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사진·답사기/충남 천안·아산·예산

도봉산고양이 2021. 10. 17. 00:39


1. 신정비를 머금은 비각

아산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온양관광호텔 뜨락에는 신정비와 영괴대(영괴대비), 온천리석불, 온천리석탑, 동
자상 등 소소한 문화유산들이 들어있다. 호텔 뜨락은 호텔 투숙객이나 온양온천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누구
든 드나들 수 있는 자유공간으로 특히 신정비와 영괴대는 이곳에 있었다는 온양행궁(온궁)을 다녀간 조선
제왕들이 남긴 기념물이다.

조선 7대 군주인 세조는 1468년 충청도 지역과 속리산을 순행하고 환도하는 길에 온천을 지니고 있는 온양
행궁(온궁)에 들려 여독을 풀었다.
온양행궁에 머물면서 한가롭게 온천욕을 하던 세조는 온천 옆에서 새로운 냉천을 발견했는데, 이를 신이 내
린 우물이란 뜻에서 '신정'이란 이름을 지었으며, 이를 기리고자 1476년 성종의 명으로 신정비를 세웠다.

1칸짜리 비각에 작게 깃들여진 신정비는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훨씬 작은 비석으로 장방형의 바닥돌
위에 비신(빗돌)을 얹혔다. 비문은 중추원부사 임원준이 지었고, 절충장군 이숙함이 썼으나 왜정이 온양행궁
을 부시는 과정에서 비석이 크게 손상되어 안타깝게도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2. 비각 안에 소중히 깃든 신정비

검은 피부의 바닥돌과 헝클어진 피부의 비신이 전부로 높이는 1m도 되지 않는다. 비신보다 바닥돌이 더 커
보이는 것은 이 비석의 함정. 

3. 고된 세월에 무척 지쳐보이는 신정비

4. 온천리석불의 거처 (온천리석불 보호각)
작은 석불에 비해 보호각이 너무 크다. 

5. 온천리석불

온천리석불은 키가 84cm에 불과한 아주 작은 석불이다. 덩치는 난쟁이보다 작지만 단단하고 귀엽게 생긴
모습으로 원래 이곳이 아닌 신창면에 파괴된 채로 흩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1927년 이곳으로 수습하여 지
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석불의 얼굴이 둥글고 귀여워서 동자상이나 승려 같은 인상인데, 몸에 걸친 법의로 양쪽 어깨를 감싸고 양

손에 무언가를 마주 쥐며 가슴까지 손을 올린 모양을 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약합으로 여겨져 약사여래
로 여겨지고 있으며, 석불의 조성시기는 아리송하나 제작 기법을 통해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

다. 

6. 온천리석불 옆에 자리한 석인들

이들 석인도 아산 어딘가에서 수습한 것으로 원래 무덤을 지키던 존재들이다. 오른쪽 석인은 동자석이며,
왼쪽에 작은 석인은 얼굴이 완전히 지워졌으나 작은 덩치로 보아 동자상으로 여겨진다.

7. 온천리석탑(온천리5층석탑)

이 석탑도 아산 어딘가에서 수습한 것으로 1층 기단과 5층 탑신, 머리장식을 지닌 2m 정도의 탑이다. 조선
후기나 2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