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겨울장미 2009. 3. 24. 13:09

3월 23일 1시 30분에 논산 연무대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초행길이라 넉넉히 시간을 잡고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이정표대로 따라 연무대 집결 장소가 가까워지니 많은 차량들로 붐빈다.

도착하니 11시 30분..

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복잡하다는 안내에 따라 부근의 식당에 주차시켰다

식당도 발 디딜 틈이 없이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겨우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시간은 많이 남아서 차를 식당에 둔 채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엔 춥더니 이내 햇빛이 활짝 나오고 날씨는 아주 좋았다.

벌써 개나리들이 노랗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1시에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1시 30분에 아이들 연병장으로 집합...30분 동안의 식이 끝난 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연병장을 한 바퀴 돌아 내무반으로 들어가고..

마지막 한 명까지 다 들어갈 때까지 환송객들은 모두 손을 흔들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아들을 입소시키고 돌아오는 길..

아들과 지냈던 일들이 머릿 속을 스친다.

지난 주엔 함께 영화도 봤고.. 이번 토요일(21일)엔 함께 무등산 다녀왔고

일요일(22일)엔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군대 간다는 보고하러 다녀왔고.. 머리 깎고

오후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 밤에 들어와선..

맥주 잔 놓고 밤이 새도록 옛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장남 며느리로 시집와서..

내리 딸 둘을 낳아 놓고 나니.. 그것도 둘 다 제왕절개로..

그렇쟎아도 호랑이 시엄니.. 아들도 못 낳는 주제에 배 째서 딸만 낳았다고..

씨받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은 내 마음의 비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입덧을 하게 되니 반가움에 앞서..

말 그대로 좌불안석.. 눈만 감으면 또 딸을 낳는 꿈...

카톨릭 신자이면서 여기 저기 잘 본다는데는 다 다니고 그랬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런다.

아주 용한 한의원이 있는데...거기 가서 약 한 첩만 먹으면 아들 낳는다고..

자기도 그랬고 백이면 백 실패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아니..그것도 임신 전의 일이지 난 이미 임신 3개월 째 인걸?..."난 강하게 부정했으나

"임신되었어도 3개월만 넘기지 않으면 아들로 된다구...나도 그랬고 누구 누구도..."

많은 이름들을 들먹거리며.. 그녀의 말엔 확신이 차 있었다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나?..

이미 정자와 난자가 결합이 되었을 때 성별은 결정이 되는 것을...

그러나 아들에 대한 나의 염원은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학식도 지식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아들만 낳을 수 있다면... 그만큼 아들에 대한 염원이 간절했기에...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랄까?..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결국은.. 난 무식쟁이가 되어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임동의 ㅇㅇㅇ한약방을 찾았고..

나이 지긋하신 원장님은 약 한첩을 주면서..

반드시 장닭을 사서 벼슬과 간 콩팥을 떼어서 그것을 푹 고아서

그 물에 약을 넣고 다려서 3컵 될 때 까지 졸여서 3번을 먹으면 반드시

아들 낳을거라고 장담을 했다.

 

집에는 아무 말 못하고...다음날 일찍 친정으로 가서 친정엄마와 함께

가까운 시골 장에 가서 커다란 장닭을 사고..

엄마는 그걸 다려서 상에 받쳐놓고..."삼신님네......" 하구 손을 싹싹 빈다.

그게 웃으워 웃고있는 내게 부정탄다구 친정 엄마는 정색을 하신다

미신을 믿지않는... 카톨릭 집안의  엄마도 얼마나 딸의 아들 낳기를 소원하셨는지...

내가 참 불효 막심이다.

한 컵을 먹고... 나머지 두 컵은 소중하게 싸 안고 집으로 오는데..

차 속에서 아랫배가 슬슬 진통 같은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불안한 맘으로 집에 와서...다음날 다시 한 컵 먹는데..진통은 멈추지 않고 하혈이 시작된다

 

놀라 병원을 찾으니...유산기가 있다면서 지혈제를 놔주고 절대 안정하란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나의 아들에 대한 소망은 또 마지막 한 컵까지 마저 먹게 되고..

순간 진통은 더욱 심해지고..계속되는 하혈로 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유산이 된 후였다.

무지한 나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아들에 대한 나의 염원은 물거품이 되었고...

