
식적으로 새겼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구성했는데, 7층은 2매의 부재를 사용했다. 탑신석의 네 모서리는 둥
글게 처리했고, 각 면에는 양 우주가 선각되어 있으며, 옥개석 하단에는 1단의 얕은 받침이 있고 물끊기 홈
을 새겼다. 낙수면 경사는 급하고, 처마선은 중앙에서 수평을 이루다가 좌우 끝에서 지붕 끝을 살짝 올리고

있으며, 탑 꼭대기에는 보주 등의 머리장식을 달았다.
세부 양식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했고, 기단에 표현된 안상 등을 보아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7. 옆에서 바라본 청원사7층석탑의 위엄

7층석탑 옆에는 2층 정도 되어보이는 조그만 탑이 있다.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훨씬 작은 이 탑은 절에
흩어져 있던 늙은 탑재를 모아서 엮은 것으로 옥개석을 기단석으로 삼아 그 위에 2층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
렸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6.25전쟁이나 불의의 사고로 탑이 파괴되거나 분해된 것으로 보이며, 원래는 3층석
탑으로 7층석탑과 대웅전 뜨락에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8. 기원의탑 표석

7층석탑과 키 작은 석탑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기 이전부터 득남, 자손의 수명과 금제를 탑에 기원하면
1가지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하여 절에서 이들을 기원의 탑으로 삼아 홍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