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도봉산고양이 2021. 10. 23. 00:15


1. 백석동천 별서터에서 백사실 상류로 인도하는 숲길
늦가을에 푹 잠긴 저 그림 같은 숲길을 오르면 백석동천 바위글씨와 백사실계곡(백사골) 상류, 부암동, 능금
마을, 북악산길과 모두 만날 수 있다. (북악산길에서 북악산 주능선으로 접근 가능)

2. 수채화처럼 펼쳐진 백사실계곡 (백석동천 별서터 서쪽)
낙엽을 잔뜩 뒤집어 쓴 큰 바위에 일정하게 긁힌 흔적이 있으니 이는 이곳에 별서를 만들 때 돌을 떼던 흔
적이다. 백사실계곡에는 큰 바위와 암반이 넉넉히 있어서 여기서 별서 주춧돌이나 석축, 담장에 쓰일 돌을
많이 충당한 것으로 보인다.

3. 부암동 백석동천 별서터 (사랑채터와 계단 흔적)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 깊숙한 산골인 백사실(백사골)에 조용히 깃든 백석동천 별서는 1830년경에 지어
진(또는 중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600평 규모의 큰 별서 유적이다.
누가 지었는지는 딱히 전해오는 것은 없으나 백석동천과 관련된 최초 기록인 월암 이광여(1720~1783)의
이참봉집에 '세검정과 탕춘대 계류 고간 세폭 위에 동천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 허씨의 모정이 있었으며
모정의 이름은 간정료였다'는 내용이 있어 17~18세기부터 양반사대부가 지은 조그만 집이 이미 둥지를 트
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2012년에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매입하여 별장으로 삼았음이 밝혀지면서 백사실의 비밀이 다소
벗겨졌다. 추사의 문집인 '완당전집 권9'에 '선인이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 , '나의 북서(북쪽 별서)
에 백석정 옛터가 있다' 등의 내용이 있고 그곳과 관련된 시가 여럿 발견되어 추사가 백석정 자리를 구입하
여 크고 아름답게 다시 지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던 1830년 창건설(또는 중건설)의 주
인공은 추사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별서 주인이 머물던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해 정자와 동그란 연못이 있었다. 안채는 4량집이고, 사
랑채는 'ㄱ' 모양의 5량집으로 높은 누마루를 지녔는데, 안채는 1917년에 집 한쪽이 기울어져 크게 수리를
했다고 하며 1970년대까지 살아 있었으나 관리소홀과 장대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랑채와 함
께 무너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사랑채는 그나마 주춧돌과 석축이 진하게 남아있으나 안채터는 땅 속에
묻혀있다.
동그런 연못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데, 6.25전쟁 때 무심한 총탄에 정자가 파괴되고 그 휴유증으로 연
못마저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여 현재는 사랑채터와 안채터, 정자터, 연못, 담장의 흔적, 바위글씨 2개만
이 남아 백석동천의 옛 정취를 아련히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2010년에 별서터 일대를 싹 조사하여 안채터의 윤곽과 조그만 우물터를 확인했으며, 깨진 기와와 백자, 그
릇 파편들을 다량으로 수습했다. 이후 복원 이야기도 나와 말썽이 많았으나 지금은 쏙 들어갔으며, 폐허의

현장과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상큼한 경관을 자아낸다. 어설픈 복원보다는 폐허의 현장 그대로 두는 것이
100배 낫다. 

4. 백석동천 별서터 옆을 지나는 백사실계곡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조그만 폭포와 징검다리가 이곳의 운치를 더한다.

5. 사랑채, 안채터로 인도하는 헝클어진 돌계단

사랑채와 안채터가 있는 언덕으로 인도하는 돌계단으로 장대한 세월의 태클로 계단이 좀 헝클어져 있다. 허
나 경사가 완만하여 계단의 역할은 그리 녹슬지 않았다. 

6. 사랑채터 누마루 주춧돌

연못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ㄱ' 구조의 5량집 사랑채를 두었는데, 아쉽게도 생전의 사진도 남기지 못
한 채, 1970년경에 영구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건물터와 주춧돌은 잘 남아있으며 2010년 발굴조사
로 새롭게 드러난 흔적까지 더해 산듯하게 정비했다.
사랑채 서쪽 부분은 누마루로 주춧돌 높이가 동쪽 부분보다 3배 정도 높다. 이곳에선 별서 주인이 연못을 
바라보며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즐겼을 것이며, 손님이 오면 여기서 곡차와 산해진미를 대접하거나 시 1
수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채 동쪽 부분에는 키 작은 주춧돌 6개와 석축이 남아있다.

7. 사랑채터 옆에 자리한 작은 연못터
2010년 발굴조사 때 발견된 것으로 연못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낙엽과 잡석만 가득 널려 폐허의 미를 보
여준다.

8. 사랑채와 안채터 뒷쪽
사랑채터 동쪽 산자락에는 돌로 다진 석축과 돌담의 흔적이 있다. 석축은 별서 주변을 다지면서 쌓은 것으
로 높이는 1.5~2m 정도 되며, 석축 윗쪽에는 별서의 경계를 가르던 돌담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세월의 무
심한 태클에 상당수 허물어지고 지금은 안채터 뒷쪽에서 연못 북쪽까지 돌담의 밑도리만 옛 산성(山城)의 
잔해처럼 남아있다.

9. 사랑채터

10. 안채터

사랑채 뒤쪽(북쪽)에는 안채가 있었는데, 사랑채와 비슷한 시기에 무너졌다. 이후 그 자리에는 엉뚱하게
도 배드민턴장이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안채터가 완전히 생매장을 당했다. 그러다가 2010년 이곳이 서
울시와 문화재청의 조사 대상이 되면서 배드민턴장을 밀어버렸으며, 안채터의 윤곽을 확인하고 여러 토
기와 기와조각을 수습했다. 이후 2011년 3월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안채터를 땅속에 묻었다.

11. 오롯이 남아있는 사랑채터 (안채터에서 바라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