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남부(수원·화성·오산·평택)

도봉산고양이 2021. 9. 19. 03:44


1. 안쪽에서 바라본 홍살문

붉은 피부에 차갑게 생긴 홍살문은 왕릉이나 관청, 향교, 왕족이나 고위층 사당 앞에 세우는 콧대 높은 문으
로 그 앞을 지나는 나그네로 하여금 엄숙을 강조한다. 허나 용주사는 그런 홍살문을 삼문 앞에 두고 있는데,
이렇게 홍살문을 지닌 절은 전국에서 이곳과 계룡산 동학사 등이 거의 전부일 정도로 매우 드물다. 

용주사가 이렇게 홍살문을 지니게 된 것은 경내에 왕명으로 지어진 사도세자의 사당, 호성전이 있기 때문이
다. 호성전이란 든든한 후광 덕에 절 정문이었던 삼문 앞에 홍살문이 세워졌고, 절의 명성과 위엄도 그만큼
높아졌다. 

정조 때 세워진 홍살문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감쪽 같이 사라진 것을 2008년 6월 24일 사도세자 제246
주기 제향을 기념하여 다시 세웠다. 허나 내가 갔을 당시(1월)에는 홍살문 윗도리 수리로 인해 윗도리는 잠
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여 윗도리가 없이 기둥만 허전하게 남아 절을 찾은 중생을 맞이한다.

2. 용주사 삼문

홍살문 뒤쪽에 자리한 삼문은 용주사 경내로 인도하는 3번째 문이다. (일주문, 홍살문, 삼문 순) 관청이나 궁
궐 등에 흔한 삼문 스타일에 문으로 홍살문과 더불어 다른 절에서는 접할 수 없는 용주사만의 특별한 존재
인데, 예전에는 이곳이 용주사의 정문 역할을 했다. 

맞배지붕을 지닌 삼문 좌우로 행랑을 길게 지니고 있으니 이는 용주사가 사도세자의 재궁으로 지어졌기 때
문에 이런 구조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삼문의 정면 도리 위에는 죽농 안순환이 쓴 용주사 현판이 있으며, 그 옆에는 '中央禪院(중앙선원)' 현판이
세로로 걸려있다. 삼문의 네 기둥은 윗도리는 나무이고 아랫도리는 돌로 유난히 높고 큰 편이며, 네 기둥에
는 '龍珠寺佛'의 네 자를 첫 글자로 한 시구가 주련으로 걸려있는데 이들도 안순환의 글씨이다.

삼문은 용주사 창건 당시에 지어진 건물로 여러 차례의 개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며, 문의 규모는 15평, 좌우
행랑은 40평에 이른다.

3. 용주사 삼문과 행랑
삼문과 행랑 안쪽을 용주사 경내의 중심부로 보면 된다. 

4. 삼문 앞 해태상

삼문 앞에는 돌로 만든 작은 해태상 2기가 자리한다. 그들은 혹시 모를 화마의 칩입에 대비하고자 마련된
것으로 간결하고 굵게 처리한 조각기법이 가히 해학적이다. 해태상이 무섭기는 커녕 귀여움이 가득해 절

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화마도 그 귀여움에 반해 자신의 본분도 망각한 채 발길을 돌릴 것이다.

5. 삼문에 걸린 용주사 현판

서울 명월관의 주인이기도 했던 죽농 안순환(1871~1942)의 글씨이다.

6. 용주사5층석탑(세존사리탑)과 천보루

삼문을 지나면 5층석탑과 함께 천보루가 마중을 한다. 경내 핵심부를 가리고 있는 천보루는 경내로 인도하
는 4번째 문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이다. 1790년에 지어진 것으로 도편수는 영천 은
해사 승려인 쾌성이 맡았고, 삼척 영은사 팔정이 단청을 했다. 
누각 내부는 82평으로 정조 임금이 사도세자의 묘(현륭원, 현 융릉)를 참배하고 용주사에 들렸을 때를 대비
해 행궁 규모로 지어졌다. (1993년 5월 외부단청을 새로 했음)

천보루 아랫도리는 대웅전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6개의 나무기둥 밑에 높다란 돌기둥(초석)이 있는데, 보통

절에서는 나무기둥을 사용하고 돌기둥은 궁궐에서 쓴다. 대웅전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 벽면에는 별도의 돌

