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남부(수원·화성·오산·평택)

도봉산고양이 2021. 9. 18. 06:15

 


1. 용주사 일주문

수원에서 가까운 화성시 송산동에 화성 지역의 대표 고찰로 추앙받는 용주사가 있다. 이곳은 초등학교 이후
거의 30년 만에 방문으로 그때는 정말 시골 한복판이었는데, 개발의 칼질이 절 주변까지 요란하게 칼춤을
추면서 절 동쪽에 시내 같은 너른 마을(송산동)이 생겨났고, 절 서쪽에도 태안3지구 개발로 시끌시끌하다.

용주사의 정문인 일주문은 팔작지붕을 지닌 건물로 가운데 칸에 문이 있어 마치 천왕문이나 금강문 같은
모습이다. 예전 용주사의 정문은 더 안쪽에 자리한 삼문으로 절 남쪽을 지나는 용주로까지 경역을 확장하
면서 이곳에 일주문을 두고, 그 앞에 가건물식 매표소를 두어 입장료를 챙긴다. 하여 여기서 소정의 입장료
를 내고 일주문을 통해 유료의 공간인 용주사 경내로 발을 들인다.

2. 일주문에서 경내로 인도하는 돌다리와 숲길
일주문을 지나면 돌다리가 짧게 나타난다. 그 다리를 건너며 마음에 온갖 것들을 다리 밑에 흐르는 개울에
내던지고 소나무숲이 베푼 솔내음에 번뇌를 흩날리며 한발자국씩 경내로 다가선다.

3. 경내로 이어지는 소나무숲길 (효행박물관 입구)

4. 용주사 홍살문

일주문에서 소나무숲길을 지나면 삼문 앞에 세워진 홍살문이 마중을 한다. 절에서 홍살문이 있는 경우는 계
룡산 동학사와 이곳이 거의 유일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케이스인데, 이렇게 사찰 문 앞에 홍살문을
세운 것은 정조 임금이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자 용주사를 세우고 그의 사당인 호성전을 건립
해 위패를 봉안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용주사에서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로 유명한 헌경왕후 내외, 그리고 정조와 효의왕후 내외에게 1
년에 6번씩 재를 지냈으나 1907년에 중단되고 만다.
이후 무려 100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2008년 6월 24일 사도세자 제246주기 제향을 지냈고, 어느 세월이 잡

아갔는지 감쪽 같이 사라진 홍살문을 복원하고 호성전의 현판을 제막했다. 

5. 용주사의 보물창고인 효행박물관

용주사 소장 문화유산을 비롯해 용주사가 관할하고 있는 경기 남부 지역 사찰의 문화유산을 가득 머금고 있
다. 용주사에 왔다면 이곳의 보물창고인 효행박물관은 꼭 둘러보기 바라며, 내부는 사진 촬영이 통제되어
있으니 요령껏 사진에 담거나 두 망막에 조용히 담기 바란다. 나는 촬영 중간에 제지를 받아서 일부만 사진
에 담았다. 

5. 용주사5층석탑

효행박물관 앞에 자리한 탑으로 그는 원래 용주사 것이 아닌 부근에서 방황하고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다. 
탑 높이는 4.5m로 귀꽃모양의 안상이 새겨진 바닥돌을 땅바닥에 두고 그 위 기단면석에 위패형의 사각을 

모각했으며, 1층 탑신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고, 1,2,3층 옥개석에는 4단의 옥개받침이 있으나 4층만 2단으
로 이루어져 있다. 

