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사진·답사기/충남 홍성·청양·보령·서천

도봉산고양이 2021. 9. 21. 03:59
청양 우산(우산성), 천장호, 천장호출렁다리



' 충남의 내륙을 거닐다. 청양 겨울 나들이 '

천장호와 출렁다리

▲  천장호와 출렁다리

청양 우산 숲길 겨울 운무에 잠긴 우산

▲  청양 우산 숲길

▲  겨울 운무에 잠긴 우산

 


겨울 제국의 한복판인 1월의 어느 덜 추운 날, 충남의 지붕인 청양(靑陽)을 찾았다. 청양
땅은 20대의 한복판인 2000년대 이후 딱 2번째 방문으로 인연이 참 지지리도 없던 곳이다.
하여 몸뚱이와 정신이 더 늙기 전에 청양의 신선한 공기도 맛보고 그곳의 미답처(未踏處)
도 여럿 지우고자 흔쾌히 청양을 택했다.

아침 일찍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청양으로 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싣고 90분 정
도를 달려 청양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발을 들인 청양읍내는 겨울 안개가
두텁게 내려앉아 가시거리가 100m 이내였는데, 마치 무너진 하늘의 구름 속에 갇힌 듯 눈
에 뵈는 것이 제대로 없어 잠시 방향 감각을 잃었으나 이내 감각을 되찾고 읍내 동북쪽에
자리한 우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  청양읍내의 포근한 뒷산, 우산(牛山) 둘러보기

▲  새벽에 내린 눈으로 얇게 하얀 옷을 걸친 우산 숲길

우산은 해발 237m의 조촐한 뫼로 청양읍내의 듬직한 뒷동산이자 쉼터이다. 겉보기에는 천하에
그저 흔한 뒷동산이라 '이곳에 뭐 볼게 있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그의 품으로 들어서면 생각
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작지만 넉넉한 그의 품에는 백제 때 지어진 우산성과 읍내에서 넘
어온 석조여래3존입상과 3층석탑 등 고색이 깊은 문화유산이 있고, 칼바위와 떡바위, 가족바
위 등 대자연이 빚은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능선부에 포진해 있으며 짙은 숲에 산책로까지 잘
닦여져 있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호국(護國)의 신이 된 청양 사람들의 위패가 봉안된 충령사(忠靈祠)가 남쪽 자락에 기
대고 있어 잠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만큼 우산은 청양읍의 소중한 뒷산이자 성역이다.

나는 우산 남쪽인 청양읍사무소(청양읍행정복지센터)에서 접근했는데 그 길을 오르면 충령사
와 그곳을 관리하는 '용암사(봉안사)'란 작은 절이 마중을 나온다.


▲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 - 보물 197호

충령사 옆에는 용암사란 현대 사찰이 있다. 그 밑을 가만히 보면 맞배지붕을 지닌 기와 건물(
보호각)과 3층석탑이 층층이 자리한 모습이 눈에 보일 것인데, 그 보호각 안에 늙은 석조여래
3존입상이 고된 몸을 벽에 기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석불은 읍내리1구의 일명사터(逸名寺址)로 전하는 절터에 있던 것으로 1961년 밑에 있는
3층석탑과 함께 용암사 경내로 이전되었다. 그러다가 1981년 지금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
의 맞배지붕 건물을 짓고 그 안으로 옮겼다. (건물을 짓기 전에는 벽만 있었음)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가지고 있는데 본존불 키는 310cm, 좌측 보살은 223cm, 우측 보살
은 225cm이다. 장대한 세월에 오랫동안 두드려 맞은 흔적이 역력하고 광배 같은 경우는 날라
간 부분도 적지 않으나 얼굴부터 대좌까지 그런데로 잘 남아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주인공답게 좌우 보살상에 비해 덩치와 키가 크다. 머리에는 무견정상(육계)
이 솟아있고 얼굴은 고된 세월에 지쳐 많이도 울었는지 표정이 좀 지워졌으며, 어깨는 넓고
옷은 가슴부터 발목까지 U자형으로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왔고 다리 사이에는 바지 자락이 표
현되어 있다.
몸통을 윤기나게 해주는 광배는 배 모양으로 불상과 같은 돌에 조성되었는데 파손이 심해 원
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두 발을 딛고 있는 대좌는 4각형으로 각 면에 안상(眼象) 3개를
새겨놓았다.
왼쪽 협시보살은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절단이 난 것을 붙여놓은 것으로 얼굴은 본
존불과 비슷하며 허리를 약간 왼쪽으로 틀어 본존불을 향하고 있다. 옷은 밑부분이 넓게 퍼져
마치 두터운 겨울 옷을 걸친 듯 하다. 그리고 오른쪽 협시보살은 왼쪽 것과 비슷하나 얼굴 윤
곽이 둥굴고 앳되어 보이며 몸매가 아주 좋아 한참 물이 오른 젊은 여인네를 모델로 하여 지
은 것 같다.

