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용인·이천·안성

도봉산고양이 2021. 7. 22. 07:35


1. 청원사 대웅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대웅전은 청원사의 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처음 세워진 시
기는 전하지 않으나 2001년 건물 수리 때 고맙게도 상량문이 발견되어 1740년과 1854년에 크게 중수했음
을 알려주고 있다. 

커다란 자연석을 2단으로 겹쳐 쌓은 기단에 자연석 초석과 원기둥으로 몸통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닦았
는데, 지붕 아래쪽 처마와 기둥 사이에는 건물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는 공포를 두었다. 앞쪽은 기둥 위와 기
둥 사이에 공포를 둔 다포 양식이나, 뒤쪽은 기둥 위에만 간단하게 조각한 익공을 올렸으며, 앞쪽 공포는 기
둥 위에 올린 공포만 가장 위쪽에 다른 부재보다 두껍고 굵은 부재를 올렸는데, 이런 모습은 임진왜란 이전
건축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건물 앞쪽은 다포와 서까래, 부연을 모두 쓴 겹처마로 구성했는데, 뒤쪽은 익공에 서까래만 사용한 홑처마
모습으로 절의 형편이 어려운 시기에 이전의 좋은 부재는 모두 앞쪽에 두고 뒤쪽은 형편에 맞춰 간소하게
처리한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물 앞쪽의 공포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에서 건물이 최소 15~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2. '극락세계'란 한글 현판을 내민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작은 맞배지붕 집으로 극락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3. 대웅전에 봉안된 건칠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3존상)

대웅전 불단에는 그 흔한 석가여래상 대신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아미타3존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
다. 어깨가 축 내려온 아미타여래상은 지금은 금동 피부로 있지만 원래는 종이로 만들어진 천하에서 그리
흔치 않은 지불로 산듯하게 금동 피부로 도금을 했다.
1973년 개금을 했을 때 그의 뱃속에서 많은 복장유물이 나왔는데, 1280년에 고려 충렬왕이 발원한 감지은
니보살선계경 8권과 '아진견불자(我鎭見佛者) 청원사일동(淸願寺一同)'이란 묵서가 쓰인 비단, 그리고 많은
전적이 쏟아져 나왔다.
감지은니보살선계경 권8은 1982년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서울 동국대박물관에 가 있으며, 나머지 유물은
'안성 청원사 건칠아미타여래불좌상 복장전적'이란 이름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신변 보호를 위해 용주

사 성보박물관에 가 있다. 즉 아미타불 복장유물은 청원사에 없다.

이 아미타불은 122cm 높이로 복장유물을 통해 고려 중/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청원사에서 가
장 늙은 존재가 된다. 1973년 개금을 통해 다소 변형이 되었는데, 예전에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세워서 손
바닥을 바깥을 향하게 하고 엄지와 장지를 맞대고 있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서 약간 들어올려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장지를 맞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양손을 들어 가슴 앞에서 아미타인을 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손목을 끼울 때 실수로 손바닥의 위치가 반대로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래된
존재임에도 어떠한 지정문화재로도 지정되지 못한 모양이다.

좌우 보살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나무로 만들어 도금을 입혔는데, 높이는 95~97cm이며, 관세음보
살과 대세지보살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1891년에 조성된 후불탱이 든든하게 걸려있다. 

4. 대웅전 지장탱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명부(저승)의 식구들이 담겨져 있다.

5. 법당 지킴이인 대웅전 신중탱

6. 청원사 불식(不識)선원
참선, 수행 공간으로 쓰이는 건물로 경내에서 가장 큰 집이다. 

7. 청원사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과 독성(나반존자), 칠성의 보금자리이다. 

8. 삼성각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청원사 경내
바로 앞에 뒷통수를 보인 커다란 맞배지붕 집이 대웅전이고, 그 옆에 작은 집이 극락전이다.

9. 삼성각 칠성탱과 그 앞에 선 하얀 피부의 석불입상

10. 산신 가족이 담겨진 삼성각 산신탱

11. 독성 식구들이 담겨진 삼성각 독성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