5층 옥개석과 머리장식은 하나의 돌로 조성했으며, 각 옥개석의 처마끝에는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전
이 없는 수직으로 처리했다. 이처럼 기단부에 안상이 있고 체감률이 적은 탑의 특징 등을 통해 고려 때 조
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6. 5층석탑 1층 탑신에 진하게 깃든 자물쇠 모양의 문비

7. 맵시가 좋은 용주사5층석탑과 그 너머로 보이는 효행박물관

8. 효행박물관에 있는 용주사 상량문

금색 피부를 지닌 커다란 문서로 1790년에 채제공이 정조의 명을 받아 지은 용주사의 상량문이다. 가로 15
cm, 세로 94cm 규모로 청나라 소주에서 직조한 주황색 비단에 글씨를 남겼는데 유려한 필치와 문장으로
용주사 창건 내용과 제왕(정조)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다.
상량문의 내용은
'아름다운 염부(閻浮)의 나무가 있는 대지인 이곳 화산은 명산 속리산(俗離山)에서 지맥이 뻗어내려 북으로
오육백리 지점이다. 지세의 변화는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조화롭게 서려있고 황홀히 구름을 타는 듯한 산천
은 맑고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상전하(정조)께서 지극한 효성을 다해 선왕의 능침을 이곳에 정하고 상서로운 땅에 무한한 정성을 기울여
절을 지어 자복사(資福寺)로 삼았으니 절이 완성된 후 영원토록 등불이 이어져 재해를 막고 나라에 복이 깃
들며 길이 선침(仙寢)의 수호신이 될 것이며 아울러 국왕의 만수무강을 빈다'

채제공(1720~1799)은 정조 시절에 크게 활약했던 인물로 이 상량문을 작성했던 시절에는 좌의정으로 있었
으며, 이후 3년 동안 왕과 독대하며 국정을 살폈다. 

9. 효행박물관에 있는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
이 서적은 정조 임금이 석가여래를 받들고 복을 기원하고자 1796년 5월에 직접 쓴 게송이다. 가로 4.5cm,
세로 68cm의 닥나무 종이로 엮은 2권의 서적으로 글씨는 해서체인데, 제왕이 직접 쓴 어제본답게 가장자

리를 청동으로 제본하고 5개의 연꽃무늬로 장식했다. 

내부는 붉은 선으로 굵게 경계선을 그리고 그 안에는 붉은 색의 가는 선으로 칸을 나눠 글을 썼으며, 글은
일종의 불교식 가사체로 먼저 절의 내력을 간략히 말한 후 ①초서분(初序分) ②정종분(正宗分) ③결게분(
結偈分)으로 나누어 게송을 썼다.
이렇게 기복게를 지은 취지를 '절은 현륭원의 재궁(齋宮)으로 건립했다. 소자(정조)는 84,000법문의 경의
(經義)를 베껴쓰고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받아 삼가 게어를 지어 삼업(三業)의 공양을 본받아 은혜에 보답
하는 복전을 짓는다'
하고 부모에게는 길러준 은혜가 있으니 공경으로써 공양하면 이것이 바로 보은의 길이라 하여 아버지 사
도세자에 대한 효심을 표현했다. (정조는 그의 생애 동안 무려 184권 100책에 달하는 글을 작성했음)

10. 불설대부모은중경 경판

불설대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한 경전으로 조선 때 많이 간행되었다. 용주사
에 있는 이 경판은 정조의 명으로 제작된 것으로 목판과 동판, 석판이 전하고 있는데, 목판 외에 동판, 석판

등 다양한 재질로 판각한 것은 천하에서 매우 희귀한 예로 주목을 받는다. 

특히 변상도의 경우 섬세한 묘사와 필치가 그 시절 크게 활약했던 단원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하여 당시 궁
중화원으로 있던 그가 참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11. 불설대부모은중경 경판으로 찍어낸 서적
천하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를 시작한 곳이 바로 이 땅이다. (고려 13세기) 그 인쇄술은 고려 말기를 거쳐 조
선까지 이어졌는데, 목판이나 동판 등으로 경판을 만든 다음 그것을 찍어서 서적으로 냈다. 

12. 효행박물관 뜨락의 견고한 돌덩어리들
조그만 동자석과 석탑의 석재로 여겨지는 돌덩어리, 움푹 낮은 탑신을 지닌 키 작은 다층석탑(9층이나 10층
탑으로 여겨짐, 언제 것인지는 모르겠음) 등이 효행박물관 뜨락을 아낌없이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