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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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콜롬비아 시위: 코로나보다 위험한 자본주의가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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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21. 5. 13.

 

코로나보다 위험한 것

 

4월 28일부터 콜롬비아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28일은 전국에서 5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한다. 노동조합들의 시위가 예고되자 콜롬비아 법원은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다며 시위 연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노조는 시위를 밀어붙였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학생, 원주민, 환경운동 단체 등 다양한 부문이 함께 거리로 나왔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콜롬비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8만여 명에 이른다. 코로나19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규모로 투쟁에 나선 것은, 코로나보다 더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콜롬비아 노동자, 민중의 목을 겨누기 때문일 것이다.

 

방아쇠를 당긴 두케 정부

 

인구 5,000만의 콜롬비아 경제규모는 남미에서 총 GDP 기준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크지만, 고질적인 실업률과 빈부격차를 겪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전체 사업장의 37%가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영업활동을 중단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보고타상공회의소 조사). 그에 따라 실업과 빈곤도 더 크게 늘어났다. 실업자 수는 340만 명 이상이고(TRADING ECONOMICS 자료) 빈곤율은 42.5%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우익 성향의 두케 정부는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지속가능한 연대 법안’이라는 정책을 꺼내들었다. 멋진 이름과는 달리, 그 내용은 소득세 징수대상을 넓히고 생필품에 매기는 부가가치세를 확대하는 세제개편안이었다.

 

두케 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추가로 63억 달러가량의 세수 목표를 세웠는데, 그 목표 수치의 73%를 개인에게 할당하고, 나머지 27%만 기업들에게 할당했다. 노동자, 민중의 주머니를 털어서 경제위기에 따른 손실을 채우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법안이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 위기를 핑계로 실업과 빈곤의 고통을 뒤집어쓰고 있는 콜롬비아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강경진압

 

4월 28일부터 수도인 보고타를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총파업과 시위가 펼쳐졌다. 콜롬비아 정부는 야간통행금지 시간을 당기고 대중교통 운행시간도 단축하면서 시위대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부의 압박보다 대중의 분노가 훨씬 더 거셌다. 콜롬비아 국민의 73%가 노동조합의 파업에 공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대부분의 시위가 그렇듯이 이번 시위도 처음에는 평화적인 분위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두케 정부가 폭력적인 진압작전에 나서면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도 한층 더 격렬해졌다. 최루탄과 섬광탄을 쏘던 경찰은 실탄까지 사용했다. 수도 보고타에는 군 부대의 장갑차가 출현했다.

 

2019년 칠레항쟁 때에도 경찰은 시위 참가자들의 머리나 눈을 겨냥해 총기를 사용했는데, 콜롬비아 경찰도 그런 방법을 따라했다. 잔인한 진압방식 때문에 결국 사망자가 속출했다. 오늘자(5월 12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 인권위원은 이번 시위과정에서 42명이 사망하고 168명이 실종된 상태라고 보고했다. 1,000여 명이 시위 중 부상을 입었고 그만큼이 체포됐다.

 

 

보고타 외곽에 배치된 군 장갑차

 

강경투쟁

 

콜롬비아 노동자, 민중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경찰서도 공격받으면서 불길에 휩싸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폭력적인 시위진압 특수부대인 ESMAD 해체를 요구했다. 파업과 시위에 나선 노동자, 학생, 청년 등의 피해도 컸지만, 이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화들짝 놀란 건 두케 대통령 쪽이었다. 투쟁 5일차인 5월 2일 두케 대통령은 세제개편안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다음 날 알베르토 카라스키야 재무장관이 사임했다.

 

이렇게 해서 시위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두케 정부는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도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5월 5일엔 수도인 보고타에서만 35건의 서로 다른 시위가 조직됐다. 두케 정부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보됐던 투쟁의 재개

 

세제개편안을 철회한다는 발표에도 투쟁이 사그라들지 않는 건 이번 투쟁에 더 근본적인 배경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2019년 칠레항쟁을 떠올려보자. 당시 투쟁의 계기는 지하철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이었다. 하지만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의 문제”라며 사회 곳곳에 누적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항했다. 이번 콜롬비아 시위 역시 계기는 두케 정부의 세제개편안이었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세금뿐만 아니라 의료, 연금, 교육, 노동 등 여러 영역에서 불만을 표출했고 강경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두케 대통령은 집권한 이래 지속적으로 법인세 감축 기조를 취해왔다. 지난해 2월엔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줄여주는 세제개편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로 청년노동자를 겨냥한 임금삭감, 연금수급연령을 상향시키는 내용의 연금개편, 교육재정 감축 등 긴축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이 때문에 이미 2019년 11월에도 두케 정부의 긴축정책에 맞선 총파업투쟁이 일어났다. 칠레에서 빈부격차에 반발한 민중의 항쟁이 한창 펼쳐지던 시점이다. 당시 투쟁은 2020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다 하반기로 넘어오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투쟁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건 전혀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피해 확산과 통제 강화 탓에 잠시 노동자투쟁이 유보됐을 뿐이고, 두케 정부가 방아쇠를 당기면서 잠시 유보됐던 격돌이 재개된 것이다.

 

확산

 

콜롬비아에서 시위가 불붙자 지배자들과 그들의 언론은 이 투쟁이 남미 주변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을 점치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들의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 이미 2019년에도 칠레뿐만 아니라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에서 동시간대에 대중적인 투쟁이 발발했다. 투쟁을 불러일으킨 뿌리 깊은 빈부격차와 정치적 부패도 여전하다. 아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극심해졌다.

 

두케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방아쇠 역할을 하며 콜롬비아 노동자, 민중을 거리로 불러낸 것처럼, 콜롬비아 시위가 방아쇠 역할을 해 남미 여러 나라에서 2019년 이후 잠시 유보됐던 투쟁 물결을 되살릴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성급하게 정부와 ‘대화’의 물꼬를 트려 하는 노조관료들의 상투적인 타협정책 때문에 투쟁의 확산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자본가체제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들은 코로나19로 대중의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그 피해를 또 다른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며 감염병 위기극복을 지연시키고 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타개한다며 또 다시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할 뿐이다. 노동자, 민중은 집단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 외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상대적으로 지불능력, 재정여력이 더 있는 제국주의 열강의 자본가계급은 부양정책을 쓰며 약간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력이 부족한 나라들부터, 코로나 방역을 무기 삼아 대중의 투쟁을 억눌러왔던 억압조치들에 균열이 일어날 것이다. 콜롬비아의 대중투쟁은 그 시작점을 보여준다.