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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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항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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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21. 5. 10.

 

1. 미얀마에 대한 인상: 후진적인 농업국가일 뿐인가?

 

미얀마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우선 우리가 잘 모르는 나라라는 점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항공편으로 6시간 걸리는 곳이니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은 않다. 불교의 나라, 승려들과 황금빛 건축물, 쌀농사를 많이 짓는 나라,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런 것이 미얀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일 테다. 나이가 좀 있다면 떠들썩했던 아웅산테러사건도 기억이 날 것이다.

 

올해 보게 된 미얀마의 모습은 이런 상투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흔들어 놨다. 우선 다음 자료를 보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단(KOTRA) 양곤 무역관 자료를 바탕으로 농업, 서비스업, 공업·제조업의 GDP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2000~2001 회계연도에 농업은 57.3%, 공업·제조업은 9.7%였는데, 10년 뒤인 2010~2011 회계연도에 농업은 36.8%로 크게 줄고, 공업·제조업은 26.5%로 훌쩍 자라났다. 이로부터 5년 만에 농업과 공업·제조업의 관계가 역전됐다. 농업은 26.2%, 공업·제조업은 35%.

 

GDP를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이 변동이 곧바로 산업별 인구 구성의 변동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숫자로 따지면 여전히 농업 종사자 인구가 훨씬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얀마에서 최근 십수 년 사이에 빠르게 자본주의가 성장해 왔고, 그만큼 빠르게 산업 노동자들의 사회적 비중이 확대됐다는 점이다. 단순히 숫자의 문제를 넘어 쿠데타에 맞선 시위 초기부터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강력한 투쟁이 이어졌으며, 여러 소수민족 경계선을 넘어선 총파업위원회 결성으로까지 나아가면서 노동자계급 고유의 응집력이 미얀마 사회 표면에 가시화됐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시위에 나선 미얀마 노동자 민중이 남녀노소를 떠나 광범하게 스마트폰과 SNS를 활용해 투쟁 상황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서로 소식을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양곤 시내 한복판, 시위대 뒤로 높이 솟은 고층빌딩과 거대한 삼성 스마트폰 광고판이 미얀마 경제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라 전체를 보면 여전히 농업 인구가 다수이고, 공업·제조업 발전 수준 역시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와 동시에 최첨단 기술이 자연스럽게 미얀마 사회로 흘러 들어가 기존의 낙후한 여러 요소와 결합하고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무렵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단면이다. 낙후한 농업국가였던 러시아가 세계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한편으론 여전히 방대한 농업경제가 잔존했지만 그와 동시에 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적인 산업과 노동자계급이 빠르게 성장했고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이 과정 전체를 일컬어 불균등 결합발전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미얀마도 그와 같은 불균등 결합발전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양상은 투쟁에 뛰어든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에도 불균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미얀마는 부인이 남편보다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의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적 관념이 강력한 나라였다. 그러나 한창 항쟁이 진행 중이던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 시위에서 우리는 그런 전통과 완전히 단절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명의 여성은 차이를 만들어낼 뿐이지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세상을 흔들 수 있다”, “성차별 인종차별 여성혐오 정권 꺼져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여성들이 시위를 벌일 때, 남성들도 똑같은 피켓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나란히 시위에 동참했다.

 

 

시위가 벌어진 양곤 도심지의 모습(왼쪽)과 3.8 여성의 날 시위에 동참한 젊은 남성들(오른쪽)

 

요컨대 우리는 미얀마항쟁에서 다른 무엇보다 노동자계급과 청년들의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은 결코 세계사적으로 사그라드는 계급이 아니라 여전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를 향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청년들 역시 한 미얀마 청년이 말했듯이 “케이팝에 환호하고 연예인 쫓아다니고 게임이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목숨 걸고 싸울 줄 아는 패기를 보여줬다. 미얀마항쟁이 승리한다면 미얀마 노동자 민중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 더 나아가 세계 전체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또 다른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거대한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2. 미얀마항쟁: 우리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도 비쳐주는 창

 

