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남부(수원·화성·오산·평택)

도봉산고양이 2021. 9. 20. 02:47

 

1. 용주사 천보루 돌기둥
천보루 밑층 돌기둥에는 '자소일성천지경(自笑一聲天地驚)' 등 6개에 칠언시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自笑一聲天地驚 (자소일성천지경) - 스스로 웃는 웃음 한마디에 천지가 놀라고
孤輪獨照江山靜 (고륜독조강산정) - 외로운 달 홀로 비추니 강산이 고요하네.
心得同時祖宗旨 (심득동시조종지) - 조사의 종지 마음으로 깨달으니
傳持祖印壬午歲 (전지조인임오세) - 조사의 인가 전하고 간직하니 때는 임오년
叢木房中待釋迦 (총목방중대석가) - 숲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기다리니
眞歸祖師在雪山 (진귀조사재설산) - 진귀조사(문수보살) 설산에 계시네

사진 가운데에 특별히 유리막에 감싸인 돌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自笑一聲天地驚'의 원본이다. 장대한 세월
의 거친 흐름으로 글씨가 점점 생기를 잃자 글씨를 보호하고자 유리막을 씌웠으며, 그 앞 돌기둥에 '自笑一
聲天地驚' 7자를 선명히 새겨 원본을 대신하게 했다.

2. 선명하게 새겨진 '自笑一聲天地驚' 7자 

自笑一聲天地驚 (자소일성천지경) - 스스로 웃는 웃음 한마디에 천지가 놀란다.

3. 용주사 대웅전(대웅보전)

이곳의 법당인 대웅전(대웅보전)은 1790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경당 사일이 팔도도화주를 맡아 대웅보전
등 용주사의 145칸 전각을 지었다. 
절이 완성되자 정조 임금은 실학자로 유명한 이덕무(1741~1793)에게 명을 내려 주련을 쓰게 했는데, 그는
대웅보전 등 여러 건물에 주련을 남겼으나 안타깝게도 그 주련은 남아있지 않다.
1900년 성용해 총섭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1931년에 주지 강대련이 보수했으며, 1965년과 1987년에 중수

하여 지금에 이른다.

건물 자리에 우선 장대석을 닦고 중앙에 대우석을 설치한 6단의 계단을 두었는데, 절의 대우석은 보통 연
꽃무늬와 당초무늬 등을 장식하나 용주사는 특별하게도 삼태극, 비운, 모란 무늬를 새겼다. 이는 절 인근에

있는 융릉(사도세자, 혜경궁홍씨 능역) 정자각의 대우석과 같은 양식으로 융릉 건설에 참여했던 공장들이

용주사 건립에도 참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57평 덩치를 지닌 팔작지붕 건물로 각 기둥과 평방 위에 공포를 짠 다포계 양식인데,
처마는 2중의 겹처마로 위로 약간 치솟았으며 그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웠다. 그리고 문은 빗꽃살무늬로
처마에 고리가 달려있어 위로 걸 수 있게 되어있다.
외벽의 3면에는 석가여래의 탄생설화를 벽화로 묘사했으며 건물은 전체적으로 장중한 위엄과 함께 산뜻한
조화미를 지니고 있다.   

4. 대웅전 앞이자 천보루 동쪽에 붙어있는 나유타료

5. 대웅전 앞이자 천보루 서쪽에 붙어있는 만수리실

6. 대웅전에서 바라본 천보루와 홍제루 현판

삼문과 대웅전 사이에 자리한 천보루는 용주사 경내의 4번째 문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2층 누
각으로 1790년에 지어진 것인데, 도편수는 영천 은해사의 쾌성이 맡았고, 삼척 영은사의 팔정이 단청을 하
였다.
천보루 앞에는 '천보루' 현판이, 대웅전 방향인 뒤쪽에는 '홍제루' 현판이 걸려있으니 홍제루는 천보루의 별
칭이며, 건물 좌우로 7칸의 회랑이 이어져 있고, 그 동쪽에 나유타실, 서쪽에 만수리실이 자리한다. 

7. 법고각

대웅보전 앞 동쪽에는 맞배지붕을 지닌 1칸짜리 법고각이 있다. 이 작은 건물은 사물의 일원인 법고의 공간
으로 맞은편으로 범종을 머금은 범종각과 마주보고 있는데, 이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중생 구제를 위한 범
종, 축생을 위한 법고(북), 물고기를 위한 천보루의 목어, 하늘을 날라다니는 조류를 위한 만수리실의 운판이
어우러져 온갖 중생을 지혜의 세계로 인도함을 뜻한다. 그래서 용주사에는 새가 많이 날아든다고 한다. 

8. 법고각에 소중히 깃든 법고(북)

9. 범종각

법고각과 마주보고 있는 범종각은 1칸짜리 팔작지붕 집으로 용주사 제일의 보물이자 가장 늙은 존재인 범
종(동종)의 공간이다. 1911년 무렵까지 보신각이라 불렸으며, 그 옆에 보이는 큰 건물은 천불전이다.

10. 범종각에 깃든 용주사 동종(범종)

이곳 동종은 신라 범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 초기 범종으로, 높이 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 규모이
다. 종 윗도리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윗 문양띠(상대)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였는데, 아
래 위가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둘렀으며, 사각형 모양의
연곽과 한 면이 붙어있다.

4곳의 연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연뢰가 있는데, 남아있는 것은 1개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
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을 두었고, 아래쪽 4곳에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
은 모두 옷자락을 휘날리며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며, 종 입구 부분 아래 띠(하대)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윗띠(상대)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다.

종의 피부에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되었다는 후대에 새긴 명문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맞지가 않다고 해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대에 종의 조성시기를 잘못 파악하여

그렇게 새겼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854년 조성설을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게 잘못
새겨졌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연뢰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는 좋으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또는 신라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추앙을 받아 일찌감치 국보라는 큼직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용주사 동종이 용주사의

첫 국가지정문화재임)

11. 무려 1,000년 이상 묵은 용주사 동종의 위엄

동종 주변에는 중생들이 작은 소망을 내밀며 들이민 동전과 1,000원 지폐가 수북하여 그의 높은 인기를 보
여준다.

12. 용주사 천불전

대웅전 서쪽이자 범종각 옆에 자리한 천불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름 그대로 작은 천
불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옛날 노전 또는 향로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졌으며,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1993년 지금의 천불전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