생각 할수록 나의 무지함이 부끄럽기까지 해서 그 후로 난 한의원을 불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사실은 나와 친정엄마 만의 비밀로 간직해오고 있었는데 그 후 아들을 낳고

세월이 흐르니 그냥 전부 폭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시 칠거지악의 죄인으로 산지  2년 후 다시 입덧을 하고...

그러나 병원에선 산모가 위험하다고..

산모가 죽을수도 있다며.. 아이를 포기하라고 한다.

유산을 시키는 것만이 나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병원의 강권에 맞서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는데..거둬갈 목숨이라면 이런 일 아니라도 거둬 갈 것이거늘..

거둬갈 목숨이라면 아깝지 않으니.. 절대로  아이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서니

더이상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8개월 반 만에 세 번째의 제왕절개로 그렇게도 소원하던 지금의 아들을 낳았다.

 

모두 다 기쁨 속에 들떠 있는데.. 예상되었던 후유증은 찾아오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통증을 호소하는데..

" 사모님 지금 느끼는 이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그때 돌아가셨다면 이 고통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있음의 축복으로 이 고통 받아들이십시요" 하는 어린 간호사의 진심어린 말..

어쩌면 저 어린 간호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순간 하느님의 말이 이 간호사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려니...

어린 간호사의 그 말이 그렇게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참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그 간호사의 말은 아들의 자람과 함께 내 맘 속에서도 자랐다.

늘 그 말이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의 힘이 되어 준다.

너무 힘든 고통에 이름도 알아두지 못했던게 아쉽다.  지혜로운 아가씨이니 잘 살고 있겠지...

 

친지들은 아들을 볼 때마다 "니 엄마가 목숨걸고 낳은 아들이다."고 말들 한다.

온 집안의 경사였고 축복 속에 태어난 아들!..  그러나..

"내 집의 귀둥이가 남의 집의 천둥이 된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애기 때 부터 무척 엄하게 키웠다.

예를 들면 어려서부터 제 자리에서 제 시간에 밥을 먹지 않으면 밥그릇과 수저를 빼앗아 버린다.

다음 끼니 때까진 굶을 수 밖에..

제 방 청소는 제가 하고.. 제 일은 제 스스로 하고.. 모든 면에 책임감,독립심과 깎뜻한 예절..

 

"엄마 그 때 병원에서 그렇게 말렸는데 왜 유산시키지 않고 날 낳았어요?..  무섭지 않았어요?"

"목숨이란건 하늘이 정하는 이치야?"

"엄마 날 이렇게 고생하고 낳아서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넌 매사에 모범생이니 군대서도 잘 할 것이야.. 잘 해라"

 

 

아들아!

사회와 가정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것들..

군대에서 잘 배워서 건강하고 씩씩한 대한민국의 남자가 되어 돌아오라.

엄마! 건강하셔야 돼요?...

아들과 작별 할 때도 옆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데도 난 아들과 함께 꼭 끌어안고 서로의 건강만을

염원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상념에 젖다보니.. 안개가 꼈나?.. 왜 이렇게 흐리지?..

ㅎㅎ 날씨는 화창한데 내 눈물이 시야를 가렸구나... 이런..

운전 조심하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올 때는 빨리 왔다.

으 피곤해..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 쓰고 누우니 온 몸은 파김치가 되는데..

정신은 초롱초롱하기만...

아들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이전 댓글 더보기
어쩌나 우리 장미님 마음이 무척 허전하시겠네요. 고생고생해서 낳으신 아들이....
저도 큰녀석 군에 갈 때 논산 연무대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내가 군대갈 때가 생각나서 그랬는지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저것이 이제부터 얼마나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하더니 그만
눈물이 주루룩 나서 둘째 갈 때는 저희친구들 같이 갔다오라고 여비 보태줘서 청부를 맡겼다니까요.

