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그림읽기

小岩 2009. 11. 13. 16:00

길 떠나는 신선들’

일련의 사람들이 세 무리로 나뉘어 빈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

나귀를 거꾸로 탄 사람도, 외뿔소를 타고 있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우리 주변에 보기 힘든 박쥐가 날아다니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일반인이 아닌 신선들이다. 작가는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다.

김홍도, 군선도(群仙圖), 조선 1776년, 종이에 담채, 132.8×575.8㎝, 국보 139호

김홍도는 우리에게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신선 그림이다. 김홍도의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강세황(姜世晃)은 “특히 신선을 잘 그려 이것만으로도 일세를 울리고 후대에 전해지기 충분하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 중에서 ‘군선도’는 김홍도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원래 병풍으로 만들어졌을 만큼 큰 크기에 인물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였고, 채색이나 구성도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반 신선도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우선 뒤에 아무런 배경이 없이 신선만 그려 놓았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심지어 김홍도의 미완성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신선들이 줄지어 가는 도상은 주로 신선들이 서왕모(西王母)의 생일을 맞아 축하드리러 바다를 건너는 것인데, 중요한 배경인 바다가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풍속화첩’에도 배경을 그리지 않고 인물들의 모습만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김홍도는 배경을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써 인물들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신선들을 그렸는가의 문제도 있다. 신선들을 그릴 때는 대체로 개별 신선들의 특징을 표현하여 어떤 신선인지 암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여동빈(呂洞賓)이라는 신선은 유복(儒服)을 입고 등 뒤에 칼을 차고 있는 모습이며, 장과로(張果老)는 나귀를 거꾸로 탄 모습으로, 노자(老子)는 청색 외뿔소를 타고 도덕경을 든 모습으로 표현한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장과로나 노자 등 몇몇 신선은 특징에 맞게 표현하였지만 다른 몇몇은 도대체 어떤 신선인지 알 수 없게 하였다.


‘군선도’에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들은 당시 시대상과 관련이 깊다. 김홍도가 활동하던 조선후기에는 신선도가 길상적 의미를 지닌 구복의 대상으로 그려지기보다 일반 그림들처럼 감상용으로 제작되었다. 즉 감상자는 이 신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림을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행의 선두에는 새로운 신선도를 창조했던 김홍도라는 불세출의 화가가 있었다. 모두들 기존 신선도의 형식에 맞춰 그리고 있을 때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인물을 변형시켜 새로운 신선도를 창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파격적인 생각과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갖춘 김홍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의 화가로 추앙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