그들은 당당한 신체 표현과 강인한 신체 묘사, 유려한 각선 등에서 높은 솜씨를 보이고 있지
만 평판적인 신체 묘사와 형식화된 조각기법으로 미루어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  밑에서 바라본 석조여래3존입상
서 있을 힘도 부족하여 그들 뒤에 벽을
설치해 비빌 구석을 마련해 주었다.

▲  석조여래3존입상이 거처하는 맞배지붕
보호각 (뒤에 보이는 건물은 용암사)


▲  청양3층석탑 -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148호

석조여래3존입상 밑에는 작고 잘생긴 3층석탑이 있다. 그는 3존입상과 함께 일명사터에 있던
것으로 청양군청 뒤쪽으로 이전되었다가 1961년 석불과 함께 용암사에 안착했다.
네모난 바닥돌을 땅바닥에 깔고 그 위에 1층 기단(基壇)을 두었으며, 3층의 탑신(塔身)과 노
반(露盤), 앙화(仰花, 연꽃모양 장식)를 둔 머리장식을 차례로 올렸다. 1층 탑돌에는 네모난
문고리 장식이 있으며 탑 높이는 310cm, 조성시기는 고려 때로 여겨진다.

상처가 많은 석불과 달리 건강상태도 양호하며 머리장식도 잘 남아있어 꽤나 감동을 준다. 이
정도면 능히 국가 보물로 삼아도 손색이 없어 보이나 무슨 영문인지 상처 투성이 석불은 보물
, 멀쩡한 석탑은 지방문화재에 머물러 있으니 지정 기준이 참 아리송하다.

       ◀  청양3층석탑과 돌기둥 3기
3층석탑 옆에는 받쳐들 것을 상실한 채, 막연
히 하늘을 이고 있는 돌기둥이 있다. 이들 기
둥은 모두 3기로 일명사지에서 넘어온 것으로
여겨지며 건물 주춧돌로 추정된다.


▲  겨울에 잠긴 우산 숲길

용암사 밑에 자리한 늙은 석불과 석탑을 둘러보고 우산의 속살로 들어섰다. 아침 산책과 운동
을 나온 지역 사람들이 이따금 보일 뿐, 바람의 소리가 전부일 정도로 적막한데, 숲길도 매우
고와서 무척 탐이 난다.

산의 이름인 우산은 비올 때 쓰는 그것이 아닌 음매음매~ 소를 뜻하는 이름으로 그 이름에 걸
맞게 우산에 닦여진 산길을 추스려 '우산슬로길'이라 하였다. 여기서 슬로(slow)는 느리다는
뜻의 양이(洋夷) 말로 소의 발걸음이 느리니 천천히 둘러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모
양이다.
허나 아름다운 우리말을 놔두고 굳이 배배 꼬인 꼬부랑 영어를 써야 했는지 관련 공무원 철밥
통들의 사상이 심히 의심된다. '우산 느림길'이나 '우산 여유길'이라고 하면 참 좋았을 것을
굳이 외래어로 지어야 했는지 참으로 회의감이 든다. (이 땅의 아주 몹쓸 '영어 사대주의'의
폐해임)

