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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화진 옛터 (양화진역사공원) 절두산성지가 들어앉은 잠두봉 북쪽에 양화진 옛터가 있다. 양화진은 양화나루를 지키던 조선시대 군사시설로 1754년 한 강과 서울을 방어하고자 군진을 설치하고 상비군을 주둔시켰다. 허나 20세기 이후,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졌으며, 잠두봉 북쪽에 양화진공원(양화진역사공원)을 닦으면서 양화진 군 진터 일부에 네모나게 장대석을 둘러놓고 그 안에 건물터를 닦아 이곳이 양화진의 옛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2. 옆에서 바라본 양화진터 (양화진공원) 3. 양화진 옛터를 알리는 표석 4. 양화진터 북쪽에 늙은 느티나무 양화진터 북쪽 언덕에 그림처럼 솟은 늙은 느티나무로 서울시 보호수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과 그 서쪽에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닦여져 있는데..
1. 절두산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높이 20m의 잠두봉 정상에 천주교가 씌워놓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과 절두산성지 성당이 있다. 이들은 절두산성지의 중심적인 존재로 왼쪽에 길쭉한 건물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오른쪽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절두산성지 성당인데, 박물관에는 조선 후기부터 20세기까지 이 땅의 천주교 역사 유물이 들어있으며, 종종 특별전도 열고 있다. (관람시간은 9시30분~17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없음) 2. 활짝 열린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잠두봉, 절두산성지는 여러 번 와봤지만 순교자박물관은 이번이 첫 인연이다. 천주교 쪽은 관심이 거의 없으나 기왕 왔으니 미답처도 하나 지울 겸, 정말 간단히 둘러보았다. 3. 1890년에 제작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지도서 파리외방전교회가 ..
1. 절두산성지에 있는 은언군과 송마리아 묘비 은언군(1755~1801)은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이다. (동시에 순조의 숙부가 됨) 부인인 송마리아는 진천송 씨인 참봉 송낙휴의 딸로 그들은 청나라에서 온 주문모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은 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사사되고 만다. 이후 손자인 철종에 의해 신원이 되었으며, 무덤은 구파발 동쪽 이말산(진관동 78-1번지)에 있었으나 6.25때 실전되고 말 았다. (이말산 일대를 조사하면 무덤이 나올 듯 함) 묘비만 남아있던 것을 후손 이우용이 1989년 9월 26일 천주교에 기증 하여 절두산성지에 이렇게 안착을 했다. 2. 남상교(1783~1866) 청덕거사비 남상교는 남종삼의 백부이자 양부로 현풍현감 재직 때 선정을 많이 베풀어 지역 사람들이 ..
1. 형구돌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교수형으로 처단하려고 사용했던 돌덩어리이다. 저 돌덩어리에 죽어간 사람들의 신 음과 메아리가 들리는 듯 하여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2. 연자매처럼 보이는 이것은?? 모습은 연자매이나 실은 노기남 대주교의 금경축 기념비이다. 노기남(1902~1984)은 최초의 한국인 주교이자 제10대 서울 대교구장을 지낸 사람으로 대주교 사제 수품 50주년(1980년 10월 26일)을 기념하고자 세웠는데, 그 기념비를 특이하게 연 자매로 만들었다. 원래는 그의 합정동 자택에 있었으나 나중에 이곳 절두산성지로 옮겼다. 3. 절두산성지 한복판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동상 4. 석굴에 봉안된 하얀 피부의 성모 마리아상 5. 성모 마리아상 주변 6. 흥선대원군의 쇄국 망령이 ..
1.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한강 산책로에서 바라본 잠두봉) 2호선 당산철교가 지나가는 곳에는 서울의 주요 나루터인 양화나루가 있었다. 양화나루가 언제부터 나루터로 살았는지 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처음 이름이 등장해 고려 때부터 나루터로 살아온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이후, 한강의 5대 나루터의 일원으로 바쁘게 살았으며, 이곳이 나루터로 크게 각광을 받은 것은 강 남쪽에 선유 봉(현 선유도), 북쪽에는 잠두봉이 자리했고 그 사이로 비스듬하게 모래톱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완전 다른 모습임) 양화나루란 이름은 인근 강변에 갯버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잠두봉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조선 초부터 도성 밖 경승지로 유명하여 망원정 등 왕족과 사대부들이 세운..
' 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동산, 남산(南山) 나들이 ' ▲ 한양도성 장충동 지구 ◀ 남산 N서울타워 ▶ 한양도성 백범광장 구간 ▼ 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심 나의 어린 시절 진한 추억이 서려있는 서울의 포근한 뒷동산 남산, 문득 그의 품이 그리워 꼬마 시절의 흐릿한 추억도 잠시 소환해..
* 서울 도심의 남주작, 남산(목멱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남산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나의 고향 산이다. 내가 남산 인근 신당동과 약수동에 오랫동안 살았거든. 친구들과 툭하면 남산에 놀러갔었고, 가족들과 남산 약수를 뜨러 갔었지. 그 남산도 이제 천하 제일의 관광 명산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