에 부모은중경을 한글로 새겼으며, 누각 좌우로 7칸의 회랑이 연결되어 있어 동쪽에 나유타실, 서쪽에 만수
리실과 이어져 있다. 이런 구조는 창건 당시 모습으로 절 건축이라기보다 양반사대부의 기와집 같은 모습이
다. 
나유타실과 만수리실은 모두 외정으로 출입문을 두었고 툇마루가 딸려있으며, 외정 쪽 방들은 외사랑에 해

당되고 내정 건너에 안채가 위치한다. 이런 구조는 민가 양식과 비슷하다. 

천보루는 홍제루란 별칭도 지니고 있는데, 홍제루 현판은 차우 김찬균의 글씨이며, 홍제루 동쪽 종루 벽면
에는 죽농 안순환을 비롯한 30명의 문인들이 당시 주지였던 강대련을 위해 남긴 글들을 모아 판각한 목판

이 걸려있다. 창건 당시 천보루 앞뒷면에는 이덕무가 쓴 주련이 있었으며, 누각 내부 중앙에는 채제공이 찬
술한 '용주사 상량문'이 목판으로 판각되어 있다. 그리고 측면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2.44m의 목어가 있
다.

7. 조금 확대해서 바라본 천보루와 5층석탑(세존사리탑)
천보루 앞에 자리한 5층석탑은 높이 4m에 늘씬한 탑으로 고려 때 세워진 것이라 전한다. 1702년 성정이 석
가여래의 진신사리 2과를 봉안했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세존사리탑이라 불린다.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과 옥개석을 올리고 탑 머리에는 노반, 복발, 앙화, 보주 등의 머리장식을 갖추었다.
옥개석은 처마 끝선에서 약간 반전되었고, 옥개받침은 3단이며, 전체적인 옥개석의 체감은 비율이 작아서 3
층을 넘어서야 비로소 줄어들고 있다. 

8. 천보루 서쪽 회랑과 만수리실

만수리실은 원래 선당(仙堂 또는 禪堂)으로 고성 건봉사 승려인 운봉이 도편수를 맡았다. 지금은 사라졌으
나 이덕무가 쓴 만수리실 주련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도솔궁속에서 큰 게송을 말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반야대 위에서 참된 법을 연습하여 무량겁을 초탈하네(
兜率宮中稟大偈 普濟衆生 般若臺上演眞詮)'
건물의 면적은 86평으로 여러 개의 작은 방을 지니고 있어 객실로 쓰이고 있다. 

9. 천보루 동쪽 회랑과 나유타료

나유타료는 묘향산 보현사 승려인 의섭이 도편수를 맡은 건물로 창건 당시에는 간단하게 승당이라 불렸다. 
이곳에도 이덕무가 쓴 주련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부처가 알지 못한 곳에 바로 이르렀어도 다만 이는 과정일 뿐이니 다시 부모미생전의 한구절로 도는 시험
해보세 (直 佛祖不知處 祇是半塗且向父母未生煎 試道一句)

건물의 면적은 86평으로 대중회의 때 큰 방 승려들의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큰 방 내부 중앙에는 용상방이
걸려있는데, 용상방은 결제(結制)나 큰 불사가 있을 때 각자의 소임을 정하고 그 직책과 해당자를 명시하여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 방으로 조실(祖室)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원장(院長) 송담대선사(松潭大
禪師), 선덕(禪德) 노학대선사(老鶴大禪師) 등 30개 직명과 승려 이름이 적혀있어 중앙선원을 중심으로 한
편제임을 알려준다. 

10. 경내 동쪽에 있는 샘터(수각)

용주사의 샘터로 화산(용주사가 안긴 산 이름이 '화산'임)이 베푼 샘물이 사시사철 쏟아져 나온다. 아직까지
는 물 섭취가 가능하나(지금은 모르겠음) 절 주변에 계속 개발의 칼질이 그어지고 있어서 앞날은 장담 못한
다. 

11. 용주사 샘터
돌거북이 화산이 베푼 물을 끊임없이 뽑아내고 있고, 그 밑에는 그 물을 가득 머금은 동그란 석조가 있다. 

12. 동남쪽에서 바라본 천보루와 동쪽 회랑, 나유타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