우산슬로길은 칼바위길(2.43km)과 약수길(2.38km), 산성길(1.65km)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길
로 가던 봉화대과 우산성, 칼바위는 끼게 되어있으나 산이 작아서 굳이 코스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며, 봉화대와 청룡정, 우산성, 용암사를 모두 겯드려 속성으로 보면 1시간 정도, 길게 잡
으면 90~120분 정도(휴식시간, 촬영시간 포함)면 넉넉히 산을 1바퀴 둘러볼 수 있다.


▲  솔내음이 춤을 추는 우산 소나무숲길

▲  숲을 뚫고 들어와 우산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아침 햇살의 위엄
햇님이 찬란한 햇살을 쏘며 겨울에 잠긴 우산을 깨운다.

▲  어둠과 낮의 경계에 서다. 우산 소나무숲길

▲  우산성(牛山城) - 충남 지방기념물 81호

우산 윗부분에는 옛 백제(百濟)가 씌워놓은 우산성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산꼭대기 주변
을 빙둘러서 다진 테뫼식 산성(山城)으로 둘레는 약 965m로 파악되고 있는데, 경사가 있는 동
쪽을 제외하고 모두 돌로 다졌으며 높이는 최대 7m, 폭은 6m 정도 된다. 남벽과 동벽이 만나
는 곳과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이 다른 곳보다 조금 높은데 이들은 장대(將臺) 자리로 여
겨진다.
동남쪽 모서리와 동북쪽 모서리에는 성벽 바깥으로 네모 모양으로 성곽을 다진 이른바 치성(
雉城) 흔적이 있으며, 성벽에서 약 2m 안쪽에 문을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북문터 부근에는 50x50m 규모의 건물터가 있고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서 19x2m 규모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으며, 백제 때 토기와 고려 때 어골문(魚骨文) 기와조각, 조선 때 기와조각
이 발견되어 우산성이 백제부터 조선까지 골고루 쓰였음을 귀띔해준다. 그 외에 우물 2개가
있었다고 전하나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  우산성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 북문터와 봉화대
헝클어진 성곽 위에 닦여진 계단을 통해 우산성 북쪽 밖으로 나갈 수 있다.

▲  눈옷을 뒤집어쓰며 나지막하게 누운 우산성 북쪽 성곽
(북문터 주변)

▲  윤곽만 남은 우산성 동쪽 성곽 ①
우산성 동쪽은 가파른 벼랑이 상당수이다. 하여 돌로 다지지 않고 지형을
가파르게 다듬어 마치 성곽의 윤곽처럼 다져놓았고 성곽 방어를 위해
그 밑으로 수풀을 잔뜩 심었다.

▲  윤곽만 남은 우산성 동쪽 성곽 ②

▲  구름 위에 올라서다 ① 우산성 동쪽 성곽에서 바라본 모습

청양읍내를 감쪽같이 훔쳐간 안개(운무), 우산 윗도리에 이르니 그 운무가 내 밑에 하얗게 펼
쳐져 있다.
'내가 이리 높이 올라왔나??'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로 이렇게 보니 해발 1,000m 이상 올라온
기분이다. 허나 현실은 200m 정도이다. 겨우 200m 높이를 올라왔을 뿐인데 이런 황홀한 광경
을 보다니. 그렇다고 그날 종일 비나 눈이 온 것도 아니다.
운무는 우산 밑에 낮게 누워 읍내와 키 작은 것들을 삼켜버렸고 우산 높이 이상의 뫼들만 고
개를 들고 있다. 저 너머로 보이는 뫼들은 청양의 진산인 칠갑산(七甲山)이다.