이렇게 활기찬 투쟁이 벌어지는 걸 보며 한국에서도 부산, 울산 등 여러 도시에서 미얀마항쟁을 지지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투쟁을 계속 해나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도록 모금운동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노동자집회에서 미얀마항쟁을 지지하는 인증샷 찍기를 하면 너나할 것 없이 기꺼이 동참한다. 울산에서 미얀마항쟁 연대 캠페인을 벌이는 동지들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의 호응도 상당하다. 미얀마항쟁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군부 쿠데타에 맞서 민주화항쟁을 벌이는 미얀마 노동자 민중을 보며 한국사회가 겪어온 ‘과거’를 떠올리고, 이로부터 감정적 동질감을 갖는 측면이 강한 듯하다. 미얀마인들의 경우에도 한국이 군사독재에 무릎 꿇지 않고 그에 대항해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온 과정을 보고 영감과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광주항쟁이라는 경험을 매개해 미얀마항쟁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건 어쩌면 역사적으로 규정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 시대를 직접 거쳐온 세대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배경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혀보자. 미얀마항쟁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단지 ‘과거’의 투영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촛불항쟁이 펼쳐지던 순간, 박근혜 정권은 대중의 저항을 때려잡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문재인 정권은 정권교체라는 전리품에 만족했는지 이 사안에 대한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고 내버려뒀다. 하지만 올해 4월 26일 국민의힘 김무성 전 의원이 한 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당시 박근혜 정권이 실제로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한국에서도 상황 전개에 따라 얼마든지 그간의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를 파괴하는 물리적 조치가 시도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집권세력과는 달리,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결코 완성된 것도, 영구적으로 보장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그 여파로 민주주의가 쇠퇴할 거라는 진단이 도처에서 제기됐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를 핑계로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무장한 병사들이 도시와 교통 요충지를 감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선 우익들이 총기를 소지한 채 무장시위를 벌이고 국회를 습격하기까지 했으며, 정권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흑인들은 경찰에게 살해당하고 있다. 지난해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나섰던 세력의 일부는 급진적인 민주주의 요구로서 경찰 해체를 외쳤는데, 그런 구호를 내걸어야 했던 상황 자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둘째. 쿠데타가 발발하자 즉각 한쪽에선 미얀마 군부의 배후에 중국이 있고, 중국이 쿠데타를 사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얀마 내에서도 이런 여론이 강했다. 그 반대편에선 아웅산수치의 배후에 미국이 있고, 지금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개, 돼지’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주장들은 상당히 단순하거나 허황된 측면이 있지만, 이와 같은 대비구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이에 맞선 항쟁 같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을 때,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들 특히 그 핵심 축인 미국과 중국이 이 상황을 최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 할 거라는 점이다.

 

물론 누구나 말하듯이 상황은 복잡하다. 중국 지배계급은 말레이반도 남쪽 말라카해협으로 우회하지 않더라도 곧장 에너지자원을 자국으로 운반할 수 있는 안정적인 통로로서 미얀마에 전략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었고, 2017년 미얀마 서부해안 차욱퓨항구에서 중국 윈난성으로 직결되는 송유관을 정식 개통함으로써 미국의 봉쇄망에 일부 균열을 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미얀마 군부 세력뿐만 아니라 아웅산수치 세력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애썼다. 중국 입장에선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내전이나 미국의 개입 등 불안정한 요인을 조성한 게 골치 아픈 상황일 수 있다.

 

 

차욱퓨항구에서 시작해 중국 윈난성으로 연결되는 송유관

 

