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송파구·강동구

도봉산고양이 2021. 9. 13. 01:38


1.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충헌공 김구 묘역

몽촌토성 서벽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서 왼쪽(동쪽)을 잘 살펴보면 소나무숲 너머로 철책이 둘러진 공간이
보일 것이다. (주마간산처럼 움직이거나 토성길에 완전히 빠져있으면 지나치기 쉬움~) 그 철책 안에 올림
픽공원에 숨겨진 옛 명소, 충헌공 김구 묘역이 조용히 들어앉아 있다.

묘역의 주인공인 충헌공 김구(1649~1704)는 청풍김씨 집안으로 김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참봉 이의길
의 딸이며, 자는 사긍, 호는 관복재이다.
1669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683년 춘당대 문과에 장원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적과 각 조의 낭관
을 거쳤고, 사헌부와 사간원에 있을 때, 노론과 소론의 계속되는 대립을 조정하려고 만언에 가까운 시무소
를 올리는 등 애를 쓰기도 했다.

경연관과 승지, 황해도와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관찰사를 지냈고, 대사간을 거쳐 1697년 강화유수가 되어
장녕전을 경영해 공을 세웠다. 허나 흉년으로 모든 역사가 중지된 마당에 내전의 명을 받아 집을 지었다고 
해서 오도일, 이광좌 등에게 탄핵을 받기도 했다.

김구가 잘한 일을 하나 끄집어 본다면 바로 단종 부부의 원통한 넋을 조금이라도 풀어준 것이다. 그는 판
결사로 있을 때 노산군의 복위를 숙종에게 건의했다. 하여 노산군은 강제로 눈을 감은지 241년만인 1698
년에 비로소 단종이란 묘호를 받게 된다. 또한 단종의 부인인 송씨의 묘도 능으로 추봉할 것을 건의해 사
릉이란 능호를 받게 했으며, 사릉 능역 공사를 맡아 그 공으로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렇게 단종 부부에게 큰 선물을 준 그는 1703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1704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니
숙종은 충헌이란 시호를 내렸다.

김구는 제왕의 위엄에 굽히지 않았고, 의리에 따라 처신했으므로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
았다. 육도와 도가 관련 서적에 정통했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에 패기가 넘쳤다. 그가 남긴 글씨로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백천교중창비'와 경상도 선산(구미)에 있는 '김주신도비'가 있다.

그는 말년에 몽촌토성에 거주했는데, 광주유수(그 시절 몽촌토성 지역은 경기도 광주목 관할이었음)가 자
주 찾아와 인사를 했다고 하며, 비록 죄인이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김구의 허락을 받아야 잡아갈 수 있었다
고 하니 몽촌 지역에서 그의 영향력이 제법 컸음을 알려준다.

묘역에는 호석을 낮게 두룬 커다란 봉분과 비석, 상석, 망주석 1쌍과 양석 1쌍이 있으며, 양석은 근래에 조
성되었다. 

2. 철책 안에 자리한 충헌공 김구 묘역
묘역 보호를 위해 묘역 주위로 바짝 철책을 둘렀다. 그 철책이 묘역 접근을 막고 있지만 묘역을 관람하는데
별 지장은 없다. 그러니 애써 철책을 넘지 말고 밖에서 조용히 둘러보고 사진에 담으면 된다. 

3. 동쪽에서 바라본 충헌공 김구 묘역

4. 충헌공 김구 신도비

묘역 동남쪽에는 김구의 행적을 머금은 신도비가 있다. 이 비석은 1743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이의현이
지었으며, 글씨는 서명균이 썼다.
270년이 넘은 늙은 비석이지만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하얀 피부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네모난 비좌 위
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무기 2마리가 다투는 모습을 새긴 지붕돌을 얹혔는데, 조각 솜씨가 매우 현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