▲  구름 위에 올라서다 ② 우산성 동쪽 성곽에서 바라본 모습

▲  우산 떡바위

우산성 동쪽 성곽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떡바위를 비롯한 상큼한 모습의 바위들이 줄지어
포진해 있어 우산의 조촐한 만물상(萬物相) 같은 곳이다. 떡바위는 떡과 비슷하게 생겨서 생
긴 이름으로 거의 인절미처럼 보이는데 우산을 빚은 대자연이 먹고 남은 떡이 딱딱하게 굳어
져 돌이 된 모양이다.


▲  수풀 속에서 간신히 고개를 내민 떡바위 부근 우산성
(동남쪽 성곽)

▲  우산 가족바위
바위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가족처럼 보인다.

▲  위에서 바라본 가족바위 (왼쪽에 각이 똑바로 진 바위)

▲  천하를 훔친 운무의 위엄 ① (떡바위 주변에서 바라본 모습)
이렇게 보니 천하를 뒤덮은 운무가 마치 너른 호수처럼 보인다. 왼쪽에
작게 보이는 건물은 우산 남쪽 봉우리에 자리한 청룡정이다.

▲  천하를 훔친 운무의 위엄 ② (칠갑산 방향)

▲  천하를 훔친 운무의 위엄 ③ (청양읍내 방향)

▲  우산의 남쪽 끝을 잡고 있는 청룡정(靑龍亭)
우산 남쪽 봉우리에 들어앉아 청양읍내를 살피고 있는 청룡정은 6각형 정자로
1984년 10월에 지어졌다. 조망이 아주 일품으로 우산에 발을 들였다면
이곳에 꼭 들려 국보급 조망을 누리기 바란다.

▲  짙은 운무에서 서서히 해방되는 청양읍내
아침 햇살이 운무를 강제 해산시키며 그들로부터 청양 지역을 해방시키고 있다.
하여 이제 비로소 청양읍내가 푸른 하늘을 보게 되었다.

▲  서서히 걷히는 운무 (칠갑산 방향)

▲  우산을 정리하며~~~

* 우산성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백천리 산69-5외
* 읍내리 석조여래3존입상, 청양3층석탑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산4-2


♠  칠갑산 자락에 묻힌 그림 같은 호수, 천장호(天庄湖)

▲  천장호 전망대

우산을 2시간 정도 거닐고 내려오는 사이, 읍내를 오리무중(五里霧中)처럼 짙게 감싸던 운무
가 싹 걷혔다. 파란 하늘과 햇님이 안개에 놀란 천하를 진정시키며 겨울 제국의 차가운 기운
도 조금씩 잠재운다.

읍내로 들어와 다음 행선지인 천장호를 가고자 군내버스터미널을 찾았다. 청양읍에서 천장호
는 시외직행버스와 청양군내버스가 운행하고 있는데 직행버스(청양시외터미널에서 승차)는 1
시간에 1~2회꼴로 있고, 군내버스도 비슷한 간격(1일 16회 정도)으로 다닌다. 속 편하게 직행
버스를 타는 것이 낫겠지만 시골군내버스가 격하게 땡겼고 마침 20분 뒤에 차가 있어 그 시간
을 억지로 죽이고 있으니 정산행 군내버스가 다가와 활짝 입을 벌린다.
버스는 칠갑산 북쪽 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칠갑산로를 15분 정도 달려 천장호(천장리)
에 나를 내려놓는다. 칠갑산로는 청양과 공주를 잇는 주요 도로이나 우회 국도가 생기면서 조
금은 한가해졌다. (천장호, 칠갑산 관광 수요는 여전히 많음)


▲  천장호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장호와 칠갑산

▲  확대해서 바라본 천장호와 출렁다리(가운데 다리)

천장호전망대는 천장호가 잘 바라보이는 칠갑산로 도로변 벼랑에 자리해 있다. 천장호 정류장
에서 서쪽으로 도보 3분 거리로 2016년 9월에 지어졌으며 전망대의 면적은 610㎡이다.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대에 걸맞게 돛대 모양을 여럿 달아서 마치 배를 연상케 하는데, 이곳에 올라서
면 천장호 일대와 출렁다리는 물론 칠갑산까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천장호 관광객들은 출렁다리와 천장호만 생각하여 이곳은 잘 오지 않는데 천장호의 전경을 싹
담을 수 있는 곳이니 꼭 살펴보기 바란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천장호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장호
북쪽과 칠갑산 산줄기