이제 며칠 있으면 집으로 소포 하나가 올거에요. 아드님이 벗어서 보낸 사복 뿐이지만 아마도
그 옷 받으시고 우실 걸요. 조사장님도 분명히 우실 것이고....시어머님도 그러실 것이고......
하지만 통과의례에요. 군에 갔다가 와야만 진짜 사나이가 되는 겁니다. 학벌만큼 중한 것이지요.
강하게, 책임감 있게 키우셨고 더구나 입대 전에 할아버지 산소에 신고까지 하고 온 아드님이시니
멋진 진짜싸나이가 돼서 5개월 뒤면 대문 안으로 씩씩한 대한민국 국군 하나가 들어설 것입니다!
아.. 선생님은 둘이나 보내셨지요?..
그런데 떨어져 살아선지.. 아님 제가 너무 무정한 엄마인지.. 그냥..
고1겨울 방학 때부터 기숙사 들어가고 대학 들어가자 또 한양천리 멀리 떠나보내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목숨까지 걸고 낳았지만.. 불과 20년도 채 함께 못 산 것 같아요.
이제 제대하고 학교 마치면 또 결혼하고 그러면..
정말 함께 사는 기간이 너무 짧아요.
데리고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네요..
감사합니다.
겨울 장미님 그 때만 해도 남우 선우 사상이 심할때라 애간장 많이 태웠네요.
그 귀하디 귀한 아들 군에보내놓고 그애뜻한 심정 이해되네요.
저도 수년전에 우리 큰아들 군에 보내놓고
면해를 가서 돌아오는 길에 마치 딸 시집 보낸것 마양 얼마나 울엇는지요.
그다음 작은 아들때는 아예 가지 않앗답니다.
님의 글 공감하며 잘보앗습니다.감사합니다.
아들 못 낳은게 전부 여자의 죄인양.. 그랬지요.
님의 다복하신 가족의 모습 보았답니다..
봄이 되니 채전밭 가꾸기가 시작 되겠네요?.
좋은 날 되시고 늘 건강하셔요.
감사합니다
저런 !
그런 비화가..........
그런 귀한 아드님을 군에 보내셨네요.
몸 성히 잘 다녀 오기를 !! __()__
어쩌다 서핑중에 우연히 들러 좋은 글을 접하게 되었구만유~
20여년전 시골 이웃집에 살았던 친구가 장손으로 딸둘 낳고 있는데
부모님이 아들을 바라신다고 걱정하길래
제가 들은 소문으로 병원을 소개해준 기억이 새삼스럽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아드님 군입대 시키셨군요....마음이 어떠실지 그저 아픈 마음으로 짐작해 봅니다.
저도 아들 키우는 사람이다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군복 입은 군인만 봐도 웬지 눈시울이 벌개지는건
그저 아들 사랑하는 엄마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힘들게 아드님 얻으셨군요...누군가에겐 참 쉬운 일인데도 또 누군가에겐 이렇게 절실하고 힘든 일이 또한 아들이네요..
저도 힘들게 아들 낳은 사람입니다..저야 누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떠민 것도 아닌데 그저 제 욕심이 강했습니다..아들 얻고 싶은 욕심..
그래서 저야말로 임심을 알자 마자 용하다는 한약방을 물어 물어 찾아 가서 한재 지어 먹었고
친정엄마가 소의 거시기를 삶아 먹으면 된다는 동네 아줌마의 얘기를 들으시고 정육점에 미리 부탁을 하여 소 거시기를 사다가...삶아 주셨습니다...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먹어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하시는 엄마의 말씀에 구역질을 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지요..
한점의 고기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효력이 있다고 하셨는데......솔직히 저...반도 못 먹고 엄마 몰래 버렸습니다...ㅎㅎㅎㅎ
그래도 아들 낳았으니...효력이 있는건가요? 없는 건가요? 저도 미스테리...ㅎㅎㅎ
아무튼...그렇게 그렇게 힘들게 낳은 아들...
뭐 딸과 별반 다르진 않지만...딸도 좋고 그리고 아들도 있으니 좋습니다..

아드님 군 생활 멋지게 잘 하고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겨울장미님의 씩씩한 멋진 아드님이니까요....^^*
아드님이 입소했나 봅니다
나랏일 하고 있는 거,,, 라고 생각 해 보세요?
그럼 장한 아들이 됩니다
어린티를 벗고 이제 사나이가 되가는 중이지요

늘 건강하세요
드디어 목숨걸고 낳은 아드님
모범생으로 자라 군대에 입소했군요

앉으나 서나 눈감으나 눈 뜨나
아드님 생각나실 겁니다

잔잔하게 아드님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리며
올리신 글 읽으며 저도 울 아들넘 군대갈때 생각이 나네요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이던 아들
아침에 눈이 빯갛게 충혈되서 안약까지 사서 주머니에 넣어주었던,,,

반듯하게 자랐으니 군생활도 범생으로 잘 할 겁니다

제대하는 날까지 주님의 은총이 아드님과 늘 함께 하길 기도할께요

눈 조심하시고 건강지키시고 맘 편히 보내세요
아드님 걱정 마시구,,,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느낌이시지요?
어느 부모인들 안그렇겠습니까만
정에 약한 장미님은 더욱 그러해겠지요..
바쁜 일상이다보니 요즘 뜸했습니다.
건강챙기세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딸 둘 낳고 아들 낳을 때 까지
(그 사이에 생긴 딸들은 아마...ㅠㅠ)
두렵고 아픈 마음에
말을 않고 살아서 옆에서 다들 벙어리인 줄 알았답니다.
드디어 아들 낳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는 슬픈 이야기.

