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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고양이의 블로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누추하지만 네이버 블로그도 있으니 많이 보러들 오세요 ~~! ☞ http://blog.naver.com/py1978
1. 죽령고개 정상 소백산 남쪽 자락에 깃든 죽령은 단양과 영주를 잇는 해발 689m의 높고 험준한 고개이다. 백두대간 소백산맥 구간의 주요 고갯길이자 경상도에서 충청도 동부, 경기도, 서울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 신라 아달라왕 시절인 158년에 죽죽이 개척했다 고 전한다. 고갯길 개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죽죽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는데, 고갯마루에 그의 사당을 세우고 그의 이 름을 따서 고개 이름을 죽령이라 했다. 비록 과로사로 허무하게 가긴 했지만 이름만큼은 제대로 남긴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팽팽한 경계선으로 고구려 장수태왕은 죽령을 넘어 경북 포항까지 세력을 넓혔으며, 신라 진흥왕은 551년 에 거칠부 등 8명의 장수에게 명해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죽령 이북에 10개 고을을 점령했다. 고..
1. 의림지 한복판에 두둥실 떠있는 순주섬 2. 의림지 북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푸르른 의림지 3. 의림지 동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의림지 4. 우륵정 의림지 동쪽 둑방에는 우륵정이 자리해 있다. (서쪽 둑방에는 경호루, 남쪽 둑방에는 영호정이 있음) 의림지 축조설 중 우륵 의 축조설이 있는데, 그는 돌봉재에서 살았다고 전하며 그의 유적으로는 우륵당 옛터와 우물인 우륵정, 그리고 가야금을 탔 다는 제비바위 등이 있다. 제천시는 2007년 의림지 명소화 사업으로 우륵의 예술혼을 기리고자 의림지 동쪽 둑방 적당한 곳에 6각형 정자를 짓고 우륵 정이라 했는데, 그렇다고 이곳이 우륵당의 옛터는 아니다. 5. 우륵정에서 바라본 의림지 6. 우륵샘 표석 우륵샘은 우륵이 이용했다는 샘터이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우륵정이..
1. 소나무가 우거진 의림지 표석 주변 2. 오늘도 무척 평화로운 의림지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이 땅에서 가장 늙은 저수지이다. 삼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세조 때 정인지가 군사를 동원해 2번이나 수리를 했고 1972년 대홍수 때 제 천시내 범람을 막고자 둑을 일부러 터트렸는데, 이때 호수 지하에서 큰 샘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제천의 대표 명소 로 인기가 자자했으며, 특히 빙어 먹방 명소로 유명하다. 3. 소나무가 우거진 의림지 서쪽 둑방길 서쪽 둑방길에는 식당과 까페, 가게 등이 여럿 있다. 4. 서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남쪽 둑방길 5. 경호루 의림지 서쪽 둑방에 자리한 경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1. 제천 의림지 제천시내 북쪽인 모산동(의림지동)에 의림지가 넓게 누워있다. 의림지는 중/고등학교 국사책에도 절찬리에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오래된 저수지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귀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원삼국시대(삼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 다. 신라 진흥왕 시절에 충주에 머물던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아 다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13세기에 제천현감 박의림 이 크고 단단하게 새로 쌓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한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라고 나오는데 그 시절 규모는 길이 530척, 관수 면적이 400결이라 하며, 조선 세조 때 정인지가 체찰사로 이곳을 둘러보고 3도에서 병력 1,500명을 동원해 2차례 보 수를 벌였다. 의림지를 조성한 이유는 바로 농업용수 확보 때문이다. 저수지를 닦고 주변에 ..
1. 용마산4보루터 용마산 정상에서 아차산 능선으로 가다보면 헬기장이 있는데, 그 일대에 용마산4보루터가 살짝 깃들여져 있다. 이곳 보루 는 둘레 약 228m 정도로 동쪽 무덤 주변으로 회흑색 연질토기와 큰 항아리 조각, 대상파수편이 나왔고, 북서쪽에서는 철 제화살촉 1점이 나왔다. 보루터 동쪽 지상에는 석축구조물이 일부 노출되어 있으며, 동쪽과 서쪽 중간 지점 저지대는 집수 시설로 여겨진다. 1994년 구리문화원이 벌인 조사에서 동,서가 별개의 보루로 여겼으나 2003년 서울시 성곽조사 보고서에서 하나의 보루로 확인되어 용마산4보루란 임시 이름을 달게 되었다. 2.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아차산, 용마산 북쪽 능선길 (서울둘레길) 천하 둘레길의 성지로 추앙받은 서울둘레길 2코스(용마~아차산 코스)가 이곳을..