▲  청양고추를 귀엽게 표현한 캐릭터

천장호전망대에서 천장호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저 밑에 바라보이는 천장호로 내려갔다.
천장호는 1월 평일임에도 청양의 대표 명소에 걸맞게 관광객들이 많았다.
주차장을 지나면 식당들이 앞다투어 맛난 냄새를 풍기며 나그네를 유혹하는데 그 유혹을 지나
면 출렁다리로 인도하는 잘 닦여진 산책로가 고속도로처럼 펼쳐진다. 청양의 특산품인 고추를
형상화한 캐릭터와 2층 규모의 황룡정, 소금쟁이고개길이 차례로 나타나며, 그 길의 끝에 출
렁다리가 있다.

▲  황금색 지붕의 황룡정
천장호 장식용으로 지어진 정자이다.

▲  천장호 출렁다리로 내려가는 산책로
(소금쟁이고개)


▲  오늘도 푸르기 그지 없는 천장호

천장호는 농업용 저수지로 이곳의 지명인 천장리(天庄里)에서 이름을 땄다. 1972년 12월에 짓
기 시작하여 1979년 완성을 보았는데 면적은 1,200ha로 물이 청정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칠갑산을 수식하는 경승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리고 있다. 거기에 한때 우리나라 최장의 출
렁다리로 추앙을 받았던 출렁다리까지 한복판에 걸쳐놓아 천장호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한
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천장호 출렁다리의 위엄을 몸소 체험하고자 함이다.


▲  천장호 소금쟁이고개

출렁다리 동쪽은 호수를 향해 길게 삐죽 나온 지형으로 서,남,북이 호수에 접해있다. 지금은
3면이 호수에 둘러싸여 있지만 원래는 소금쟁이고개라 불리던 고갯길로 청양에서 정산, 공주
를 이어주던 길목이다. 이곳이 소금쟁이고개라 불린 사연은 대략 이렇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아가던 옛날의 어느 봄날, 소금장수가 이곳을 넘다가 잠시 소금지게를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담배나 피워야될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징하게 으르렁거리자
염통이 쫄깃해진 소금장수는 지게를 받치던 작대기를 들고 호랑이에 대항했다. 그러자 지게가
넘어지면서 시장에서 산 그릇과 볏짚가마니에 들어있는 소금이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단순한 호랑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하다가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렇
게 호랑이를 물리친 소금장수는 아랫도리가 이상해 살펴보니 글쎄 소변이 흘러내린 것이 아닌
가?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실례를 한 것이다.

그날 밤, 주막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소문이 널리 퍼
져 이곳 이름이 소금쟁이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즉 소금쟁이가 호랑이를 물리치고 동시에 실
례까지 범했던 고개란 뜻이 된다. 허나 지금은 고개가 아닌 육지와 출렁다리를 잇는 자라목
같은 지형이 되버렸고 고갯길의 역할은 호수 북쪽에 닦여진 도로(칠갑산로)가 맡게 되었다.


▲  천장호 서쪽 황룡 쉼터에서 바라본 소금쟁이고개


▲  소금쟁이고개에서 출렁다리를 이어주는 접속 다리

▲  옆에서 바라본 접속다리와 출렁다리의 빨간 고추 기둥

▲  드디어 건너게 되는 천장호 출렁다리

천장호 출렁다리는 흔들다리의 일종으로 2007년 11월에 착공하여 2009년 7월 28일 완성을 보
았다. 길이 207m, 높이 24m, 폭 1.5m 규모로 한때는 이 땅에서 가장 크고 긴 흔들다리였으며,
동양에서 2등으로 컸다. (지금은 이보다 큰 흔들다리와 출렁다리가 많이 생겨났음)
약 30~40cm 정도 흔들리게 설계되어 있어 스릴감을 주며 중간중간에 다리 밑 호수가 잘 보이
도록 거울 바닥을 깔아서 염통의 쫄깃함을 더해준다. 물론 단단하게 지어졌겠지만 혹시나 그
판을 밟으면 밑으로 쑥 빠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나 나도 모르게 그 바닥은 피해 움직였다.
다리 길이는 겨우 207m에 지나지 않으나 염통을 적지않게 자극시키다보니 체감거리는 그 5배
는 되는 것 같다. 세상에 이보다 긴 200m가 또 어디에 있을까?


