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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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에 직면한 조선소 노동자들이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국유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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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21. 3. 2.

“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동정심이나 드러낼 때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점거하고 주도권을 쥐었다.”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도 없고 저항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경우라면 노동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느끼며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도, 경쟁과 경제위기의 압박에 짓눌린 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이 현실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환경위기, 에너지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당장의 일자리 문제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발밑이 허물어질 수 있다. 빙산을 향해 나아가는 타이타닉호 같은 처지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자본가들에게서 해결책이 나올 거라 기대할 순 없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회사의 번영에 기대어 노동자의 생존을 보호하는 데 익숙한 통상적인 노동조합운동도 이런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긴 마찬가지일 테다.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 때문에 핵발전소 폐기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노동조합적 요구와 사회적, 환경적 요구가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싸우는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을 피할 수 없고, 패배는 예정된 수순이 된다.

 

그런 모순과 충돌을 넘어서서 노동자가 자기 일자리를 지킬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번영을 누리다 파산으로 치달은 한 조선소

 

그런 가능성의 단초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 19일자 번역기사 자본주의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파괴하자!”에 두 문장으로 짧게 소개된 아일랜드의 할랜드앤울프(Harland & Wolff) 조선소 투쟁 사례다. “이 조선소는 파산선고를 받았지만노동자들은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국유화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점거투쟁을 벌였다.”

 

얄궂게도 할랜드앤울프는 1909년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바로 그 조선소다. 1861년에서 설립된 뒤 수많은 거대 여객선과 군함을 건조하며 승승장구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숫자는 35,000명에 이르렀다. 타이타닉호를 만들면서 절대 침몰하지 않는 배라고 믿었던 것처럼 이런 거대 조선소가 파산으로 치달을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선박 생산의 중심지가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주요 교통수단이 항공기로 바뀌면서 할랜드앤울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1975년에 한 차례 국유화가 이뤄졌지만 영국 정부는 군함 생산에만 골몰하다 결국 1989년 다시 민간기업에 매각하면서 민영화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35,000명이 일하던 조선소 규모는 10,000명 선으로 축소됐다.

 

그 후 2003년부터는 풍력발전과 조력발전에 쓰이는 터빈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여전히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점점 회생불능 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전통적인 조선소를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게 일개 민간기업 차원에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적 차원의 에너지 및 교통운송체계 재편계획,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이윤, 비용절감, 효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타파하는 계획이 수반돼야 한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정부가 이런 계획을 세우고 집행할 리 만무했다.

 

결국 2019년 할랜드앤울프 조선소는 공식적으로 파산절차를 시작했다. 이곳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며 행동으로 주도권을 거머쥔 노동자들

 

2019 7 30, 그 이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을 이어오던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곳에 조합원을 두고 있는 노동조합들(유나이트, 영국일반노조, 아일랜드노총 북아일랜드지역지부 등)이 공동으로 투쟁대열을 꾸렸다. 이 때 남아 있는 노동자는 이제 132명에 불과했다.

 

이 노동자들은 거대 유람선과 군함을 쏟아내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고전적인 물량유치 경쟁에 매달리는 것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그 대신 풍력과 조력 등을 이용해 지금의 에너지위기, 환경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할랜드앤울프 조선소를 국유화해 다양한 설비와 자신들의 숙련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엄청난 가능성이 풍력발전과 조력에너지에 있다.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재생에너지를 향해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의 발언이다.

 

이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애쓰는 방식이 아니라 점거농성이라는 투쟁방식을 채택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파산절차를 진행하려는 집행관의 조선소 진입을 막기 위해 정문을 막아섰다. 농성 중인 조합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노동자가 스스로 문을 열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집행관도 공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

 

상투적인 조합주의적 요구를 넘어선 정치적 전망, 그리고 단호하게 투쟁하는 모습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9 8 3일 영국 건설노조 평조합원 연례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은 할랜드앤울프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늘어나는 청정 재생에너지 수요뿐만 기후변화가 낳을 임박한 재앙에 맞선 투쟁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지금의 공장과 일자리를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들의 요구에 주목한다.”

할랜드앤울프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위한 투쟁에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에 복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용과 생산설비를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할랜드앤울프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결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다음 달에 있을 기후파업에 동참할 것을 모든 노동자에게 호소한다.”(2019 9월 세계적으로 기후파업이 조직됐다.)

 

중요한 한걸음을 내딛었다

 

이 점거농성은 9주간 이어졌다. 이들은 투쟁에서 승리했을까? 할랜드앤울프 조선소는 2019 10 4일 영국의 에너지기업 인프라스트라타(InfraStrata)에 매각됐다. 마지막까지 퇴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79명의 노동자는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지만, 농성을 함께 시작했던 132명이 79명으로 줄었으니 그 투쟁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9주에 걸친 점거농성은 미래세대 노동자들에게 집단행동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동정심이나 드러낼 때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점거하고 주도권을 쥐었다.”

 

인프라스트라타는 할랜드앤울프는 기념비적인 자산이며 훌륭한 다목적 생산시설로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며 조선소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게 종료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사업 중심으로 이 조선소가 가동되더라도, 다른 모든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인프라스트라타 역시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잣대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투쟁 사례는 아주 중요하다. 애초의 목표대로 청정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국유화 요구가 즉각 관철되진 못했지만, 노동자들이 오직 조합주의적 요구에만 갇히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었다는 점,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한 투쟁과 사회적, 환경적 요구를 결합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아냈다는 점,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노동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면서 사회적 고립을 깨뜨리고 연대의 힘을 조직할 수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 이면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 자체의 경제위기가 가시화되면서 한국에서도 기업들의 파산과 산업변동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쌍용차처럼 이미 위기가 표면화한 공장도 있다. 자본가들만큼이나 어쩌면 노동자들도 그저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 앞에 낭떠러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의 포스트 코로나를 기획하는 데에서 2019년 할랜드앤울프 조선소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을 충분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