장미님
장닭이야기
부정탄다고 혼나셨다는 대목도
지금은 웃으며 하실 수 있지만 그 땐 심각하셨죠??

아들이 뭔지...

고통 중에도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는
젊은 간호사의 지혜로운 위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귀한 아드님이 군복무 씩씩하게 마치고
나라의 장한 일군되어 돌아오기를 _()_
제주에서 철원 와수리까지 이들 면회와서
아들과 함께한 PC방에서
우연히 들런 님의 블로그에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 염려와 달리 군대도 좋아졌고
다른 군인 아들들도 댜들 적응을 잘 하고 있습디다.
멋진 아들이 되어 돌아 올것입니다.
아들 군에 보내고 돌아서는 어미의 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도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렇게 눈에 안개가 끼더군요.
잘하고 멋진 청년이 되어서 올것입니다.

요즘 군대서도 인터넷도 되니 좋은 세상이지요
지난해 조카 군입대 시켜놓고
돌아오던 때
그때 참 많이 착잡했는데
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조카도
군이란 울타리속에
가둬두고 발길이 힘들었는데
아들을 그것도 어렵게 얻은
아들을 군에 보내는
님의 마음이야
무슨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님...
첫면회 가서 보시면
그새
씩씩해져 있을 것입니다
평안하시길 빌어요 ^^

그 아드님이 군엘 갔군요.
잘 해낼 것입니다.
어느분의 아드님이시라고요....ㅎㅎ..
엄마의 마음이 쨘~~~하셨겠어요.
제왕절개를 3번이나 하셨군요.
개들도 여러번 하면 자궁이 들어앉을 자리도 없어진다 하던데요.
자꾸 안으로 꿰매야 하니.....
참 겨울장미님 존경스러우신분.....
어머님과 여태껏 살아오시고......

비밀댓글입니다
그래요 언니
그 귀한 아들이 군대에 갔군요
귀하지 않는 생명이 아들이나 , 딸이나 어디있겠냐마는

그시절엔 참 모두들 아들타령 컸었지요
더군다나 시엄니들 홧김의 말씀이 며느리들에 비수를 꼽고~~
저는 다행히 아들을 먼저 낳아 그런 염려 없었지만
또래 이웃들 위의 딸 낳고 그때 태아 감별 몰래 많이 하러 다녔었지요
딸이면 ~~아들이면 낳고

몇주 못온것 거꾸로 읽어 올라오고 있음다
아들이 뭣이라고...ㅋㅋ!
죽을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위대하지요.
시어머니도 여자이면서 그 고통을 모르시고...?
정말 아들은 배로 낳은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낳았군요.
그런 아들이니 앞으로 잘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아들이 벌써 성장하여 나라를 지키고 있군요.
장하십니다.
그리고, 멋진 생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미 훈련 끝내고 자대배치 받았겠네요?
장미언니~!
아드님이 벌써 군입대했군요?

귀한아드님 사연도많네요
부디 훌륭하게 군복무잘하고 건강하게 잘지내길빌어요
염려하지마세요

저도 둘째가 지난 5월에 전역했답니다
지금 서울에서 복학할동안 알바하고있어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장미언니도 건강하세요
아이고, 제가 좀 철이 없고 메뚜기처럼 뛰어 댕기도
자식에 관한 얘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귀가 솔깃해 지는데
오늘 누님 글을 읽다보니 그저 한 귀절 한 귀절이 다 가슴에 와 닿습니다
꼭히 남아선호 사상이 아니더라도 정말 힘들게 낳으신 아드님은 참 각별하시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드님이... 혹시... 결혼하고 나서...
에잉~ 그런 일은 없겠지!!!
아우님은 아들만 둘을 두셨으니 아들없는 사람 심정 이해 못하실테지요..ㅎㅎ
아들만 둘 두었으니 이제 저는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습니다아아아~!
딸 둘 둔 사람은 비행기 타고 여행하다가 비행기 안에서 죽는다는데애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