▲  출렁다리 한복판에서
다리의 거울 바닥 밑에는 얼어붙은 호수가 차갑게 입을 벌리고 있다.

▲  유연하게 솟구친 출렁다리의 위엄

▲  출렁다리 서쪽에서 바라본 천장호
호수 너머 벼랑에 천장호전망대가 있다.

▲  출렁다리 서쪽에 자리한 용(왼쪽)과 호랑이 조형물(오른쪽)

출렁다리를 건너면 용과 호랑이상이 마중을 하면서 길은 3갈래로 갈린다. 칠갑산 등산이 목적
이라면 서쪽 산길로 들어서면 되며, 호수도 둘러보고 이곳의 오랜 명물인 소원바위도 보고 싶
다면 북쪽 산책로(천장호 둘레길)로 가면 된다. 남쪽도 호수 산책로이나 길이 중간에 끊긴다.

출렁다리 서쪽에 자리한 용과 호랑이상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닌 칠갑산의 유래와 전설을 상징
하고자 세운 것이다. 칠갑산은 만물생성의 7대 근원인 '七'자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첫 자
이자 싹이 난다는 뜻에 '甲'자로 이루어져 있어 생명의 발원지를 뜻한다고 한다. (산자락에 7
명의 장수가 태어날 명당이 있어 칠갑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옴)
또한 이곳에는 1,000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승천을 준비하던 황룡(黃龍)이 있었는데 부근에 살
던 아이가 위급에 처하자 직접 다리를 놓아 아이를 구했다고 하며. 이를 지켜본 호랑이는 산
에 들어가 칠갑산을 지키는 영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악을 다스리고 복을 준다는 황
룡의 기운과 영험한 기운을 지닌 호랑이의 기운이 같이 서려있어 여기서 기도를 하면 복을 받
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고 전한다.


▲  천장호 둘레길에서 바라본 출렁다리의 위엄

▲  호수 옆구리에 닦여진 천장호 둘레길 (소원바위 입구)
호수의 서쪽을 따라 나무데크식으로 둘레길을 닦았다. 길을 잘 다져놓아서
거닐기에 아주 좋으며, 둘레길을 한 굽이 지날 때마다 천장호와
출렁다리는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  천장호 마무리 (소원바위)

▲  천장호 둘레길에서 만난 칠갑산의 수호신, 금색 황룡상 (황룡 쉼터)

호수를 따라 펼쳐진 천장호둘레길은 해가 짧다는 구실로 다 돌지 않고 황룡상이 있는 쉼터까
지만 갔다. 마음 같아서는 둘레길을 다 돌면 좋겠지만 그 정도만 돌아도 천장호에 대한 성의
는 충분히 보였다 여겨진다.
거기서 쿨하게 길을 되돌려 소원바위를 보고자 잠시 호수를 버리고 언덕길을 오르니 길 중턱
에 천장호의 오랜 명물인 소원바위가 모습을 비춘다.


▲  황룡 쉼터에서 바라본 출렁다리

▲  겨울 가뭄으로 수분이 다소 줄어든 천장호 상류 부분

▲  소원바위로 인도하는 언덕길 (천장호둘레길)
언덕을 넘으면 내리막이 나오는데 그 길로 가면 다시 호수길과 만난다. 즉 둘레길
북쪽 구간은 '출렁다리 서쪽→소원바위입구→소원바위→호수길→
소원바위입구'로 순환형으로 짜여져 있다.