영월 청령포 ' 단종애사의 현장, 영월 청령포 ' ▲ 서강 너머에서 바라본 청령포 봄이 천하만물의 격한 지지를 받으며 겨울 토벌에 여념이 없던 3월의 끝 무렵에 친한 후배 와 강원도 내륙 지역을 찾았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홍천(洪川)의 여러 벽지 명소를 찍고 평창(平昌)을 거쳐 영월( 寧越) 땅으로 들어섰다. 이날 최종 목적지는 충북 단양(丹陽)으로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일 몰까지는 아직 여유가 넘치고 오랜만에 들어온 곳이라 그냥 지나치기는 섭하다. 하여 읍내 직전에 있는 선돌을 보려고 했으나 실수로 놓쳐버려 이미 2번이나 인연을 지었던 청령포를 복습하기로 했다. 청령포는 영월읍내와 무척 가까운 곳으로 주차장에 이르니 16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주차장 은 거의 만땅이다. 간신히 자리를 잡아 차량을..
1. 용마산 명품소나무 제1호 용마산조망대 남쪽에 용마산 명품소나무 제1호로 지정된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의 자태가 좋아서 광진구에서 2009년 10월 에 용마산 명품소나무 제1호란 지위를 주었는데, 아차산 능선에도 광진구가 지정한 명품소나무가 2그루 정도 있다. 2. 용마산조망대에서 바라본 아차산 산줄기의 위엄 3. 용마산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①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용마산1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내가 저곳을 거쳐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인데, 그 봉우리 너머로 광진구과 성동구 지역과 한강, 송파구, 강남구 지역, 대모산 산줄기, 관악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4. 용마산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② 용마산1보루가 있는 봉우리와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누워있는 긴고랑을 비롯해 구의동과 중곡동, 자..
1. 용마산 남쪽 능선(용마산1보루~2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용마산1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도시를 향해 고개를 쳐든 저 봉우리 너머로 중곡동과 구의동 등 광진구 지역과 한강, 송파구, 강남구 지역, 대모산~구룡산 산줄기까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2. 용마산 남쪽 능선길에서 만난 산악신앙의 현장, 돌탑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얹힌 돌이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이렇게 어엿한 돌탑으로 성장했다. 3. 늦가을에 잠긴 용마산 남쪽 능선길 4. 용마산2보루로 올라가는 길 5. 용마산2보루 용마산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해발 225~230m 능선에 용마산2보루터가 있다. 면적은 약 379㎡, 둘레 약 60 ~79m, 폭 8m 규모로 윗 부분이 평탄하게 ..
1. 아차산 긴고랑 이번 아차, 용마산 나들이는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자리한 긴고랑에서 시작했다. 긴고랑은 아차산과 용마산이 빚은 아차 산의 대표급 자연산 계곡으로 하류에는 인공이 좀 가해지긴 했으나 수량이 많고 자연산 부분도 적지 않아 여름에는 피서의 성지로 격하게 추앙을 받는다. 아랫 사진의 장소는 긴고랑계곡 직전으로 여기서 용마산1보루와 2보루를 잡으러 용마산으로 올라갔다. 2. 긴고랑에서 용마산1보루, 용마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 용마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경사가 좀 각박하다. 하여 흥분한 경사를 조금 순화시키고자 일부 구간에 계단길 을 닦았다. 3. 용마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아차산 산줄기 지금은 용마산과 아차산을 따로 보고 있지만 용마산도 원래 아차산의 일원이다. 4. 용마..
1. 금호강에서 바라본 조양각 영천시내 한복판인 창구동 금호강 벼랑 위에 영천의 오랜 명소이자 영남 7대 누각의 하나로 추앙을 받던 조양각이 있다. 1263년에 영천부사 이용이 세운 것으로 명원루, 서세루라 불렸는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38년에 다시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1층 누각으로 영천 출신인 포은 정몽주의 청계석벽 등 시 70여 점이 걸려있으며, 지금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누각 내부 접근을 통제하고 있으니 바깥에서만 둘러보기 바란다. 2. 조양공원에서 바라본 조양각 (영천 조양각) 누각 한복판에 2칸 크기의 방이 있다. 3. 옆에서 바라본 조양각의 위엄 4. 조양공원 비석들 조양각 북쪽에는 조양공원이 작게 닦여져 있고, 동쪽에는 영천문화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에는 ..