골치가 아픈 건 미국 지배계급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 열강은 아웅산수치를 미얀마 ‘민주진영’의 대표자로 승인하며 힘을 실어주고 파트너로 삼았는데, 로힝야 학살사건 앞에서 군부와 확실하게 대치하는 대신 결국 압도 다수 버마족의 지지에 영합하는 국내정치 논리에 따라 군부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파트너 관계에 금이 갔다.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다른 파트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쿠데타 이후 등장한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또는 그 뒤 결성된 국민통합정부 인사들은 미얀마 정치에 실질적 관장력을 행사하기엔 너무나 허약했다. 더욱이 자신들의 공공연한 개입은 자동으로 중국의 공공연한 개입에 명분을 내주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조건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해 지금 당장엔 제국주의 경쟁세력인 미국과 중국 양쪽의 가시적인 개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개입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얀마 정국이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갈등이 빚어내는 압력과 무관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중국은 미얀마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고, 내정간섭에 반대한다는 그럴싸한 구호와는 달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미얀마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직접 미얀마 상황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 군사훈련 중인 중국 항모전단을 상대로 연거푸 도발행위를 함으로써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요컨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경쟁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들은 다른 나라들을 향해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지 묻는다. 이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은 말 그대로 “중국이냐 미국이냐”, 즉 이쪽 또는 저쪽 중 어느 한쪽에 줄을 서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미얀마항쟁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이런 모습이 보인다. 저마다의 근거를 대며 일부는 미국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으로 미얀마 군부와 중국을 비난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미얀마 시위대를 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개, 돼지라고 비난하며 미얀마 군부와 중국을 옹호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제국주의 열강의 어느 한쪽에 줄서기하는 거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중국도 미국도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편이다”, 즉 제국주의 경쟁세력 중 어느 한쪽에 들러붙기를 거부하고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단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항쟁에 나선 미얀마 노동자 민중이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세력권에 포획되지 않고 중단 없이 투쟁을 밀어가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국제주의 노동자단결의 정신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는 우리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얀마항쟁은 단지 우리의 ‘과거’를 비쳐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3. 국제적인 노동자 단결전선

 

정치는 진공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노동자들이 독립적, 계급적인 정치로 무장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노동자들에게도 따라서 노동자운동에도 제국주의 자본가집단의 정치적 압력이 고스란히 밀려들어올 것이다.

 

이 압력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일본, 홍콩, 대만, 태국, 미얀마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 노동자들에게 동시에 투영된다. 두 개의 전선이 그어지고 있다. 하나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연결되는 이른바 ‘쿼드’ 동맹이다. 중국의 팽창을 봉쇄하는 전선인데, 기존 쿼드에 덧붙여 올해 4월 이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도 아시아 지역으로 항공모함과 군함을 보내 관련국들과 합동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다. 다른 하나의 전선은 중국이 꿈꾸는 일대일로다.

 

쿼드에 속한 4개 국가와 더불어 유럽 강대국들까지 연결되는 미 제국주의 진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은 진영이라고 부를 만한 전선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는 수준인데, 말 그대로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어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크게 밀린다. 이런 불균형을 근거로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지 말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불균형이 오히려 상황의 불안정성을 더욱 고조시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이 지역강국 수준을 넘어 강력한 전 지구적 라이벌로 성장하는 걸 막으려 할 것이고, 중국은 지금까지의 자본축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맹렬하게 더 많은 자본시장, 상품시장, 자원시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즉 세력권의 분할과 재분할이라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경쟁이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쟁의 압력에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질식하지 않고 대항하려면 국경과 국적을 넘어 국제주의 깃발 아래 단결전선을 쳐야 한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그리고 동아시아라는 지역 차원에서도 이런 국제주의적 단결은 익숙하지 않다. 세계적인 국제주의 노동자계급 운동의 전통이 무너진 뒤 아직 그 기운을 되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분명히 있다. 2019년 말 칠레에서 오랜 기간 누적된 극단적인 빈부격차에 반발해 대규모 항쟁이 터져 나왔을 때, 수천 명의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칠레항쟁을 지지하며 연대집회를 조직했다. 칠레에서 싸우고 있던 투사들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투쟁의 현황과 대의를 설명하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칠레를 방문해 항쟁에 함께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칠레항쟁 연대집회

 

그들과 우리의 조건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같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밀접해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런 국제연대를 조직하는 데 더 용이할 순 있겠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항쟁에 대해 한국에서 조직되는 연대 캠페인처럼,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고 국경선이 맞닿아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서로 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서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의 국제주의적 단결전선을 만들어가는 건 분명히 가능하다. 국적, 언어, 피부색이 달라도 노동자의 처지는 근본에서 하나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