▲  주름선이 선명한 소원바위 (잉태바위)

천장호에 왔다면 출렁다리도 좋지만 꼭 만나야될 존재가 있다. 바로 소원바위이다. 그 모습이
마치 구석기시대에 절찬리에 쓰였던 주먹도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기자신앙(祈子信仰)의 현장으로 입소문이 났던 바위이다.
이 바위가 아이를 기원하는 현장이 된 것은 고려 때로 여겨지는데 다음의 믿거나 말거나 전설
이 전하고 있다.

그 시절 시집간 딸이 5년이 넘도록 아이를 얻지 못하자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가 이곳에서 700
일 동안이나 정성을 기울여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칠갑산 수호신(산신)이 감동을 먹고 딸이
혼인 7년차가 되던 해에 바위에서 살을 떼어내 임신이 되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장성하여 용호장군(龍虎將軍)에 이르렀고 거란군(요나라)을 때려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마치 강감찬(姜邯贊) 장군의 탄생설화 같지만 그는 아니
다.

최근에는 인근 목면에 거주하는 유모 할머니가 44살이 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해 애태우는 아
들을 위해 매일 이 바위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혼인 7년차에 드디어 임신에 성공, 2013년 10월
29일에 건장한 아들을 얻었다. 앞서 전설도 혼인 7년차에 아이를 얻었고 이번 것도 7년차이니
이 바위는 결혼 7년차의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소망을 빌면 거의 이루어진다고 하여 소원바위라 불리게 되었으며, 아이(특히 아들)를 기원하
던 현장이다보니 잉태바위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특히 천장호는 풍수지리상 여자의 자궁형상
이라 임신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고 하며 그 이유로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바위 앞에 걸린 줄에는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종이가 가득 매달려 있고, 바위 피부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들이밀며 붙인 동전이 즐비하다.


▲  주름이 가득한 소원바위 (잉태바위)

소원바위 앞에는 기도 자리가 닦여져 있다. 한쪽에는 소원을 적을 하얀 종이(소원지)와 펜이
비치되어 있어 종이에 소박하게 소망을 적어 바위 앞에 매달린 줄에 매듭을 지어 붙여놓았다.
이들 소원지는 일정 시기마다 소원 성취를 이루라는 뜻에서 모아서 소각을 하는데 그가 과연
명성처럼 영험하다면 내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소문이 거짓이니
망치를 가져와 항의 표시를 해도 그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바위 바로 앞에는 바구니가 놓여있는데 거기에는 1,000원 지폐가 담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소
망을 접수하면서 놓고 간 것으로 그 돈은 과연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갈지 궁금하다. 설마 바
위가 직접 챙기는 것은 아닐 것이고 천장호 관리사무소나 그를 후광(後光)으로 삼은 무속인이
나 종교인이 챙길 것이다. 재주는 바위가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기는 것이다.

* 천장호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 (천장호길 24, 천장호 관리사무소 ☎ 042-
  940-2723)


▲  천장호 남쪽 부분

▲  출렁다리를 건너 다시 소금쟁이고개로

▲  천장호를 나오다 ~~~ (천장호 산책로)

소원바위에 약소하게 소원 하나를 들이밀고 출렁다리로 나왔다. 여기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꼼
짝없이 출렁다리를 이용하거나 칠갑산을 넘어야 되는데, 아무리 다리가 무섭다고 해도 산 하
나를 통째로 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체감거리가 긴 출렁다리를 건너 천장호 정류장으로 나왔다. 천장호전망대를 포함해 천장호 일
대에서 머문 시간이 2시간, 둘레길을 제대로 돌았다면 3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벌써부터 땅꺼미가 기지개를 펼 준비를 한다.

천장호 정류장에서 정산(서정리)으로 가고자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기는 시외직행버스와 군내
버스 모두 정차한다. 그러니 먼저 오는 것을 타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군내버스가 당첨이
라 그를 타고 정산으로 나왔다.

이후 내용은 분량상 생략하며 한겨울에 벌인 청양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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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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