1. 여헌성리설(왼쪽)과 명산실기(오른쪽) 여헌성리설은 여헌 장현광이 쓴 저술 중에 성리학에 관한 논지만을 모아 엮은 서적이다. 서문과 발문 등이 없어 누가 편집 하고 간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오른쪽에 놓인 명산실기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이다. (하얀 피부의 안내문 내용이 너무 흐릿하게 나와서 누구의 실기인지는 모르겠음) 2. 지봉실기(왼쪽)와 태재집(오른쪽) 지봉실기는 지봉 황보인의 실기로 1836년에 후손 황보섭, 황보도, 황보학 등이 편집, 간행했다. 그 옆에 있는 태재집은 조 선 초기 문인인 유방선의 시문집으로 1450년에 이보흠의 도움으로 영천 북습서당에서 첫 간행되었으며, 중간본은 1815년 에 14대손인 유천식이 부록과 함께 재편집하여 원주 송곡서원에서 간행했다. 3. 논어언해(왼쪽)와..
1. 북쪽에서 바라본 임고서원 왼쪽 구석에 한옥들이 임고서원의 옛 서원, 가운데 팔작지붕 누각(영광루)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새 서원이다. 현역에서 물 러난 옛 서원 부분은 관람이 통제되어 있고, 새 서원이 임고서원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제향, 관람 등) 2. 임고서원 북쪽에 닦여진 용연 용연은 포은 정몽주가 낚시를 하던 곳이라 전한다. 그 서쪽에는 높은 언덕이 있는데, 그곳은 정몽주가 낚시를 하던 곳이라 하여 조옹대라 불린다. (여기서 '옹'은 정몽주를 뜻함) 허나 정몽주가 낚시로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닌 용이라 하여 조룡대 란 부르기도 하며, 그로 인해 언덕 밑 못을 용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결론은 정몽주 찬양) 여헌 장현광이 임고서원 중건상량문에서 '조옹이란 대가 시냇가에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서울 도심 속의 두메산골, 부암동 능금마을~백사실계곡~평창동 소나무(북악산 북쪽 자락) ' 서울 도심 속의 두메산골을 거닐다 ' (부암동 능금마을, 백사실계곡, 북악산 북쪽 자락) ▲ 부암동 능금마을(뒷골마을) ▲ 은덕사에서 바라본 부암동 ▲ 평창동 소나무 여름 제국의 무더위 갑질이 극성이던 8월의 첫 무렵, 일행들과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 을 찾았다. 북악산 북쪽 자락(부암동, 평창동 지역)에는 나의 오랜 즐겨찾기 명소인 백석동천(白石洞 天, 백사실계곡)을 비롯해 능금마을(뒷골마을), 평창동(平倉洞) 소나무 등의 명소가 깃들 여져 있는데 여름 제국의 핍박도 피할 겸, 간만에 그들을 복습할 생각으로 북악산의 품을 찾은 것이다. 세검정초교 정류장에서 홍제천(弘濟川)을 건너 백석동천의 북쪽 관문인 현통사..
1. 임고서원 새서원의 강당인 흥문관 흥문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논하던 강당이다. 가운데 3칸은 넓게 마루식으 로 이루어져 있고, 좌측 1칸과 우측 1칸에는 방이 딸려있다. 2. 서재인 함육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유생들의 생활공간이다. (동재와 서재는 같은 용도로 쓰임) 3. 함육재 현판 4. 동재인 수성재 서재(함육재)와 같은 용도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5. 수성재 현판의 위엄 6. 심진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임고서원에 전하고 있는 유물과 서적을 보관하던 곳이다. 허나 지금은 서원 동쪽에 닦여진 포은유물전시관으로 모두 옮겨졌다. 7. 전사청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서원 향..
1. 영천 임고서원 은행나무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이곳의 오랜 명물로 500년 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높이 20m, 둘레 5.95m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원래는 임고서원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부래산 자락)에 있었으나 1600년경 이곳에 재건하면서 은행나무도 가져왔다 고 전한다. 예로부터 나무에게 정성껏 차린 깨끗한 음식이나 맑은 정화수를 차려 기도를 올리면 부녀자는 아들을 얻고, 병자는 완쾌 된다고 전하며, 나무를 해치면 크게 벌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어 지역 사람들이 꽤 애지중지한다. 2. 하늘 높이 솟은 임고서원 은행나무의 위엄 3. 포은선생 숭모기념비 4. 임고서원 앞에 재현된 개성 선죽교 개성 선죽교는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게 피살된 현장으로 유명하다. 하여 정몽주를 배향한 임고서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